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상 공간의 근대
이효덕 지음, 박성관 옮김 / 소명출판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일본 지식인들의 자기 비판 담론을 다룬 책들이 최근 들어 부쩍 출간되고 있다. 이 중에는 재일 한국인 지식인의 책들도 간혹 보인다. 주류사회 속에서 늘 타자로서 경계 상의 존재론적 고민을 없을 수 없는 이들의 일본 비판은 내밀한 아픔을 느끼게 한다. 일본에 대한 내셔널리즘적 비판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지식인의 비판보다 더 한층 치밀하고 심도 깊은 비판 의식이 느껴진다. 그것이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살며 연구를 하며 살아야 한다는 현실적 조건이 강제하는 치밀함이며, 일본, 일본인이라는 자명성을 의심하지 않는 무비판사회의 근저를 해부함으로써 비판적 성과를 이루겠다는 나름대로의 전략이라고 하겠다.

근대적 표상 시스템의 성립사를 문화의 전 방면에 걸쳐 추적하는 이 책은 일견 문화사 연구처럼 보이지만, 책의 뒷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궁극적으로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의 자명성을 문제삼으려는 기획을 보여주고 있다. 석사 논문이라고 보기에는 턱없이 방대한 기획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광의의 미디어를 매개로 하여 문화사 전반을 종횡으로 넘나들며 표상 시스템의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푸코적인 방법론과 카라타니 고진의 역작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서 이론적 자양분을 얻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저자가 검토하는 영역에는 분명 독창적인 사유와 검토가 있음이 분명하고, 비슷한 근대화 과정을 거쳐온 우리의 근대화 과정을 검토하는 데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한국, 한민족, 우리에게 이처럼 자명한 사실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정체성이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그러한 정체성과 경계 확립으로 인해 무엇이 배제되었는가를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근대의 시작과 동시에 발생한 일제 강점이라는 사건은 우리를 암묵적으로 하나의 시점으로 묶어놓았다. 그것이 외압에 의한 수동적인 현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작금 우리가 스스로를 내셔널리즘이라는 잣대로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외압으로 인해 내셔널리즘의 발생이라는 구도는 일종의 환상일 수도 있다. 우리의 문제를 타자의 문제로 전치시킴으로써 타자의 문제가 해결될 때 우리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는 발상에 과연 문제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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