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이번 에세이 주목 신간 페이퍼는 조금 색다른 페이퍼를 써봐야지 싶어서 페이퍼 작성 전에 서점에 방문했다. 늘, 표지와 책 소개만 보고 책을 골랐는데 책을 내 손에 쥐고, 목차를 살피고, 한 장을 골라서 진득하게 읽어 보고. 신선했다. 서점을 방문하기 전에 새로 나온 책을 찾아보고 갔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마음에 드는 부분은 소리 내어 읽어보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신간이라 와 닿았던 것 같다. 평소대로 골랐으면 이 책을 골랐겠지, 했던 책들은 서점을 방문하면서 바뀌었다. 그렇게 고른 3권의 책을 소개한다.

 

 

 

 

 

 

 

 

 

 

 

 

 

 

 

1. 장미정 <잃어버린 날들 - 대서양 외딴섬 감옥에서 보낸 756일간의 기록>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아프게 봤다. 보는 내내 답답했지만, 아프게 봤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책 소개에 ‘그가 원한 건 무죄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판결을 받고 주어진 죗값을 치르는 것이었지만, 재판은 기약도 없이 연기되고 또 연기되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내가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아프게 봤던 이유였다. 그녀가 원한 건, 자신이 무죄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을 받고 주어진 죗값을 치르는 것이었지만, 기약 없는 ‘연기’의 나날이었기 때문에.

 

본문을 인용한 이 책의 소개에서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가 나오기에 덧붙여본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들추어내고 당시의 일기를 공개하는 것이 지금 내 삶에 또 감당할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 딸들 앞에서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어떻게 해서 그런 잘못된 선택을 했고, 멀리서 어떤 마음으로 딸을 그리워했는지, 얼마나 애타게 보고 싶었는지를 들려주고 싶었다.’

맞다. 그녀의 말처럼 이 책은 당시의 일기이기 때문에, 공개하게 되면 현재 그녀의 삶에 또 감당할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글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 책을 통해 당시의 일기를 공개하는 이유는 그보다 더 들려주고 싶었던, ‘멀리서 어떤 마음으로 딸을 그리워했고, 얼마나 애타게 보고 싶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2. 멜바 콜그로브 외 <당신 없이 무척이나 소란한 하루- 상실과 치유에 관한 아흔 네 가지 이야기>

 

이 책은, 온라인상에서 새로 나온 책을 살필 때는 관심 밖의 책이었는데, 서점에서 살펴보면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든 책이었다. 상실과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서 연초 보다는 연말에 읽기 좋은 책이다 싶긴 했지만, 책의 구성이 너무 좋았다. 이런 책은 사서 읽어야 돼, 싶었을 정도로. 이 책의 소개에,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잃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심리학자, 철학자 그리고 시인이 모여 감정의 상처가 상흔을 남기지 않고 덧나지 않도록 다독여주는 치유 처방전이라고 하는데, 저자가 왜 세 명인지에 대한 내 의문을 풀어준 구절이었다. 심리학자, 철학자, 시인이 모여 쓴 책이라니. 개인적으로 좋아라하는 직업군이 한데 모여서 낸 책이라고 하니 더 관심이 갔다.

 

 

 

 

 

 

 

 

 

 

 

 

 

 

 

 

3. 김광석 <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에 관한 수식은 끝이 없다. 짧지만 뜨거웠던 김광석, 다시 김광석, 오늘도 김광석, 내일도 김광석. 이 책의 제목 또한 김광석을 수식하는 말이 된다.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은, 우리의 김광석, 나의 김광석이 아닌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이다. 숱한 기념 음반과 평전까지 출간된 걸 감안하면 낯선 사실이기까지 한데, 실제로 김광석 본인의 글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여러 시간에 흩어져 남긴 일기, 수첩 메모, 편지, 노랫말 들을 모은 것으로, 저작권자인 유가족의 동의하에 그의 숨결이 최대한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의 성격에 따라 재구성한 책이라고 한다. 우리는 오늘도 김광석을 듣고, 노래하고, 추억하면서 누구나 저마다의 김광석을 가지고 있지만,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은 접한 적이 없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의 이야기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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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전민식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2013년에 쓰는 마지막 서평은, 한순간의 실수로 컨설턴트라는 소위 잘 나가는 직업을 잃고 추락한 주인공이 고급 애완견을 산책 시키는 일을 하면서 인생 역전을 꿈꾸는 내용의 소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전민식의 새로운 소설『13월』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소설, 훈훈한 소설”이라는 심사평을 들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가 이번에는 정반대의, 사람 냄새와는 거리가 먼 차가운 소설로 돌아왔다고 한다.

