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봉주르, 뚜르>로 데뷔한 후 <해리엇>, <서찰을 전하는 아이>로 주목 받아온 작가 한윤섭이 네 번째 장편동화 <우리동네 전설은>을 펴냈다.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시골 마을 득산리로 전학온 첫날, 하교길을 막아선 것은 전학생 준영이와 한 동네에 산다는 세 명의 아이들. 그리고 반강제로 듣게 된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이곳에선 중학생이 되기 전엔 절대로 혼자 하교할 수 없다는, 일명 '득산리의 법칙'이다. 아이의 간을 먹어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할머니, 어린 자식들을 먼저 보내고 정신이 이상해져버린 염장꾼이 학교에서 혼자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잘 짜인 이야기의 맛을 즐기는 한편, 노인과 죽음, 부모와 자식, 계절과 인간의 순환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우리동네 전설은> 속 숨은 이야기와 함께, 작품의 무대가 된 실제 지명 득산리가 어떤 곳인지, 또 동화 작가이기에 앞서 희곡을 쓰고 공연을 올리는 극작가로 살아가는 일상에 대해 들어 보았다. (기획 : 창비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첫 작품 <봉주르, 뚜르>의 배경은 파리, 두 번째 <해리엇>에서는 동물의 세계, 세 번째(<서찰을 전하는 아이>)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의 한복판으로. 작품마다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시공간을 이동하셨습니다. <우리동네 전설은>의 배경도 이전 작품과 유사점이 없고요.


모든 작가들이 진짜 자기들이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 어린 시절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요. 사실 <우리동네 전설은>은 장편으로 나오기에 앞서 단편으로 써 놓은 게 있었어요. 습작 기간에 쓴 아주 짧은 단편이었는데, 장편 내용 중에서 밤나무 아래서 밤 떨어지는 대목, 그 대목만으로 이루어진 단편이 있었던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는 못 보여줬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작품이기 때문에 그걸 그냥 조금 더 길게 늘려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처음에는 들었었고요. 사실은 <봉주르, 뚜르>를 쓰고 나서 그 작품의 캐릭터를 다음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가져가려고 했던 적도 있기는 했었어요. 

 

다른 습작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우리동네 전설은>처럼 또 한번 장편으로 발전시켜 책으로 내 주신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우리동네 전설은>에 등장하는 '득산리'라는 곳이 실제 있는 지명이더라고요.

 

여기가 실은 충청남도 아산이에요. 옛날 지명으로 하면 온양 온천인데, 시내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라 굉장히 아름답고 그런 곳은 아니에요. 벌써 도시화가 되어 가고 있는, 시골과 도시의 중간 단계인 지점이에요. 지금은 밤밭 같은 것도 사라지고, 또 할아버지들도 이사를 가거나, 가족들의 보호를 받아서 도시로 다 떠나가는 형편이고요. 이 득산리가 아주 아름다운 상태로, 깊은 산골처럼 아름다운 상태로 보존돼 있었더라면 저도 참 좋았을텐데... 이게 참 겉으로 보기에 시골 근교 도시 근교의 예쁘지 않은 마을 중의 하나처럼 되어 버려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작가님은 몇 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자라셨나요?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거기서 살았다고 봐야 되죠. 학교를 대학에 가면서 바뀌었으니까.

 

마지막 그 말씀 때문에, 부모님이 아직까지 득산리에 살고 계시다는 말 때문에, <우리동네 전설은>에서 작가님의 어린 시절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했거든요. 그렇지만 이 책을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기 어려운 것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들이 재미있어 할 이야기이길 바라고 썼다고 하셨으니까요. 만약에 작가님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되려면 줄거리는 어떤 방향으로 바뀌었을까요.

 

아마 제 얘기를 썼다면 진짜 거기에서 있었던 그냥 더 소소한 아이들의 그냥 놀이 문화 이런 것들로 꾸며졌을 거예요. 냇가에서 고기 잡고 밤 따러 가고 서리하고 이런 것들로. 그랬을텐데 하... 전 진짜 그런 건 쓰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러면 혹시 <우리동네 전설은>에 등장하는 방앗간 할머니는...

 

그 분 얘기는 실제로 들었던 사실이에요. 돼지 할아버지나 그런 분들은 만들어낸 거지만요. 도로가 더 뚫리면서 지금은 사라졌지만 방앗간 집이 있었고, 또 밤나무가 많은 집이 있었고, 밤밭이 있었고, 지금도 뱀산이 있고, 똑같이 과수원이 있어요. 그런데 동화에서 그린 것처럼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전설을 처음 듣게 되는 초반부가 굉장히 긴장감 있는데, 읽는 사람을 쥐락펴락 하는 재주가 남다르신 것 같아요.

 

정말 거기서 조금 더 긴장이 되고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 여기서 이 얘기에 조금 더 쏙 빠져 들었으면. 그래서 좀 더 긴장하게 하고 무섭게 하거나 좀 더 하려고 했는데 의도대로 됐는지는 저는 사실은 잘... 객관성을 잃었으니까 잘 모르지요(웃음).

 

의도하신대로 효과를 거뒀다고 보셔도 될 것 같은데요. 처음부터 엄청 신경을 곤두세우고 읽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또 재미있었던 게 하교하는 시간이 보통은 공부에서 해방되는 시간인데, 이 작품 속 아이들은 반대로 하교하는 순간부터 바짝 얼어서 집을 향해 가잖아요. 중학생이 전에 혼자 하교하면 안 된다는 전설 때문에요. 작가님 어린 시절에도 무서운 소문 때문에 집으로 가는 길이 괴로웠던 경험이 있었는지요?

 

예, 있었는데요.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에 새로 생긴 주택 단지가 있었는데, 그 주택 단지의 입주가 시작되기 전에 동네 아이들이 빈집에 가서 놀잖아요. 그러면 매번 귀신이 나온다고 했었어요. 또 뱀밭을 지나갈 때도. 동화에 쓴 이야기랑 꼭 똑같은 얘기가 있었어요. 그때마다 뛰었어요. 애들하고 같이.

 

도시에서 시골로 전학 온 주인공 준영이 아버지의 직업은 목사입니다. 이 직업은 극 초반부에 소개가 되고요. 그래서 '목사'와 '전설' 두 단어의 갈등 관계가 예상되기도 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읽어나가보니 그런 대목은 또 없더라고요. 목사님을 주인공 아버지로 설정하신 의도가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습니다.

 

작가 입장에서 조금 영악할 수도 있는 얘긴데, 저는 목사라는 직업군이 책에 나오면 마음이 좀 편해지거든요. 그게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서, 크게 종교적인 색채를 띠지만 않는다면 편하게 느껴지는... 그런 것도 있었지만 또 하나 다른 이유가 더 컸는데요. 두 번째는 이사를 가는 개연성,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목사 밖에는 없겠더라고요. 아무리 찾아도요. 교사도 안 되겠고, 정말 찾아봐야 보건소 의사. 그렇게 갑작스럽게 이사를 갈 수 있는 직업군이 목사라는 직업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보건소 의사, 목사 중에서 고르다가 목사가 조금 더 마음을 편하게 할 것 같아서 정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그냥 나온 직업이 아니었네요. 이밖에도 공을 많이 들어간 대목이 있다면요?

 

먼저 쓴 단편에도 나왔던 밤이 떨어지는 그 순간, 그 순간이 어렸을 때 아주 신기했던 부분이었거든요. 전날 밤까지만 해도 밤나무에 밤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는데, 꼭 새벽에 가보면 진짜 밤이 많았던 게 정말 신기했어요. 그 부분을 꼭 넣고 싶었어요. 현실적으로는 밤나무 밑에 못 있거든요. 되게 위험한 상태가 될 수 있죠(웃음).

 

전반부는 전반부대로 굉장히 스릴 있게 진행이 되고요, 후반부로 갈수록 그 이웃사람들, 한 동네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에피소드가 하나둘씩 얼굴을 내밉니다.

 

그냥 동네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뤄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런 건 있었어요. 노인들을 위해줘야 한다, 노인들과 친밀해져야 한다, 이런 거는 절대 쓰지 말자. 노인이 아닌 이웃으로 쓴 거죠. 그런데 표현하고 싶었던 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이었어요. 이것이 사람과도 연관이 됐으면 좋겠다, 사계절을 표현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이 작품을 쓰면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준영이가 어르신들과 교류하는 장면에서는 전작 <해리엇>도 잠깐 떠올랐거든요. 어른을 바라보는 온기가 느껴졌던 것이 좋았고요. 그리고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그 다음에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게 아니라 봄이랑 여름이랑 가을, 겨울은 항상 함께 오고 있다는 문장에 정말 설레였는데요. 책을 위해 새로 만드신 문장이 아니라 이 느낌을 실제로 가져 본 적이 있을 것 같더라구요.

 

10월 말 정도 되면, 지금도 근교에 가보면 느껴지는데요. 추수를 하고 그럴 때 쯤에 매번 써늘하게 다가오는 그 겨울 느낌이 그렇게 학창 시절 내내 오래 남아 있었어요. 버스 타고 혼자서 이렇게 동네를 걸어올 때 보면 그렇게 싸늘하게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오는 느낌들, 그것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지금도 차를 타고 근교에 가면요, 예를 들어서 파주에 간다고 하면 벼베기 하는 논에서 사실 느끼거든요. 그럼 어렸을 때의 그 감정이 막 살아나고요. 그게 사춘기와 닿아 있는 것 같아요. 그때의 그 고민들하고 감정이 얼키고 설켜 있는 것 같아요.


<우리동네 전설은>에서 특히 더 그렇고 그간 한윤섭 작가님 동화를 읽으면서 공간 묘사에 많이 감탄을 했거든요. 공간 묘사에 능하신 건 아무래도 희곡을 쓰셨던 데서 영향을 받은 것이겠죠? 동화 쓰실 때에도 구체적이고 분명한 공간을 그리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희곡은 아무래도 인물이나 시간보다 공간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장르가 아닌가 해서요.

 

아마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대사 부분이 특히, 희곡에서는 웬만해서는 단어를 최소화해서 의미를 전달하는 게 그게 가장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기 때문에요. 그러러면 여러가지로 새로운 조합들을 찾아야 하니까요. 영향이 컸을 것 같습니다.

