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책방 어느 지하생활자의 행복한 책일기 2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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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주인인 윤성근의 두번째 책 [심야책방]을 첫 책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 곧이어 읽었다. 여행 다니는 틈틈히 읽은 것인데 시력 저하를 걱정하면서도 말 그대로 수불독권한 적이 적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읽고 나서는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여느 에세이처럼 저자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줬지만 말 그대로 여느 에세이 같았다. 그래서 두번째 책을 읽을까말까 잠깐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기를 잘했다. [심야책방]을 읽고 나서는 세번째 책도 얼른 읽어보고 싶어졌다. 지인통신에 의하면 세번째 책인 [침대 밑의 책]도 헌책에 대한 리뷰를 모은 것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그렇다. [심야책방]은 헌책에 대한 리뷰들을 모은 책이다. 리뷰들을 모은 책에서 간혹 우리 나라에 출간되지 않았거나 혹은 절판된 책들이 있기는 했지만 모든 책이 절판인 책은 아마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만으로도 독특하고 흥미로운데, 아마 작가가 가장 자신있는 부분이다보니 필력도 살아있었다.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책에 대해 저자가 애정을 담아 소개할 때, 그 책이 어찌나 읽고 싶어지던지...금지된 사랑을 하려는 사람 마냥 몸이 달곤 했다. 어쩌면 저자는 나를 약올리는 게 아닐까? 헌책에 대한 수많은 헌사들을 하면서 '나는 이 책들 다 읽었고 다 가지고 있다.'고? 휴~~그저 부럽다는 말이다.

 

첫 책으로 소개해준 토마스 핀천의 [브이를 찾아서]부터 어찌나 읽고 싶고 갖고 싶어지는지 역시나 구할 수 없는 책이라 아쉬운대로 민음사에서 출간된 [제 49호 품목의 경매]나마 사야겠다. 그나저나 [브이를 찾아서]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어릴 때 본 외화드라마 [브이]를 떠올렸다고 했는데 나 역시 제목만 듣고 그러했다. 사람 다 똑같은가 보다. 저자와 같은 시대를 살아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 읽기에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권정생과 이오덕에 대한 인연은 아동문학에 관심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몰랐던 부분이라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읽었다. 그들 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평소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작가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도록 하는 힘이 있었다. 신영복이 그러했다. 사실 그 유명한 신영복의 책을 그 어느 것도 읽은 적이 없고 관심도 가진 적이 없는데 이 책의 한 꼭지를 읽고 나니 [엽서]라는 책이 꼭 읽고 싶어졌다. 우리가 익히 아는 혹은 지나쳐버린 작가들에 대한 오래된 애정을 저자는 부지런히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책에 대한 애정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책과 책방, 책읽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책 전반에 두루 나오고 있다.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표현이 썩 인상적인 것은 아니지만(진부하다고도 생각되기도 하지만) 저자의 철학을 알 수 있다.

 

책은, 책방은 세계 어느 곳에나 있다.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다. 숨 쉬며 사는 것만큼 익숙한 것이 사방에 널린 책이다. 이런 때 딱히 고서점이나 헌책방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동네 골목마다 있던 작은 책방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다. 큰 서점보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지만, 조금 다른 눈으로 보면 어떨까? 왜 경쟁력이 없으면 사라져야 하는 걸까? 왜 남보다 뒤처지는 삶을 살면 안 되나? 여러 사람이 모여 달리기를 하면 빨리 뛰는 사람이 있고 늦게 뛰는 사람이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늦게 뛰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137-138쪽)

 

