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연구
류광우 / 충남대학교출판부(CNU Press) / 1993년 10월
평점 :
품절


이상문학을 연구한 서적 중에서 이 책은 가장 오자가 많은 책이다. 책을 낼 때 섬세한 교정을 보지 않았던 듯하다. 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낸 책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상문학처럼 텍스트 자체가 혼란스럽고, 잘못된 텍스트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은 텍스트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자는 적지 않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이상문학을 일제의 검열 정책에 대한 은밀한 저항이라는 코드로 읽어내고 있다. 일단 이와 같은 관점은 한번쯤 제시해볼 만하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 조선을 지식인으로 살다간 이로서 이상의 문학에 내면화된 코드 중 하나가 은밀한 저항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시어 중에도 이와 같은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들이 꽤 있으며, 그가 작품 속에 제시하는 미묘하고 혼란스런 상황 역시 당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어둠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코드가 작품 전반에 대한 해석 코드로 등장할 때,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논지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과도한 해석이 불거져 나올 때가 있다. 그것은 이상문학의 불가해한 작품 상황에 숨어있는 코드를 추출해내려 하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작품 상황을 굳이 하나의 상황으로 단정짓는 것에는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정한 몇몇 작품이나 한 작품 속에서도 부분적 정황에 대한 해석으로서 은밀한 저항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이상문학의 심층으로 은밀한 저항을 규정하는 것은 큰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 책의 더 큰 문제점은 논증을 전개하는 방식에서 두드러진다. 이상문학에 대한 기존의 해석 코드를 지배하고 있다고 할 김윤식 교수나 여타 지배적 논자들에 대한 비판을 전개함에 있어서 섣부르고 얕은 논단이 횡행한다는 점이다. '-동의하기 어렵다'라는 식의 전단은 그런 전단에 걸맞은 근거의 제시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를 보면 대체로 설득력이 없는 것들이 태반이다.

이처럼 섣부른 논증 방식은 이 책의 일 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시종일관 저자가 취하는 논증 방식이다. 이것은 은밀한 저항이라는 다소 동떨어진 관점을 확보하기 위해 빚어진 초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대체로 비판하기 위해 끌어들일 뿐, 자신의 논의를 보충하고 그것을 전개시켜 나가는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저자의 프로필을 보면 고등학교 교사로서 근무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그와 같은 코드를 내세우게 된 것은 고등학교라는 교육 현장의 분위기에 다분히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같다. 그런 조건 자체가 학적 분위기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관점을 구사하는 자유를 주었다고 할 수 있지만, 기존의 학문 공동체 내에서는 설득력을 별반 가질 수 없는 한계로 작용하는 듯하다.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주기는 하였지만, 기존의 학문성과를 발전적으로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이상문학 연구라는 학적 과제에는 미달한, 대학 1학년 수준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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