 

아직 동화만 읽으신 독자분들은 희곡 작품에서 한윤섭 작가님의 색깔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잘 모르실 것 같아요. '나는 어떤 희곡을 쓰는 작가'라고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희곡에서도 똑같은데요, 생명에 대한 문제든 전쟁에 관한 이야기든... 또 희곡에서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건 아니지만 재미있게 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입니다.

 

다시 동화 이야기로 돌아오면, <우리동네 전설은>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펴내신 모든 동화 주인공을 남자아이들이더라구요. 혹시 앞으로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동화도 써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여자아이 얘기는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라, 그건 좀 위험한 일인 것 같아요(웃음). 여학생이 나왔는데 제가 모르는 부분을 뺀다면 이야기가 본질이 또 흐려질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서문에서 동화를 쓰기로 결심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하신 적이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고요. 아이를 낳는 것과 동화를 쓰겠다는 마음이 연결된다는 것이 좀 구체적으로 궁금하더라고요.

 

아이가 생겼을 때, 그때는 희곡을 작업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었을 때였는데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인데, 그게 일이어서이긴 하지만 남들을 위해서만 쓰는 게 아니라, 나랑 제일 가까운 아이를 위해서도 이야기를 만들어봐야겠다. 지금 책으로 내는 동화책과는 조금 다른 그림 동화를, 그 때에는 짧은 이야기들을 많이 썼어요. 농담처럼, 내가 우리 아이한테 백권을 만들어줘야겠어(웃음), 농담처럼 그러기도 했거든요. 일이 끝나고, 연습이 끝나고 배우들이 나가고 가면 사무실에 혼자 앉아서 짧은 이야기를 써고, 그림을 캡쳐해가지고 집으로 들고 갔어요. 한달에 한 서너권씩 만들어서 읽어주고 그랬어요. 아이가 좋아했죠. 장편 <해리엇>도 그런 경우였어요. 어른이니까 즉석에서 이이야기를 꾸며 아이한테 들려줄 수 있잖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 중 하나가 <해리엇>이었어요.

 

첫 작품 <봉주르, 뚜르>가 문학동네어린이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꽤 눈에 띄는 데뷔작을 갖게 되신 셈인데요. 첫 작품하고, 그 이후에 나온 작품들하고는 좀 구분이 될 것 같아요. 데뷔작 이후로는 주변의 어떤 기대치 같은 것이 생겨나고, 이후에는 직접적인 평가들을 좀 더 많이 받으면서 쓰셨을테고요. 그것이 글쓰시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보세요?


영향이라기보다 부담이 되죠. 그렇지만 부담을 가지면서도 그렇게 염려는 하지 않아요. 작품이 별로면 아예 갖고 나가지도 않기 때문에요(웃음). 저 혼자 절망하고 말기 때문에, 외부로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덜 부담스러운 것 같아요. 몇몇 분들께는 정말 직접적으로 제가 물어보거든요. 이번 건 <서찰을 전하는 아이> 보다 나아, 안 나아? 이렇게요(웃음). 예를 들어서 물어보거든요. 그럼 그 작품이랑 비슷해, 약간 떨어져, 많이 떨어져, 어떤 면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어, 이런 대답이 돌아오죠. 다른 작품들하고 편차가 많이 나면ㅡ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버리는 거예요.

 

그럼 그런 외부의 평가 말고, 작품을 쓰는 데 영향을 주는 다른 어떤 것이 있다면요?

 

그냥 저는 소재인 것 같아요. 단지 소재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이게 정말 신선한가, 신선하지 않은가. <우리동네 전설은>도 소재면에서 사실 걱정을 많이 했던 작품인데요. 많이 다루어진 소재니까, 다른 것에 비해서는 그래서 처음에는 작가의 말에서 썼듯이 걱정이 많이 됐었고, 그랬죠. 누구나 작가라면 남들이 안 했던 얘기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까요.

 

첫 작품 <봉주르, 뚜르>의 배경이 된 곳에서 유학생활을 하셨잖아요. 글쓰기에 대한 공부를 하던 이 시절의 이야기가 궁금하고요, 그 전에는 서울예술대학에서 극작 전공을 하셨는데 이렇게 국내와 국외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각각 어떤 것을 얻으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서울예대에서는 기본적으로 글쓰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 배웠던 것 같아요. 제가 그동안 보아온 어떤 교육기관보다도 최고의 스킬을 가르쳐줬던 것 같아요. 그때 최고의 선생님들이 계셨거든요. 90년대 중반이었고, 제가 다른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에 두 번째로 들어간 학교였죠. 선생님을 따라서 다시 학교 생활을 하게 된 거죠. 유학 시기에는 그 어떤 때보다 의식이 자유로워졌어요. 아, 어떤 식으로 해도 되는구나, 이렇게 해도 되고 또 저렇게 해도 되고, 내가 조금 더 넓게 세상을 보게 됐구나, 정말 많은 인종들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구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 자유로워지고 넓어졌어요. 유학갔다 올 때 정말 대단했던 것 같아요. 열심히 공부하고 쌓아나가고 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폭발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유학에서 돌아와 연출 작업을 하고 그럴 때 정말 거침 없이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세 번째 동화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푸른숲 역사동화'라는 시리즈 기획물이었는데요. 소재를 직접 고르셨다기 보다, 제안을 받고 응하는 방식으로 다른 작품들과 출발이 달랐을텐데요. 수락하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작가 이현 선생님께서, 제가 문학동네어린이 문학상을 받을 때 심사위원이셨거든요. 또 그리고 제가 동화 공부를 할 때 우연찮게 이현 선생님의 '3일간'이라는 작품(<짜장면 불어요!> 수록 단편)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아, 동화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소설가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이현 작가님이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제안하셨는데 거부할 수가 없었어요.

 

동화와 희곡, 두 장르의 글쓰기를 지금도 병행하고 계시죠?

 

국내에서 제 또래의 극작가들 중에서도 제가 작품을 많이 하는 편에 속해요. 같이 있는 팀이 공연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될 때가 많았어요. 극작가들의 경우, 작품이 있어도 바로 책처럼 출간이 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많은 공연 비용이들다보니 제작비가 되는 팀에 컨택이 되어야 되는 문제라거든요. 그런데 제가 있던 팀은 운 좋게 매번 나라의 지원도 많이 받고 그랬죠.

 

희곡 쓰기와 동화 쓰기의 연결 고리라고 할 만한 것도 있을까요? 희곡 쓰기와 동화 쓰기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희곡은 일년에 세 편 정도 쓰면 많이 쓰거든요. 그게 공연으로 올라가면 정말 많이 올라가는 거거든요. 그래도 비는 시간이 있었어요. 작품을 만들고 나면 비는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때 뭔가 또 일을 더 해야된다는 생각에 더 썼어요. 그리고 희곡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소재들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는 게 있죠. 제가 동화에 쓴 소재들은 연극이라면 어린이 연극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동화로밖에 쓸 수 없었던 상황도 있었어요.

 

<우리동네 전설은>을 포함해 어느덧 네 번째 작품까지 발표하셨어요. 현재 동화작가로서 갖고 계신 과제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지요?

 

저는 솔직히 그냥 솔직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큰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어요. 그런 출판사에서 내는 것 자체로 일단 어느 정도 검증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서요. 그 부분은 서로 믿음이죠. 그리고 작품을 재미있게 써야 된다는 생각 밖에는 없어요.

 

첫 작품에서도 작가로부터 혹은 책에서 예의나 교훈을 배우고 싶지 않다고 하셨고, 이번에도 그 자기 만족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독자의 재미가 우선인 이야기들을 쓰시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세요?

 

공연계 쪽에서 일하면서 버릇이 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책을 썼으니까 '읽을 거면 읽고 안 읽을려면 말아',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어차피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나왔다면,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서 공동 작업을 해놓았다며 이게 뭔가 값어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난 예술을 하는 것이고, 나는 잘썼는데 독자가 이해를 못한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재미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3년 <예담이는 열두 살에 1000만원을 모았어요>를 시작으로, 학습동화와 창작동화를 분주하게 오가며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배출해온 김선희 작가의 2012년 신작은 '인문학 동화'라는 이색적인 타이틀을 달고 있다. 작가가 '아이들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곳'이라 소개한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는 옛 성인(聖人)들의 21세기 한복판으로 데려와, 오늘의 어린이들이 겪는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컨셉의 새로운 동화책이다. (기획 : 주니어김영사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 출간 전후, 어린이 책 시장에 고전 열풍이 심상치 않았는데요. 최근 들어 고전 붐이 일어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인문학 동화를 표방한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에도 독자분들의 관심이 적지 않았습니다.

 

책이 나오고 나서 많은 독자분들이 찾아주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어린이 책 시장에서 어느 때는 과학동화가 잘 나가고 어느 때는 또 창작동화 붐이 일고, 그런 흐름들이 있는데 그런 어떤 흐름 탓도 있겠고요. 아이들 책은 엄마들이 더 먼저 관심을 갖고 보시잖아요. 엄마들이 인문학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도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는데 생각하시면서 어린이 인문학 도서의 붐과 맞아 떨어지지 않았나... 그리고 학습동화라고 하는 장르가 어떤 한계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그 자리를 인문학 동화가 대체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니어김영사의 인문학 동화 시리즈는 어떻게 처음 출발하게 됐나요?

 

이 시리즈는 기획위원이 계세요. 제 친한 선배이시기도 한데, 어느 날 연락을 주셨어요. '인문학 동화를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 사실 당시에는 문학, 창작물에 더 주력을 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제안을 받고 나니까 인문학 동화라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유럽에 가려고 계획을 세워놨을 때였는데, 여행 가기 전에 기획동화를 마지막으로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작업을 맡게 됐어요. 신기한 건 그 즈음 제가 논어를 읽고 있었거든요. 평소에도 논어를 좋아해서 가끔씩 펼쳐보는데, 그때 마침 인문학 동화 시리즈 집필 제안을 받게 된 거죠.


논어를 자주 읽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제일 처음 읽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하세요?

