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서평 팟캐스트 중에선 뉴욕타임즈에서 하는 Inside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가 

특히 재미있다. 진행자의 숨길래야 숨겨지지 않는 개성과 지성. 알고 보면 (알면 알수록) 세상만사에 자기만의 

괴이한 관점과 생각이 있을 것같은 그녀. 이름이 좀 특이하게 "여자 퍼스트 네임 + 남자 퍼스트 네임" 조합, 파멜라 폴. 그녀를 애정함. ----------------------------- 


NPR에서 하는 On Point는 

진행자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서, 

그것만으로도 나올 '견적'이 지켜지는 곳. 

낭중지추. 이런 일은 진행자 편에서도, 게스트 편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온건하고 polite.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도 못할 말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하기도 한다. 

사실 그 점에서, 게스트만이 아니라 청취자와 대화할 때 "이것이 대화다" 느끼게 하는 때도 많고 

그래서 여기도, 재미는 덜하지만 가끔 감사히"배운다"가 일어나는 곳. 


오늘 여기서 다룬 책이 Ego is the Enemy. 

저자가 29세라는데 이미 꽤 유명, 성공적인 저자라고.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영웅이나 천재, 위대한 사람들 중 

자기 에고가 커지지 않게 한 사람들이 많다... 는 얘길 한다고. 

big ego는 행복에도, 성공에도 걸림돌인데 그것이 실은 망상이어서 

자기라 믿는 자기와 실제 자기인 자기... 이 둘 사이의 간격을 보지 못하고 보지 않기로 하기 때문이다. 

"이미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배울 수가 없는 겁니다."


소셜미디어와 사람들의 점점 커지는 에고.

이에 대해서도 꽤 오래 얘기한다. "작가들 중엔 자기가 이런 걸 쓰고 있다고 

소셜미디어에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소셜미디어에 쓰는 거지 작품을 쓰는 게 아니죠."


기억하고 적어두고 싶었던 건 

small ego의 예로 언급된 조지 마셜. 마셜 플랜의 저자라는 조지 마셜. 

그에게 백만불 선인세로 자서전 제의가 있었으나 그는 단번에 거절했다고. 

"내가 알았던 사람들에 대해 써야 할테고 그런다면 반드시 부정적인 얘길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알았던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하고 싶어서 (자서전까지 갈 것도 없이) 

블로그 하고 있는 것 같은 나를 순간 반성하게했다. 아 그렇긴 한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혹시 누가 "이런 대학도 대학인가 대학 소설"을 쓴다면 꼭 등장해야 할 인물일 누구......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는 해야 하는 거 아냐? 


책의 저자가 한 마지막 말은: "지금 난 이 인터뷰를 아주 좋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건 내 방에 앉아 나의 작업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해 알리는 일보다, 자기가 해야 할 일에 힘을 투입하라. 이걸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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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는 니체 페이퍼 다음엔 울프 페이퍼를 쓰겠다는 계획인데, 

실은 이것들이 다 바슐라르 프로젝트다. 널리 읽히지 않고 연구되지도 않지만, 바슐라르는 20세기의 유례 없이 독창적이고 위대한 정신이었다. 아도르노와 동급일 모더니티의 비평가로, 바슐라르를 읽읍시다. 정도만 설득하더라도 (그런 게 통하기만 하더라도) 만족할 프로젝트. 


바슐라르로 가는 길을 걷는 동안 

(당신이 그러고 싶다면) 머물 수 있는 아름다운 지점들. 그들이 이 정도로 사소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니체의 탁월함, 울프의 탁월함보단 그들의 탁월함을 탁월하게 알게 하는 바슐라르의 탁월함이 주제. 


그런가 하면 

울프가 남긴 그 단어 하나 어김없이 뛰어난 글들을 (일기, 편지들처럼 뛰어나지 않아도 되는데 뛰어난 것들 특히) 

꾸준히 오래 읽으며 한탄, 감탄하고 싶어진다. 이상이 실현된다면, 오전엔 페이퍼를 막 씀.. 오후엔 다음 페이퍼와 연관된 책들을 막 읽음. 그 중엔 당연히 울프의 일기와 편지, 블룸스베리 그룹에 관한 책들이 있고 나는 꾸준히 오래 (3시간?) 읽으며 생은 여기에 있노라고 한탄하고 감탄함. 이런 일이 일어나겠지만, 이상은 실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책들 정리를 좀 하고 울프 여사님도 ;; 더 가까이 두고 있어야겠다. 




