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41 | 342 | 343 | 34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뉴 에이징 -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현명하게 사는 법
마티아스 홀위치.브루스 마우 디자인 지음, 한정 옮김 / 청미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물론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점점 나이가 들수록 그렇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커지기 전에 작고 쉬운 행동으로 이러한 장애물들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장애물들을 제거한다고 해도, 장애물이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한평생 원하는 삶을 살려면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들도 그러한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30세의 나이에 별 책을 다 읽는다 싶겠지만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항상 키 순으로 조회할 때 거의 1~2위를 놓친 적 없고 너무 말라서 소말리아 인으로 불린 나로서는 이 나이 자체가 엄청난 성과다(...)

 

 내 혼자서는 맘대로 안 되는 결혼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장래를 정해야 하는 나로서는 미래가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자영업을 하시는 우리 부모님, 특히 최근에 다리 수술을 하신 아버지 또한 걱정되긴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절대 은퇴를 하지 말라고 쓰는데, 나도 이 글에 동감하는 바이다. 물론 나이가 들면 판단이 흐려지는 건 맞다. 하지만 거기다 지속적으로 하는 일도 없고, 만일 그건 농사로 어떻게든 때운다 쳐도 돈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분들의 인생을 내가 어찌 해보겠다는 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순탄치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게 옳다는 게 이 책으로 인해 증명됐다고 할까.

블로그에 서이추를 하더니 자주 접속해서 공감을 눌러주는 출판사가 있었다. 마이너한 블로그에 뭔가 정성을 쏟으시는 게 고마워서 뭐 해드릴게 없을까 출판사를 알라딘에서 검색했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건축가가 쓰고 디자인 팀이 일러스트를 그렸다는 말을 듣고 당장 솔깃해서 구입했다. 처음에는 자기계발 이야기가 나와서 가볍게 책을 읽으려는 마음을 갖고 봤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복지시설 건축과 관계된 이야기가 나와서 재밌게 보았다. 내용은 적었지만 설명은 꽤 세부적이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유지비가 뉴욕에서 달러로 얼마가 든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해설 부분에서 아예 서울에서의 자동차 유지비 통계를 설명해주었다. 보통 번역책은 이런 돈 이야기엔 친절하지 못해서, 그냥 뉴욕에서의 자동차 유지비를 원으로 설명해주거나 아예 설명 자체를 안 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로 볼 때 세심한 책임엔 분명하다. 출판사의 초심이랄까 열정같은 게 느껴졌다.

 

다만 아쉬운 건 글자가 작다는 점이었다. 여백이 많아서 나는 보기엔 편했지만 우리 부모님 나잇대인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은 잘 보이지 않으셔서 뜨개질 하실 때도 돋보기를 쓰시는 편이다. 심지어 책은 오죽할까. 본래 책의 디자인을 고려하여 그렇게 했다고 생각되지만, 번역은 책을 다시 만드는 작업이기도 한데... 그 쪽으로는 대담하게 가지 못한 듯하다.

P. S 마지막 글에 관하여 페이스북에서 출판사 직원분과 나눈 대화를 그대로 올려본다. 우문을 꾸짖지 않으시고 상당히 현명한 답변을 해주셔서 감사하다. 꽤나 으슥한 밤중, 남들 다 자는 시간까지 인상깊은 구절을 페북에 올렸는데 하나하나 좋아요를 달아주셨다. 독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직원분: 책 사주시고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일인데 이런 훌륭한 리뷰까지 널리널리 알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언해 주신 글자크기 문제는 계속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시니어 독자들도 큰글씨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책의 가독성,꾸밈새 등에 계속 신경쓰겠습니다.

나: 일러스트로 볼때 이 출판사가 겨냥하는 시니어 독자층이 확실한 걸 알 수 있었습니다 ㅎㅎ 민감한 이야기인데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직원분: 요즘은 전자책을 이용하시는 시니어들이 증가하고 있다고합니다. 글자크기가 조절가능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점점 익숙해 지시면서요. 고맙습니다

 

 

  

 뉴에이징 다이어리북 문답도 작성해 보았다.

 

초반 질문 정도가 프라이버시도 지킬 수 있고, 내 연령대에 맞는 설문인 거 같아서 답해보았다.
 다이어리북의 질문은 현재 내가 작성한 것 말고도 더 있다.

