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 파이돈/ 크리톤/ 향연 내 손안에 소피아 클래식 1
플라톤 지음, 강윤철 옮김 / 스마트북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 겸손의 미덕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고전 중에 고전에 속한다. 대학교 철학입문 수업 중에서도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이고, 흔히 철학의 시작을 논할 때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줄기를 이야기하고 논쟁을 한다. 책은 철학입문 당시 읽었었는데, 다시 읽은 이유는 철학을 좋아하는데 너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어서(사실 아무것도 몰라서) 제대로 알려면 뿌리부터 알아보는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 철학입문 수업은 게다가 영어 수업이어서 알아들은 부분도 컸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대부분 말하는 변명을 읽고 나니, 과거에 읽었던 기억이 나며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사람 오만하다 라는 생각.  돈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자신을 처형한다면 그건 자신을 해치는 해치는 것이 아니라 배심원들, 시민들 자신을 해치는 일이라고 말한 , 자신을 신께서 시민들에게 보낸 은총이라고 말한 , 유죄가 선고되자 자신에게 적합한 형벌은 사형이 아니라 영빈관에서의 식사대접이라고 말하는 , 1프나의 작은 벌금형으로 바꾸는 , 그나마 작은 돈의 상징성 때문에 1프나 인줄 알았는데 바로 제자의 도움으로 30프나로 바꾸는 등등. 물론 변명을 모두 읽지 않고 앞서 말한 것들만 듣는 다면 누구나 유죄를 외칠 것이다. 하지만 맥락을 감안하고 읽는다 하더라도, 겸손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배심원들인 시민들도 유죄를 던지고, 1 유죄선고가 이루어지고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이어질수록 유죄라고 선택한 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보니 그냥 누가 보더라도 오만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겸손이라는 것도 지혜에 포함되어 있는 요소일텐데, 그는 어찌도 저리 겸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보면 우리의 편견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의 위치는 피고인이다. 이미 소문이 좋게 상황이라 자칫하면 사형 선고를 받을 수도 있는 상태란 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결백을 목에 핏대 서게 외치거나 동정에 호소할 것이다. 그래야 응당 맞는 것처럼 보였다. 죄의 옳고 그름보다는 얼마나 동정심을 유발하느냐가 판단에 영향을 지대하게 미치는 같으니까, 판결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거니까.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달랐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부정과 불의라고 외치고, 자신이 패소한 것은 염치가 모자라서, 비굴함을 드러내지 않아서라고 패소 직후 말한다. 변명 말미와 파이돈편에서 이야기하듯이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철학자는 죽음을 기꺼이 맞이해야 한다며 죽음에 대하여 희망을 가져도 좋다고 했다. 사람이란 원체 죽음이 두려워 사형 선고의 앞에서는 벌벌 떨며 동정을 구한다고 본다. 우리는 모두 그런다. 그런데 당신도 마땅히 그럴 알았는데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에게 적합한 형량은 맛있는 식사라는 말에 우리는 괴리감에 느껴 오만함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면 결국은 겸손해야 했다고 본다. 그가 정말로 신으로부터 선택 받은 자였다면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고, 일반인들의 눈높이로 다가서야 했다.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결론적으로 겸손해서 나쁠 것은 전혀 없다.



-          --지혜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신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지목 받았다. 그는 자신의 무지를 증명하기 위해 정치가, 시인, 공예가를 차례로 찾아가 보았지만 결론은 자신처럼 지혜가 사실 아무 쓸모가 없음을 아는 자가 가장 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이거 하나만큼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아는 척을 한다.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거나(정치가), 훌륭한 구절을 남기지만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시인), 기술적인 일에만 뛰어난데 다른 일도 잘한다고 생각한다(공예가). 꺼풀, 꺼풀만 깊게 물어보면 모두들 대답을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아는 척을 한다. 나부터가 그러하다.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책을 알고 있으니 나는 점점 알아가는 것이 많구나 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소크라테스가 비판했던 정치가와 다를 바가 없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가 아무것도 쓸모 없음을 아는 . 이렇게 소크라테스가 말한 바를 문장으로 써놓으면 단순히 머리에 입력은 된다. 그런데 뜻을 진정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이게 너무 많이 알아서 해탈한 것인지, 자신을 알라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깨우친 것인지. 내가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면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부하면서 살지도 않았을텐데. 그래도 나의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3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말하는 자유 의지 다루는 것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          자유에 대하여