 

맞다. 차가운 소설이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음모 가득한 비정한 사회를 그린 소설이고, 더 나아가 그런 사회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소설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경계하지 않으면 제가 제 자신조차 믿지 못하게 되는 끝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되겠지요. 그게 가능해진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이런 일이 흔하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p.364 작가 후기 중)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안녕과 각자의 안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연말이지만, 『13월』을 완독하고 난 뒤 읽는 작가 후기에서의 ‘안녕’은 사무치게 섬뜩했다. 어느 겨울, 정읍에서부터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 역시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 동의할 일이 생겨서 동의한 적이 있고, 그로 인해 소름 돋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의가 떨어짐과 무섭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몇 초 만에 알 수 있고, 근처에 CCTV가 있다면 무엇을 하는지 또한 알 수 있으며, 내가 그 곳에 서 있기까지 돈을 쓰고 서비스를 이용한 내역 정보를 통해 내 취향이나 이동 경로, 성향, 심지어 철학이나 친구 관계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는 데까지 상상이 미치니 섬뜩했던 것이다. 그냥도 아니고 사무치게. 작가도 그러했고, 나 역시 그 ‘동의’를 통해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라도 말이다.

 

고아로 자라 일찍이 비행과 범죄에 노출되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꿈꾸던 명문대 학생이 된 재황. 하지만 그에게는 결코 평탄한 삶이 주어지지 않는다. 필연적인 가난으로 인해 위험한 유혹에 휩쓸리고 급기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마수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었으니, ‘관찰자’라는 이름으로 재황을 ‘밥’이라 칭하며 그의 모든 일상을 기록하는 수인이라는 여자다. 수인이 소속된 곳은 ‘목장’이라는 수상한 이름을 간판으로 내 건 비밀 정부 기관으로 '인류를 위한 숭고한 프로젝트'라는 미명 하에 개인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인종을 개량한다는 엄청난 음모를 가진 곳이다.

 

라는 이 책의 주된 설정에, 주인공 재황은 우수한 유전 인자를 가진 인간이 열악한 환경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키워진 인물이라는 설정이 얹어진다. 물론, 재황은 이 사실을 모른 채 계획된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살기 위해 24시간을 빈틈없이 살아간다. 때로는 소설을 쓰고, 때로는 승희를 그리워하며.

 

그런 재황을 관찰하는 수인은, 아버지의 불륜을 훔쳐보다 관음증과 조울증 등의 정신 질환을 앓았다. 누군가의 충분한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다. 누구보다 노력했으나 병력으로 인해 4대 보험이 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병을 능력으로 인정해주는 ‘목장’에 들어가게 되고, 그녀의 일상은 재황을 지켜보는 일로 가득 찬다. 그렇게, 그녀에게 재황은 점점, 전혀 모르지만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고 멀지만 가까운 존재가 된다. 벼랑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흔들리고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재황의 모습을 바라보며 수인은 급기야 자신의 존재가 흔들릴 정도로 재황에게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보다 재황에게서 큰 위로를 받는 수인은 깨닫는다. 자신은 결코 재황의 앞에 나설 수 없는 재황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이봐, 수인 씨. 난 말이야 마루치를 내 가족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어.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버렸어. 왠 줄 알아? 매일 지켜보는데 한 마디도 건넬 수 없기 때문이었어. 무슨 소린 줄 알지? 그쪽은 아무 대답도 없는데 나의 애정은 무한히 가버리는 거야. 외사랑은 순수하면서도 고통스러워. 메아리가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외사랑만큼은 영원할 수 있어.” (p.260-261)

 

재황은 아무 대답도 없는데, 수인의 애정은 무한히 가버리고 수인이 재황의 그림자가 되어 재황을 관찰하던 그 시간이 끝나고 수인이 재황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시간이 온다. 그 시간의 수인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소설의 제목 ‘13월’을 생각했다. 그 누구보다 오기를 바라지만, 영원히 오지 않는 시간.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음모 가득한 비정한 감시 사회를 그린 이 소설 속에서라 그런지, 재황을 생각하는 수인의 마음이 애달팠다.

 

소설의 물음으로 되돌아가, 생각한다. 과연 나는 안녕할까? 답은 진즉에 나와 있었다. 안녕하지 못하다.