 

한 십년 전? 그 때는 논어를 그냥 책으로 읽었던 것 같아요. 고전이니까 한번 읽어봐야지, 이렇게요. 의무감 때문에 읽어서 내용이 굉장히 깊이 들어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후에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읽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읽게 될 때는 구절 하나하나가 와서 박히는 거예요. 십년 동안 살면서 많이 생각도 바뀌었고, 그러면서 같은 글이 다르게 다가오게 되더라구요.

 

<논어>에서 좋아하시는 구절 하나 소개해주시겠어요?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에도 등장하는 구절인데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앎이다'. 도덕경에도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훌륭한 앎이다'라는 말이 나오고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는 것이다. 내가 뭘 모르는지, 내가 정말 공부를 많이 하고 책을 정말 많이 읽었고, 그랬는데도 점점점 더 모르는 것이 늘어가잖아요. 처음 읽었을 때는 그리 와 닿는 말이 아니었는데요. 제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다음에 그런 의문이 생기더라구요. 세상을 많이 안다고 생각을 하는데, 안다는 것이 과연 뭘까... 모르는 게 더 많은데... 그런데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맞아 이거야! 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나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 겸손해지게 된 것 같아요.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하고, 더 알아야 겠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됐지요.

 

문학 작품과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 같은 기획물, 작가님께는 어떤 점이 다르게 다가오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쓴 기획동화가 <예담이는 열두 살에 1000만원을 모았어요>였는데요. 이 책을 쓰기 전까지는 기획동화라는 개념을 몰랐어요. 그 책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예담이라는 아이의 이야기를 쓴 건데요. 책이 나오고 나서 독자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는 걸 보고 많이 놀랐어요. 이런 기획물들이 창작물보다 훨씬 더 환영을 받는다는 생각에 굉장히 갈등을 했어요. 내가 과연 기획동화를 해야 하나, 아니면 순수 창작물을 해야 하나.... 계속되는 갈등 속에서 10년을 기획동화 작업을 했죠. 하면서 계속 창작물하고 기획동화하고 병행을 했어요. 창작물은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반면, 기획동화는 단시간 내에 큰 반응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달랐어요.

 

또 창작동화를 할 때는 굉장히 자유롭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런데 기획동화는 이야기는 자유로울 수 있어도, 주어지는 주제에 얽매이게 되는 그런 게 있어요. 나중에는 내가 도식적으로 쓰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어떤 틀에 맞춰서 그 틀을 못 벗어나고 있었죠. 그래서 반성도 많이 했고, 이렇게 쓰면 독자들도 더 이상 안 좋아할 것 같은 거예요. 뻔하다고 생각할 것 같고. 그런 제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시기가 있었어요.

 

기획물은 그렇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 어려운 작업인데, 이번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 같은 경우에는 결과가 너무 좋았잖아요. 이번 작업이 기획물에 대해 생각을 달리 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주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예, 말씀하신대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왜냐하면 독자 리뷰를 보고 나서, 이런 기획물들이 너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이들이 이런 책을 통해서 평소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들과 만나고 무언인가 깨달아가고 또 변화가 된다면, 이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다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런데 이게 너무나 신기한 경험이었던 거죠, 저한테는.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를 읽은, 또는 읽게 될 아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애들은 책을 덮고 나면 그만일 것 같은데요. 재미있게 읽고 나서 덮으면 끝나는 거지, 큰 기대는 안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것은 있어요. 그게 어떤 변화냐면 아이들에게도 괴롭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을텐데, 그런 문제들에 부딪힐 때 이 책에서 공자님이 했던 얘기를 한번 떠올려 보는 것이요. 아, 공자님은 이럴 때 이렇게 말씀하셨었지... 책에 나온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봤으면, 하는 거예요. 이성 문제라든지 부모님과의 관계라든지, 그런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하나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 당장은 까먹을 수 있더라도, 그런 문제들과 마주했을 때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신 거죠? 책을 읽은 독자분들은 주로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제일 듣기 좋은 말이 그거였어요. 잘 읽힌다는 말. '한번 읽기 시작하면 놓을 수가 없다'(웃음). 제일 좋은 책은 정말 손에서 놓지 않고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 교훈도 필요하고 지식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재미라고 생각하거든요. 재미있다는 말, 잘 읽힌다는 말이 흐뭇했죠. 그리고 리뷰 중에서 기억에 남았던 건 '나도 모르게 스며든다'는 말들이었어요. 알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 같다, 이런 독자평도 참 좋았어요. 의도했던 부분이었거든요.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 속에서 공자의 캐릭터 변신이 흥미로운데요. 공자 아저씨가 빵을 굽는데, 빵도 그냥 빵이 아니라 재밌는 이름의 빵들이에요.

 

전 빵을 정말 좋아해요. 빵을 먹는 것도 좋지만 빵이라는 말이 정말 좋아요. 아이들도 좋아하는 단어 같아요. 빵! 재밌잖아요. 공자 아저씨와 빵이라는 단어는 참 어울리는 것 같아요. 빵은 배고플 때 먹는 건데 이 책에서는 아이들의 영혼이 배고픈 것, 정신적으로 배고픈 것을 이야기하고, 빵도 영혼의 허기에 공자 아저씨가 주는 양식인 셈이 되지요.

  

논어에 나오는 여러 가르침 중에 몇 가지를 선별해,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에서 들려주셨는데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 이야기들을 고르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기준은 분명히 가지고 있었는데요. 어린이들이 지금 당면한 문제, 당면한 현실적인 고민들을 위한 것일 것. 제일 큰 고민으로 공부 문제, 부모와의 문제를 들 수 있겠죠.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님하고 적이 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또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요새는 많이 줄었다고 해도 경제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고 이성과의 문제도 있고요.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아이들 문제를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들을 고르게 된 거죠.

 

아이들의 현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작가님은 성현의 가르침 속에서 찾으셨어요. 요즘도 사실 유명하고 꽤 훌륭하다는 사람이 많은데 구태여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신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 본문에도 옛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대목이 나오고요.

 

제가 어른들 잔소리를 정말 싫어했거든요. '내가 젊었을 때는...'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얘기들. 그런데 뻔한 잔소리는 애들도 정말 싫어해요. 항상 내가 잘 되길 바라는, 좋은 의도에서 나온 말이었겠지만, 일단 저부터도 굉장히 거부감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한테 그런 말 잘 안하려고 노력을 했고... 너흰 어려서 몰라라고 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반발하는데요. 우리가 왜 모르냐고.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를 쓰면서도 그 비슷한 반발이 있지 않을까 예상을 했죠. 아이들은 '또 성현들 말씀이야? 공자왈 맹자왈...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런 말 할 게 뻔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논어를 읽으면서 느꼈던 건 옛날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구나...(웃음)


공자는 2천 5백년 전에 살았던 분이잖아요. 2천 5백년 전이면 예수시대 사람인데, 그 시대에도 지금 시대랑 고민은 똑같았거든요. 사람 사는 게 똑같으니까요. 그때도 성적 문제는 있었을 거고, 우리집은 왜 가난해 이런 고민이 있었을 것이고, 아이들도 아이들대로 고민, 어른은 또 어른대로 고민이고. 사람의 생각은 2천 5백년 전이나 할머니나 엄마나 지금 애들이나 다 똑같은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 이 사람은 공자님이고, 그의 말이 2천 5백년 이후까지 살아남을 정도면....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살다가 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지금까지 그의 말이 살아남아서 읽히고 있는가. 이 사람에게 정말 뭔가가 있기 때문에, 특별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겠죠.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과 그때 고민했던 것들, 같이 공감을 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거죠.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에서 다루었던 이야기들 가운데서, 개인적으로 가장 각별하게 다가오는 가르침이 있으세요?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요.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 굉장히 이기적이라고 하잖아요. 부모들이 이기적으로 키우는 면도 있거든요. 손해보는 짓 하지 마라, 어디든 가서 꼭 이겨라, 지지 말아라, 그런 식으로 많이 가르치는데,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 오히려 내가 편해질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편안해질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 입장 생각 안 하고,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자기가 피곤해지는 거거든요. 자기도 편안할 뿐만 아니라 사회도 굉장히 편안해지고, 싸움 같은 것도 잘 일어나지 않을 거고요. 정치인들 싸움을 보면, 아 정말 자기들만 생각하는구나, 유권자들은 안중에도 없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저사람들이 정말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거나 남을 생각한다면 저렇게 진흙탕은 안 될텐데.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 유권자들이 많은데 배신을 하는 거잖아요. 그것도 나라 일을 하는 사람들이요. 결국은 정치인들도 다 남을 위해서 희생한다고 하지만 다 자기를 위해서 권력을 위해서 행동하는 거잖아요. 이야기가 너무 멀리 나갔는데요(웃음), 아이들이 친구랑 싸우는 것도 다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에 싸우게 되는 거거든요.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를 읽고 난 다음, 성현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될 어린이 독자가 있다면 논어 외에 권해주고 싶은 고전이 있을까요?

 

제가 요즘 불교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불교철학이 자기 수행을 하는 건데, 요즘 아이들한테는 자기를 되돌아볼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그럴 수 있는 시간을 안 만들어주세요. 아이가 아닌 부모님이 원하대로 판을 다 짜놓고 거기 맞추도록 강요하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교육 받은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제가 불교철학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불교라는 게 자기를 되돌아보는 것, 자기와 세계를 바라보는 것, 그게 종교잖아요. 열심히 불교철학을 공부해서 좀 더 쉽게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에 아이들한테 도움 될 만한 이야기가 참 많은데, 머리로 아는 것하고 몸소 실천하는 것에 괴리가 생길 수 있잖아요. 아이들이 배운 것을 실천도 잘하기 위해서 작가님이 해주실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요?

 

실천은 어른도 참 힘든 거잖아요.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어른들은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많거든요. 완전히 굳어져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어른들한테는 많아요. 아이들이 오히려 어른보다 더 사고가 유연하고 더 넓고 더 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받아들이는 게 훨씬 많고 어른들보다 바뀌기가 쉬워요. 얘네들이 마음만 먹으면 바뀌는 건 어른보다 몇배나 더 쉬울 거예요. 한 2초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2초만 이 책을 생각해! 공자 아저씨가 어떤 말을 하셨었는지'(웃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네요. 


