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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라우로 간 악어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22
야노쉬 지음, 전희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 정말 황당했다.
예쁜 그림책을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골라서 딸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일이 통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집에 아이 그림책이 이미 많아서, 내가 골라서 사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 주변 육아선배들에게 얻은 책들이다. 이 책도 그렇게 우리집에 들어왔다. 그림이 이뻐보여서, 아는 언니가 전해준 2박스 분량의 그림책들 중에서 이 책을 냉큼 집어들었다.
제목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글라우라니, 대체 어딜까. 거기가 어디이길래 악어가 그리로 갔을까.
책을 읽으면서 신경질 팍팍.
첫째, '동물원=동물의 낙원'으로 그리고 있어 황당하다.
이글라우는 동물원이다. 사나운 아빠악어 등쌀을 못 견딘 평화주의자인 아들 악어는 제 발로 북아프리카를 거쳐 남유럽의 이글라우 동물원을 찾아간다. 거기 가면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악어는 그리하여 이글라우의 친절하고 훌륭한 원장에게 동물원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그곳에서 안식을 취한다. 여기서는 모두가 친구다. 모두모두 착하고 평화롭다. 사자도 악어도, 더이상 동물들을 잡아먹지 않는다(그럼 뭘 먹나? 풀 뜯어먹나?) 인간들은 모두가 동물들에게 잘 해준다. 구경 온 어린이들은 동물들의 친구. 랄랄라. 원장님 따님들도 동물들의 친구. 랄랄라.
둘째, 동물에 따라 주어진 생존 조건과 진화의 과정들이 있다. '육식=폭력'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이들이 폭력 대신 평화를 사랑하도록 키워야 한다는 데에는 물론 동의한다. 그런데 사자나 악어가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그 동물이 (이 책에 나오는 아빠 악어처럼) 성질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예전에 내 주위에, 채식주의자가 한 분 계셨다. 자기 건강을 위해서라고 좋게 얘기하고 끝내면 될텐데, 굳이 '이데올로기'를 부여하는 분이었다. "채식을 해야 성격이 좋아지고, 육식 많이 하면 포악해진다". 그래서 육식을 매우 즐기고 포악한 성격인 나는 포악하게 덤벼들었다. "그럼 에스키모는 모두 포악하겠네요." 누구에게나 주어진 생존의 조건이 있고, 거기에 맞춰서 진화해간다. 성격의 여러 요인들을 이러저러하게 '환원'해버리는 시각은 좋지 않다고 본다.
이 그림책을 넘기면서 매우 불쾌해졌다. 내 아이에게 읽혀도 좋은지, 내 아이가 좋아하는지와는 상관없다. 내가 이 책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태평하고도 태연하게 저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주워섬기고 있어서 말이다. 게다가 그림책 여백 공간에 줄간격도 좁게, 문장을 주르르 박아놔서 전체 그림의 판이 깨지는 페이지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