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ft Boy 

 

1

 

남쪽 바다에는 별이 많아서, 우리는 얇은 이불을 두르고 테라스에 나가 두 몸을 최대한 포개고 서서 한참동안 별을 셌다. 별을 세는 손가락이 뭉툭하여, 또 우리처럼 별들이 서로 너무 가까이 붙어서, 혹은 좀 셀만 하다 싶으면 잠깐씩 입을 맞추느라, 우리는 세고, 세고, 자꾸만 새로 세야 했다. 별을 세느라 밤을 새겠구나, 우리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킥킥 웃었다. 그날 그 바다에서도 나는 왼쪽에, 당신은 오른쪽에 서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잘 때도 그렇게 잔다. 천장을 바라보고 나는 왼쪽에, 당신은 오른쪽에. 나는 왼손잡이고 당신은 오른손잡이라서 우리는 행복하다. 내 오른손이 당신의 왼손을 잡으면, 우리는 그 손을 놓지 않고도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다. 당신의 왼손이 내 오른손을 잡으면, 우리는 그 손을 놓지 않고도 나란히 앉아 공부를 한다. 이런 행복 만만한 포지션이 발명되었던 첫 밤이 언제였는지를 정확히 기억한다. 당신에게 오른손을 내주고도 내가 잘 쓰는 왼손은 자유로웠으니까. 잠이 든 당신 쪽으로 슬며시 몸을 돌리면 당신의 곤한 잠을 헝클지 않고도 머리를 쓸어줄 수 있었으니까. 새벽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다시 썰물이 되어 돌아갈 때까지 지치지 않고 당신의 어깨를 토닥거리거나, 당신이 자꾸만 걷어 치우는 이불을 끌어올려 주거나, 장난스럽게 당신의 허리를 간질여 당신이 꾸는 꿈을 간질일 수도 있었으니까. 당신은 오른쪽, 나는 왼쪽. 그 밤에 그랬으니까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잔다. 그 밤에 그랬으니까. 오늘도 역시 그럴 것이고, 내일도 계속 그럴 것이니까.

 

그날 남쪽 바다 섬의 테라스에서도, 나는 강한 왼손으로 별을 가리키면서 약한 오른손을 당신에게 맡겨놓았을 것이다. 내가 강한 왼손으로 별을 세고, 당신이 강한 오른손으로 이불의 귀퉁이를 쥐고 있는 동안, 내 약한 오른손과 당신의 약한 왼손이 만나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약한 손들은 자기들끼리 힘을 모아 강해지기도 했겠다. 그러다 얼마 못가 알아챘을 것이다. 강하거나 약하거나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겠구나, 이내 깨달았을 것이다.



 

당신이 가장 열렬히 사랑했던 대상을 생각해보라어느 정도까지 그 사랑이 당신의 인생행로에 영향을 미쳤는가아직도 그것이 중요하다면 어느 정도까지 그 사랑이 당신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쳤는가당신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미쳤는가한 사람국가이상에 대한 사랑이 당신의 삶가치습관을 변화시켰는가그 사랑이 없었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발타자르 토마스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36

 

 

 

2


 

  문학에서는 무엇보다도 문장의 아름다움과 언어의 고상함특이하고 진귀하며 정선된 표현깊고 무거운 은유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그런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우선적으로 고려할 점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상황과 경험을 서술하는 언어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정확하며 어느 것에도 수그리거나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확함을 향해 노력하다 보면 희귀하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비극은 다른 여느 비극과 마찬가지로 운명의 아이러니다나는 지옥을 거부하는 것처럼 진정한 삶을 거부한다나는 무례한 해방을 거부하는 것처럼 꿈을 거부한다그러나 나는 실제 삶의 더러움과 지루함을 살아간다그리고 꿈의 강렬함과 집요함을 살아간다나는 시에스타에 술을 들이켜는 노예와 같다유일한 몸뚱이에 두 배의 비참함을 진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글(<불안의 책>, 16)입니다.

페터 비에리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63-64

  

첫째. 근래 페소아의 시집 3권이 일제히 번역되어 나왔다. 3권은 모두 페소아 전도사라는 점에서 보면 한국의 타부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김한민 선생님의 노고다. 거의 원맨쇼 수준의 활약 중이시다.

 

둘째. 그리고 어제 서재 친구 설해목님이, 페소아가 썼건 아니건 국내에 발간된 페소아에 관한 거의 모든 책들을 쌓아놓은 사진을 올리셨다. 페소아 좋은 거야 진작에 주워들어서 알았지만, 사진으로 보면 이게 또 뽐뿌가 장난이 아닌거라.

 

셋째. 그런데, syo 역시 최근 알라딘 중고서점에 대량의 책을 판매하고 쌓아둔 적립금으로, 페소아의 이런 저런 책들을 일괄 구매하여 배송을 기다린 상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런 와중에 뜻밖에도 저런 대목을 만난 것이다. 물론, 페터 비에리가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파스칼 메르시어"와 동일인물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그의 다른 책에 페소아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온전히 뜻밖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렇다면 페소아지. 페소아기는 페소아겠는데...... 될까? 불안의 책만 해도 발간과 동시에 구매했으나 3년째 지금 책장에서..... 가끔씩 책장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3

 


롤스는 다른 기본적 자유도 양심의 자유를 일반화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한다기본적인 물질적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물질적 이득에 대한 관심보다 자유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더욱 중요해지므로 자유의 절대적 우선성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결국 롤스는 경제적·사회적 가치의 한계 효용은 감소하는 반면 자유의 한계 가치는 점증한다고 보며 이 두 한계 효용이 교차하는 지점에서부터 자유 우선을 요구하는 특수한 정의관이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황경식존 롤스 정의론』 94


그러니까 기본소득.