 

그 10년의 세월 동안 세상은 무섭게 변했습니다. 저는 이즈음에 이르러서야 그런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선 내 몸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던 문명의 이기들을 하나 둘 버리고 싶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리라는 사실도. (p.365)

 

라는 작가의 말처럼, 내 일거수일투족이 관찰되고 나아가 통제될 것을 알지만, 문명의 이기들을 버리지 못할 것을 안다. 그리하여, 앞으로 걸어갈 내 길이 한 층 더 불안하고 쓸쓸하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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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불에 덴 자리에 찬찬히 얼음을 갖다 대듯이 게이스케는 매일 공책에 이야기를 썼다. 그럴 때만 외롭지 않았다. 넘쳐나는 말을 글자로 바꾸어 쓰고 있는 동안은 슬프지 않았다. (p.21)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무관심, 가난 때문에 친구들에게 집단 폭력을 당하던 게이스케의 유일한 ‘낙’이자 ‘구원’은 매일 공책에 쓰던 동화였다.

 

야요이의 마음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좋아해온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만 해방되었다. 그 시간만을 버팀목 삼아 하루하루를 보냈다. (p.69)

 

게이스케의 두 눈을 보고 숨을 삼켰던 야요이. 게이스케의 눈은, 야요이 자신이 알고 있는 눈이었다. 본 적 있는 눈이었다. 거울 속에서. 사진 속에서. 숨통이 막힌 듯이 답답한 감정을 어딘가 다른 곳에 가두어두고 온 듯한 눈. 얇은 막이 한 꺼풀 쳐져 있는 듯한 눈. 그 후로 같은 반이 된 게이스케가 몹시 눈에 밟혔던 건, 야요이 역시 아버지의 변태성욕으로 괴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야요이에게 있어 구원은, 어릴 적부터 좋아해온 그림그리기였다.

 

그날부터 리코는 매일 국어 공책으로 마코와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상에 공책을 펼치고 도중에 몇 번이나 연필을 깎으면서 오른손이 피곤해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에서 다리와 배 때문에 놀림당한 일. 특히 싫어하는 반 아이. 점심시간에 칠판에 그려진 자신의 모습. 소풍 갔을 때 내내 혼자였던 것. 할머니와 만든 여러 가지 추억. 히나단 안에 숨었던 일. 거기서 우연히 들은 엄마 아빠의 이야기. (p.133)

 

다리가 굽혀지지 않는 장애와 엄마의 임신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어둠 속의 아이’ 리코에게는 매일 국어 공책으로 이야기 하는 마코가 있었다.

 

축제 음악. 멀리서 작게, 하지만 귀를 기울이자 또렷하게 들렸다. 그 소리는 수화기를 꽉 눌러 댄 귀로 흘러 들어와 몸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옛날에 들었던 그 축제 음악. 망대를 들고 바닷가 길을 나아가는 그리운 행렬. 핫피(예전 일본에서 하급 무사나 고용인이 착용하던, 소매가 짧은 상의 - 주) 차림의 남녀가 연주하는 대나무 피리와 큰 북. 전혀 변하지 않았다. 몇십 년이 흘렀지만 기억 속에 있는 소리와 똑같았다.

요자와는 곁에 둔 돋보기를 집어 들었다.

그 옛날의 저물녘 풍경이 눈앞에 있었다. (p.196)

 

자식도 없이 살아오다 아내마저 죽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살을 계획하는 요자와를 살린 건, 그 시절 듣던 축제 음악이었다.

 

리코는 <하늘을 나는 보물>이라는 동화를 읽고 구원을 얻었고, 요자와는 편지를 받고 흔쾌히 축제 음악을 들려 준 사람 덕분에 구원을 얻었는데, <하늘을 나는 보물>은 게이스케가 쓰고 야요이가 그린 동화였으며, 요자와의 편지를 받고 축제 음악을 들려 준 사람은 다름 아닌 게이스케였으며, 게이스케는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던 요자와 덕분에 구원을 얻었다는 인연이 참 흥미로웠다. 이런 것이야말로 인연이지, 했달까. 그리고 어쩌면, 인연보다 더 이들을 구했던 건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있어 각자가 살았고, 끝내는 서로를 살린 그 ‘이야기’ 말이다.

 

아직 이야기를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지어봐라. 뭐든지 상관없으니까 지어봐. 그러면 강해질 수 있어. 언젠가 힘든 일이 생겨도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 라고.

“이야기의 세계로 달아나라는 의미인가 싶었지. 선생님이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줄 알았지. 그래서 그때는 그런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오히려 더 슬퍼졌지. 이야기가 현실을 구원해줄 리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러자 선생님은 마치 게이스케의 생각에 대답하듯이 이렇게 덧붙였다고 했다.