*아 위의 이미지는 My Dinner with Andre에서 또 하나의 명대사. 

이 영화는 모더니즘 정신의 상속자... 인 영화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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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루틀리지, 93년 간. 

Nietzsche's Case: Philosophy As/And Literature. 


"서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들의 의심의 해석학과 함께, 철학자들에게 니체에 대한 "문학 비평적" 접근은, 

잘해 봐야 단순소박한 오용, 잘 못하면 자격없는 이들이 저지르는 만행 정도로 여겨진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문학 비평가"들이 보기에, 철학자들이 꼼꼼히 길들여온 니체는 절망적으로 순진한, 

혹은 재미없는, 혹은 순진하고 재미없는 철학자다. 이 니체는 아주 "얇은" 니체다. 그 니체는 위대한 죽은 (백인 남성) 철학자들의 밀랍 인형 박물관에서 볼 것 같은 니체다. 철학자는 니체의 텍스트에서 일관된 의미를, 그리고 무엇보다 엄밀성의 증거를 찾는다. 비평가는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새로운 통찰을, 단절을, 균열을, 모호성을, 실현되지 못한 기회들을 찾는다. 그렇게, 우리의 문학 문화와 철학 문화의 상호 외면은 지속된다. 





그리하여 공동 연구의 결과인 이 책은 

기관이 절단, 해체한 니체의 문학, 철학적 사유의 몸, 그것의 봉합을 시도한다고 한다. 


요약과 다시쓰기를 거부하기. 철학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아도르노가 말하지 않았나. 

니체 말들은 거의 다, 직접인용만 허락하지 요약도 다시쓰기도 불허하지 않나. (<비극의 탄생>, 긴 에세이들로 된 <도덕의 계보> 포함해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그것들 제외하면. <짜라투스트라>나 <즐거운 과학>의 단장들은 전체로나 개별적으로나 그냥 자기들끼리 일류를 이루고 아류를 허락치 않지 않나. 하긴 저 예외들도 합당하게 요약하고 바꿔쓰려면 재능이 작지 않아야 할 것같고).


어쨌든 (범용한) 철학자들이 (위대한) 철학자를 길들일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위에서 말하는 내용에 순간 깊이 공감했다. 그들의 손에서 그는 "순진하고 재미없는 naive and uninteresting" 사람이 된다. 


그를 직접 읽음과 

그에 대해 전해 들음 사이에 어느 정도의 간격이 있는가로 

저자들을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예외 없이 그 간격은 크지만, 

더욱 더더욱 매우 심지어 메울 수 없이 큰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존 스튜어트 밀의 그 간격이 1이면, 

바슐라르의 그 간격은 3000쯤 되지 않을까. 


어쨌든 니체는 '읽기'(철학을 읽기)와 관련해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 지 않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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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Genius of the Modern World 진행자 베타니 휴즈는 

고대사 전공 학자, 방송인이라고. 그녀의 진행은 그냥 무심히 넘어갈 편인 진행인데 

BBC에서 만든 다른 다큐, <공포, 로베스피에르와 프랑스 혁명>의 여성 나레이터 목소리는 아니다. 

편파적이며 동시에 보편적인 이성이 담긴 목소리. 사태를 날카롭게 꿰뚫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태를 (그 전모를) 껴안으며 그 너머로 가기까지 하는 목소리. ;;;; 감정의 생각하는 힘, 생각의 힘으로 절실해지는 감정, 그런 게 담기는 목소리다. 그게 연출만으론 아닐 것 같은. 남자가 비슷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여러 번 상상해 보았는데, 남자라면 이렇게 탁월하게 '느끼며 생각하는 인간'으로 말하지 못할 것 같았다. 상상할 때마다. 들어본 적이 없는 걸, 그런 건? 





프랑스 혁명에 관해 유툽에서 볼 수 있는 다큐 중엔 히스토리 채널에서 만든 이것도 있다. 