10년 넘게 집필 활동을 해오셨는데,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는 작가님의 이력에서도 꽤 도드라지는 이색적인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앞으로 또 어떤 독자들을 찾아가면 좋을까요?

 

많은 아이들에게요(웃음). 어떤 고민이 하나 있는 아이들? 고민이 있어도 누구와도 대화가 안 되잖아요, 어렸을 때는요. 부모님들하고 절대 대화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잖아요. 크면 클수록 부모님이 아이들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상대가 못 되는 현실이 많고요. 부모님도 안 되고, 친구들이랑 얘길 해봐도 이 고민이 해결되기는 힘들고. 그런 아이들이 이 책과 만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교에서는 시험과 맛 없는 급식, 선생님의 야단. 집에서는 공룡처럼 싸워대는 엄마 아빠의 고함. 서럽고 피곤하고 화가 나서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눈물이 그칠 모른다. 눈물이 흘러흘러 바다를 이루고, 급기야는 오늘 하루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이 눈물바다에 휩쓸려가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만다! 수많은 독자들이 열광한 새로운 상상력, 아이들의 속상한 마음을 위로하는 다정함과 압도적인 유머까지 갖춘 데뷔작, <눈물바다>로 주목 받았던 서현 작가가 2년 반만에 두 번째 그림책 <커졌다!>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아빠가 돌아가셔서 나 혼자 되면 어떡하나 괜히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면서 우는 게 일이던 꼬마 울보에 장래희망은 만화가, 스물 다섯살에 피터 시스의 <이상한 화요일>을 읽고 그림책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점쳐보았던 82년 생 일러스트레이터. 장르 구분 없이 자신에게 감흥을 주는 그 무엇에 매료된다는 서현 작가가 들려준 <눈물바다>와 <커졌다!> 비하인드 스토리. 내가 좋아서 한 이야기가 독자와 통했구나! 느꼈던 순간을 회상하는 소리가 수줍고도 씩씩하다.


(사진 : 사계절출판사 정미은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 2012-06-27)

 

 

2009년 출간된 데뷔작 <눈물바다>가 많은 독자분들께 사랑을 받았습니다. 첫 책 출간 이후에 개인적으로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부모님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제 좀 경제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겠구나... 안심하시는 그 정도요?(웃음)

 

두 번째 그림책 <커졌다!>에서, '키가 커지면 좋겠다'는 욕구를 다루게 된 까닭이 궁금합니다.

 

애니메이션 토토로 혹시 보셨어요? 토토로랑 아이들이 여름 밤에 외출하는 장면이 있는데, 밭에 심어 놓은 새싹이 갑자기 쑥쑥 자라 나무가 되는 거예요. 토토로가 어떤 동작을 취하면 나무는 또 순식간에 저 하늘 우주 끝까지 엄청 커지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걸 보고 제가 감흥을 많이 받았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한번은 친구랑 비를 맞자고 우비만 입고 남산 공원엘 갔는데, 비 맞으면서 나무를 보던 중에 토토로에 나온 그 장면이 오버랩이 되면서... 성장하는 생명력,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아서 <커졌다!>는 거기에서부터 시작하게 된 이야기에요.

 

남산에 가셔서 비는 실컷 맞으셨구요?

 

네!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찜질방으로 바로 씻으러 갔어요!

 

작업을 시작하기 전 머리 속에서 상상하고 목표한 이야기와, 실제로 완성되어 책으로 나온 <커졌다!>,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아까 말씀 드렸던 것처럼 제가 비 오는 걸 직접 보고 느꼈었잖아요. 빗소리와 함께. 그런데 그걸 정지된 그림으로 그리려니까 그런 생동감이 잘 표현됐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커졌다!>도 <눈물바다>도 주인공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는데요. 책 속에서 그냥 '나'라고만 지칭하고 있으니까요.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두 주인공이 원래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지요? 생각해보시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이름을 지어주실 수 있으세요?

 

이름은 편의상 안 지었구요(웃음). 그리고 두 이야기 모두 제가 뭔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이라 딱히 주인공을 따로 설정하지 않고, 그냥 저라는 느낌으로 시작했거든요. <눈물바다>의 주인공은 생김새 때문인지 읽으셨던 분들이 밤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시기도 했고, 눈물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눈물방울이라고도 부르시고요. 그래서 <커졌다!> 작업할 때는 도토리를 조금 연상하면서 얼굴을 그려봤어요.


<커졌다!>에서 키가 어느 정도 커진 '나'가 왠지 한강일 것 같은 강가에 걸터 앉아서요, 전봇대 빨대를 꽂고 강물을 쪽쪽 빨아 먹는 장면이 너무 재밌었어요.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장면이었는지... (웃음)

 

아뇨, 사실 전 한강물이 매우 더럽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먹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요(웃음). 아이가 커졌을 때 뭔가 그 아이의 목마름을 해소해줄 수 있을 정도의 양이 강물만큼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본 거예요.

 

작가님은 어떤 장면이 제일 맘에 드셨어요?

 

맘에 드는 장면은 사실 하나만 꼽기가 굉장히 어려운데요... 저는 이 장면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유연하게 휘는 모습이 되게 마음에 들었거든요.

 

 

구름을 뚫을 만큼 커져서 올라가 본 하늘 위에서는 신들이 모여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어요. 부처님, 하나님, 알라신... 그리고 이 선글라스 낀 분은 누구신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앗, 단군할아버지에요! 아무래도 우리나라, 한국 그림책이니까 단군할아버지가 나와야한다고 생각을 했구요.

 

이렇게 신들이 모여 앉은 풍경에는 어떤 이야기가가 숨어 있을까요? 

 

거창하게 얘기하면 종교간의 화합? 우리 각자가 생각하는 하늘나라가 다 다르다고 생각을 해서... 각자 다른 종교도 있고, 각자 생각하고 떠올리는 하늘나라의 모습이 다 다르다는 생각을 조금씩 담아서요, 그들은 이렇게 사이좋게 지낸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커졌다!>의 주인공 하늘 위에서 사귄 친구 집게 다리를 가진 이 친구의 정체는 과연... 생김새로는 딱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이게 계란 모양 우주선이거든요. 접시에 올라가 있는 형상인데, 사실은 그냥 외계인 친구였는데 제가 줄무늬를 되게 좋아해요. 좋아하는 줄무늬 옷을 얘한테 입혀놓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이거 너 아니냐고 묻기도 하고. 그래서 약간 저의 모습? 우주에서 사귄 계란 로봇 친구라고 할까요?

 
그 기발한 상상력의 비결이 뭐냐,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어보신 질문 아닐까 싶은데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만화, 만화를 많이 읽었던 것이 작가님의 상상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었나요?

 

저는 책을 잘 안 읽었거든요. 만화책이랑 TV 보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런데 사실 부모님들도 그러시고, 많은 사람들이 TV는 바보상자라고 하고, 부모님은 만화책도 같은 이유로 못 보게 하시고... 제가 공부할 때 몰래몰래 만화 보는 걸 아시고 많이 혼내셨거든요. 근데 사실 저는 약간 텍스트가 길어지면 괴로운 부분이 없지 않아... (웃음) 그래서 책을 많이 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한데요. 그런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 제 생각에는 그러니까 책이든 만화책이든 영화든 전시든 어떤 이야기든 이미지든지, 자신에게 감흥을 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많이 보면 좋은 것 같아요. 꼭 그게 텍스트로만 된 책이 아닐지라도. 제 경우에는 만화가 많이 도움이 된 것 같고요.

 

 

예, 그러면 작가님이 좋아하는 만화책 한권만 소개해주세요!

 

<먼곳으로 가고파>라고 제가 되게 좋아하는 책이 하나 있는데, 이 작가 작품은 국내 출간작이 두 권 밖에 되지 않지만 정말 좋아하고요. 언젠가 만화책을 꼭 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저의 롤모델이라고 할 만한 작가예요.


작가님 그림책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이 많아요. 본인도 그려놓고 킥킥 웃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그림책을 보는 분들처럼이야 제가 재미있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제가 만든 거니까. 그런데 나름대로 기대하면서 '아. 이거 보면 웃기겠지' 하는데. 만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요, 특이하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표정을 그려낼 때 자기도 모르게 그 표정을 따라하면서 그린다고들 하거든요. 저도 약간 좀 그런 것 같아요. 그리기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거울을 보고 제 표정을 보고 그릴 때도 있어요.

 

<눈물바다>는 개인적 경험이 투영된 작품이라고 말씀하셨죠. 제일 많이 울었던 기억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어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조금 전쯤? 그때 되게 많이 울었었는데요. 제가 괜히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면서 우는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아빠가 돌아가셔서 나 혼자 되면 어떡하나... 어릴 땐 가끔 그런 이유 없는 공포가 엄습해올 때가 있어서요. 그런 것들 때문에 울고, 하여튼 어릴 때 무지 울었는데 그때가 감수성이 훨씬 풍부했었나봐요. 지금은 그때 처럼 혼자 무슨 생각을 하다가 울진 않으니까요.


<눈물바다>에서 '공룡 두 마리가 싸운다'라는 문장이 등장하는데요. 실제로 부부싸움하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화난 공룡 같다고 느끼신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당시에는 사실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요.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걸 보는 순간에는... 그 자체가 그냥 너무 무서웠고요. 정신이 없고 무서워서 숨어 있기 바빴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습이 굉장히 거대하고 무서워보였던 것 같아요.


전작 <눈물바다>와 신작 <커졌다!>, 두 그림책 주인공들의 얼굴색이 노란색이라 너무 좋습니다.

 

색상 선택은 그냥 개인적인 기호였구요. 제가 파란색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에 비할 정도로 어느 날 갑자기 노란색이 좋아지더라구요. 단지 좋아서 쓴 겁니다.

 

다음에 쓸 그림책 주인공 얼굴색도 또 한번 노란색으로 칠할 생각도 있으세요?

 

아니요. 다음엔 노란색으로 안 하려구요. 앗, 괜히 그렇게 말했나봐요. 다시 노란색이 쓰고 싶어질지도 모르는데(웃음).