오늘 서울 북페스티벌에 다녀왔다. 헌책방 부스에 꼭 가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무방비로 나온 나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비를 피하느라 책구경을 포기해야 했다. 다만, 정독도서관에서 정리하며 나눠주는 헌책들 속에서 한 권의 책을 애틋한 마음으로 데려왔다. 이 애틋함은 원래는 없던 것인데 [심야책방]을 읽으며 생긴 것이니 결국은 저자가 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래된 애정으로 헌책들에 대한 헌사를 책으로 묶어준 것에 고마움을 표현하련다. 다음 책도 빨리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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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10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가 책으로 나온 적이 있기는 한데, 그 까닭과 이 책이 왜 사라져야 했는가를, <심야책방>에서 어떻게 다루었을까 궁금하군요. 시중에 떠도는 말들은 제대로 '진실'을 말하지 않아요. 벌써 열 해가 훌쩍 지나간 일이네요. 마침... 요즈음이 이 일이 터진 날 언저리로군요.


(글 1) http://blog.aladin.co.kr/hbooks/5203761
(글 2) http://blog.aladin.co.kr/hbooks/5203767
(글 4) http://blog.aladin.co.kr/hbooks/5205006
(글 5) http://blog.aladin.co.kr/hbooks/5205010


알라딘서재에 지난 2003년 11월에 있던 일과 얽혀 갈무리한 자료를 지난해에 올린 적 있어요. 알라딘서재 이웃님이 이 책과 얽힌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싶다 하셔서, 이럭저럭 걸쳤는데, 벌써 열 해가 지난 일이지만, 오늘에 와서도, 이때 일을 돌아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숨이 막히기까지 합니다......

아무쪼록, 아름다운 책들 언제나 아름다운 마음으로 누리시기를 빌어요.

그렇게혜윰 2013-11-10 18:48   좋아요 0 | URL
http://blog.aladin.co.kr/hbooks/6684567
글 읽어보았어요.

한길사와 창비에서 낸 이오덕 선생님의 책이 선생님의 뜻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작가의 뜻이 출판사의 이익에 배반당하지 않는 출판문화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심야책방>에서는 두 선생님께 누가 된다고 느껴지지는 않게 표현되었습니다.
 

트위터를 통해 이상북을 알게 되었고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호기심만으로 대상에게 접근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기에 알아보기로 하고 도서관에서 주인장 윤성근의 책 두 권을 빌렸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과 [심야책방]. 이 두 권이면 이상북에 대한 기본 지식(?)은 알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결론은, 용기있는 분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용기에 대한 인정과 이해를 하는 이가 많으니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이다. 책을 좋아하기에 비슷한 점이 많지만 아마 걷는 삶이 다르다는 점이 그와 나의 가장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그 차이를 좁혀가고 싶기에 한 번은 꼭 들르고 싶고, 가까이 산다면 수시로 들르고 싶어지는 곳이 바로 이상북이다.

 

어릴 때는 책이 그냥 옆에 있으면 좋았다. 그것뿐이었다. 나는 책에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책도 나한테 무얼 바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와 책은 친구였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런데 지금은 책을 보면서 버릇없이 욕심이나 부리고 있었다. 문제는 누구도 아닌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참 부끄러웠다. 책을 보면 책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걸 못 했던 거다.  (32-33쪽)

 

--> 문득 책 초판일을 기준으로 언니, 친구, 동생으로 불러야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동생으로 보면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보려나??^^ 어쨌든, 책은 책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지 말고 더 좋은 거 가지려고 하지 말고, 그저 여기 있는 내 앞에 있는 사과 한 쪽이면 충분하다는 말. 그게 바로 생명이고 평화다. (77쪽)

 

--> 도법 스님 즉문즉설 시간에 윤성근씨가 느낀 점인데 문장은 매끄럽지 못하지만(^^) 이상북의 철학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새겨들을 말이다.