1. 당신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주고 싶은가요? 어떤 특별한 일을 하고 싶은가요?
일단 책을 선물하는 일은 집에 너무 쌓여서 과제같은 게 되어 버렸고(...) 40대 되면 그냥 만화와 라노벨 사다 남은 것들과 시집들 몽땅 구입해서 노년을 보내고 싶다. 매일매일 아침저녁마다 그것들 읽으면 시간도 빨리 갈 테고.
2. 어떤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면 좋을까요?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5가지를 쓴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노벨문학상 독서모임 만들기
- 동남아 등 해외 여행
- 매장의 책 떨어지는 곳들 모조리 자석으로 붙이고
- CD 진열대에 포스터 받아가는 곳 안내판 붙이기
- 위스키 마셔보기

3. 올해 가장 경험하고 싶은 10가지
- 굿모닝팝스와 이근철의 try again 꾸준히 공부, 지역 녹색당의 보존, 번지점프, 대전 놀이공원 가기, 진해 벚꽃 보기, 풍경화 그리기, 도의 다른 시에 있는 도서관에서 새로운 책 한 권 읽기, 집들이 참가, 자막없이 일본 애니메이션 보기, 책 한 달에 10권 이상 읽기
4. 살아오는 동안 계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재능 10가지.
- 악바리, 포커페이스, 능숙하지 않은 거짓말, 멧집, 지구력, 엄살, 때에 따라 얼마든지 나오는 눈물, 약간의 영어, 재빨리 꿇을 수 있는 무릎, 나쁜 것들만 정확히 끄집어내는 기억력. 공유가 가능한가...? 그 다음으로는 미움받을 용기를 갖고 싶다. 
5. 현재 참여하고 있는 사회 단체.
녹색당. 앞으로는 워커스에도 모임이 있을 때 참여해서 이야기 정도는 듣고 싶다.
6. 변화했으면 좋겠다고 항상 바라던 한 가지.
어떤 사람이던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바란다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인플레이션 없이 기본소득 좀 줬으면.
7.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께 나이듦에 대한 그분의 경험, 하루하루 달라지는 변화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기.
개인적으로는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겠고 체력이 약해진다는 점...? 그리고 하루하루 너무 쏜살같이 움직이는 통에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가끔은 멈춰서 자신의 선입견을 점검하고 있다고 하심. 누구신지는 프라이버시상 노코멘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화꽃 펴야 오것다 황금알 시인선 93
방순미 지음 / 황금알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불 중에서

고추잠자리 닮은 소방헬기 덩달아 물바람 나
아랫도리 헐렁하도록 물을 쏟아 붓지만
난 불바람 잡지 못하고 개불처럼 늘어져 간다.
산바람
터진 봄바람
오봉산 낙산사부터 바람이 났다.

처녀막이 터져 피가 낭자했던 붉은 밤처럼
불은 무성한 청춘 참수하듯 산을 자른다.

  

이한 변호사의 글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책을 잘 못 읽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로 4개를 들었다.

 

 그런데 최소 두 가지 문제는 이 시로 다 해결할 수 있다. 2번과 4번의 해결책(?)은 바로 세상이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화자로 나오는 것이다. 화자는 처음부터 과음을 하고, 낙산사의 불을 구경하며 어린아이처럼 경탄한다. 이는 강박적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에 꼽히는 리스트보다는 차라리 반면교사에 가깝다. 화자처럼 살 수는 없지만, 이 얼마나 우리 속을 후련하게 해 주는 인물인가. 어찌보면 매혹적인 마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시라는 것이 사람의 올바름을 가르쳐준다는 신념을 가진 채로 이 책을 읽었다면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가끔은 책 읽다 뒤통수 맞는 경험도 필요하다. 심지어 성추행범으로 밝혀진 사람도 시인이니 이 얼마나 수비범위가 넓으냐.

 생각해보면 왜 남자가 혼술이나 노숙을 하면 호방한 면이 있다 여기고, 여자가 혼술이나 노숙을 하면 이리 호들갑을 떨면서 선악에 대한 논리를 펼치고 변명을 늘어놓아야 하는 것일까? 물론 평론가의 지적은 정확했다. 그는 시집에서 윤리를 원한다면 번지수 잘못 찾았으니 사서삼경이나 읽으시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산을 찾는 등산객은 나쁘지 않다'는 식으로 그녀를 변명해 주는 글이 설명 과정 중에 살짝 들어갔는데, 그건 좀 과한 액션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 시인 자체의 솔직하고 투명한 시작 스타일은 나도 높이 사고 있다. 그렇다고 하염없이 순진무구하여 시적 기법마저 무시하는 그런 백치같은 시는 아니다. 특히 둔전리의 봄이라는 시 중에서

 

