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바이저의 이 책을 얼마 전 입수해서 

조금씩 보기 시작했는데 


글 엄청나게 잘 쓰심. 

정말 이건 무슨...... 

철학계의 


그러니까 철학계의 누구라고 해야 맞겠음?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 읽히듯이 읽히는? 


피터 게이? 


어쨌든 니체는 아니다. 

울프도 아니고 아도르노도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철학 교수들의 저술들 중에서 

프레드릭 바이저의 이 책이 

가장 흡인력 있는 책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테리 핀카드는 그의 옆에서  

마치 촌놈 같아지는 느낌일 듯. 




너무너무 숨 못 쉬게 정신 없고 바쁜 나날이라서 

서재에 글도 못 쓴다. 


그런데 "좋은 영향"이라는 것. 오늘 어느 학생이 우정과 좋은 영향에 대해 말하는 것 듣다가 

그 구절만이라도 적어두고 싶었다. 오늘의 키워드. 11월의 키워드. 글 잘 쓰는 철학자에게서 

받을 좋은 영향은 무엇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디드로가 소피 볼랑에게 쓴 편지들. 

책이, 갖지 않으면 안되게 매력적으로 생긴 책은 아니다. 

절판되었고 아마존 중고로 나는 5불 정도에 구입. 

저렴하게 팔아주신 판매자에게 감사함. 더 비쌌다면 (15불이 넘었다면) 사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판매자들은 20불 넘는 가격으로 내놓고 있다. 


디드로 형제들은 (성인으로 살아 남은 자식들 기준) 2남2녀였다. 

그리고 그들은 정확히 양분되었다. 수녀가 된 여동생, 신부가 된 남동생. 이렇게 한 쪽. 

디드로와 자유정신 여동생. 이렇게 다른 한 쪽.


수녀가 된 여동생은 안젤리크. 

자유정신 여동생은 이름마저도 여자 디드로여서, 오빠가 Denis Diderot 그녀는 Denise Diderot. 


<디드로와 자유롭게 생각하기의 기예> 이 책에서 그녀가 처음 등장할 때

"오빠와 비슷한 성향이었던 그녀의 이름은 드니"즈" 디드로였다...."고 나레이터가 

그녀의 이름을, 여기 당신도 웃을 대목이 맞다 표시를 하면서, 발음하기도 한다. 이름 참 쉽게 지었지? 

아들은 드니. 딸은 드니즈. 


오빠 드니가 

여동생 드니즈에 대해 

편지에 남긴 

감동적인 문장이 있다. 


"이 아이는 생기넘치고, 활발하고, 명랑하고, 단호하고, 불쾌한

일에 빨리 화내고, 용서에는 더디고, 현재도 미래도 신경쓰지 않고, 행동에서 

자유로우며 말에서는 더 자유로운 아이야. 여자 디오게네스인 것임...." 


디드로의 부친도 흥미로운 인물이어서 

구체제에서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가질 수 있던 권리들을 마음껏 쓰는 한편 

자식을 깊이 (기쁨과 고통 모두에서 깊이) 사랑했던 사람. 디드로는 격하게 연애해서 결혼했고 

그 결혼은 곧 씁쓸하고 불편한 동거의 관계가 되는데, 사랑은 금방 식었어도 그 부부의 관계는 좀 복잡한 감정에 

기반한 결속의 관계이긴 했다고 전기작가들은 보는 듯. 아무튼 결혼 후 그의 아내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딸을 깊이 아끼고 사랑했고 그가 딸에게 남긴 어떤 편지엔, 나는 거의 눈물을 흘리면서 (세상에 이런 남자가 실제로 있다니, 있었다니... 의 눈물 ㅎㅎㅎㅎ) 감동함. 


디드로 부친이 남긴 편지 문장들이나 

그가 했다고 전해지는 말들을 보면, 부전자전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o those who shall sit here rejoicing, 

To those who shall sit here in mourning, 

Sympathy and Greeting; 

So have we done in our time.


코넬 대학 도서관 근처

학업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벤치에 새겨진 문장들이라고. 