 

아이가 편식을 하면 엄마가 혼낸다.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책도 편식하는 사람이 있다. 로맨스 소설만 읽는 사람, 무협지만 읽는 사람, 돈 버는 책만 읽는 사람, 처세 책만 읽는 사람, 증권 투자 책만 읽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책이란 그냥 맛 좋은 사탕일 뿐이다. 입맛에 맞는 달콤한 사탕을 매일 입에 달고 살면 이가 상한다. 건강도 나빠진다.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책을 몇 시간씩 투자해서 읽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만의 책 세상에 빠져 다른 책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문제가 된다. 그런 사람들은 무조건 어떤 분야 책이 좋다고 하고 다른 책은 멸시한다. 고전은 고전 나름대로 좋고 가벼운 에세이는 에세이 나름대로 다 좋은 건데, 책에 귀천을 따지는 건 좋지 않다. (151-152쪽)

 

--> 책에 귀천을 보인도 따지시는 것 같은데 ㅎㅎ 좋은 책과 좋지 않은 책은 분명 있는 것 같다. 아마 좋은 책 내에서의 귀천을 따지지 말자는 뜻 같다. 책 읽은 사람들 중 교만한 사람 적지 않다는 것도 인정한다. 경계해야 할 점이다.

 

살면서 건방을 떨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았다. 어떤 작가는 책 하나를 쓰려고 자기 지식을 모두 담아내고, 또 어떤 번역가는 그걸 번역하는 데 자기 인생의 많은 부분을 쏟는다. 누가 더 대단한 일을 한 건지는 따질 수 없다. 문제는 그런 책 한 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서점에서 만 얼마에 사서 읽다가 책장 어딘가에 처박아 두는 내 모습이다. 눈 없고, 귀 없고, 입 없고, 손도 발도 없는 책이지만 그 앞에서 더욱 겸손해야겠다. 책은 내게 밥, 살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밥이다. (229쪽)

 

--> 가끔 너무나 고마운 책들이 있다. 저자의 노고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책들. 이 자릴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연탄재라는 시가 떠오른다. 뜨거움으로 만들어진 책들이다.

 

 

오늘부터 한 5일간 가족 여행을 떠난다. 남편이 내게 육아 면제 쿠폰을 주었다. 여행동안 숙소에만 있어도 좋단다. 책 잔뜩 가져가서 읽어보고 싶다. [심야 책방]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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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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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 음각하고 음악으로 메우는 그 밤에.

- [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문학과지성사, 2013

 

 

"오빠는 꼭 길고, 복잡하고, 인물도 많은 러시안 소설 같아요." 오늘 본 영화 [러시안 소설] 속 대사이다. 대사처럼 길고, 복잡하고, 인물도 많은 이 영화에는 두 남자가 ‘따로 또 함께’ 완성한 소설이 나오는데 소설이 사람만의 작품이 아니었듯, 인생 또한 한 사람만의 인생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결국 ‘ 함께’라는 낱말만이 떠오른다. 그 답을 얻기 위해 신효는 죽음에서 깨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러 오가면서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었다. 영화를 본 직후라 그런지 두 작품이 오버랩 되었다. ‘1650년 봄, 생트 콜롱브 부인이 죽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영화와는 달리 짧고, 단순하고, 인물도 적지만 영화가 그러했듯 ‘함께’라는 낱말을 떠오르게 했다. 영화 [러시안 소설]이 소설을 통해 ‘함께’ 인생을 완성했듯이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은 음악을 통해 ‘함께’ 삶을 완성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파스칼 키냐르의 작품을 처음 읽는 것이라 그가 어떤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바르게 이해한 건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누군가 이 책을 읽다보면 귀에서 음악 소리가 들릴 거라고 했는데 그 말만은 확실했다. 영화가 활자로 영상의 여백을 메웠듯이 이 소설은 활자 사이를 음악이 메우고 있는 듯 했다. 그뿐 아니라 묘사가 세밀하지도 않았는데 표지의 그림처럼 은밀한 그들의 오두막이 그려지기도 했다. 표지의 그림이 아침인 것에 반해 내가 그린 그림은 밤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 생트 콜롱브는 애정 표현에 인색했다. 하지만 밤에 문득 찾아온 아내의 영혼을 위해선 몇 번이고 비올라 다 감바를 무릎 사이에 끼고 기꺼이 연주할 수 있다. 아내의 영혼이 곁에 올 때에만 감정적으로 불타오르는 그의 모습이 마음 아프다. 하지만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그들은 ‘함께’이다. 그게 소중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음악을 통해 나누는 것이다. 그 밤에 그들은 침묵으로 음각했던 사랑을 음악으로 메우는 것이다.

