누군가의 '일기'를 읽는 다는 건 조심(?)해야 할 일이라 그랬을까..<내면일기> '읽기'는 좀 불편하다. 일기의 원본을 싣고 싶었던 바람이 커서였던 모양이다. 옮겨 놓은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읽기..조금..아니 많이 힘들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가 궁금했던 작가들을 아주 민낯의 느낌으로 마주하는 기분은 설레인다.



악필이란 느낌보다, 뭔가 암호로만 가득 채워 놓은 일기장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해 그녀의 책을 꼭 이맘때 읽기 시작했더랬다. 5월과6월. 뭔가 스산함과 외로움..이 느껴졌는데, 글의 재료를 수집하듯 메모한 일기장이 눈에 유독 들어왔다. 하루를 마감하듯 쓰는 것만이 '일기'는 아닐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작품초안과 일상적인 일들의 기록이 함께 적혀 있는... 그녀의 메모를 읽어보다가,어느 부분 작품 초안일수도 있겠다는 지점들이 보여 반가웠다. 


(부분) 읽을 게 아무것도 없다. 외출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습하고 비가 많이 온다 (중략) 산책하러 나갔는데 비바람 때문에 놀랐다.몸이 얼어붙고 불행했다. 









 '차 한잔'에서 그녀의 정신상태를 날씨와 연결 하여 생각해 볼 수 있어 반가웠다. "로즈메리는 바깥 계단에 서서 겨울오후를 응시했다.비가 오고 있었고 비와 함께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어둠이 재처럼 천전히 내리고 있었다.대기에 차갑고 쓴 기운이 서려 있었고 이제 막 켜진 등불은 슬퍼보였다"/10쪽 살 수 없었던 물건으로 한없이 우울했던 그녀 앞에 나타난 여자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짧았던 <차 한잔>을 읽으면서 날씨를 통해 정신상태를 묘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독후감을 남겼더랬는데.. 작품초안의 흔적을 읽은 기분이 든다. 날씨가 춥다고..불행을 느끼는 이들은 많지 않지만,그녀의 소설에서는 그런 여인이 묘사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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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다음번엔 플로베르...를 읽어야지 생각하다가. 플로베르의 책을 먼저 읽어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하다 계속 미루게 되었다.그리고,2023년 마침내 읽게 되었고,재미와 놀라움의 연속으로 <마담 보바리>를 다시 읽었더랬다.  

플로베르에 관한 전반적인 고찰인 동시에, 또다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담았다.독특한 구조였다. 소설인지, 플로베르에 관한 전기인지 종종 착각 하게 되었다. 뜬금(?)없이 나레이터역활을 자처(?)한 브레이스웨이트라는 사내가 자신의 아내의 죽음..과 보바리 부인을 연결시켜 말할 때는 당혹스럽기까지..했다. 물론 그 비밀(?)은 바로 풀린다. "엘렌 나의 아내. 죽은 지 백 년 되는 어느 외국 작가에 대해서 이해한 것보다도 더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것인가 정상인가? "/257쪽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 그녀의 아내가 바람을 핀것은 중요(?)하지 않은 듯 하면서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흐름일수 있음을 암시하는 느낌... <보바리 부인> 때문이다.  플로베르의 소설이 출간 되었을 당시.몹시도 뉴스가 되었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마담보바리..를 읽으면서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나는 건, 욕망에 대한 이름으로 보바리즘..이 생겨났다는 것 정도가 전부다. <보바리 부인>을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이유가 셀 수 없이 많아졌고,(그녀의 눈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걸 알아챌 사람이 얼마나 될까...싶기도 하고.무엇보다 그녀의 의사 남편이 두 번 결혼(? 했다는 사실도 내 기억에는 없다.)  한 작가의 전기에 가까운 히스토리를 소설처럼 읽게 만든 줄리언 반스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전기에 가까운 주제를 소설이란 형식으로 변주하게 되었을 때 어떤 시너지 효과가 발휘 될 수 있는지 경험한 기분이다. 어디까지 허구이고, 어디까지 사실인지 따져 묻지 않아도 된다는 건 읽기에 얼마나 편리함을 주는 것인지,설령 나도 모르게 오독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럴때마다 기억하면 된다.어디까지만 줄리언 반스의 시선이라고. 공감가는 지점과, 공감할 수 없는 지점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이 불편하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지적인 허영심을 가득 채운 기분이었다..작가도 그 지점을 노린 건 아니었을지....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으며 느낀 감정과 또 다른 시선을 만났다. 줄리언 반스의 시선에서 강렬했던 첫 그것은..보바리 부인이 두명(?)이란 사실인데, 우리 사이에...서는 화자가 왜 <보바리 부인>에 집착했는지를 들려준다. 남자에게 보바리 부인은 안타까움의 대상이 아니라 간통한 여인에 불과하다.그렇게라도 자신의 아내를 죽인것에 대해 이해를 받고 싶었던 것일까.조금..아니 많이 비겁한 생각이 든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다시 읽게 된다면,마담 보바리에 대해서가 아니라, 화자가 왜 마담 보바리에 집착(?) 했는지를 따라가며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교롭게도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밑줄 긋고 싶어졌다.