 

어제 오늘은 어쩐지 기(승전)본소득 구도로구만. 안녕하세요, 기본소득성애자 syo입니다.......

 

어제랑 다른 책들


 

 

 

-- 읽은 --



황경식, 존 롤스 정의론

페터 비에리,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 읽는 --



폴 록하트, 숫자 갖고 놀고 있네

발타자르 토마스,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에이모 토울스, 모스크바의 신사

김한민, 페소아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존 조던, 로봇 수업

 

 

-- 이런저런 방식으로 오늘 만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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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10-2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프트 보이 읽다가 훅 빠져버렸어요. 페소아, 페소아. 저도 출간되자마자 사두고서는 아직입니다.

syo 2018-10-23 23:08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에야말로 페소아를 읽어버릴려구요. 올해가 가기전에 끝장을 낼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으하하..

단발머리 2018-10-23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소아 책 중에 읽다 포기한 책이 <불안의 책> 같은데 이 페이퍼 읽다보니 다시 도전해볼까~~ 하는 뜻모를 희망이 스멀스멀 올라오네요. 기본 소득 책은 <리얼리스트를 위한~ > 1권 읽었으니까 패쓰하고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나저나 레프트 보이 어째요. 자꾸 왼쪽만 쳐다보게 만들어서는..... 넘 로맨틱한 거 아니예요? ^^

syo 2018-10-23 23:0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left lady‘ 라는 노래 들어보셨어요??

단발머리 2018-10-24 08:12   좋아요 0 | URL
일부러 찾아서ㅋㅋㅋㅋㅋㅋ 들어봤죠~~~ 좋네요, left lady도.
그래도 난 left boy가 더 좋은데요^^

syo 2018-10-24 08:56   좋아요 0 | URL
프로필이미지나 평소 하고 다니는 짓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left boy라는 제목을 보고 좌익 소년에 관한 이야기겠다 싶어서 읽기 시작했을 분들께는 죄송스럽네요 ㅋㅋㅋㅋㅋ

북다이제스터 2018-10-24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스 얘기가 사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주변에서 보는 현실은 도통 아닌 것 같습니다. ^^

syo 2018-10-24 08:5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그러게요. 역시 혁명뿐인건가!!

목나무 2018-10-24 1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왼손잡이이지만, 전 오른손 위주의 세상이 나를 밀어버린다고 맨날 불평만 합니다. 앞으로는 저도 syo님처럼 로맨틱하게~~^^
페소아. 온몸으로 불안을 살아낸 그분의 글에 우리 모두 풍덩 빠져보아요. ^^

카알벨루치 2018-10-24 10:56   좋아요 1 | URL
설해목님 페소아로 알라딘에서 영향력을 주십니다 문동꺼 살려다 저는 배수아님이 번역한 <불안의 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ㅎㅎ

syo 2018-10-24 11:21   좋아요 2 | URL
지금 알라딘의 어느 곳에서는 페미니즘 책 읽기 동아리가 발족하여 활동중이던데,
우리는 페소아 읽기 동아리 같네요. 페소아이들.

카알벨루치 2018-10-24 12:11   좋아요 1 | URL
🤣 🤣🤣🤣🤣

stella.K 2018-10-24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오랜만에 달달하게 시작하는군요..

페터 비에리가 리스본 야간...의 작가였어요?
그런데 책은 되게 얉군요.
저는 어제 십이국기 예스24에서 중고로 두 권 나온 게 있어 샀는데...
할인도 무려 4천원이나 받고.
그것도 transient-guest님 사주 받고 샀어요. 책 안 사려고 했는데...ㅠ
페소아, 페소아라...
서재 분들을 안다는 건 어떤 의민지 모르겠어요.ㅠㅠ

syo 2018-10-24 11:2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십이국기 사셨군요. 저한테는 참 각별한 책이지요.
20대 극초반에 읽고 크게 감명받고는 지금 사용중인 syo-로 시작하는 이 아이디를 만들어냈지요.

서재 친구가 늘어난다는 건 지갑이 얇아진다는 의미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

stella.K 2018-10-24 11:31   좋아요 0 | URL
헉, soy가...?! 그렇구나...
진작 밝혀 주시지 안쿠.ㅋ

그런데 저 비에리의 가장 중요한 점은 상황과
경험을 서술하는 언어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
정확하며 어느 것에도 수그리거나 타협하지 않는다란 말에 동의해요.
멋진 사람 같습니다.
야간 열차 읽어야 하는데...ㅠ

syo 2018-10-24 11:32   좋아요 0 | URL
정확하게 쓰면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는 편견을 싹 씻어내면서.... 정확하면서 아름다운 것을 넘어서서 정확하므로 아름답다니, 대단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