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생전 마지막으로 쓴 글씨는 봉은사 판전의 현판이라고 했다. 세한도를 볼때도 더 깊이 추사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추사고택을 다녀오고 난 후 읽게 된 소설 <추사>는 자꾸만 나를 추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지 않느냐고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더 깊게 들어갈 자신은 없다. 다만 소설을 통해 인연이 될 역사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도시를 걷는 시간>은 그렇게..그런 인연으로 또 나를 찾아 오게 되었고, 고맙게도 추사의 다른 이야기가 아닌 '판전'이 소개되고 있었다. 봉은사를 소개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거다. 지금껏 봉은사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내 마음이 작가님의 마음과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그럼에도 찾아가 봐야 겠다. 글씨에서 품어낼 기운은 느낄수 없겠지만...









"추사의 흔적은 한반도 곳곳에 흩어져 있다. 태어난 충남 예산에 고택과 묘소와 기념관이 있고 귀양살이를 갔던 제주 대정에 추사관이 있으며 만 권의 책을 읽고 학예를 꽃피웠던 서울시 통의동 집터가 있고,귀양에서 돌아와 잠시 살았던 용산,다시 귀양살이를 했던 함경도 북청,그리고 생애 마지막 4년 동안 머물렀던 과천에 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177 쪽 통의동에 있는 미술관에 갔을 때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그 자리가 서울에서 살았던 곳이라니...다시 찾아가봐야겠다. 무엇보다 봉은사..먼저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글씨에 아이의 닮은 모습을 엿볼수 있다 하니...서예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어 감히 느낄 자신은 없지만...마음껏 상상하며 판전을 보고 싶다.

‘판전 칠십일과 병중작‘
(...)
봉은사로 출가한 추사는 경판을 보존하는 건물인 판전의 현판을 쓰고 ‘71세의 과천 늙은이가 병중에 쓰다‘고 낙관했다.기교가 없고 어눌한 듯하지만 소박하고 예스럽다.유 선생은 71세 추사의 마지막 글씨가 7세 추사가 양자로 간 집에서 친아버지에게 쓴 편지의 글씨와 닮았다는데 부처는 아이의 모습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싶다/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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