또 두 주인공의 공통점이라면 독특한 헤어스타일일텐데요. 눈물바다 주인공 같은 밤톨머리, 커졌다 주인공 같은 버섯머리 둘 중 어떤 게 더 마음에 드세요? 둘 중에 하나 골라서 머리 스타일을 바꿔보신다면?

 

머리는 밤톨이가 마음에 드는데, 제가 밤톨 머리는 할 수 없잖아요!! (웃음)

 

 

<커졌다!>의 모든 장면 구석구석에 정성을 쏟은 느낌, 빈틈 없이 꼼꼼히 매만진 손길이 느껴집니다.

 

주인공이 워낙 덩치가 크니까 면적을 많이 차지하기도 하고, 그 외의 것은 좀 작게 오밀조밀한 느낌을 줘야 대비도 되고 이야깃거리도 더 생긴다고 생각을 해서, 처음부터 의도를 한 부분이었어요.

 

<커졌다!> 같은 아기자기한 그림책을, 작업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로서 보는 것도 좋아하시는 편인가요?

 

제가 워낙 좋아하는 작가가 많아서요. 한 명만 꼭 집어서 말하긴 어렵지만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도 좋아하고, 큼직큼직하게 시원한 터치로 그려내는 그림책도 정말 좋아하고요. 요즘 들어 더 좋아진 작가는 '피터 시스'인데요. 사실 제가 제일 처음 산 그림책이 데이비드 위즈너의 <이상한 화요일>이에요. 나이가 먹은 다음에 제일 처음으로 본 그림책인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예전에 제가 생각해왔던 그림책하고는 너무나 달랐어요. 그때부터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나도 그림책을 그려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다, 생각한 계기가 <이상한 화요일>이었거든요. 그림풍보다는 독특한 상상을 기반으로 하는 그림책들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그리고 유머가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고요.

 

<이상한 화요일>을 처음 사보셨을 때의 나이는 몇 살이셨어요?

 

그때가 한 스물 다섯, 여섯? 그 쯤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 시절부터 회화를 전공하고 그림 작업을 쭉 해오셨는데 이 과정에서 전환점이 되어준 사건이 있었다면요?

 

제가 복수전공으로 시각디자인을 했었거든요. 졸업하기 직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때야말로 이제 뭘 해야할까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만화를 하고 싶었는데, 사실 저는 만화라는 장르가 제일 어려운 장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작가가 모든 걸 컨트롤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만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내공을 많이 쌓아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일단 했고, 그 전에 뭘 좀 해봐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하던 차에 교수님 상담을 받고, 일러스트 학교를 가게 됐어요. 그림책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시기, 졸업하기 직전이 제일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대학 졸업 후, 한국일러스트레이션 학교(HILLS)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책 공부를 시작하신 거고요.

 

저도 졸업한지가 좀 됐는데, 학교는 조금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더라구요. 힐스에서는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배워요. 기법이나 그런 것들보다 자기 그림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있고, 그걸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해보고 또 그걸 가지고 졸업작품을 만들어서 전시하는 과정이 있거든요. 자기 세계를, 자기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를 만들고 싶은 그런 작가나 학생들이 들으면 좋을 만한 수업이 정말 많아요. 특강도 많고. 이론 수업들이 좀 많이 있는 편이고.


수원에 있는 작업실 풍경도 궁금해지는데요. 몇 년이나 된 공간인가요? 

 

작업실이 집 근처에 있거든요. 한 2년 정도 됐구요. 제가 만들기를 좋아해서, 일러스트 작업을 하다 잠깐씩 전환 삼아서 이것저것 배우거든요. 오토마타라고 혹시 아세요? 그런 것도 배워서 작업실 한쪽에서 만들어보고 있고요. 타피스트리 같은 것도 배우고... 어디다 쓸진 모르겠지만 적당하게 그런 것도 좀 하고 그림도 그리고...

 

<눈물바다>가 너무 많이 팔려서 부자가 되셔서, 작업실이 생겼다는 얘기를 해주실 줄 알았어요(웃음).

 

네, 도움이 많이 됐죠(웃음). 비록 월세이긴 하지만. <눈물바다>가 잘 되고 나서 일도 많이 들어오고요.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많이 도움을 준 것 같아요. 덕분에 이렇게 꾸려나가고 있어요.


만약에 작가 자신, 본인의 만족과 독자의 만족이 일치하지 않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가정했을 때 독자와 작가 중에서 어느 편의 만족이 더 기쁘시겠어요? 나는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보는 사람이 맘에 들어하는 경우도 있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그 두가지가 병행이 되면 물론 좋겠지만...(웃음) 저는 사실 이야기를 할 때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거든요. 제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데, 다행히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지금 현재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앞으로도 저는 제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만들 것 같아요. 그때도 좋아해주신다면 감사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제 안에서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들을 해나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평소에는 어떤 꿈을 갖고 살아가세요?

 

대작가가 되는 것? 그런 건 아니고요(웃음). 그냥 희망은 계속해서 그림책도 내고, 만화책도 내고, 제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계속 하는 거요. 일러스트 학교 졸업할 때, 그때는 아직 작가가 아니었죠. 그때도 마지막으로 그런 얘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냥 제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활동을 계속 하면서 다 해보고 살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재밌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 해나가는 건 사실 쉽지만은 않은 일이잖아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서 해나가기 어려운 순간도 맞닥뜨리게 되실 텐데, 이럴 때 옆에서 가장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분은...

 

<눈물바다>가 나오고 나서, 이제 부모님이...(웃음) 사실 그 전에도 지지를 많이 해주셨는데...(웃음) 책이 나오기 전에는 막막한 부분들이 많았거든요. 부모님도 걱정하시면서 차라리 선생님을 하는 게 어떻겠냐 권유도 하시고. 제가 고집을 피워서 안하겠다고는 했지만. 엄마 아빠는 만약을 대비해서 저한테 가게라도 차려줘야겠다고 통장에 돈을 모아두셨다는 거예요. 부모님이 항상 응원 많이 해주고 계세요.

 

그림책 작가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으세요?

 

저는 사실 제가 맞을까, 이 일에 과연 적합할까란 고민을 사실 했었어요. 책이 나오기 전에요. 그런데 의외로 선생님들 반응이 괜찮으시고 그리고 일단 책이 계약이 됐고, 재밌게 봐주셔서 출간이 되고... 독자분들로부터 재미있게 읽었다는 평을 듣거나 리뷰를 읽었을 때 아, 내 이야기가 이렇게 사람들한테 통하는구나, 꼭 그림책에 규정 지어 생각하지 않고, 내가 그림으로 풀어낸 이야기, 이걸 사람들이 재미있게 생각해주는구나 느꼈을 때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께 시원한 여름 인사 한마디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즐겨주시고, 그림책이 아니더라도 다른 여러가지 영화나 책이나 다른 것들로도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하는 여름 보내세요!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좋아 2012-07-15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현 작가에 대해서 또 작품에 대해서 더 알 수 있어서 좋았네요.
그런데 글 중에 작가가 좋았다던< 이상한 화요일>의 작가는 데이비드 위즈너입니다.

지난여름 2012-07-18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와 작가님이 꼭 만화주인공처럼 귀엽고 예쁘시네요 ^^

밤의숲 2012-08-07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하하 반가운 서현 작가님!! 다음 작품도 기대가 돼요. 작가님의 만화책도 꼭 만나 보고 싶습니다. :)

칸나 2012-08-14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이상한 화요일의 작가는 데이비드 위즈너!!
이건 기자님의 실수?

어쨌거나 눈물바다를 보고 팬이 됐는데 이번 작품도 멋지네요.

딸기꼬치 2012-08-14 23:52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작가로 '피터 시스'를 꼽아주셨고, 처음 산 그림책으로 '데이비드 위즈너'의 <이상한 화요일>을 말씀해주셨는데, 두 문장이 연달아 나오다보니까 그렇게 읽힐 수가 있겠네요. 먼저 댓글 달아주셨던 책 좋아님께서도 참고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쑥부쟁이 2012-08-20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우리 아이들 너무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특히 눈물바다는 파주 사계절출판사에 가서 딸이 직접 골라 샀지요. 서현 작가의 이미지가 생각보다 차분하시네요. ㅋㅋ

서우사랑 2012-08-24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착하고 여려서 잘 우는 우리 아들 눈물바다 읽어주며 우는 것은 나쁘거나 약한 모습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어요. 서현 작가님 독자와의 만남은 안하시는 지요? 사계절에서 할 때 몰라서 못갔는데... 넘 아쉬워서요. 눈물은 한가득인떼 웃고있는 아이의 얼굴이 나온 표지가 넘 좋았어요.

착한내친구 2012-08-27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바다 구매하러 접속햇다가 작가님을 이렇게 만나네요 우리나라도 전집을 누르는 작가님 같은 그림작가님들이 많이 활동하셨으면 좋겠어요~~화이팅요~
 

2012년, 올해로 꼭 등단 30년을 맞은 송언 선생님의 신작 동화 '김 배불뚝이의 모험' 속 주인공은 실제 모델이 있다. 작가이자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송언 선생님이, 1학년 담임을 맡았었을 때 만난 친구다. 음료수와 사탕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먹보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매력이 넘친다. 범상치 않은 초등학교 1학년 김 배불뚝이와 함께 한 해 동안의 이야기가 다섯 권의 동화책에 담겼다. 아이들을 제도권 교육의 답답한 틀 속에 꽁꽁 묶어두지 말고, 그들이 서로 어울려 놀면서 무한한 상상력과 모험심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것이 김 배불뚝이를 통하여, 또 작품 안팎에서 송언 작가가 일관 되게 주장하는, 아이들을 위한 어른의 역할이다.


(기획 : 웅진주니어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수염이 너무 멋집니다. 이 수염 때문에 생긴 별명이 있으신가요?

 

아, 애들이 지어준 게 있어요. 빗자루 선생님이라고, 이 수염이 바닥을 쓰는 빗자루 같다고요. 아이들 비유법이 참 신기하죠? 빗자루라는 비유가 재미있어서 이번 작품에서부터 아예 빗자루 선생님으로 못을 박았어.

 

등단하신 지 30년이나 되셨지만 매번 펴내시는 작품이 젊고 활기찹니다. 신작 <김 배불뚝이의 모험>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 작품을 구상하시게 된 계기를 먼저 여쭤볼게요.