이야기의 세계로 달아나라는 뜻이 아니야. 이야기 속에서 다정함과 강함 등 여러 가지를 보고, 알고 나서 다시 돌아오는 거야. 다른 사람이 지은 이야기도 물론 괜찮아. 하지만 알고 싶은 것을 알려면 스스로 지어보는 편이 나아. 혹시 알고 싶은 것이 뭔지 모른다 해도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야. 자신이 지은 이야기는 반드시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법이니까. (p.253-254)

 

게이스케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요자와 담임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 이야기에 끄덕 끄덕, 수긍이 갔다. 나 역시 이야기 쓰기를 통해 ‘치유’를 경험한 사람이니까. 경험자로서 말하건대, 정말이지 이야기는 힘이 세다.

 

12월은 1년을 마무리하는 달이지만, 이야기하고 싶은 달이기도 하다. 올 한해가 가기 전에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나 못 다 이룬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와 내 이야기를 하나 둘 정리한다. 비록 메모로 하는 이야기지만, 그제야 비로소 나 자신과 대화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올 한해는 이렇게 살았구나, 토닥 토닥, 해가면서 말이다. 그 곁에, 겨울에 참 잘 어울리는 이 책 『노엘』이 함께해서 따뜻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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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라는 이 책의 제목이 조르바를 환기했고, 조르바를 조우한 이윤기를, 조르바를 춤추게 한 이윤기의 글쓰기를, 조르바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테지만 끝내 조르바처럼 춤췄을 이윤기를 생각하게 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책 『조르바를 춤추게 한 글쓰기』는 “멋있게 보이고 싶다는 제 생각을 비틀지 말라”는 1장부터 “번역을 할 때 말의 무게를 단다고 생각하라”는 2장, “당신의 글에서 당신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져야 한다”는 3장, “유행하는 언어에도 보석같은 낱말이 무수히 반짝인다”는 4장, “궁극적인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다면 신화의 언어를 보라”는 5장까지 총 5장에 걸쳐 쓰고 옮긴다는 것에 대한 이윤기의 글이 담겨 있다. 책을 다 읽고, 책을 부분 부분 다시 읽은 뒤에야 나는 이 책에 대한 감상을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조르바를 춤추게 한 글쓰기는 곧 조르바이고, 조르바는 곧 자유이고, 자유는 곧 이윤기의 글쓰기였으며, 그의 글쓰기는 곧 자유를 갈망했던 이윤기다.’라고 말이다.

 

문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인생이 그렇게 풀린 (p.20) 그는 딱지본 소설에서 수십 년을 훌쩍 건너 뛰어 바로 ‘학원사’ 학생문고 쪽으로 한달음에 이른, 이상한 경험의 소유자였다. 그 경험을 통해 그는 생각했다. “아, 글이라는 게 세상을 이렇게 넓게 살도록 하는구나.”(p.21) “이 세상에 책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찌 살았을까.”(p.29)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글 읽기’와 ‘글 쓰기’에 대한 생각으로 깊어지는데, 이 구절이 책을 읽는 내 가슴을 친 구절이라 옮겨본다.

 

‘글 읽기’에 관한 한 나는 황희 정승만큼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관한 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길고 짧은 소설을 차례로 써내고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많은 작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부모의 사랑을 아래로 갚듯이 이 빚은 독자에게 갚아야 한다.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강박한다.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워서 물어본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은 모두 행복했을까? (p.36-37)

 

이 구절로, 나는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웠고, 자신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이 모두 행복했을지 궁금해했을 이윤기를 다시 읽게 되었다.

 

옮긴이 이윤기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두기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 스스로 찾아 읽었던 건 아니지만 읽는 내내 행복했고,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로 처음 접한 이윤기의 글을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싶어 무척이나 행복해 한 독서였다.

 

조르바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에 한정되지 않는다. 조르바는 그리스의 현악기 산투리의 삶을 함께한다. 하지만 그는 산투리조차도 마음대로 다루지 않는다. 그가 아는 한 산투리에게도 자유를 향수할 권리가 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연하의 자본가인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p.153)

 

특히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의 이런 노력이 있어 나는 조르바가 ‘나’를 ‘두목’으로 부르는 것을 자, 편히 읽을 수 있었구나 싶어서 감사했다.

 

자신을 자유로운 인간의 상징인 조르바와 동일시하며 살아 펄떡이는 말에 유난히 집착하던 언어 천재 이윤기. 그가 평생 자신의 언어를 부리며 살아갈 모든 이들에게 작가의 영혼과 글쓰기의 태도에 말하는 이 책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책을 보내려니 문득 이 구절이 떠오른다.

