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닮은 표지...


ps: 그래서 다 읽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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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 때문에 몰입이 쉽지 않았는데.

원제가 프랑스 가정식 수프인 '포토푀'였다는 사실을 알고 뒤늦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기와 채소를 오랜 시간을 들여 뭉근하게 끊여야 제맛이 난다는 사실..

영화가 내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오랜 시간 무언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

프랑스 요리까지는 몰라고, 요리 자체가 갖는 미덕을 알았다면 영화 몰입이 쉬웠을까..

살짝 지루한 구간이 있긴 했지만,영화 원제 덕분에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던가에 대해서

이해는 같다..발자크(소설가 발자크가 아니어서^^) 언급은 살짝 웃음나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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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 함정임의 유럽 묘지 기행
함정임 지음 / 현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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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라는 시간이 충분(?) 할 수도 있지만, 한달음에 읽어낼 수 없는 책이라면, 길지 않은 시간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이방인>을 마친 시점에서 카뮈의 그곳을 만날수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그해 겨울 아침 잠에서 깨어나 돌연 남프랑스 뤼베롱 산간의 고원 마을 루르마랭을 찾아간 것은 불명의 창조자를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거부할 수 없는 충동 때문이었다.(...) 사이프러스나무가 고요히 옆을 지키고 서 있는 카뮈의 무덤 앞에서 나는 뫼르소처럼 "이런 행동은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중얼거렸다.그러면서도 누군가 저만치 놓고 간 붉은 열매를 꽃다발인 양 묘석 아래 깊숙이 꽂고 있었다.화강암을 깎아 만든 네모난 묘석 위, 정오의 태양이 ALBERT CAMUS라는 글자에 내리쬐고 있었다"/325~326쪽   카뮈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읽으면서 어쩔수 없이 그때 기차를 그냥 탔더라면..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지면을 통해 만나고 있을 뿐인데도 묘한 기분이 든다. <전복적 소설 읽기>를 통해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이방인>을 만났다면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에서는 이방인을 여러번 읽은이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느낄수 있어 반가웠다.


"엊그제 나는 <이방인>을 다시 만났다.이 소설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 어디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내용과 형식이 달라진다.몇 번 째 만남인지 헤아려보는 일 따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324쪽


"내 삶조차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섬뜩하게 깨닫는 순간이 있다.이런 '말도 안 되는' 부조리한 인간 조건을 최초로 자각한 사람이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이다.(...)뫼르소의 출현은 문학, 심리락,사회학 정신분석학계는 물론 전 세계 언론과 독자들을 동요시켰다.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줄거리만으로 볼 때에는 가히 성격판탄자라고 불릴 만 한 뫼르소가 부조리의 반항자로 세기를 넘어 불멸의 생명력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다"/325쪽



언제 어디에서 만나는가는 정말 중요한 지점이라는 말에 공감했다. 책을 거의 읽지 않았던 시절,놀러간 선배집에서 이방인을 ..처음으로 읽었다. 공교롭게 6월이었다. 그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는 건..몹시 난해하다는 이방인을.. 처음 읽을 때도 전혀 난해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던 것에 대한 놀라움이..있어서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몰랐는데, 내 삶조차..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낀 것이 이유가 아니였을까...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 대한 조급증에 시달렸던 그때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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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혼자 하는 거라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이제는 나와 다른 의견을 만나고, 같은 느낌을 공유하는 것도 기쁨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책은 도끼다>와 <전복적 소설 읽기> 와 같은 책이 그렇다. 지금까지도 '칠레의 밤'과 '왼손잡이 여인'은 읽지 못했다. 카프카와 프루스트 이야기가 흥미로워 물개박수를 쳤던 기억은 여전하고..그런데 <이방인>도 소개되어 있는 줄..모르고 있었는데..우연히 다른 책을 검색하다 발견.. 해서 <이방인>을 읽자마자 '전복적 소설 읽기' <이방인> 편을 찾아 읽었다.


"자유와 행복의 증거였던 냄새와 밤하늘의 별들이 새롭지는 않습니다. 뫼르소는 이미 그 공간에 살고 있었어요.다만 그때는 '나'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어른이 아니었다는 뜻이죠.그런데 뫼르소가 감옥에서 '나'를 인식하고 아름다운 '세계'와 마주치는 축복을 경험합니다.이 만족과 행복은 곧 축제죠.이 축제에서 어떻게 혼자 있겠습니까? 축제를 즐기고 싶어서 내가 죽는 날 아침에 많은 사람이 와 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존재를 발견하는 축제, 제가 읽기로는 그렇습니다"/245~246쪽





"참으로 오랜만에 엄마 생각이 났다.엄마가 왜 일생의 막바지에 '약혼자를 얻었는지 왜 다시 삶을 시작해보려고 모험했는지 이해할 듯했다. 그곳,생명이 꺼져가는 양로원 그것 주변에서도 저녁은 아쉬움이 섞인 평온함 같았다.(....)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애정어린 무관심에 자신을 열어줬다.그 세계가 꼭 나와 똑같고 형제 같다는 깨달음에 이르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었고 여전히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종언을 고하고 내가 덜 외롭기 위해 남은 단 하나의 바람은 내 처형식 날 숱한 사람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달라는 것이었다"/145쪽  휴머니스트에서 기획된 '날씨와 생활'의 시선이 아닌 '존재를 발견' 하는 시선으로도 이방인을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죽음에 임박한 순간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된 사실에만 주목했던것 같다. 사형이란 형식앞에 축제..라는 말을 선뜻 할 자신은 없지만..뫼르소가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는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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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성을 추구하는 글이 많지만 카프카 같은 사람은 드물죠.아무리 읽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정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정답이 많은 것이겠죠.카프카의 문학은 불투명성의 투명성이 있어요.다 맞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혀 안 맞는,맞추면 맞출수록 안 맞는 것이 분명하거나 그것만으로는 다 열리지 않는 경우죠."/58쪽

 

개된 8 권의 책들과 저마다 인연(?)이 있어 반가웠다.소개된 책 가운데 특히 궁금했던 유일하게 읽지 않은 책 '칠레의 밤' 그런데 정작 <변신>을 가장 먼저 읽게 되었고.'전복적'이란 시선에 맞게 내가 변신을 읽을 때 느꼈던 시선과 비슷한 지점을 만나게 되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왠지 읽지 못한 책들을 다 읽어낼 수 있을 것 만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

처음 <변신>을 읽었을 때는 곤충으로 변한 그레고르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지점과 달랐는데..그 다름의 간극을 뾰족히 설명할 길이 없었던 거다..그런데 2017년 다시 <변신>을 읽을 때 그레고르가..곤충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통해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걸 느꼈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나친 비약은 아닐지.오독하는 맛도 독서의 매력 중 하나일텐지만 대부분 소외라고 보는 시선에서 나는 어쩌자고 탈출의 증후가 보인다고 생각했을까...이제 그 이유(?)가 '전복적'시선으로 보려는 무의식의 작용은 아니였을지 생각해 본다.사실 고전을 이렇게까지 여러 번 읽는 까닭은 줄거리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읽을때마다 다른 시선으로 읽는 맛..그 유혹을 뿌리칠수가 없기 때문이다. <변신>을 한 번 읽었다면 나 역시 그레고르가 탈출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하는 마음은 읽지 못했을지도 모를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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