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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라가치상 픽션부문 대상 수상 심사평(자료 제공 : 창비)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눈>은 독자를 많은 것을 가져다 줄 새로운 장으로 안내한다. 독자는 놀라움이 지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탐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개별적인 것들, 부분들, 생의 한 조각들, 물건들, 동물들을 보면서도 독자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코드가 무엇인지 찾을 수가 없다. 이렇게 이 책은 독자를 생각으로, 명상으로 이끌며 대립과 익숙함을 다시 정의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기존에 이미 정의된, 그리고 절대로 뗄 수 없는 관계인 시각과 생각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이 주는 놀라움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의 편안함이 주는 달콤함과의 관계를 다시 정착시킨다. 심사숙고 끝에 끌어낸 실험으로 얻어진 우아함이 가득한, 매우 새로운 책. 그러나 가볍고 은은하게 빛나는 이 작품은 다양한 인간에 대한 텍스트이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시각이라는 것이 강렬하고도 대담한 인간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사실을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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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쓴 소녀의 일기를 따라가는 가슴 뭉클하고 찡한 여정

사이공이 함락되던 날, 서울에는 사월 초파일 연꽃등이 거리마다 불을 밝히던 그때였다. 시클로와 야자나무, 그린 파파야, 아오자이, 파월 장병이었던 친척오빠에게 들었던 사이공의 아련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뉴스에서 대통령궁이 무너지고 폭탄과 연기에 휩싸인 거리를 사람들이 마구 달아나는 걸 보며 괜스레 마음이 슬퍼졌다.
바로 그 즈음 이 책의 주인공인 열 살짜리 소녀 ‘하’도 피난 배를 타고 사이공을 떠난다. 전쟁터로 나가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친구들, 마당에 심은 파파야 나무, 뗏(설날)이면 설탕 옷 입힌 연밥과 쫀득쫀득 찰떡을 먹으며 화려한 용춤을 구경하던 유년의 따스했던 기억을 뒤로 한 채.
시처럼 쓴 일기에 드러난 소녀의 여정을 따라가는 내내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해지는 건, 어쩌면 6․25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수많은 소녀들이 오버랩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녀는 길고도 험한 나날을 거쳐 마침내 자유의 땅 미국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사이공을 거쳐 난민촌이 있던 괌, 그리고 앨라배마에 이르기까지 고비 고비마다 소녀를 견디고, 당당히 맞서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때때로 평화로운 앨라배마보다 전쟁 중인 사이공에서 살고 싶었던 때가 있다.’고 할 만큼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얼굴이 납작해서 ‘팬케이크’라고 놀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미래를 향해 힘차게 걸어 나가게 하는 힘은 바로 가족들이었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지혜롭고 용기 있는 해답을 주는 엄마, 든든하게 어린 여동생을 보호해 주는 오빠들, 친절한 이웃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하’ 자신이 지닌 삶에 대한 유머와 긍정의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나는 너무나도 당차고 야무지고, 그러면서도 천진함을 잃지 않는 ‘하’를 우리 앞에 보여 준 작가 탕하 라이를 꼭 만나보고 싶어졌다. 마음속에 그린 파파야 나무처럼 큰 희망을 품고 살아온 그 어린 소녀가 바로 작가 자신일 테니까.          - 이규희(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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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1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4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건아 2014-12-26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이 규희 작가 선생님 오래전에 홍천 초등학교에서 뵈었던 김건아 입니다
이번에 출판하셨나요 우연히 네이버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선생님 작품이 소개되었있었습니다.
건강하시지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많이 선보여주세요.
 