 

올해로 꼭 30년이 되죠. 개인적으로는 아, 내가 등단한지 30년이나 됐으니까 생각은 했지만 거기에 걸맞는 대단한 작품을 써야 겠다 이런 건 아니었고. 이 책의 실제 모델인 김 배불뚝이가 지금 4학년이거든요. 김 배불뚝이가 1학년이었을 때 그 1년 동안을 메모를 해뒀다가 작품으로 바꾸는 작업이 또 한 1년 걸리고, 그림 그리는 데 또 1년이 걸리고, 그리고 이러다 보니까 시간이 가잖아요? 그런데 어쨌든 제가 교직 생활을 하면서 또는 동화작가로 활동하면서 김 배불뚝이만한 캐릭터를 발견하기는 쉽지가 않았어요. 김 배불뚝이가 보여준 그 모험, 그 모험의 세계는 이 시대 아이들이 잃어버린 세계라는 거죠.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 시대 아이들이 잃어버린 게 아니라 이 시대의 어른들이 차단시켜 놓은 거죠. 아이들이 그 세계로 갈 수 없도록. 더 자연스럽고 멋진 모험의 세계로 가는 길을 차단시키고 교과서 속으로 집어넣는 어떤 어른들의 행태. 배불뚝이를 통해 너희들이 진짜 원하는 세계가 이런 세계고, 어른들이나 학교가 너희들한테 해주어야 하는 게 이런 게 아닌가 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의도가 바탕이 됐죠.


김 배불뚝이도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번 책을 읽어봤을텐데, 읽고 나서 많이 좋아했겠지요?

 

걔는 뭐 항상 저만 보면 "제 책 언제 나와요?"(웃음) 그랬는데요. 책 자체보다 지난 번에 소년조선일보에서 취재를 해서 신문에 사진이 실렸거든요. 책보다 그 사진 실리는 게 그게 좋아서 아주 그냥(웃음). 얘가 신문에 났다는 게 아이들한테는 더 큰 이슈로 다가왔던 것 같애. 책 속의 주인공은 자신인 걸 이미 알고 있었고, 제가 니 얘기를 쓸 거야라고 일러줬었거든요. 오늘도 화장실에서 김 배불뚝이를 만나서 재미있게 읽었냐 물어봤더니, 무뚝뚝하게 "당연하죠"(웃음) 하더라고요. 근데 아이들은 그런면에서는 의외로 섬세하지가 않고, 무뚝뚝해. 자기 이야기에 대해서 좀 근사하게 답변을 해줬더라면 나도 전달하기 좋을텐데 말이에요. 당장은 뭐 어떻게 읽었든간에 오래오래 그 아이의 인생과 같이 갈 책이겠지요.

 

주인공 김 배불뚝이의 실제 모델이 있는 캐릭터다보니까 그 아이의 모습도 반영이 되었겠지만, 이 캐릭터에서 작가님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을 읽어낼 수 있겠지요?

 

당연하죠. 왜냐하면 문학이라는 게 경험만 가지고 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니까. 제 작품 같은 경우에는 주로 제자들한테서 소재를 가져오니까 경험이 한 50이라면 작가적 상상력으로 문학적 장치를 하는 것이 또 50, 50대 50정도로 봐야지요. 예를 들자면은 <김 배불뚝이의 모험> 2권 '선생님 팔기 대작전' 같은 경우에는 그 1학년 아이들이 설마 선생님을 팔겠다고 휠체어에 싣고 튀어나갔겠느냐 이말이지요. 그렇지만 읽을 때는 진짜 같거든. 이런 부분이 작가가 상상력으로 채우는 부분이죠. 그리고 배불뚝이가 보여주는 다양한 모험의 세계는 작가가 채워놓은 거죠. 물론 단초는 제공을 해, 배불뚝이 얘가 창의성이라든가 상상력이 굉장이 뛰어나고 순발력이 있어요. 배불뚝이인데도(웃음). 그래가지고 걔가 자꾸 나한테 자극을 줘. 모험이 가능할 법한 자극을 주는 거죠.

 

빗자루 선생님은 아이들을 무조건 타이르고 감싸주기만 하는 선생님은 아닌데요. 학교에 안 나오겠다고 떼쓰는 학생에게는 그럼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요. 실제로도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아이들은 굉장히 당황할텐데요.

 

그러니까 두 가지 관점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거예요. 뭐냐하면 교사의 눈으로 아이들을 봤을 때는 교사와 피교육자인 아이와의 관계만 있어요.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제도권 교사가 못하게끔 탁 억눌러 놓죠. 그런데 나는 작가의 눈을 또 하나 갖고 있어야 하니까, 작가로서요. 그러니까 또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벼려두는 게 아니라 3, 4월 쯤에는 탐색을 먼저 하는 거예요. 잘만 하면 내 동화 속 주인공이 될 만한 기질이 있는 녀석들이 누구인가. 예비 후보를 찍어 놓고 그런 아이들이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내가 더 부추기지. 막는 것 같으면서도 부추기는 거죠. 어디까지 가나, 얘네들이 나한테 어디까지 원하는가. 동심이 요구하는 극대치는 어디까지일까. 그걸 알아야 하니까요.

 

한편에서는 학교 생활을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학교라는 이 좁고 답답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어떻게 상상의 세계, 모험의 세계로 갈 수 있을지 끊임 없이 자극을 주는 거지요, 아이한테. 아이가 그런 기미를 보이면, 예를 들어서 물어본 것처럼 '저 전학 갈 거예요' 그러면 아는 거지, '그래, 가!' 그랬을 때 얘가 어떻게 나오나. 그래서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계속 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이 녀석이 재치있게 상상력을 발휘해서 잘 가면 그날은 내 기록에 메모를 해두고 시원치 않으면 기록에도 없는 거야. 에이, 오늘은 별로다(웃음). 뭔가 문학은 끊임없이 새롭고 역동적인 흐름을 가져야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으니까. 맨날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똑같으면 그걸 가지고 어떻게 문학을 할 수 있느냔 말이죠.

 

탐색 기간에 선발된 아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행운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배불뚝이가 대단한 먹보라 동화 속에도 아이들 좋아하는 군것질거리가 많이 나오는데요. 요즘 초등학교에서 특별히 유행하는 간식거리가 있다면요?

 

초코렛, 마이쮸, 사탕, 슬러시도 먹고, 문방구에서 뽑기도 해 먹고, 떡볶이랑 아이스크림은 기본에, 아이들 군것질거리가 다양해요. 그런데 이제 배불뚝이가 재미있는 건 이런 거죠. 단순한 먹보가 아니라 자기만의 캐릭터를 갖고 있는 먹보라는 거죠. 이를테면 나한테 와가지고 "선생님 수수께끼 놀이 해요." 그래서 나도 처음엔 수수께끼를 하자는 줄 알았지. '비로 시작해서 '백'으로 끝나요." "장난하냐?" "네 글자인데 두 번째 글자는 '타'예요." "아, 비타오백." 그렇게 말하는 순간 배불뚝이가 내 책상에 놓여 있는 비타오백을 아주 간절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 봐. 쳐다보면서 "선생님, 저 비타오백 좀 주세요." 그렇게 한다는 거지. 다른 먹보 같았으면 떼쓰듯이 선생님 사탕 주세요, 초코렛 주세요 이럴 거 아냐. 그럼 누가 줘(웃음). 그런데 배불뚝이는 이런 수수께끼에서만 보더라도 자기만의 캐릭터를 갖고 있으니까, 그래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거죠.

 

배불뚝이처럼 맘대로 하고 싶어도 선생님한테 혼나거나 미움을 받을까 봐 겁나서 하고 싶은 걸 꾹꾹 참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요.

 

그런데 이 부분을 알아야 해요. 얘네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란 말이야. 1학년 아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동심이 있어요. 즉 제도권에 물들지 않은 동심이에요. 그런데 얘네들이 1년만 지나면요, 열이면 아홉 아니 백이면 아흔아홉이 제도권화된 동심을 보여요.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1년 동안 학교라는 사회에 적응을 했다고 해야 할까, 순응을 해가지고 자기 본래의 동심을 잃어버린다니까. 1년만에. 그래서 1학년 아이가 보여줄 수 있는,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배불뚝이처럼 유치원에서 갓 학교라는 제도권에 들어와가지고 미처 학교에 적응하거나 순응하지 않은 순수한 동심, 그야말로 자연산 그대로의 동심을 보여줄 수 있는 학년이 1학년이에요. 그리고 타고난 동심을 즉각 발휘할 수 있어야 해요. 선생님 눈치를 보는 아이들은 이미 어른들이 요구하는 판단 기준에 적응하거나 물들어 가는 거야. 그러니까 순수한 동심에서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순수한 동심을 가진 아이들이 문제아라고 불리기도 하고요.

 

난 그게 오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배불뚝이를 끊임없이 1년 동안 실험했지만 그 실험의 결과 난 배불뚝이처럼 잘 자기만의 색깔과 상상과 동심을 발휘하면서 헤쳐나가는 아이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문제아다, 부적응이다라는 관점에서 보는 거는 난 제도권화된 관점이라고 봐요. 주의해야 할 점인데, 선생님들의 몸에 배어 있어. 동심의 모습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왔으니까 이제 질서를 지키라고,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그야말로 훈육하고 교육시키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는 문학이 탄생할 수 없어요, 그런 토양에서는. 그 관점 밖에서 아이들 본래의 모습을 자꾸 자극해서 아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동심의 본질이 뭔가를 발견해내야겠죠. 그런데 이미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배불뚝이만큼 그렇게 상상력을 발휘하는 아이는 많지 않아요.

 

배불뚝이 다음으로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인물이 싸움대장 동주인데요. 나중에는 결국 동주가 전학을 가게 되잖아요.

 

그쯤에서는 전학을 보내야죠. 배불뚝이가 주인공이니까(웃음). 전학을 안 보내면 이게 갑자기 이야기 중심이 동주한테 너무 가버리면 혼란이 오잖아요. 그러니까 동주의 역할은 거기까지였어요. 거기까지만 딱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가줘야 돼(웃음). 만약에 동주가 주인공이거나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동주가 전학을 가지 않을 수도 있겠죠. 결국 동주가 끝까지 같이 있으면서 동주의 동심이 어떻게 변화하느냐도 정말 좋은 이야기 소재도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동주의 역할은 거기까지여야 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더 갔을 때는 배불뚝이한테 타격을 주니까.