진전사 샛길
대청봉 쌓인 눈이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하늘 아래 첫

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도 봄까지 눈이 와서 하얗게 되어 있는 대청봉을 보면서 촛불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문득 아연해지게 된다. 각운만 맞춘다고 라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시가 호흡이 좋은 이유는 읽기 좋게 분절하는 데서 생기는 리듬 덕분이다. 아무나 쓰기 힘든 구절로, 시인이 얼마나 기술을 갈고 닦았는지 이 시집을 한 번만 소리내어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내용이 짧고 단순하기에 그런 서정시를 쓰기가 더욱 쉽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가본 산 중에서 제일 선호하는 설악산이 자주 나와서 좋기도 하고, 오랜만에 관록있는 시를 봐서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맨 뒤의 서평을 보고 매우 놀랐는데, 이런 몽타주 기법은 시집을 하나하나 단어에 집중해서 여러번 읽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경지라 생각한다. 그만큼 인상적인 단어들이 많긴 했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장골 시편 시작시인선 84
김신용 지음 / 천년의시작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개복숭아 집

오랜 류머티즘으로
밭일도 나가지 못하는 그림자만 어른대는 집
그래도 아궁이에 햇볕 들면 잎그릇 소리 달캉이는 집
어릴적, 개복숭아를 복숭아인 줄 알고 따먹고
사흘을 앓아 누워, 속엣것 다 비워낸 눈에는
개복숭아 같은 헛것만 보여
아무리 '개'라는 것이, 사람살이가 만들어낸 헛것이라 해도
풀의 집에는 잡풀이 없듯이, 허기가 만들어낸 환이라고 해도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은 모두 헛것으로 보이던 집
뒷산에 온통 개복숭아 나무뿐인 이 도장골에서 태어나
그 개복숭아를 먹고 병나지 않는 일이
일생의 경작이었던 집

그러나 지금은 쟁기처럼 굽은 그림자 지팡이 삼아
넝쿨풀 기어나오는 흙벽에 기대 앉았지만

어두워지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개복숭아 익듯 불빛 배어나오지만
누구도, 그 불빛 보며
자신도 복숭아라고 강변하듯, 발그레이 물드는 과육이라고 말하지 못하리

잎그릇 달캉이는 소리, 가지가 힘없이 떨어뜨리는 열매라고 말하지 못하리

 

  

안다. 지금 자연에 대한 예찬시를 쓰면서 불교의 단어를 쓰고 동물처럼 식물처럼 인간도 살아야 한다, 라는 식의 시를 쓴다는 게 얼마나 진부한지. (게다가 당시의 정치와 관련되면 관련될 수록 더더욱.)

 

 그러나 이 시집은 계속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한 길만 판 시인의 성찰이 들어있다. 아니, 이 말을 듣고 또 꼰대같다고 리뷰를 읽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난 그렇게 완전무결하게 윤리를 지키는 진부한 인간은 아니라고. 이 시집은 농촌의 현실 또한 담고 있다. 지방의 즐비한 폐가, 사람이 먹을 만한 게 나지 않는 과수원, 무수한 데다 생명력까지 질기지만 정원에 심으면 기르는 식물이 되어버리는 '잡풀'들, 도와줄 장성한 아들이나 남편이 없이 혼자서 척척 밭을 일구시는 나이든 아낙들. 직접 농사를 하고 있는 탓일까? 그는 농촌에 대한 환상은 진작에 떨쳐버린 모습이다. 어떤 이념을 품고 도시를 버린 채 내려  온 시골. 벌레 먹은 채소를 먹을 각오도 하지 않고 무작정 머릿 속에서 환상향이라고 그려온 그 곳은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시인은 도장골에서도 상처받은 사람들과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자연들을 본다. 그 끝에서 그 시인이 본 것은 이랬다. 신발같은 잎들과 맹인안내견 같은 낡은 기계들과 백열등처럼 환하게 빛나는 개복숭아. 그에게는 그것들이 어떤 화두가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불교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천주교에서도 집을 찾아오는 나그네 셋 중 하나에 천사가 끼어 있으며 누구나 마음 속에 신을 모시고 산다고 말한다. 시인은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고 싶다고 말한다. 누울 자리를 잘 찾았다고 해야 할지. 세상에서 소외받고 사는 사람들의 침울함을 이 시집은 가만가만 비추며 희미한 불빛으로 쓰다듬고 있다.

 

  

매우 특이한 점은, 도시 사람들을 '까지' 않는다는 거다. 