밀은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있는 경우는 오직 가지, 자기 보호를 휘해 필요할 때뿐이라고 말하였다. 당사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거나 행복하게 만든다고, 또는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거나 옳은 일이라는 이유에서,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슨 일을 시키거나 금지시켜서는 된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그가 그런 자유의 원리가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을 점이다. 자유를 억제해도, 독재가 가능한 사회로 미개사회를 언급했는데, 아쉽게도 어떤 사회가 미개한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주장은 논란을 낳을 뿐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독재를 경험한 나라들의 독재자들은 밀의 주장을 끌어다 쓰며, 국민들이 우매하였기 때문에 독재가 효과적이었다고 말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독재 시대,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를, ‘비록독재는 잘못 되었지만, 덕분에 이만큼 성장했으니 결과적으로 좋았다고 말을 한다. 절대적으로 틀린 말이라고 보는데,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자유를 희생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독재의 시절,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잃었고, 자유를 외치면 생명을 잃었다. 정부의 역할을 최소한에 그치게 하는 것이 밀의 주요 주장인데, 성숙한 시민을 운운한 것은 모순적이지 않나 싶다. 자유라는 것은 인간이기에 가질 있는, 이해할 있는 권리이고 어떤 인간에게나 적용이 된다. 은연중에 선진국의 시각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자유에 대해서 구구절절 좋은 말들을 해주었는데, 읽으면서 우리나라는 과연 자유로운 나라라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자유가 너무 확대되어 있다. 북한이라는 갇힌 체제의 나라가 적국으로 있는 상황에서 우리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상대적으로 부풀려지고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듯이 포장 된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를 다른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그것과 비교해 봤을 때에는 여러 한계점들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밀은 자유의 기본 영역 세가지를, 1. 생각과 감정의 자유, 그리고 절대적 의견과 주장의 자유 2.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 3. 결사의 자유라고 보았는데, 한국 사회를 꺼풀 벗겨내 보면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우리 사회가 공유하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있다. 제도는 있더라도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고, 보이지 않는 벽들이 자유를 옭아맨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 아닌 객관식 답으로 줄을 세우는 사회, 신입사원 연수에 남녀비율이 91이라는 기업들, 무슨 주장을 하면 어느새인가 정치적 색을 씌우는 언론. 스스로를 자유다라고 말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는 사회다. 변화가 아닌 혁명, 개혁이 필요한 같다.  다음엔 게바라를 읽어야겠다

-          개별성에 대하여

책의 3장에서는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써 개별성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자세히 다룰 필요도 없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 사회는 너무 단일화 되어 있다, 대학생들이 너무 똑같아 개성 있는 활동을 젊은이를 선호한다, 획일화된 사회에서 발전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주류에 포함되기 위해 발버둥친다. 정말 악으로 변화를 외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류에 포함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면서 조그맣게 불평을 늘어놓은 사람들일 것이다.(나를 포함하여.) 개별성을 잃는다는 것은 위험하다. 좋게 말하면 하나로 뭉친다는 말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책에서 개별성을 잃은 대중의 만행으로 지목된 것이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죽음이다. 결코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후대의 관점으로 봤을 적에는 오히려 크나큰 도움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과 너무 다르다고 하기에 죽음을 피할 없었다.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처형을 당한 것이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였다니, 잘못된 것에 뭉치는 대중의 위험성을 있는 증거이다. 개별성을 잃어 갈수록 정부입장에서는 좋다. 계속해서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대중의 머리 속에 때려 박아 세뇌시키기만 하면 다른 의견, 올바른 의견이나 나쁜 의견이나 상관없이 모두 제거하기가 편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를 이만큼 성장시킨 것은 우리 속에 잠재된 역동성이었는데, 지금 개별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과거 1세대 역동성의 힘으로 지금의 대기업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오히려 대기업들로 인해 차세대 역동성이 없어지고 있는 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잠재력은 분명히 크다. 구글이 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혁신 센터인  구글캠퍼스를 영국과 이스라엘에 이어 우리나라에 세운다고 발표한 점은 그들도 우리의 혁신, 역동성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게바라는 읽어야겠다.