“내 슬픔을 형언할 수가 없소. 당신의 그런 질책도 어쩌면 당연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말로는 표현되지 않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소......” (79쪽)

“그것은 어려운 일일세. 음악은 말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 있는 거라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반드시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지. 음악이 왕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는가?” (118쪽)

 

그는 함께 연주하던 큰딸도 잃었다. 말의 빈자리는 음악이 채울 수 있었지만 ‘함께’였던 음악이 혼자가 될 때의 빈자리는 말로 채울 수 없는 모양이다. 마들렌을 잃은 상실감 역시 침묵으로 표현되며 죽기 전에 함께 심었던 꽃들과 나무들을 보살필 뿐이다. 이제는 조만간 음악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잃게 된다는 상실감은 침묵마저 깨뜨리고 죽음마저 미루게 한다. 생트 콜롱브 가의 음악은 언어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음악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밤마다 스승의 음악이 침묵을 깨뜨리길 바라며 기다린 3년이 지난 어느 밤에 평생 다른 길을 걸었던 그들은 첫 수업이자 마지막 수업을 통해 처음으로 ‘함께’ 운다. 죽음을 앞두고 함께 운다는 행위의 크기를 가늠할 수가 없다.

 

“자넨 방금 내 한숨 소리를 들었겠지? 나는 곧 죽네. 내 예술도 나와 함께. 내 닭들과 거위들만 날 아쉬워하겠지. 죽은 자들을 깨울 하나, 아니 두 곡조를 자네에게 맡김세. 자!” (120쪽)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서 시작된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은 아내의 죽음에서 딸의 죽음을 거쳐 자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상실감을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침묵했던 사랑은 음악으로 표현되고, 함께였던 음악은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음악이 된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112쪽)지만 마레와 마지막 음악 수업을 한 다음날 아침은 특히나 그럴 것 같다. 말보다 깊은 음악, 그리고 혼자보다 ‘함께’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 내 삶을 들여다본다. 내 삶은 무엇을 통해 ‘함께’ 완성될 수 있을 것인가? 소설을, 음악을 삶의 도구로 가진 신효와 생트 콜롱브가 부럽다. 내가 가진 도구가 그들처럼 예술이라면 얼마나 삶이 아름답고 풍성할까 싶은 마음도 들지만 중요한 것은 내 세상의 모든 아침도 다시 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특별히 더 아름답게 밝아올 날 하루쯤 꿈꾸는 것으로 책읽기를 마친다.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이 밤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고민도 함께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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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엔 아동용 집이 많지 않다. 아이가 세 살 때쯤 누가 자연관찰 전집이 있어야한다기에 개중 가장 저렴이로 하나 들여놓고(하지만 나는 그 책이 정보 글로 가득한 어느 책들보다 좋은 동물 책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준 꼬망스 전집, 그리고 기탄에서 산 세계명작(이건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한다.)이 전부이다.

 

나는 세계문학을 구입할 때도 한 출판사로 세트로 사는 것을 지양한다. 책꽂이에 같은 모양의 책이 백권씩 꽂혀있다면 정말 숨막힐 것 같다. 그런 건 서점이나 북카페에 있어야 멋이 있는 것이지 우리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경계를 하며 이런 저런 출판사에서 리뷰도 읽어보고 평도 귀기울여가며 구입을 해도 몰리는 것은 또 어쩔 수 없다.