"기뻐하며 여기 앉을 이들에게, 

애도하며 여기 앉을 이들에게, 

공감하며 인사를 보낸다. 

살아 생전 우리도 그랬으니." 


(........... 번역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겨우 세 단어, 네 단어가 

결코 번역되지 않는 것이다......) 




유럽사 강좌의 마지막 강의에서, 교수가 그의 모교 코넬 대학의 풍경과 

그 대학에서 가르쳤던 위대한 인문학자 M. H. 에이브럼스 등에 대해서도 잠시 말하고 

대학 시절 그가 좋아한 장소기도 하다는 저 벤치, 거기 적힌 저 말들 전하면서 끝낸다. 

역사를 공부함의 의미가 여기 있다고. 


이 강좌 끝나니까 청취자 리뷰 쓰러 가서, 교수에게도 감사하고 audible에게도 감사하며 

더 많은 아주 많은 강좌를 교수는 더 제작하셔야 한다고 느낌표 열다섯개씩 붙여가면서 

말하고 싶었다. 실체 있는 도움을 여러 번 받았다. 죽다 살아나는.......... 그런 심정 되기도 했다. 


서구. 서구 문명. 서구 역사. 서구가 인류에 한 기여와 인류에 지은 죄. 그 모두의 의미를 무어라 말하겠는가. 

마지막 강의에서 이 주제로도 오래, 깊이있게 얘기한다. 


밑줄 긋고 오래 생각하게 되는 건 

"서구는 자기 잘못을 볼 줄 알았다. 

나라면 서구의 강점으로, 자기 반성 능력을 들겠다.

물론 천천히 보았고, 충분치 않게 보았으며, 보기를 미룬 적도 있다. 

그러나 결국 보았고 진짜로 뉘우칠 줄 알았다." 


자기 반성 능력.

이게 비서구에 비해 서구가 갖는 강점이라면  

무엇보다, 운명을 자기개척한 역사 덕분일 거 같다. 그들의 운명개척사. 그게 다 식민주의의 역사는 아닐 것이다. 


비서구는 

내 손으로 내 운명을 개척한다... 이게 

널리 공유되는 실감인 곳이 없지 않나는 생각도 듬. 

적어도 한국사회는. 여전히 그렇지 않으며, 그러니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거 아니냐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북다이제스터 2019-10-24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근래 읽은 서구인이 쓴 책과는 사뭇 다른 주장인 것 같습니다.
비서구인이 보기에 서구인이 자기 반성을 잘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구인 특히 독일인은 자기 반성에 미흡했다는 사실이요.
상대적일수도 있지만 다양한 예시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반성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공통사 인 것 같습니다.

몰리 2019-10-25 00:55   좋아요 1 | URL
이 교수는 명확히 변증법적인 접근을 하고
서구 역사에는, 자기 수정의 충동이 언제나 아주 멀리 있지는 않았다는 점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자기 수정의 동인으로 교수가 언급하는 것들 중에
˝지성의 정직성과 독립성˝이 있는데, 저는 그의 말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지성의 정직성과 독립성. 이게 서구에는 오래 전통으로 (그렇다고, 그 전통이 언제나 보호, 장려받았다는 게 아니겠구요) 이어져왔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도 상대적이고 정도의 차이인 걸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고 적극 인정하면서 탐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반성 능력이 상대적일지언정 서구에서 더 뚜렷한 경향인 게 실제로 맞다면 (저는 맞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미흡함을 반성하는 것까지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피터 게이의 가장 범작은 이 책일지 모른다. 

무성의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던 거 같다. 그냥 계획도, 점검도 없이 막 쓴 거 같은. 

무얼 주제로 쓰든 실제로 그럴 분은 아닐 거 같아서, 쓰던 당시 아프셨거나.....


수업에 제대로 신경 쓸 여유가 없으니 

전에 남겼던 노트 참고해서 준비하는데 

어제는, 이렇게 혼란한 노트에서 어떻게 일관성 있는 얘기를 만들 수 있었나,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일관된 흐름이 있는 얘기를 했다고 기억하는데 남겨진 노트들은 카오스. 