-          토론에 대하여

책에서 저자는 토론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옳고 그른 것을 가르거나 자유의 방향성에 대해 논할 토론이 반드시 필요하며, 토론을 통해 나쁜 것은 걸러낼 있고, 좋은 것은 강화 시킬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 모두 대한민국이 토론에 강하거나 토론을 좋아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유교문화의 끝을 부여잡아 상하관계는 언제나 최선으로 지켜야 하기에,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토론의 시도는 말대꾸로 치부되어 버린다. 국회 청문회에서의 삿대질이나 의미 없는 비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희한하게도 모두들 원인은 알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토론 위주의 수업이 아닌 단순 주입식 교육, 단답형의 답을 찾아내는 교육이 아이들의 사고 능력을 막아버리고, 논리력이 아닌 암기력만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토론을 하지 못한다. 대학교에서도 토론은커녕 교수님에게 질문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학기에 질문을 5 이상을 했는지 자문해 보면 그렇지 않은 학기가 많은 것이 많은 대학생들의 현실일 것이다.  토론이 없고, 논리가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견에 대해 번만 깊게 물어봐도 모르거나 대충 알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정답을 찾아 빙빙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토론이 빨리빨리 문화의 한국인들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건전하게 토론할 능력이 없다면 누가 사회를 이끌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교육을 바꾸자고, 정부의 정책을 바꾸자고 외쳐야 텐데, 누구도 머리 속에 생각나는 단체가 없을 것이다. 토론할 있는, 비판할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들도 힘이 없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정부의 독재나 자유에 대한 제한에 맞설 있는 유일한 길은, 정부 밖에서 대등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의 깊게 비판을 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유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사회의 총체라고 있는 정부가 자유에 대한 하나의 방안을 내놓으면 외부의 단체들이 그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비판하여 올바른 자유로 수렴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한 사회, 올바른 사회의 자유라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방법은 없는 것일까. 토론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도서관의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책과 토론은 실과 바늘처럼 언제나 비례하고 어울린다. 우리나라의 1인당 독서량은 처참하고, 읽는 환경도 좋지 않지만 도서관이 우리 주위에 정말 많다면 심심해서라도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면서도 책을 읽지 않을까 싶다. 도서관 숫자가 세계에서 하위권을 맴도는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결코 도서관 수를 늘리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부가 자신들을 견제할 성숙한 시민들의 양성소인 도서관의 건립을 반기겠는가. 그러니 민간에서, 강력한 민간이 나서서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시민들은 강하다. 많은 시위에서 있듯이 들끓기는 잘하지만 그만큼 빨리 식기도 한다. 만약 우리 모두 책을 많이 읽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있다면, 빨리 식지도 않을뿐더러 많은 것을 바꿀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월호 사건이 1년이 되어가는데, 관피아, 정피아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고, 바뀐 것은 없다. 나의 자유만이 아닌 모두의 자유를 외치는 날이 오기 위해서는 도서관 건립이 절실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험사회 (반양장)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 새물결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위험사회에 대하여