"이 작품에서는 앵무새 어법도 자주 사용된다. 플로베르 특유의 투를 흉내낸다. '우아하고 빈정거리는 듯하면서 다소 외설스러운 데가 있다.' 필요할때마다 플로베르의 말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예를 들어 <<마담 보바리>>에 쓰여 있는 다음의 구절은 세 번이나 등장한다. '언어란 갈라진 주전자와 같아서 우리가 그것으로 연주를 하면 겨우 곰들이나 장단 맞춰 춤을 춘다.그런데도 우리는 항상 그 언어로 별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를 갈망한다'/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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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다고 소문난 별마당도서관을 이제서야 가보게 되었다.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하루종일 있으라고 해도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러다 눈에 들어온 '내인생의 해답' 재미삼아,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겼더니... 고개 끄덕이는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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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지 않던 시절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을 주제이지만, 이제는 다르다. 목차에 <미들마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궁금했다.


"지적인 아내에게 기대려던 남자 죽어서도 통제하다"/32쪽


<미들마치>를 읽으면서 했던 생각을 정리 받은 기분이 들어 반가웠다. 무려 4권에 달하는 책에서 저 부분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고 볼 수 없지만, 강렬한 무엇이었던 건 분명하다.도로시아는 커소번의 바람대로(만) 행동하지 않았다.


<미들마치>를 2023년에 읽었으니, 기억나는 부분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지점들이 훨씬 많을게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조지 엘리엇의 이름을 들었다. 촌스러운 제목과 표지가 호기심을 반감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조지 엘리엇이란 이름과 <미들마치>를 이제는 읽어야겠다고 진짜..생각한 순간 펼쳤을때 소설은 정말이지 재미났다. 해서 약속했더랬다. 다른 출판사에서도 <미들마치>를 출간한다면 읽겠노라고. 민음사에서 <미들마치>가 나왔다. 다시 읽게 될때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게 될 것 같다.^^










그 전에 <내 인생의 미들마치>를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평점이 후하지 않아 일단 보류해야겠다.프루스트의 잃어버린...을 무려 두 번 읽은 자부심이 있었는데, 책의 저자는 <미들마치>를 무려 네 번이나 읽었다고 했다. 나는 줄거리 조차 가뭇해지는 시점이 오면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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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살롱 방문했다가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를 만났다. 소세키 선생이 떠오른 것이 첫번째 이유였고, 목차에서 '백제인'을 보는 순간 읽고 싶어졌다. 얼마전 부여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일게다.


"부여는 늘 고적하고 쓸쓸한 기운에 감싸여 있지.백제가 멸망한 땅이어서 그런 걸까? 그래서 그런지 여기 사람들은 발소리를 죽이며 다니고 당최 말들이 없어. 그래도 난 내 고향 부여를 사랑해.무량사,정림사지,능산리 고분,고란사,낙화암, 백마강.... 이런 것들이 나를 잉태하여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줬으니 말이야"/260쪽




부소산문에서 시작해서  영일루를 지나 사자루로 가는길에 보인 백마강은 아득하다. 부소산성이란 사실을 모르고 걷는 다면,마냥 산책하기 좋은 길이라 생각하며 걷게 되지 않을까..낙화암을 지나 고란사에 도착했을 때의 고요함은 이제 없다. 오히려 낙화암과 마주하기 전까지가 고즈넉함을 느낄수 있었던 것 같다. 고란사에서는 오히려 유람선이 사람을 유혹한다.해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하려던 서복사지는 만나지 못했다. 그 덕분에(?) 백마강에서 고란사를 바라 볼 수 있었다.



백마강에서 바라본 고란사는 조용했고, 나무에 가려진 낙화암은 슬퍼보였다. 황포돛대에서 틀어준 노랫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부소산성을 내려와 주현미가수버전으로 1954년에 발표된 '백마강'을 들었다. 목소리에 감정이 실려서 인걸 감안해도..가락보다 단어 하나하나가 와서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구곡간장,삼천궁녀,계백장군, 피 흘린 황산벌..등등 


아주 짧고,쓸쓸한 '백제인'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부여 여행에서 '백마강'이란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들은 덕분인 것 같다. 백제인 유물 한점에 미쳐(?) 가족을 등한시 하게 된 인물을 누구도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지는 못할게다. 그런데 온 마음으로 백제인이 되어 본다고 하면..그렇게 빙의가 되고 나면,남자는 미치지 않을수가 없지 않았을까.그러니까 멸망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백제인의 마음으로 본다면 한없이 슬픈 이야기가 맞다. 그러나 혜진의 입장에서 읽는다면 부여란 곳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백제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다면 송곡리로 향하지 않았을까...그러나 그녀에게도 행복한 가정이 파탄나게 된 순간이..구곡간장의 마음은 아니였을까...



부소산성을 걷다보면 그날 백제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백마강'이란 노래가 그저 대중가요가 아닌, 백제인의 마음으로 빙의해서 만든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백제인'을 읽으면서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말랑말랑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그날의 백제인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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