이윤기가, 학문의 세계가 아닌, 사람의 모듬살이에서 엿보이는 종교 현상에 대해 쓰고 싶었을 때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던 그 구절, 정민섭 사제시인의 시 한 구절이다.

 

내가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 (p.61)

 

소설가이자 번역가이자 신화전문가이기도 했던 그는 3년 전에 떠났지만, 그가 쓰고 옮긴 책들은 남아 오래도록 읽힐 것이며, 그는 여전히 소설과 번역과 신화라는 이름의,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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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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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대, 나는 서점을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다. 초등학생 시절, 과학실을 빌려 임시 서점처럼 만들고 ‘도서 바자회’를 열었던 그 때 그 공간부터 언제 가도 어김없이 기분 좋은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이 책의 추천글을 쓴 한겨레 문화팀장이자 건축 칼럼니스트 구본준은 ‘천국이 있다면 아마도 아름다운 서점을 닮았’을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서점이 곧 천국인 사람이었다.

 

단지 책이 좋아서 서점을 좋아하는 내게 서점이 좋아서 책이 좋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심어준 서점은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이었다. 정갈하지만, 그래서 다소 딱딱한 느낌의 대형 서점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던지라 책방마다 느낌이 무척 달랐던 헌책방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중 신촌에 있던 헌책방의 구조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내는,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에 계산대가 자리해 있고 남은 공간은 하나 같이 크기가 다른 책장들이 있는데, 그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또한 제각각으로 꽂혀 있었다. 난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찾는 책을 검색해서 한 번에 찾는 일은 편리했지만, 그 책을 찾는 것으로 끝이었을 뿐 다른 책에 눈을 돌리고 손이 갈 기회가 적었다. 헌책방은 정갈한 맛은 없었지만 내 발길이 닿는 대로, 내 손길이 닿는 대로 접할 수 있는 책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신선했고, 재밌었다. 또, 책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툭하고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책탑으로 가득한 헌책방도 기억난다. 그 책탑 밑 부분에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책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무너질까, 책을 빼진 못하고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헌책방이었을지라도, 내겐 이렇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는 서점이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에는 존재만으로도 행복하고, 가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 자신할 정도의 서점들 소개로 가득한 책이다.

프랑스 파리, 센 강 왼편 기슭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이는 학생들의 거리 라탱 지구. 커다란 벚나무 그늘에, 지금도 전 세계에서 모이는 젊은 작가 지망생들의 유토피아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03년에 극장으로 지은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객석을 모두 떼어내고 서가로 대체되어 갤러리 벽면 전체를 모두 책으로 채운, 모든 분야를 망라해 35만 권이나 되는 책을 보유한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 서점.

그리스 산토리니, 신들이 사랑한 에게 해의 석양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산토리니 섬 북쪽 끝에 위치한, 일찍이 플라톤이 꿈꾸었던, 바다 저편에 전설의 왕국에서 이름을 딴 ‘아틀란티스’ 서점까지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정말이지 아름다운 서점들을 책 한권으로 둘러볼 수 있었다.

 

이 서점들은 사진으로나마 내 눈으로 보는 것도 좋았지만, 이 책에 실린 인터뷰와 칼럼 또한 아름다운 서점들만큼이나 매혹적이어서 이 책에 대해 만족하게 했다. 그 중 가장 와 닿았던 글은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의 인터뷰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 눈으로 돌아볼 수 있고 내 몸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만큼만 꽂혀 있던 그 작은 서점의 책들이 나의 세계관을 만드는 데 중요한 존재가 되었던 것 같다. 음악, 미술, 철학 같은, 건축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책뿐이었으나, 정보가 지나치게 많지 않으니 내 상황에 맞게 책을 취사선택하기 쉬웠다. 서점이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상투적인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책이든 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책과 조우하거나 혹은 자신의 세계관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 기능을 조성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p.41)

 

후지모토 소우에게는 자신의 눈으로 돌아볼 수 있고 자신의 몸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만큼만 꽂혀 있던 그 작은 서점의 책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만드는 데 중요한 존재가 되었듯이, 지금도 세상 곳곳의 누군가가 이다지도 아름다운, 세상 곳곳의 서점들을 찾아 인생의 책과 조우하거나 혹은 자신의 세계관에 접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에 소개된 아름다운 서점과는 거리가 먼 서점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있어 ‘인생의 서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서점이 있다면 그 서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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