1993 서해 훼리로 침몰 사고, 1994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03 대구 지하철 화재, 2005 상주 콘서트 압사 사고, 올해 들어서는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 세월호 사고, 판교 환풍기 붕괴 사고. 앞서 나열한 사고들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사고들인데,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분명, 과거보다 살기 좋아졌고, 안전한 사회인 같은데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울리히 벡은 현대의 여러 문제에 대해 근원을 생각해 있게 해준다.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근대화는 결코 우리에게 이점만 것이 아니라 그에 비례하여 위험 또한 발달했다는 것이다. 근대화의 물결 이후, 우리 사회는 더욱 복잡해지고 세밀해졌으며 사회의 규모 역시 과거 어느 때와 비교하더라도 비대해졌다. 문제는 위험 역시 그와 대등하게 비대해져서 우리가 제어할 없는 위험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핵발전소의 위험인데, 평소에는 우리에게 혜택을 주는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터지면 인간이 감당할 없는 문제로 까지 커진다. 체르노빌 사고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피해가 얼마나 막심한지 우리는 있다.  이렇게 근대화가 위험도 키운 이유는 과학의 계몽을 넘어선 진리 추구 때문이다. 과학적 합리성은 사회적 합리성과는 방향을 달리하여 사회로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고, 과학 발전의 파편들이 정치, 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 위험으로 둔갑되어 버린 것이다. 과학적 합리성들을 이용하여 이득을 사람들은 하지만 결코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지지도 못한다. 과학적 합리성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위험은 우리가 제어할 없는 크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근대화를 올바르게 이끌어가기 위한 성찰적 근대화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만 유독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저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언급한 한국의 유래 없는 발전 속도로 설명이 가능하다. 책을 보면 근대화의 정도에 따라 그에 따른 위험들이 달라지고 그것을 극복하면 다른 위험이 계속해서 나오는 구조가 현대와 미래의 구조가 것이라 말하였다. 하지만 한국은 50년도 되는 기간 동안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는 바람에 전통사회나 1 근대화에서 나타날 있는 위험들을 충분히 제어하지 못한 , 2근대화를 맞이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과거의 발전으로부터 내재되어 있던 여러 위험들이 현대의 위험들과 더불어 같이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은 특별히 위험사회라고 저자는 말하였다. 이는 일견 타당한 말로 국내에서도 이런 자성의 목소리들이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나왔지만 여전히 변화되고 있지 않다.