 

아이는 여섯 살, 이제 곧 세계 명작 동화라는 것들을 읽을 테지. 잠자리에서 이미 내가 읽는 [어린왕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다 들려줬으니 다음에 읽어줄 책을 준비해야하는데 저 스스로 읽을 나이가 되면 나는 어떤 책을 이 아이에게 권해주어야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동용 전집류의 세계문학의 이야기와 그림에 적잖이 실망한 터라 고민은 꼭 필요한 것 같은데 그럼 어떤 책으로? 전집 전문보다는 행본 전문 출판사를 선택하지 싶다.

 

 

그러다 눈에 뜨인 출판사가 '어린이 작가 정신(어린이 작가 정신 클래식)'이다.

 

<구성 (괄호 안은 분량 : 단위 쪽)>

01 눈의 여왕(48)                  02 행복한 왕자(48)

03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73)   04 오즈의 마법사(96)  05 이솝 이야기(56)               06 크리스마스 캐럴 (64)        07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92)   08 로빈 후드의 모험(80)        09 인어공주(56)                  10 산타클로스 이야기(72)

11 드라큘라(108)                 12 베오울프(64)

13 피터 래빗 이야기(64)         14 피노키오(88)

 

 

아이 나이를 유아에서 10살 전후로 보았을 때, 분량과 그림 및 판형 등에서 현재 내 마음에 가장 드는 세계문학 세트이다. 베아트릭스 포터스의 [피터래빗 이야기]만 보더라도 한 권 안에 다섯 이야기가 들어있고, 그림은 기존의 책들과 달리 따로 삽화가를 두어 새롭게 창조했다는 점도 맘에 든다. 아마 이건 베아트릭스 포터서의 [피터래빗 이야기] 전집을 갖고 있기에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쉽게 만들기 보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고 만든 느낌이 든다. 책의 분량도 전체적으로 그림 포함 100쪽을 넘지 않는다는 점도 아이들이 읽기에 부담이 적을 듯 하고, 편집도 깔끔하여 가독성도 좋을 듯 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림이 취향을 탈 것 같다는 점이다. 귀엽거나 예쁜 걸 좋아하는 사람, 혹은 명화의 느낌이 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선호하지 않을 것 같다.  오래 두고 볼 수록 매력이 있는 그림처럼 느껴져 나는 좋다.  개인적으로는 노키오의 그림과 편집이 무척 맘에 든다.

지금 14권까지 나왔고 앞으로도 추가될 것 같은데 세트를 묶을 때 세트로 구입하는 것도 좋고 엄마 취향을 적극 고려하려면 따로 따로 사주어도 좋을 거 같다. 권 한 권 사주는 재미도 좋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 아들은 나이가 어리니 내가 읽어줘야할 것이므로 지금 내가 산다면 선별적으로

 

 

 

 

 

 

 

 

 

 

 

 

이 책들을 먼저 살 것 같다.

 

 

 

 

이 다음단계로는 비룡소나 시공주니어 등 많은 출판사들이 성인 도서에 가깝게 출간되어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 보인다. 다만 10살 이전에 읽을만한 좋은 그림과 바른 편집이 되어 있는 세계 문학을 고르기가 어려워 안타깝다. 일단 이 시리즈라도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꾸준히 출간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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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클로델 - 거침없는 호흡으로 삶과 예술을 이야기한 카미유의 육필 편지
카미유 클로델 지음, 김이선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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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은밀한 것이다. 주고 받는 사람 그 외에는 열람이 제한되는 은밀한 두 사람만의 것, 그것이 편지이다. 그런 편지가 이렇게 공개되다니 카미유 클로델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예민한 그녀라면, 아마 불안함을 숨기지 못했으리라. 은밀하기에 또한 적나라하기도 하다. 이 편지를 읽고 분실된 편지로 분류된 수많은 발신자들은 편지를 태워 자신들의 적나라함을 미연에 방지해준 카미유 클로델에게 어쩌면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그 점에 대해선 카미유 클로델에게 사과한다. 당신의 허락없이 당신의 편지를 읽은 나는 어쩌면 당신의 허락없이 당신의 조각품을 가져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지만 그들과 달리 당신의 편지를 읽은 나 혹은 우리는 카미유 당신을 이해한다고, 아주고 싶다고 말해주고 싶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먼 시간 전에 아마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영화 <까미유 끌로델>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로댕의 정부가 아닌 카미유 클로델을 재조명해야한다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영화를 봤던 것도 같고 못봤던 것도 같지만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이자벨 아자니처럼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워서 어쩌면 내 속으로는 그녀를 위대한 조각가가 아니라 로댕의 정부 쪽으로 치부해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표지 속의 카미유는 물론 아름답지만 이자벨 아자니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이랄까, 덕분에 그녀를 백지의 상태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평범하고 긴 드레스를 입고 조각상에 매달린 그녀의 모습은 인형같은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열정적인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얼굴과 몸매가 매혹적인 정부가 아니라 정과 기질이 나는 조각가의 모습이 그녀의 수 백 통 편지 속에 들어있었다.

