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짓궂은 안죠 양 4
카토 유이치 지음, 김보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6월
평점 :
지나치게 성실하고 공부밖에 잘하는 게 없는 세토(꼭 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픈 친구다. 진로 고민하는 대목이 많은데, 이렇게 말하긴 뭣하지만 넌 공뭔밖에 길이 없는 것 같아 얘야..)에게 안죠 양이 들러붙은 이야기. 언뜻 나가토로 양을 떠올리게 하지만, 보수적인 구석이 많은 선배와는 다르게 이 세토란 친구는 여자를 대하는 매너를 핸드폰으로나마 학습하기도 하고 꽤 스윗한 편. 페미를 자처하는 나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다. 그리고 세토는 안죠 양과의 관계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차여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고백하는 등 의외로 돌직구적인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 8090년대 순정만화에서 1권 아니 1화만에 주인공 남주여주가 사귀는 건 드문 일이 아니고 심지어 진도까지 다 나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최근 니세코이에서 활성화된 밀당물들을 생각해보면 100화만에 남주가 고백하는 건 이례적이다.
주목할 만한 건 여주의 태도다. 남자가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에 과민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정상적인 반응이긴 하나, 세토가 가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때 의외로 싸늘하게 외면하는 안죠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자신이 스킨십을 하는 건 좋아하지만, 세토가 스킨십을 하는 건 일절 허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고 할까. 물론 세토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그렇다면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닌가.
안죠는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조심스럽게 두 가지로 나누어본다.
- 갸루라서 남자와 잘 놀아난다는 이미지이다보니, 남자와 사귀거나 스킨십한 경우는 세토가 처음이라 부끄럽다.
언제쯤 등장하는 소재가 될지 모르겠는데, 지금까지 안죠의 어머니만 등장했을 뿐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다. 세토가 그렇게 뻔질나게 안죠의 집에 드나드는데 말이다. 물론 일본 만화에서 부모가 등장하지 않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엔 어머니가 안죠를 보호하려는 모습이 꽤 집요하게 등장하는 편이다. 자신도 미용사라 딸의 옷에 대해서 지적하기는 좀 그럴 테고, 하나밖에 없는 딸인 만큼 상처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안죠도 적극적인 스킨십은 되려 삼가는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가 세토에게 남자랑 사귀어본 경험이 한 번도 없음을 밝히고 해피엔딩으로 끝날 거란 가정이다.
- 이전 남자와의 경험이 있음을 세토에게 숨기고 있다.
이건 짖궂은 안죠 양 만화를 보고 있는 몇몇 사람들과 나의 추측. 안죠가 처음 세토에게 호감을 가졌던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물론 세토가 다른 사람이 쓴 컵이든 새 컵이든 다 컵이라 이야기한 건 여성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자로서 훌륭한 귀감이 될 만하다. 그러나 세토를 간택했다고 보기엔 안죠는 굉장히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본인의 의도가 있었던 없었던간에 만일 자신이 신세를 망쳤으며, 세토만이 자신의 남친 혹은 배우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면? 거의 쿠스노기 케이(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막장 로맨스물 작가. 내 리뷰 중 비터버진 참조. https://blog.naver.com/vasura135/80179242738) 급 막장물이긴 하나, 여성향 만화 줄거리로 나아간다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내용도 아니다.
그런데 (공부벌레인 걸 빼고) 남주 사상이 너무 괜찮은 애라서 첫번째 줄거리를 선택해서 명랑물로 가던 두번째 줄거리를 선택해서 막장물로 가던 어느쪽으로 가던간에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시간을 끌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