- 한국의 개혁에 대하여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인식 전환이다. 위험사회에 대한 대책들, 개선점들을 보면 제도화, 안전문제에 대한 처벌 강화, 긴급 대응 센터 건립 , 주로 정부와 사회의 역할만을 강조할 뿐이다. 하지만 사회나 정부가 모든 위험에 대해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시민 의식이 바뀌지 않는 위험은 계속해서 발생하기 때문에 적절한 대처가 아니다. 모든 것이 빠른 성장을 위해서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교육의 개혁이 가장 절실하고 효과적이다. 산업화 시대에 맞게 기술 위주, 조직 위주의 교육이 아직까지도 교육 체계인데 현재 여러 한계점들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학업성취도가 세계 1,2위를 다투는 실정에서 학문계에서 가장 위대한 상이라고 하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나아가 시민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무더기로 지식을 주입하여 사회에 투입하게 하는 현재의 교육체계에서는 사회의 위험이 계속해서 나올 밖에 없다.  깊게 생각하지 않는 , 위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없고 그것은 다른 위험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참사, 판교 환풍기 사고에 대한 대응 역시 위험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본다. 물론 사고현장의 환풍기가 설계상 부실했고 주최측이 무책임하게 행사를 진행했다고 하나( 역시 빨리빨리, 효율을 추구하는 우리 교육, 우리 사회의 영향일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 , 국회에서 발의한 대응책은 4m 높이의 환풍기나 30명이 올라가도 거뜬한 환풍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환풍기는 바람을 통하게 하는 기능만 필요하지 애초에 사람들이 올라가서는 되는 구조물이다. 4m 높이나 강철 재질의 환풍기를 주장하는 것은 시민들의 인식 부족이라는 핵심을 짚지 못한 것으로 환풍기 개선에 투입된 추가 비용으로 인해 국고를 받지 못한 다른 곳에서 반드시 위험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경기도 시흥의 장곡중학교의 혁신적인 교육 방식은 여겨 볼만하다. 책상을 칠판을 향해서가 아닌 마주보게 만들어 서로 토론하는 수업을 만드는 방식으로 학생들의 열성적이 참여와 깊이 있는 교육이 가능하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일방향적인 수업만을 들었고, 사회에 나가서 주위 사람들과 깊이 있는 토론을 할라치면 깊이 있는 생각에 익숙하지 않아 서로 갈등만 나타내고 심하면 사상주의자로 몰고 가는 사회에서 장곡중의 생각 있는수업은 미래를 위한 한가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한가지 위험사회에 대한 대응은 독서이다. 언뜻 보면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독서는 사람들의 행동을 급하게 만들지 않고 깊게 생각하게 한다. 책은 그것을 모두 읽고 생각을 해야만 주제를 파악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이 많이 보급된 우리나라에서는 지식, 지혜 아닌 정보만을 스마트 기기를 통해 얻고 있으며 단편적인 지식들로 인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매한 군중들은 위험을 미리 예방하지 못하고 단지 반응할 뿐이다. 안전사회라는 것은 경제적 척도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의식, 생각의 깊이로 판가름 있다는 것을 정부, 사회, 개개인이 모두 견지하고 독서 진흥책을 펼쳐야 것이다.  저자가 주장한 성찰적 근대화는 결국 성찰하는 생각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사상의 무서움에 대하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생각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이 발전하여 이론이 되고, 사상이 되고 사람들의 행동, 의식을 결정하는 사회적 규범이 된다.  그런 이론, 사상이 애초에 인간 중심이 아닌 순간 무서우리만큼 흉악한 무기로 변한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가 그러했고, 책에 나오는 맬서스의 인구론이 그러하다. 사상의 무서운 점은 그것이 실체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교육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정도는 심해진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한국의 교육 과정에서도 등장하는 이론이다. 인구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그에 반해 식량은 인구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론이었다. 여기까지만 가르친다. 그럼으로써 나타날 있는 문제점이나 해결책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단지 이론의 설명뿐인 것이다. 여기까지 정도 배운 사람이 스스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기아와 인구과잉의 문제를 동시에 경우, 인구의 적절한 유지를 위해 기아를 묵인하는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론이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교육과정에 여전히 쓰일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 더욱더 심해지고 있는 기아의 문제에 대해 해결할 의지조차 내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들 모두는 안다. 기아의 문제가 선진국들의 탐욕적인 경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국민이 아둔할수록 국가는 더욱더 탐욕을 드러낸다.  국민들이 왈가왈부하지 않는 이상, 국가의 정책을 견제할 있는 것은 국제기구뿐인데, 지금의 국제기구는 단지 허수아비의 역할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의 경제 위상을 가진 것에 비해 빈곤국을 도와주는 정도가 너무나 낮다. 국제개발원조에 투여하는 금액은 다른 선진구의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그나마도 보여주기 식의 성과 위주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원조금액을 늘려야 한다고 몇몇의 전문가들이 주장할 때마다, 아직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지 못했다, 아직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국가는 주장하며 탐욕을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민들은 그런 국가의 말이 그럴 하게 들리니 아직도 잘살아보세 외치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  사회지도층으로써 이보다 좋은 국민들도 있을까.  자신만의 사상이 없으면 사회의 사상이나 이론에 휩쓸리기 쉽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론이 조금만이라도 형성되는 순간 유난히 동조의 모습을 보이며 과격하게 행동한다. 자신만의 사상이 없으니 사회의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열성적으로 동조하기 때문이다. 특히 걱정스러운 부분은 우리나라의 강점인 IT이다. 세계 최상위권의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유지될수록 우리는 점점 아둔해져 간다. 일인당 독서량을 끝을 모르고 떨어지고, 도서정가제는 현실은 반영하지 못하고 좋은 취지만을 살려 강행한 탓에 책에 대한 관심을 떨어트리고 있다. 정부가 우리나라의 일인당 도서관수가 개도국보다도 못하는 현실을 알면서도 공공도서관을 적극적으로 늘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바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국민들이 바뀌어야 한다.

- 커피 잔에 대하여

책은 카페에서 읽어 내려갔다. 3,000원짜리 카페라떼를 시켜놓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노래가 나오는 쾌적한 공간에서 난민 캠프의 참상과 그곳에서 간호사들이 생명을 선발하여 영양주사를 주고, 선발되지 아니한 난민들은 천천히 죽어가는 내용을 읽었다. 순간 나의 행동하지 않는 모습이, 경제 대국의 혜택을 받고 있는 나의 모습이 옳지 않은 것만 같았다. 나의 3,000원으로 명의 아기들에게 생명을 연장할 기회를 있는데도 나는 먹지 않아도 나의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커피를 마셨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인지 자신에게 반문해 보였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에 이것들을 당연히 누려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동안 내가 엄청난 불균형을 단지 미디어를 통해 정제된 장면만 봐서 진실을 몰랐던 것이었는지. 작가는 책을 통해 우리들의 원조의 손길이나 긴급 구호활동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이 진실을 알기를 원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진실만 알았을 변화하지 않았다. 책을 읽었을 때에는 당장이라도 정기후원금을 시작하고 여유 자금을 아프리카에 보내야지라고 마음 먹었지만 하지 않았다. 내가 보내봤자 크게 달라지겠어라는 미약한 힘이라고 포장하며 말이다. 그러면서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마셔 없앤다.