그래도 나는 역사에서 희망을 보고 싶답니다

역사책을 읽다 보면 종종 슬픔이 밀려옵니다. 내가 보기엔 역사책에는 기쁘고 즐거운 일보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더 많이 실려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 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전쟁입니다. 사람들은 왜 전쟁을 하는 것일까요? 지구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켜 상대방을 모조리 없애려 드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답니다.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핑계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욕심과 교만과 미련함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할 겁니다.
히틀러라는 어리석은 독재자가 통치하던 시절,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이 전쟁으로 수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몹시 증오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고, 이 계획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에 가두고, 가스실에서 죽이거나 총으로 쏘아 죽였지요.
『숨어 산 아이』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194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독일은 자기들 말을 잘 듣는 프랑스 사람들을 뽑아 꼭두각시 정권을 세웠는데, 이들의 경찰이 유대인들을 체포하여 강제수용소로 보낸 것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소녀 두니아는 용감한 이웃들의 도움으로 숨어 살게 되지만, 두니아의 부모님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두니아는 엄마와 만나게 되지만, 아빠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지요.
그 뒤로도 몇십 년이 지나도록 두니아는 아빠를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할머니가 되어 이 이야기를 손녀딸인 엘자에게 들려주게 되지요. 몹시 슬프고 가슴 조이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프랑스 판 『안네의 일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안네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숨어 살다가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서 삶을 마치게 되지요. 그에 비하면 두니아 할머니는 아주 불행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목숨 걸고 자기를 지켜준 용감한 이웃들이 있었고, 지금은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랑스러운 손녀딸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의 역사에는 어둠과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도 있어. 평범하지만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이런 희망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거야.’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시대 배경을 간결하면서도 따뜻하게 표현한 이 ‘그래픽노블(만화소설)’을 읽으면서 여러분도 잠시 나와 같은 마음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고정욱(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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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 궁금하다면

배성호 (서울수송초 교사)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보면 신기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과 개그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함께 보다보면 아이들이 웃거나 놀라는 지점이 어른과 다르기 때문이에요.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는 말처럼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 나름의 코드 때문이지요. 어느새 세월이 지나면서 어른들은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좋아하는 아이 코드에서 출퇴근 교통 걱정을 하는 어른 코드로 바뀌었을 따름입니다.
 이 책 『호랑이 눈썹』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아이들 마음자리를 살필 수 있게 도와줍니다. 갑작스러운 아이들의 행동 변화에는 사실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동생이 태어나는 큰 변화, 또는 혼자만의 새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과정 등등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아이들은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펼쳐가곤 합니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입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쫓기는 어른들은 미처 그 과정을 헤아리지 않고, 그저 드러나는 아이의 행동 결과만을 봅니다.
 결과만으로는 온전히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벽’에 부딪히며 답답해   합니다. 소통이 부족한 것이지요. 그 벽을 허물고 진정으로 소통하기 위한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찬찬히 아이가 처한 입장 그리고 어른이 처한 입장을 함께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네 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통통 튀면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해가는 아이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바로 지금 아이들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어렸을 때 한 번 쯤 겪어보거나 생각해봤던 어른들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아이들은 그저 어려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고 스스로의 삶을 일궈가는 대상으로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을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건네줍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어른들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생각을 재단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았습니다. 책 속에 담긴 네 편의 이야기들은 그저 눈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감정을 살려 함께 읽어봐도 좋겠습니다.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책을 함께 읽다보면 어느새 어른과 아이라는 구별 없이 서로 친구가 되어 소통할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과연 어린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나요? 그럼 개그콘서트의 꽃 거지가 외친 ‘궁금하면 500원.’ 대신 이 책을 함께 읽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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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어린이책 3월, 문학평론가 김지은의 선택 - <나도 예민할 거야> 

