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최악을 상상하며 얼마나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하며 살고 있는지 마침내 깨달았다고 덧붙였다"/245쪽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은 왠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래서 무언가 알게 되는 것이 있다면 고마운 일이라 토닥이고 싶어지는 마음.... 그래서,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서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닐까..하고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겼는데,내 마음을 들킨 듯한 문장을 읽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잠깐 동안 경외감이 어린 눈으로 그 빛이 번져가는 광경을 바라볼 수는 있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했다"/246쪽 다른 문장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내 마음도 모르고,타인의 마음은 더 모른다.그렇지만..그래서 살아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조금은 덜 복닥거리며 살아야겠다 생각하며..<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를 빌려 왔다. 소개되는 책들을 찾아 보다 우연히 아무도 모른다를 연상시키는 제목이 검색되어,이것도 재미난 우연이란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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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누군가를 믿지 못하는 오셀로,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생각할 수 도 있구나..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내가 알고 있는 경험 그 이상으로 확대 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에선 비극이 주인공들의 성격적 결함에 기인하죠.저는 여러분이 교훈을 찾기보다는 우유부단한 햄릿, 남을 너무 쉽게 믿는 성격의 오셀로를 보면서 누구 안에나 나약함과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길 바라요/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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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애정하는 지인 덕분에 개나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 

찾게 된 카페에서 다시 조우하니 (더)반가웠다는^^ 

친절(?)한 카페 사장님이 이름표를 달아놓아서 알았다.

에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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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스의 삶을 알고 들으니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가 너무 다르게 들려서 여러 제목으로 오독이 되어버렸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죽고,사랑에 죽고,노래에도 죽고.... 마리아로 살고 싶었기 때문에 마리아 칼라스로의 삶도 비극적이었던 걸까... 사랑보다 오페라를 더 사랑했다면 덜 불행하지 않았을까... 

풍월당에서 나온 책을 읽은 덕분에 영화에서 왜곡(?)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영화에서라도 오나시스와의 해피앤딩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감독의 마음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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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은 '음악집'에서 읽은 은희경작가의 '웨더링'이 다시 소환 되었다. 탄생보다 소멸을 표현하기가 더 어려워 괴로웠다는 홀스트의 음악. 유독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보여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상실에 대한 슬픔은 극복이 안된다는 말이..아이러니하게도 위로가 되는 기분...

죽음이 있어 삶에 의미가 생긴다거나 죽음이 평화를 가져다줄 거라는 말을 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내뱉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그건 그녀가 삶에 풋내기이기 때문이었으리라/104쪽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은 극복이 안 되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그녀는 유타가 그 밤 해준 말을 오래도록,시간이 또다시 아주 많이 흘러 유타와 더 이상 연락할 수 없게 된 이후에도 기억했다. 그 봄밤의 모든 것을/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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