- 개혁자에 대하여

책에서는 빈곤국에서도 개혁의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고 한다. 교육이 어렵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개혁자는 반드시 나온다. 책에서 나온 이들은 칠레의 아옌데와 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였다. 젊은 개혁자들로써 문제의 근본이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영향을 발휘할 있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모두 죽임을 당하여 개혁이 일어나지 못했다. 저자는 빈곤국들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해외의 원조가 아닌 나라의 구조가 개혁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내부에서 진정한 변화를 통해 근본부터 바꾸어야 중심을 잡고 일어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개혁자들을 발굴해 내는 방법이나 여건은 말하지 않은 단순히 개혁자가 나타나 개혁을 이룰 때까지 빈곤을 버텨야 한다는 식으로 서술하였다.  하지만 이유는 아마도 개혁자가 나타나는 원리는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개혁가는 범인들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멀리 본다. 누군가 그런 방법을 알아 낸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시각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개혁가라고 없다. 하지만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어려운 시기에 개혁가가 많이 나오는 것만은 맞는 같다. 어려워질수록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그것이 응축되어 개혁가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갈수록 위험해지고 어려워지는 한국 사회에서도 개혁가가 필요하다. 미봉책을 만들어내는 기성세대적인 사상가들이 아닌 뿌리부터 흔들 있는 개혁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기관 - 자연의 해석과 인간의 자연 지배에 관한 잠언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1
프랜시스 베이컨 지음, 진석용 옮김 / 한길사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자연의 사용자 자연의 해석자로서 자연의 질서에 대해 실제로 관찰하고, 고찰한 것만큼 무엇인가를 있으며 이해할 있다. 이상의 것은 수도 없고, 수도 없다.

-          참된 귀납법에 대하여

   책에서 베이컨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생각만 하지 말고 자연을 실제로 괴롭혀서 진리를 찾아가자 이다. 운동이나 현상에 대해 단순히 추측만 하지 말고 직접 체계적으로 성질을 밝혀내 가야 발전을 도모할 있다고 하였다. 귀납법을 주장했는데 단순한 귀납법은 당연히 반론이 만만치 않으니 참된 귀납법을 주장했다. 책에서는 열을 가지고 예시를 들어 장문에 걸쳐 설명을 했는데, 열이 나타나는 사례들을 열거하고, 열이 나타나지 않는 사례들을 열거한 뒤에, 어느 순간에는 나타나고 어느 순간에는 반대인 사례들도 열거해서 비교표를 만들어 열의 성질을 밝히는 것이 참된 귀납법의 방식이라 하였다. 아주 추운 날의 바람도 열이 나타나는 사례라는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오는 사례들도 많이 등장하지만 나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했다. 자신도 만들었다는 알았는지 자신처럼 과학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제시하는 사람은 실제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보다 칭송 받아 마땅하다고 쓰기도 하였다. 이런 방식은 정말 끊임없는 관찰을 요구하는 것으로 베이컨으로부터 자연이 철저하게 분석되고 해체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간이 자연을 다루는 , 마음대로 이용해도 괜찮다는 그의 생각은 지금도 이어져 지금 수많은 환경문제를 파생시켰다. 귀납법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귀납법이 아닌 참된귀납법을 주장했지만 결국 그의 사례에서 있듯이 사례를 무작정 많이 모으는 귀납법에 가까웠다고 해설에서 그러하니 정답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과학의 발전에 있어서 새로운 판을 그의 역량 자체는 인정을 수가 없다. 기존의 이론을 거침없이 비난하고 판을 깨부순 혁명가. 현대의 과학계는 아직 베이컨 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다.