배불뚝이가 마치 보조 교사라도 된 것처럼 '새끼 선생님' 노릇을 하고 모두의 관심의 대상이 되니까, 배불뚝이를 따라하려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던 장면이 또 기억에 남아요. 책 속의 같은 반 아이들도 그랬지만, 실제로 교실에서 주목 받길 바라고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표현이 서툴기도 할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은 선생님께서 어떻게 채워주시나요?

 

중요한 건 '새끼 선생님'이라는 상상력을 최초로 발견한 게 배불뚝이라고. 모든 모험의 출발점, 상상력의 출발점은 배불뚝이인데 다른 아이들이 거기에 다 들어와.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굉장한 리더십인 건데요. 파랑머리가 "선생님, 저도 배불뚝이처럼 새끼 선생님 시켜주세요" 하면, "그건 배불뚝이가 만든 거니까, 너는 니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아라" 하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도 간절하면 한번씩 시켜주죠. 그런데 그걸 다 일일이 문학 속에 담아낼 수는 없지.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다 골고루 시켜줘요. 얘도 한번 시켜주고, 쟤도 한번 시켜주고 하지만 문학의 흐름은 일관되게 배불뚝이를 중심으로 가야 하니까,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으니까. 그럼 한번 또 새끼 선생님 하게 되면 좋아가지고 근데 새끼 선생님이란 제도는 없단 말이야. 그런데 배불뚝이가 그걸 개발하고, 그게 재미있다는 걸, 새끼 선생님이 있음으로 해서 훨씬 수업이 재미있다는 걸 아이들한테 증명했고, 아이들이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데까지 확산시켰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배불뚝이의 상상력이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혼자 막 그냥 장난치다 끝나는 게 아니죠.

 













1학년 담임 선생님을 맡는 고충을 작가의 말에서 토로하기도 하셨는데, 아직 나이가 어린 1학년 학생들의 담임 선생님은 집 바깥의 보호자로서 책임감이 적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제가 뭐라고 썼더라, 1학년 담임을 한번 잘못하면 삼년은 늙는다고 썼었던가요? 실제로 제가 1학년 담임을 처음 했을 때 실감으로 정확하게 3년이 늙더라고요. 아, 그말이 참 와닿더라고. 경험이 많은 여선생님들은, 아이도 키워보고 아이 다루는 솜씨라고 할까 기술이 뛰어나세요. 그런데 나이 든 남자가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을 할 때는, 정말 얘네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다니까. 배불뚝이는 제가 두 번째로 1학년 담임을 하면서 만난 제자였는데요. 그래도 한번 경험이 있다고 여유는 조금 생겼지만, 배불뚝이를 비롯해서 이동주, 나대현, 구봉준... 버글버글하잖아요. 내가 머리가 왜 허얘졌겠어(웃음). 정말 힘들죠. 그런데 힘들지만 이 아이들을 통해서 내가 동심이 원하는 게 무엇이라는 걸 사회적으로 발언을 하려면 교사로서 발언하는 것보다 작가로서 발언하는 게 더 확장된 의미를 띨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게 두 배로 더 힘든 거예요. 다른 선생님은 그냥 애들만 잘 보면 돼, 그런데 나는 잘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해라, 더 해라 할 때가 더 많으니까. 그러니까 얼마나 힘들어요. 두세배로 힘들죠. 작품 하나 건지려고, 그 고생을 한다니까(웃음).

 

그런데 두세배로 힘들지만 그런 배불뚝이가 만났을 때 뭔가 이야깃거리를 찾았을 때는 보상 받는 거예요. 힘든 것 이상으로. 그래서 견디는 거예요. 1년에 3년치를 늙든, 5년치를 늙든 이렇게 보상 받는 게 있으니까요. 그런데 1년 내내 그랬는데 건질 것도 없었다, 그러면 아주 팍 늙는 거예요(웃음).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제목에도 들어간 '모험'이라는 단어가 정말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감동 있게 읽은 책이 <톰 소녀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의 작품인데 100여 년 전에 이미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은 그 거대한 미시시피 강에 뗏목을 띄워 놓고 모험을 떠난다고. 그게 가능했어요, 그 시절에는. 그게 어색하지가 않았다고. 그런데 지금 한강에다 뗏목을 띄워 가지고 얘네들을 서해 바다까지 모험을 시킨다고 하면은 누가 공감을 하겠어요. 너무나 많은 세상의 변화가 왔다고. 그야말로 이 시대의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다람쥐 쳇바퀴처럼 굴러다니는 아이들, 모험이란 단어조차도 잊어버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 아이들에게 상상력, 창의성을 키워줄 수 있는 통로가 뭐냐, 그것을 저는 배불뚝이의 모험을 통해 보여준 거죠.

 

어떻게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는 학교에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잖아요. 순간순간 재치를 발휘하면서 답답한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상상의 모험, 상상력을 통해서 건너갈 수 있는 모험의 세계가 있다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는 거죠. 김 배불뚝이가. 이 시대의 현실의 아이들이 그나마 모험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통로가 이런 지점이 아닐까. 미시시피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동화작가로 활동하는 선생님,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요? 글쓰기가 교사생활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궁금하고요.

 

우리 학교에서 내가 인기 1순위야(웃음). 아이들이요, 어른들이 이제 한번쯤 생각해보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든가 영화의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바람 이런 것들과 똑같이, 아이들도 한번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게 소원이에요. 그걸 쓰는 선생님이 담임이니까, "선생님, 제 얘기는 안 쓰실 거예요, 안 될까요?" 이렇게 묻기도 하죠(웃음). 나대현은 며칠 전에 저한테 와서, "선생님! 나대현의 모험도 하나 쓰세요." (웃음) 그랬죠.

 

이런 건 있어요. 작가 생활도 해야 되고 교직 생활도 해야 되니까 시간 적으로 늘 쫓기죠. 방학이 아니면 집중적으로 동화를 쓸 시간도 없고. 애들하고 공부도 해야지, 강연도 다녀야지, 맨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정말 시간이 좀 더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희망을 갖게 되죠.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저의 10년의 화두가 '동심이란 무엇인가'였어요. 아이들다운 마음, 아이같은 마음이 대체 뭐냐. 너도나도 말은 많이 하는데 나는 내가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10년 동안 아이들의 삶을 아주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탐색하고 기록하고 정리해놓은 게 있기 때문에요.

 

나는 이제 동심에 대해서 알겠다라는 생각은 갖고 있어요. 그런데 동화를 쓰고 있으면서도 동심이란 게 대체 뭘까를 아는 작가는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동심을 동심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아이들과의 학교 생활이 도움이 됐으니까, 힘들어도 받아들이는 거죠. 이제는 학교 밖의 동심, 도시 밖의 동심을 사냥하러 떠나볼까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동심에 대한 탐색을 좀 더 넓혀가고 새로운 동심 이야기도 좀 쓰고 싶고요.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는 어린이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이제 작가로서 발걸음을 내딛은 분들이라면 공통된 소망 중 하나가 오래오래 동화를 쓰는 것일텐데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동심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탐색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후배 작가분들께 동심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들려주신다면요?

 

제가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작가 학교 수업을 십년 동안 했었는데요, 작년까지. 이 작가 학교에서 지망생 분들께 했던 이야기가 몇 가지 있어요. 우선 서둘러 결혼부터 해라. 아이를 낳아서 키워 봐라. 그러면 동심이 뭔지, 동심에 대한 밀착도가 커질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끊임없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키워라. 머리로 아이들을 이해하는 작가는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 생활에서 몸으로 부딪힐 수 있는 공간이나 기회를 넓혀야 아이들이 뭘 원하고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 두가지를 많이 강조하는 편입니다.

 

다시 배불뚝이 이야기로 돌아가서, 극 초반부 김배불뚝이가 멧돼지처럼 꼼짝도 안하고 버티고 있어서 빗자루 선생님이 고생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멧돼지란 표현은 참 재밌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고집불통에 물러설 줄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선생님들이 꽤 힘드실 것 같거든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이번에는 후배 작가가 아닌 후배 선생님들을 위한 팁으로 여쭤봅니다.

 

나는 말 안 듣고 버티는 이런 아이들을 기술적으로 지도하는 방법을 안다기 보다 그 순간을 오히려 즐기는 쪽이에요. 선생님들한테는 큰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애들이랑 그냥 노는 거니까.

 

작품 속에서 빗자루 선생님이 배불뚝이에게 마지막으로 해주시는 말씀이, 너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려준 고마운 학생이다'였는데요. 작가님이 개인적으로 생각하시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꼭 주어야 하는 것, 현장에서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것에 무엇이 있을까요.

 

아이들의 동심의 특성 중의 하나가 현실과 비현실, 현실과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어요. 그때 행복감을 느껴. 아이들이 현실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통로가 뭐냐면 대게가 놀이, 놀이나 상상. 그러니까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면서 공부를 하게 해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이나 학교가 아이들의 행복은 뒷전이고 공부를 맨 앞에다 놓으니까, 말로는 21세기가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승부를 거는 시대라고 말로만 그래놓고, 개똥이나 뭐 상상력이나 창의성은 길러주지도 않으면서 머릿 속에다 집어 넣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잖아요, 우리 현실이. 중요한 건 아이들 상상의 세계, 창의성의 세계에 어른들이 동조하는 거예요. 그게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는 거라고. 그러니까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여지를 좀 줘야 하는데, 학교나 어른들이 가장 안 하는 게 바로 그거예요.