어린이가 겁내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아무도 나를 봐 주지 않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는 언제나 어른을 향해 ‘날 좀 봐요’라고 간청한다. 어른이 다른 어른에게 자신을 봐 달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잘못을 눈감아 달라’거나 ‘대충 너한테 매달리겠다’는 의존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어린이가 어른을 향해 ‘나를 좀 잘 봐 달라’고 요청하는 것에는 글자 그대로 ‘보아 주세요’라는 건강한 바람이 담겨 있다.
물론 어린이는 가끔 자기를 봐 달라고 떼쓰거나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생존 신호’로 해석할 수 있는 몇몇 위험한 상황을 제외하면 이 행동의 본질은 대개 명랑한 수신호 같은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 먹는지, 얼마나 잘 자는지, 넘어져도 얼마나 아무렇지도 않게 털고 일어나 신 나게 노는지 엄마도 봐 주고 아빠도 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씩씩한 마음이 담긴 것이지, ‘돌보아 주세요’라는 징징거림으로만 해석할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이는 애당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른에게 의지할 뜻이 별로 없다. ‘내가 할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나를 보아 주세요’는 ‘나를 보여 주고 싶어요’라는 자기표현 의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어른들은 어린이가 자신을 ‘날 봐 줘요’라고 하면 ‘돌보아 달라’는 의미로 착각한다. 관심이나 사랑은 아이에게 무엇을 ‘대신해 주는 것’이라고 여긴다. 자신이 대신해 줄 것이 많은 아이에게 지나칠 만큼 달려간다. 스스로 잘 해내고 말 없는 아이는 소외된다. 돌봐 줄 필요가 없다고 봐 줄 필요가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닌 데도 말이다.
『나도 예민할 거야』의 주인공 정이는 어지간한 일은 돌봐 줄 필요가 없을 만큼 척척 해내는 자립적이고 무던한 아이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봐 주지 않아서 서운한 아이다. 엄마와 아빠는 “정이는 아무 데서나 잘 자”고, “정이는 맛있는 거면 다 풀리지”라고 말하면서 예민한 오빠만 지켜보느라 동동거린다. 정이는 억울하다. 정이는 사람들이 왜 날 봐 주지 않을까 내내 마음을 앓는다. 늘 잘 먹던 정이가 이런 고민으로 하루 종일 우유를 못 먹으니까 엄마는 그제야 정이의 배를 쓰다듬어 준다. ‘예민하니까 만지는 거다’, ‘나는 예민을 못 한다’라는 문장은 참 가슴 아픈 구절이다. 정이는 억지로라도 ‘돌봐 줄 필요가 있는 예민한 아이’로 변신하고 싶지만 그건 맘먹는다고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어린이가 바라는 진짜 관심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솔직하면서도 정확하게 보여 준다. 유은실 작가 특유의 유쾌한 전개 때문에 읽는 내내 웃고 또 웃게 되지만 책 안에 담긴 비판과 풍자는 날카롭다. 정이처럼 털털한 아이에게도 관심이 필요하다는 애교 어린 호소는 거꾸로 아이가 예민하다는 이유로 아이의 행동에 하나하나 간섭하려 들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좌충우돌하는 정이의 예민해지기 대소동을 보면서 “우리 애는 예민해요”라는 말을 앞세우면서 지나친 돌봄을 자청하는 일도, “우리 애는 둔해요”라는 핑계로 시선을 거두는 일도 모두 아이의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이는 어른 독자가 보기에 깜찍하지만 어린이가 보기에는 통쾌한 아이다. 억지로 예민해져서라도 진짜 사랑을 받겠다는 정이의 애처로운 결심은 그만큼 진지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어린이들은 정이의 그런 마음을 잘 알기에 공감하고 속 시원해한다.
작가 유은실은 전작 『나도 편식할 거야』에서부터 정이라는 ‘순한 아이’를 등장시켜 아이들의 속마음 대변인으로 나섰다. 그가 고학년 동화 『만국기 소년』이나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에서 보여 주었던 것도 ‘아이들의 억울함’과 ‘진짜 관심’에 대한 정직한 고찰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정이를 통한 ‘나도 …할 거야’ 시리즈의 행보는 일관된 것이다. 정이 연작의 제목이 ‘나도 할 거야!’로 이어지는 것은 흥미롭다. 아이의 행복은 억지 관심이 아니라 아이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여유로운 ‘지켜봄’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 제목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예민한 아이’와 ‘무던한 아이’ 모두에게 사랑받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어른의 시선으로 평가한 아이가 아닌 진짜 아이의 목소리를 담고 있고 아이들은 그걸 스스로 너무나 잘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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