혼돈에서 질서로. 

가게 하는 강력한 요인은 당연히 무엇보다 학생들이다. 

주고받음이 선명하고, 그러면서 주제와 지향의 정수가 (까지는 아니라면 어쨌든 중요한 요소들이....) 추출되고 

가야할 방향들이 보이고.... 그럴 때 있다. 그러지 않을 때도 많지만. 


감정과 이성의 분리가 우리에게 일어난 최대 재난에 속하지 않는가. 

감정을 짓밟아도 되는 인간이, 감정맹, 감정치들이 출세하는 사회였다 이 사회는. 

감정이 비틀리는 곳에서 이성이 온전할 수 있는가. 감정도 이성도 온전하지 않은 인간을 양성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하나가 주입식 교육이다. 밑줄 쫙. 이 접근에서 지식은 자의적이다. 자의적인 

지식이 (유기성이 부정되는 지식이) 지식으로 대접받는 곳에서, 폭군의 정신, 폭군의 태도가 번성한다. 

유기적 사유 하지 못하는 인간들만 남는다. 



혼란스러운 노트라는 건 이어지는 저런 내용들. 

이런 내용으로 어떻게 시작해 어떻게 끌고 가냐. 걱정했는데 

굉장히 좋은 피드백 주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얘기들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우리의 모든 시도가 일찌감치 좌절된다.... 주제로 말한 학생이 있었고 

감명하면서 들었다. 우리의 인간관계도, 우리의 지식추구도, 멀리 가지 못한다. 

조금 가다가 끊긴다. 차단된다. 


그러니까. 인식의 기관들을 탕탕 절단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낙지 탕탕. 

멀리 조심스럽게 깊이 오래 탐구하지 못한다. 


피터 게이의 <계몽시대>가 아주 좋은 예를 준다. 

인식의 기관들이 풍요하며 섬세하다는 게 무엇이냐. 

관절들이 유연하고 건강하다는 게 무엇이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디드로의 고향 마을 랑그르(Langres)에 세워진 디드로 상. 





<디드로와 자유롭게 생각하기의 기예> 이 책의 1장에

랑그르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있는데 


랑그르라는 지명을 디드로의 고향으로 (그의 고향이라서) 처음 알게 되기도 했지만 

디드로가 거기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이 곳은, 그러니까 오산 정도도 아니고 

장성 정도? 영암 정도? 셋 사이 차이가 없습니까. 중심에 작은 읍내 있는, 걸어서 마을 끝에서 끝까지가 

가장 멀어도 두시간인 그런 곳인가 보았다. 저자가 그 점을 은근히 강조한다. 


그리고 

디드로를 아주 그냥 뽕을 뽑는 마을이라는 것도 강조한다. 

"이 마을의 가장 유명한 아들" "그들의 가장 유명한 아들" 이런 구절 계속 쓰고 

읍내 광장에서 오른쪽을 보면 디드로 빵집이 있고 한 블록 옆에 디드로 양복점이 있는가 하면 

디드로 안경점과 디드로 철물점도 있어.......... 


굉장히 그 마을에 가보고 싶어졌다. 

더 늦기 전에 프랑스엔 한 번 가보아야 할텐데 

프랑스 가면 디드로 고향 랑그르, 바슐라르 고향 바르-쉬르-오브, 이런 데만 

찾아다니다 온다 해도 아무 불만 없을 거 같았다. 물론 실제 가게 되면 

파리..... 중심이 되긴 하겠지. 그런다 해도 


랑그르, 바르-쉬르-오브는 꼭 가봐야할테고 

운전 초능력이 있다면 이런 벽지들(로 지금 상상되는) 

찾아가기도 어려움 없을 거라 공상하게 됨. 운전 초능력. 서울에서 운전 오래 한다면 

생기는 거 아닌가. 오래 해야만 한다면. 


그런데 오래라면 한 10년 아닌가. 

그러면 ...... 나이 장벽은. 

.... 이렇게 저녁 시간이 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