 

 이런 시, 아니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도시를 빈민이나 걍팍한 사람들로 묘사하는데 이 시인은 잔잔히 자연을 찬양한다. 농부가 시위를 나가는 시도 그냥 농부가 시위를 나가는 시로 끝난다. 단지 문명이 집 안과 자연을 차단시키는 유리창으로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쉽게 분노하고 그걸 풀지 못하는 나에게는 좀 배워야 할 요소인 것 같다.

  

이런 시, 아니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도시를 빈민이나 걍팍한 사람들로 묘사하는데 이 시인은 잔잔히 자연을 찬양한다. 농부가 시위를 나가는 시도 그냥 농부가 시위를 나가는 시로 끝난다. 단지 문명이 집 안과 자연을 차단시키는 유리창으로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쉽게 분노하고 그걸 풀지 못하는 나에게는 좀 배워야 할 요소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서리와의 결별 문학의전당 시인선 192
정서정 지음 / 문학의전당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의 목숨

아 또 시작했다
(사람 미치게 하는 저) 문어와 낙지 활극
설마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제발 그러길 바래)
내일 아침엔 필경, 아니 분명 몇 분 안에,
경찰차 사이렌 달려오고 말 거야
(제발 그러길 바래)
시커먼 먹물 토하고 뻗어버린 낙지
수갑 찬 문어, 악귀에 사로잡힌 눈빛
울화통 땡땡한 민머리 꼿꼿이 세우고
구경꾼들 노려보는 광경
(정말 지겨워)
상투적인 그 사회면 기사 한 커트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데)
무슨 일로 나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 속 덜덜 떨며
(난 몰라요, 아무 소리도 들은 적 없어요)
가증스레 고개 내젓고 있나?
(비겁한 꼴뚜기 같은 년!)
하느님 고맙게도 다시 깨워준 아침
꿈이든 현실이든 다신 그 비명소리 듣고 싶지 않아!
만일 또 저 칡덩쿨 같은 문어와 낙지
수족관 벽에 척 달라붙어 아드등거리는 꼴 보이면
이번엔 꼭, 꼭 뱉어주고 말 거야!
매번 목구멍 끝에 치밀어 오르던 그 말,
매번 어금니 사이에 꾹꾹 끼워놨던 그 말,
"제발 좀 떨어지라니까!"

마침내 시원하게 단칼에 베어버린
해파리 같은 남의 목숨

  

 이 시의 독특한 점은 순우리말의 사용만이 아니라 시집 마지막에 시창작에 대해 직접 강의를 함으로서 많은 아마추어 창작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것이다. 혹 시를 정말 읽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면 이것만이라도 읽기를 강력 추천한다. 짧은 에세이로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처음 읽었을 때와 버금가는 감동을 느꼈다.

 

독자에게 어떤 시가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시적으로 형상화된 언어가 그에게 울림을 일으킨 것이다. 바슐라르 식으로 말하자면 '혼의 울림(resentissment)'이 일어난 것이다. 좋은 시는 다양한 상상력의 표현을 보여주며 독자의 내면에 깊은 울림을 일으킨다. 그렇게 볼 때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가 우리 내면에 불러일으키는 울림이 뭔지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원로격 시인들도 요즘 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둥의 말을 하는데 그 분들은 그럼 강은교 시를 읽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 분의 시는 육하원칙을 알 수 없는 것들 천지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시이기 때문에 일단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시적 단어? 그런 거 존재도 안 하고, 자신의 그 잘난 머리를 가지고 의미를 해독하려고 치중하지만 시를 이해할 수 없다. 사실 난 그게 시라고 본다. 쉽게 쓰여진 것들은 그냥 글일 뿐이다. 이건 신춘문예에 뽑혔나 못 뽑혔나, 자기 경험에 대해 썼느냐 추상적으로 썼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시의 의미가 알기 쉽다면 그건 이미 시가 아니다. 최종적으로 좋은 시엔 인간 삶에 대한 고민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백석의 시라던가 서정주의 시를 전부 서울말로 바꿔 읽으면 굉장히 아무것도 아닌 글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서울말로 쓴 시가 좋지 않은 시인가?  시 하나하나마다 타이밍이 있고 스타일이 있다. 그걸 성찰하는 게 좋다고 본다.

