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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기의 이론 - 소설과 영화의 문화 기호학
스티븐 코핸 외 지음, 이호 외 옮김 / 한나래 / 1997년 1월
평점 :
품절
'소설과 영화의 문화기호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영상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요즘 대학의 인문학 교육에서 필수 테마로 부상하고 있는 '영화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방법서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막강한 권위를 가져온 문학 교육의 교양적 가치가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이용될 수 없는 게 현실이고 보면, 영상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인 영화를 접목시키려는 대학 교육의 방향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문학 교육이 담당해 온 예술적 감수성의 영역은 영화라는 낯선 구조에 대한 이해에 아직까지 어려움이 있고, 학생들은 소설을 매개로 한 교양 교육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영화를 매개로 삼아야 한다는 부담이, 그리고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에게는 소설 읽기가 지루한 경험으로 놓여 있는 셈이다.
소설과 영화, 문학과 영화라는 테마가 대학의 교양 과목으로 우후죽순처럼 개설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목들의 내실을 다져줄 교안도 방법도 마땅하지 않은 시점에서 여러 가지 책들이 번역되고 있다. 대부분 소설과 영화를 의미를 담은 이야기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책들이다. 주로 영미권의 영문학자들이 저자인 이런 류의 책들은 소설을 주 대상으로 한 서사학적 접근법을 이용하고 있다.
한 편의 스토리라는 측면에서 영화와 소설은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지만, 그런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매개체나 스토리 구성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서사론적 접근은 영상적 지각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는 도리어 낯설고 따분한 접근일 수밖에 없다. 차이는 차이대로 보존하고 날카롭게 부각시킬 때 소설과 영화는 서로 긴장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이지, 하나의 관점으로 독특한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은 그리 생산적이지 못할 수 있다.
이 책 역시 기존의 소설 중심의 서사학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그리고 논의의 상당 부분이 고전 소설 분석에 할애되고 있어 정작 영화에 관한 논의를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다소 실망감을 안겨준다. 서사학과 아울러 이 책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는 문화기호학적 접근 역시 롤랑 바르트의 신화 분석에서 차용한 기호학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런 방법이 영화 분석에 적용될 때, 그 분석은 다소 맥빠지는 평범한 해석만을 가져온다. 젠더나 인종 중심의 해석 단위로 구성되는 분석은 문학이나 영화를 떠나서 절실한 맥락을 발견할 수 없는 해석 코드로 느껴진다.
영문학자들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영화와 문학 사이의 매개작업은 여전히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문학이 영화에 준 영향이나 그 둘 사이의 유사점을 찾기 위해 서사의 차원에서 접근하거나, 명작을 영화로 읽기 같은 시도들이 작금 이뤄지고 있는 작업의 개요이다. 국내나 국외를 막론하고 미미한 성과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정작 구체적인 분석이나 비교 작업 이전에 왜 영화와 문학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 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 반성 없이 이뤄지는 '문학과 영화' 프로젝트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한 것으로 덮으려는 행동을 벗어날 수 없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