이건 "나레이터의 성별이 달라질 때 메시지에 일어나는 효과와 시청자 반응"이 궁금한 우리를 위해서인지, 여자 나레이터 버전이 있고 남자 나레이터 버전이 있다. 위의 것이 여자 나레이터 버전. 유툽에서 이걸 보면 옆의 리스트에서 같은 제목으로 뜨는 것들 중에 남자 버전이 있다. 이 다큐는 정말, 실제의 목소리로 웅변한다. 여자 나레이터가 하면 여신이 말함 (그 여신은, 정의의 여신. 이성의 여신). 남자 나레이터가 하면... 음, 보편이라는 것에 무능한 범부가 말함??? 


정말 그런 차이가 있다. 

사실 아래 Genius of the Modern World의 베타니 휴즈도 그렇다.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진행에 (그 강한 영국 악센트, 뭐 기타 등등 '로컬'한 요소들이 있을 테지만) 보편이 실린다. 그게 보편으로 들리는 네가 문제다... 라는 반박도 가능하겠지. 음.. (뭐라 뭐라 쓰다가 지움...) 어쨌든 한 번 들어보세요. ;;; 내 말이 맞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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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now that he's been put away, you're going to face your own demons. 

And sweetheart, they are legion. 


브렌다 모친 마가렛. 식스핏언더에서 제일 좋았던 조연. 언제나 도발적인 망가진 여자. 

남편의 새여자 잡으러 가면서 가기 싫다는 브렌다를 동행하고, 남편의 새여자가 나오길 기다리다 차 안에서  

딸과 언쟁한다. 브렌다가 마침내 그와 정착할지도 모르는 한 남자(네이트)를 만났음을 질투하면서. 브렌다에게, 네가 네이트와 어떤 얼마나 "모범"인 관계라 네가 생각하느냐와 상관없이 나와 네 아버지의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다.... 며 극딜(?)이 시작하고. 그리고 끝내는 딸에게 뺨을 (제대로) 맞는데 뺨맞기 전의 대사가 위의 대사. he는 브렌다 동생 빌리. "너는 빌리 유모로 32년을 살았어. 이제 빌리가 정신병원으로 가버렸으니, 넌 너의 악령을 봐야할 거야...." 


악령. 

오늘 아침엔 마가렛이 말한 바의 "악령"을 잠시 생각함. 

인생의 전부는 아니어도 적어도 한 6할? 은 악령과의 싸움 아닌지? 

인생에서 (너라는 인간에게서) 무엇을 만들어내느냐 마느냐, 너의 인생을 무엇으로 만드느냐 마느냐 여부는 

악령과의 싸움에 달려있지 않은지. 어떻게 싸우느냐, 어떻게 이겼느냐 혹은 졌느냐.


브렌다와 빌리는 부모에 의해 망가진 인물들이다. 

둘 다 정신과 의사인 부모가 젊어선 히피들이었고 결혼하고서도 적극적으로 프리섹스를 실천함. 

일단 부모의 (자식에게도 과시하는) 성생활에 의해 브렌다, 빌리 남매가 망가지고 또 (미국에선 그런 클리셰가 있다지만) 정신과 의사들이 자식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mind-fucking에 의해. 브렌다는 어려서부터 남동생 빌리를 그런 부모에게서 보호하고자 하고 빌리 때문에 대학도 (예일대에 합격하지만) 포기하고 빌리를 돌봐줌. 이것이 모친에 따르면 "넌 걔의 유모였어, 32년 내내". 


어떤 에피에선 거의 회복불가로 망가진 (심신 모두) 빌리 앞에서, 

브렌다가 목이 메고 눈물을 글썽이며 They did a real number on you. 이러는 장면 있는데, 

장면도 좋은 장면이고, 저 표현도 참 좋은 표현. do a number on (something, someone). 이런 표현들에 영어의 매력이 있다... 고 수업에서 말하면 별로 설득에 성공하지 못하지만. 


여하튼, 할 수만 있다면 매일 새벽에 일어나고 한 시간은 땀나게 운동하기. 

악령에 맞서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드물 것임에 대해 (새삼스럽지도 않다만) 또 생각했다. 

근력운동을 강화해야해. 악령은 근력으로. 발음은 좀 어렵지만, 이것이 진리다. 악령은 근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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