 

 

그녀의 편지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1. 그녀는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었다.  2. 그녀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자부심이 대단했다.  3. 로댕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4. 그녀는 가난했다. 5. 30년간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 6. 그녀는 의지가 강하다.  7. 그녀의 편지는 매우 정상적이었고, 그녀의 정신은 매우 불안정했다.'이다. 이를 정리하면 천부적 소질을 가진 여성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연인이자 제자로서 그 능력을 인정받지만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센 사람이라 로댕의 그늘에 숨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순순하지 못한 그녀는 로댕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으며 로댕의 지지를 받지 못한 후에는 가난할 수 밖에 없었으나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어떤 음모로 인해 감금되었고 그 이후 비교적 정신이 또렷해보이나 매우 불안정한(누구라도 그 상황이면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상태로 생을 마감했다. 아, 불쌍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지만 불쌍하다고만 여기기엔 그녀는 너무나 강인했다. 그녀가 그곳에서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30년 간을 살아낸 것, 나는 그점이 무척 놀라웠다. 그 끔찍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그 상황을 어떻게 그 긴 시간동안 견뎌낼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이해받기 보다는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긴 사람이었으니 이런 나의 감정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토록 많은 편지를 재잘재잘 많이도 남긴 그녀가, 그 편지 속에서조차 가식이 없이 직하고 당당했던 그녀가 실제 삶에서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편지의 상당부분을 실이라고 믿는다. 물론 정신병원 감금 이후 지나치게 감정적인 망상이라고 여겨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편지 속에 스며든 카미유 클로델의 에는 생명력에서부터 무기력까지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마치 한 인간이 모든 힘을 짜내어 무언가를 이루고 소진하여 쓰러지는 과정이 들어있는 듯 하다. 다만 그녀에게는 생전엔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없었겠지만 책 속에 편지와 함께 삽입된 작품 사진을 보자니 그녀가 무언가를 이루기는 이루어 낸 듯 싶다. 여성 조각가로서 실제 사람보다 큰 군상을 조각해내는 것부터 움직임이 유연한 다양한 작품들을 보자면 그녀가 얼마나 위대한 조각가인지, 당시 여성으로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인지 느낄 수 있다. 아마 세상은 그녀의 위대함을 인정하기 보다는 그녀의 위대함을 은폐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댕이 미친 듯이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열정의 예술가, 로댕의 보호를 벗어나 그의 악의에 갇힌 불운의 예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 앞에서 로댕을 눈물 흘리게 했던 천재 예술가 미유 클로델. 은밀한 편지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에 대해 그녀는 지금 역시 허락하지 않을 테지만 그 고단한 삶이 편지로나마 이렇게 그녀를 품어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로댕을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역시 가엾다. 이 편지가 공개되고 나서 그의 명예는 실추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인간적인 고민과 복잡한 심사는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로댕에 관한 이야기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고, 지금 개봉 중인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까미유 끌로델>도 꼭 보고 싶다. 이자벨 아자니 보다는 줄리엣 비노쉬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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