 

아이들 서넛이 모여서 열심히 놀면서 막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체험을 해, 교과서에서 체험할 수 없는 걸. 멋진 체험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시계를 보면서 '학원 갈 시간이다, 고만 놀아!' 이런다고. 이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런 현실에서 내 동화를 읽는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아이들한테 컴퓨터 게임 같은 놀이 말고, 서로 어울려 놀면서 정말 상상력과 모험심을 키울 수 있는 계기와 여유를 아이들한테 주면 아이들이 얼마든지 스스로 잘 노는데, 그러면서도 교과서 공부도 하고요. 양날개처럼 스스로 즐기는 상상력의 계도 키워주고 우리 사회가 이뤄놓은 사회적인 틀이 있잖아요, 아이들한테 원하는 그것도 키워주고. 그 양쪽이 같이 가야 하는데, 한쪽에 너무 쏠려 있다고. 우리 어른들도 어렸을 때는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왜 아이들을 못 집어넣어서 안달을 하는지. 이 아이들한테 숨통도 틔워 주면서 공부도 하라고 여건을 마련해줘야죠. 그런 이야기가 책 마지막에 니가 정말 학교나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뭘 해주어야 하는지 다 보여줬다, 이런 문장으로 표현된 것이죠.

 

아이들에게 여유를 마련해주는 것을 책 읽기의 측면에서 말씀해주신다면요?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기 전에, 직접 선생님이 읽어주면 애들이 알아서 도서관으로 가요. 아이들은 제가 감동적으로 읽은 책을 그 감동을 살려서 읽어줬을 때 자기가 읽는 것보다 몇 배 더 즐거워해요. 책 읽어주기, 책 읽고 독후감 쓰라고 백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선생님이랑 부모가 정말 좋은 동화책을 선별해서 읽어주거나 같이 읽는 것, 난 그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봐요. 그럼 애들이 다양하게 아하, 이야기의 세계가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다니까. 책 속의 세계가 이렇게 풍요롭고 모험이 넘치고 우리를 흥미진진하게 하는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편동화집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의 바탕에는 어렸을 때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늘 불안했던 작가 자신의 모습이 있다. 자신과 닮은 등장인물들, 서로 다른 아이들 그 누구의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쉽사리 가치판단을 두지도 않는다. 최나미 작가는 어린 아이들의 세계,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껴안아 보호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다른 사람과 섞이고 아프더라도 경험해야 할 것을 경험하며 건강하게 자라난다는 사실을 냉정하리만치 사실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보여준다. (기획 : 한겨레아이들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또 한 권의 책을 독자분들께 선보이는 소감이 어떠세요.


늘 걱정이 되는 게, 이 이야기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 하는 거예요. 벌써 열 번째로 내는 책임에도 불구하고요. 어쩌면 이 글들을 보는 사람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독자가 예전보다 많아졌을까, 적어졌을까 이런 생각까지 더 들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단편집, 그동안 모아 두었던 작품들이기 때문에 컨셉 잡는 것도 재밌게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항상 또 책이라는 거는 요때까지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출간하기 직전까지. 그 다음부터는 굉장히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쓰신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이란 작품은 얼마 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요. 서문 중에서 '책은 시간을 담는 그릇'이란 말씀을 하셨더라구요. 이번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 또한 그릇으로 비유해주신다면.


어떤 때는 원고가, 이야기가 찾아올 때가 있어요. 근데 그런 게 작가의 눈이란 게 굉장히 특별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특별하게 그걸 찾아봐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가끔가다 어느 순간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들이 있는데, 그건 독자분들이 좋아할 지는 모르겠는 거예요. 그렇지만 안 쓰면 안 될 만한 이야기들이 있을 때가 있는데, 그 지점 지점들이 이번 책에는 담겼던 것 같아요. 울컥했다든가 화가났었다든가 즐거워서 이 얘길 한번 해야겠다든가 이런 것들이 다 있는 거고요. 제일 처음에 썼던 작품은 다시 고쳐서 쓰기는 했지만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죠. 그런 작품을 이제 와서 다시 읽어보니까, 내 생각이 예전보다 얼마만큼 더 나갔고, 안 나갔고 하는 것들이 확연하게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좀 부끄러운 부분들도 있었고요.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너무나도 풋풋해서 남한테 보여주기가 민망하다... 그런 작품들도 있었어요.


표제작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의 결말을 보고 놀랐거든요. 반성과 이해가 없는 결말. 이야기 자체가 사실 송현이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규미한테도 마찬가지고요. 갈등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의 편에 분명하게 손을 들어주는 이야기를 자주 접해와서 그런지, 결말에 가치 판단을 두지 않은 이유를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걱정쟁이 열세살> 같은 작품은 제가 저랑 가장 비슷하고, 닮았다고 생각을 하는 작품이거든요. 근데 아마 이번 작품집에서도 다섯 편 중에 가장 닮았던 작품은 '천사를 미워해도 될까요'일 것 같아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저도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나쁘게 하려고 하지 않았고요.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로 저한테 잘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상황을 보면 늘 민폐는 이 친구가 저에게 끼치고 있고, 죄책감은 제가 가지고 있고, 그런 상황들이 주변에 많았는데요. 어렸을 때는 이미 그게 착하다, 나쁘다로 늘 구분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저는 아무리 뭔가 잘하려고 해도 쟤보다 늘 안 착한 애고, 들 착한 애인 거예요. 왜 그때는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그런 마음을 가져도 될지 안 될지에 대한 걸 늘 고민했어요. 내가 안 착해서 벌을 받는 거구나, 안 착해서 이런 일이 오는 거구나라는 걸 굉장히 많이 생각을 하면서 컸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게 아이이기 때문에,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훨씬 더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와 닿는 걸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착하고 안 착하고로 구분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냥 그걸 그 아이대로 그냥 봐주는 것, 이건 규미기 때문에, 이건 송현이기 때문에 인정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너무 착해서 도리어 민폐를 끼치는 송현이 같은 친구 말고, 또 어렸을 때 싫어했던 얄미웠던 친구들의 성격은 어떤 것이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되게 어중간한 성격인 것 같은데 제 스스로 생각할 때, 특히 저보다 더 세고 강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면 뭔가 나는 항상 그 사람들에게 맞춰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럼 그때 저는 이제 나중에 쟤네들은 후회하겠지, 나중에 반성하겠지, 뉘우치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세상이라는 건 그런 게 또 아니잖아요. 어떤 친구가 어느 순간 나한테 굉장히 나쁘게 한 게 있는데, 또 뒤돌아보면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반대로 그애한테 잘못을 한, 이런 관계들이 같이 어울려 있어서, 세상 자체는 관계라는 것은 굉장히 입체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단편집에 나오는 인물 중에 제일 끌렸던 인물이 '리모컨'의 선화였거든요. 제가 되돌아봐도 어린 시절 주변에 비슷한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던 것 같고, 사실은 슬기도 선화를 좋아하는 건데 표현이 서투른 거잖아요. 선화도 마찬가지로 호감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그런 거구요.


관계 상에서 일단 권력이 형성된 건데, 저는 그 권력이 일단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뭐냐면 제가 가끔 동화를 쓸 때 처음에는 학교 같은 데 가서 아이들끼리 노는 걸 잘 구경하고 그래요. 근데 그러면 옆에 같이 있으면 애들이 한 다섯여섯명만 모여도 곧바로 서열이 생기는 거예요. 말투만 들어도 이들의 서열 관계라는 것을 알겠고, 거기서 뭔가 비약이 돼서 왕따 문제까지 나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들 성격 자체만 가지고 나눌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거든요. 근데 그러면서 거기에서 약간 과신하게 되는 관계가 '얘는 내 밑에 있고...' 라던가 이런 것들이 완전히 자리를 잡아 버리면, 슬기와 선화 같은 상황이 되는 거고, 알고 보니 상황 자체는 이렇게 될 수도 있다라는 것이죠.


슬기가 자기의 못된 성격, 치부 같은 것을 드러내게 된 원인이 선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대목이 있거든요. 말씀하셨듯이 아이들 다섯명만 모이면 서열 관계가 형성된다고 하셨던 것처럼, 저도 어렸을 때 생각이 나서 뜨끔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그런 아이들의 내면을 보시는지 궁금해요. 동화의 인물들이 너무나 실제 아이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에 수록된 다섯 편 중에 한 세 편 정도는 어렸을 적 늘 불안했던 제가 바탕에 있어요. 관계에서 뭔가 잘 풀어내지 못하고 정말 잘하려고 하는데 뭔가 자꾸 어긋나는 게... 엄마 아빠가 주는 스트레스보다 친구들하고의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컸어요.

 

제가 잠깐 아이들을 가르쳤던 적이 있었거든요. '리모콘'의 선화를 아마 조금 생생하게 느끼셨다고 하면, 그 아이의 실제 모델이 있었거든요. 그 친구를 제가 되게 좋아했었어요. 좋아하면서 그 친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들 관계들을 바로 잡아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그건 어른의 고집이었던 거예요. 사실은 절대 관여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 문제는 그 아이들 사이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있는 거고, 그 방식에 되게 충격을 받기도 했고요. 실제 방식이 제가 쓴 동화랑 꼭 같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아, 이게 어른이 얘기하는 게 다 맞다고 볼 수는 없는 거구나, 애들끼리 해결하는 과정이 있는 거고, 이들이 겪어야 하는 부분이 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알게 됐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방법을 잘 몰라서, 관계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때가 종종 있잖아요. 관계를 마음 먹은대로 이끌어나가기는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인데, 아이들에게는 오죽할까 싶기도 하고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요, 저는 아이들이 다들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요즘에 대안학교도 많고 굉장히 특별하게 키워지는 아이들이 많은데요. 저희 때는 그런 것 없이 굉장히 평범한, 심지어 과외도 없었던 그런 시기를 보냈는데, 어찌 되었건 각자가 통과하는 그 시기가 힘들 때도 있고, 나중에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들이 있는 것이고. 지나보면 그 시간들이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되고요.


제가 아이들한테도 잘 하는 말이 '아이들은 세상이 키운다'는 말이에요. 서로 다른 아이들이지만 학교에서 만큼은 그곳에서 같이 있는 동안 만큼은 여러 과정을 다 겪으면서 경험을 하는 게 건강한 게 아닐까 생각을 하거든요. 강연 갔은 데 가서 어린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너희들은 훌륭한 어른이 될 것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자체로 소중하다고 꼭 말해요. 이 시간을 정말로 건강하게 잘 넘겼으면 좋겠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거든요. 저는 그런 상황들을 만들어내는 어른들이나 불가항력에 지지 말아라, 이런 세상에 지지 말고 가야 한다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