 전반적으로 섹드립치면서 페미니즘을 설파하는 특이한 시이다. 더불어 시에 대한 시인 특유의 연구 자체를 시로 담아낸 게 돋보인다.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해외에 관련한 시들 중 몇 개였다. 너무 기대치가 높았던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시집을 계속 읽다가 갑자기 해외여행 이야기가 나오길래 여름하늘을 묵으로 묘사한 난데없는 참신한 묘사를 여기서도 기대했다. 그러나 양탄자 짜는 여인은 그저 비참한 한 인간에 관한 르포에 지나지 않았다. 소재는 좋았는데. 좀 더 그녀를 통해 자신과 세상의 여인들을 투사해 나갔다면, 아예 통 크게 김지하처럼 긴 장편의 시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 외 여성의 삶을 다루거나 학대를 암시하는 시들은 다 좋았다. 물론 미라 2를 포함해서. 세계를 무대로 하여 페미니즘을 표현한 시이니 꼭 보길 바란다. 남들이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걸 그냥 못 넘어가는 예민한 감수성이 시를 쓰는 계기가 되는 좋은 사례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마치 소녀같은 면이 있다. 파릇파릇 핑크핑크하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다 허물어져 가는 폐허를 담은, 어딘가 아름다우면서도 애잔한 일본 일러스트를 보는 느낌이랄까. 내가 여기 올린 일러스트들처럼 말이다. 책을 보는 중 성적인 악몽을 꾸었다. 이번 일하고도 관련된 게 아닐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시집을 봐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보다 그런 꿈을 가끔 꾸는데, 그 꿈에 관해 냉정히 분석해본 게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생경한 경험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모닝 팝스 2017.3
굿모닝팝스 편집부 엮음 / 한국방송출판(월간지)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April 4th, 1084.
For Whom, it suddenly occurred to him to wonder, was he writing this diary? For the future, for the unborn. His mind hovered for a moment round the doubtful date on the page, and then fetched up with a bump against the Newspeak word "doublethink". For the first time the magnitude of what he had undertaken came home to him. How could you communicate with the future? It was of its nature impossible. Either the future would resemble the present in which case it would not listen to him, or it would be different from it, and his predicament would be meaningless.

  

 오랜만에 굿모닝팝스에 컴백했다. 시기가 미묘하다. 중학교 때 이사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지영의 굿모닝팝스를 들었었다. 처음 이 직장에 취직하고 적응하려고 기를 쓸 때는 어쩌다가 굿모닝팝스를 하자고 결심하게 되었고, 이근철의 굿모닝팝스를 들었었다. 지금도 어쩌다가 악명으로 유명해질 뻔해서;;; 심신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치료하기 위해 급히 2월 28일에 3월호를 사고 보니 진행자가 레이나랜다. 여배우같은 표지의 그 여성 분이 강사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굿모닝팝스 진행자 세 명을 겪어나가게 되는데(...) 그러고보면 10년에 한 명씩 거쳐간 듯하다. 기묘하다면 기묘한 인연이다. 

 

 기분상인진 모르겠는데 진행시간이 상당히 짧아졌다. 30분 남짓이다. 선곡된 음악들을 쭉 훑어봤다. 대부분 최신곡이고, 놀랍게도 가사를 정확히 듣기가 난감한 EDM과 일렉트로니카가 섞여 있다. 외국인 선생님도 발렌타인이 아닌데, 출현 비중이 상당히 적다. 한국어를 상당히 잘 하는데, 문제는 말이 많은 성격이신지 계속 한국어로 대화를 하시려 한다는 점이다. 레이나도 강사이고 하니 차라리 대화를 전부 영어로 바꾸고 키스잉글리쉬도 같이 하면 어떨까 싶다. 가벼운 분위기로 가려고 레이나가 많이 노력하는 것 같은데, 나처럼 따로 독서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바쁜 직장인은 반드시 강의 직전에 책을 들고 앉아 학원수업처럼 신중하게 들어야 한다는 막막함과 부담감이 없어서 좋다. 영어 문장도 비교적 쉬워서 어머니와 같이 들을 계획이다.

 이근철 선생님이 계속 정치에서 진보쪽 입장을 표명하셔서 불안했었다. 결국 하차하셨다니... 그러고보니 EBS에서 영미문학관도 밀양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한두달 후에 하차가 결정났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정치 쪽으로 민감하다지만 이런 별것도 아닌 일로 프로그램을 하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어차피 진보?쪽 의견을 많이 들어주는 사람이라 블로그 해킹까지 당한 적은 있지만 어차피 내 글은 이 사람들의 방송에 비하면 하찮은 휴지조각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직접 겪는 정치적 압박보다도 더욱 충격적이고 불쾌하다. 이 사건이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미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명박근혜 정부 때 라디오에 올릴 예정이었던(심지어 대본에까지 올라간) 음악도 금지당해서 다른 곡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던데 우리나라가 정말 쪽팔리고 이참에 박정희 편들었던 인간들과 친일파들 다 쫄딱 망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41 | 342 | 343 | 34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