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선이해를 위해서 우리는 개론서를 읽는다. 사유의 전반적인 뼈대를 훑고, 그가 사용하는 개념들을 일람하고, 그 개념의 함의를 여타 철학의 틀과 대비하면서 차이를 뽑아낸다. 그것이 철학 개론서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들이다.그러나 대개의 개론서는 해당 분야 전공자가 해외 서적 몇 권을 참조해가며 발췌해놓는 수준에 머문다. 엄밀한 검토와 우리말의 맥락을 따지지 않은 섣부른 개념 번역이 혼란을 초래하고, 한국어 어법을 과감하게 파괴한 용감한 번역투 문장이 제대로 된 이해를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들뢰즈에 대한 국내 학자의 개론서인 이 책은 그동안 철학 개론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줄 뿐만 아니라, 개론서라고 규정하기에는 아쉬울 만큼 엄밀한 검토와 충실한 보충으로 우리를 자극한다.들뢰즈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할밖에 없는 나로서는 이 책에서 저자가 보여준 해박함과 문장 구사의 명료함에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몇 권의 들뢰즈 번역서를 가지고 있고, 원서 일습을 구비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동안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 들뢰즈를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존 철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 내는 철학적 반항의 하나로서만 느껴졌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들뢰즈의 면모는 들뢰즈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제고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이 책의 저자 서동욱 선생의 음성을 접하는 순간, 다른 들뢰즈 예찬자들과의 변별성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의 상품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현 상황은 들뢰즈에 대한 무비판적 옹호 일변도로 진행되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철학의 비판적 기능을 생각할 때, 들뢰즈철학은 비판적 전유의 대상으로 가다듬어져야 하며, 지금보다 차분히 그 칼날이 어디로 향해져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