-          과학에서의 진리에 대하여

  진리라는 것을 우리는 좋아한다. 절대로 변하지 않고 언제나 정답이니까 왈가왈부 필요가 없다. 진리를 깨우치는 순간 이상 배우거나 연구할 필요가 없어진다. 진리 이외의 것들은 결국 진리라는 뼈대에 붙은 살들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여러 분야에서 진리를 찾기 위해 공부, 연구들이 진행되는데, 특히 과학은 진리를 위해 태어난 학문이다. 자연의 법칙, 사물의 운동, 우주의 원리 우리 주위의 다양한 현상들이나 실재하는 , 심지어 실재하지 않는 것마저 한번에 설명할 있는 진리를 찾기 위해 모두 노력한다. 그런데 과학의 발전 과정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안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새로운 것들에 의해 깨부수어졌다. 당장 책에서만 하더라도 당시 진리라고 여겨졌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 사상들이 베이컨에 의해 철저하게 비판 받아 결국 진리의 단계에서 과거의 이론으로 전락해 버렸다. 천동설에서의 지동설도 그러했고, 진화론 역시 진리라고 생각했던 이론들이 모두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되었다. 그렇게 보면 지금 우리가 진리라고 알고 있는 과학적 상식들 이론들, 예를 들어 쿼크가 현존하는 가장 작은 입자라는 상식이나(사실 검색해서 얻은 결과이기에 상식이라 있을지는 애매하지만), 지구가 내핵, 외핵, 멘틀, 지층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나 심지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마저 진리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과학구조의 혁명이란 책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과학구조가 점진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판이 기존의 판을 급격하게 대체하는 식으로 혁명이 일어난다고 들었다. 책에서 기존의 이론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참된 귀납법으로 주류 이론으로 올라선 베이컨의 과학적 접근 방식도 자연과 인간간의 관계 측면에서 비판을 많이 받아 진리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베이컨이 주장하는 것은 과학의 사상이나 이론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접근 방식을 설파하기는 거지만 결국 과거의 이론으로 전락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방식이 시대와 완전히 다른 것처럼 지금의 방식도 결국은 과거의 이론이나 사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과학의 진리를 알게 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진리라는 것이 의미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상대성이론도 제대로 모르는 같은 문외한은 그냥 과학계 사람들이 감탄하면 따라 감탄하고 비판하면 따라서 비판하는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겠지.

-          극장의 우상에 대하여

베이컨은 본문에서 4가지 우상이 인간 지성의 무한한 발전을 사로잡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4가지 우상은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인데 이것들을 깨부수어야 자연을 제대로 이해할 있고, 제대로 사용할 있다고 하였다. 기가 막히게 잡아낸 우상들인 같다. 베이컨은 과학을 탐구하는 자들에게 하는 조언 이었겠지만 사실 우리 일반인들도 저런 우상들을 타파해야 한다. 우리를 틀에 가두어 버리고, 진실을 보게 하는 우상들은 다양한 갈등의 단초를 제공한다. 동굴의 우상으로 우리는 각자 제멋대로 해석하고, 시장의 우상으로 진실된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고, 극장의 우상으로 얼토당토 않는 사람이 지지를 받기도 한다. (다행히도? 인간이 최고라는 오만한 종족의 우상은 모두가 똘똘 뭉쳐 공유하는 유일한 우상이다.) 중에 특히 우리들이 조심해야 하는 것은 극장의 우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우상은 여러 가지 학설로 만들어진 각본에 의해 혹은 그릇된 논증의 규칙에 의해 공공연하게 주입되고, 신봉된다. 논리와 규칙이 언어인 과학계에서도 이런 우상이 존재하는데 일반 사회에서는 더욱 심할 것이다. 현대 사회와 연결해보면 진실을 가리고 연기하는 배우를 내세워 연극을 내보여 대중들을 만족시키는 우리네 사회.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공판일에 우연히도 어린이집 사태가 이슈화 것은 다른 연극이 아닐까 위험한 생각을 해본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응인데, 지금 시점에 지난해 11 일어난 사건을 이제서야 같이 발표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은 연극인 같다. 그때에도 분명히 이슈화 시켜둘 있었는데, 미래의 고위 관계자 가림막을 위한 적절한 예비용 탄알이라고나 할까. 요즘 정직한 사람이 없어 이런 공상도 자꾸 하게 된다. 진실이 공유되는 사회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똑똑해져야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 결론은 책을 읽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