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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ㅣ Mr. Know 세계문학 44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내용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몰타의 매, 말타의 매로 더 익숙한 그리고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영화로 더 유명한 대실 해밋의 작품이다.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를 최초로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 위대한 작품이고 처음 시공사의 시그마북스로 읽었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마이크 해머의 <내가 심판한다>이후 나의 취향에 마침표를 찍은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했고...열린책들에서 갑자기 나와서 약간 놀랐다.
워낙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니 내용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고 새로 나온 책의 만듬새에 대한 이야기만 짧게 적기로 했다.(그럼 리뷰가 아닌가...)
손에 쥐고 나서 훌훌 페이지를 넘어가면서 읽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난 느낌은 좋으면서도 아쉬웠다. 아마 이 책을 접하는 분이 추리소설애호가가 아닐수록 전자의 느낌을 받을 것이고, 500명 이내의 골수애호가라면-영미권, 그것도 하드보일드를 읽을만한 독자는 500명도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쓴 표현이니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랍니다.-(좋으면서도) 아쉬우실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만족스럽게 만들어졌다. <장미의 이름>을 제외한다면 Mr. Know 세계문학에 소개된 최초의 추리문학이라는 점에서 고마웠다. 워낙 요즘 미스터리 시작이 활황새긴 하지만 영미권, 특히 황금기 전후와 하드보일드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서 이런 문고판으로 좀 끼워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렇게 큰 출판사에서 구색을 맞춰주니 고마웠다. 르 까레의 작품집과 함께 함께 열린책들의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아무리 봐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책일텐데...또 씹어서 미안하지만 <리얼 월드>가 나온 M사에서 나왔으면 볼만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도 튼실한 편이다. 워낙 짧은 소설이다 보니 불리기 위해서 그랬나 싶은 마음도 들지만, 열린책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지나치게 빽빽한 행간 편집도 상당히 순화되어 있어 눈이 피로하지 않다. <핑거스미스>때의 고역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천국이다.(결국 <핑거스미스>는 다 못 읽었다.) 그리고 역자분도 성실히 번역하신 듯, 이 리뷰를 쓰기 위해서 다른 판본이랑 일부 비교해보면서 봤는데, 의미전달에 있어서 별 차이는 느끼지 못하였다. 결정적으로 방점을 찍은 것은 역자가 역자 후기가 아닌 작품 해설을 했다는 것과 작가 연보가 실려 있었다는 것. 역자 후기의 기능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이 작가/작품을 몰랐었는데 알게 되서 좋았어요.'식이나 '제가 이걸 번역할 때는 어쩌구저쩌구~'하는 식의 상투적인 후기를 접하지 않아서 즐거웠다. 역자분이 추리, 좁게는 하드보일드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꼼꼼한 노력을 기울이신 것이 책 전반에 구석구석 드러나서 즐거웠다.
그러나, 추리소설애호가로써의 아쉬움도 만족감 못지 않았다. 책을 보자 마자 느낀 아쉬움은 작품 선정에 대한 아쉬움이었지만, 시그마 북스는 절판되었고, 동서밖에 구할 수 없는데다가, 동서가 옛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표지. 내용을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그리고 동서의 표지보다 잘 만들었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연성표지를 택한 것은 불만스럽다. 이 작품의 중량감과 진지함을 고려한다면 개인적으로 감탄했던 시배스천 폭스의 <새의 노래>나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없다>와 비슷한 느낌의 표지를 바랐는데,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표지를 실제로 보자니 못내 아쉽다. 작품의 성격을 반영할 수 있는 표지였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비열과 협잡이 넘치는 악당과 악녀들의 우울한 세계가 밝고 명랑한 세계로 보여질 때의 그 이질감이란... 마초들이 득시글거리고 악녀들이 출몰하는 하드보일드라는 장르가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취급을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살짝 서글프기도 했다. 굳이 이 표지에 맞는 해밋의 작품이라면 <여윈 남자>가 아닐까...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 것은 번역의 맛. 이건 북하우스에서 나온 챈들러 시리즈나 황금가지에서 나온 마이크 해머 시리즈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다. 예를 든 작품들의 번역이 별로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다만 하드보일드의 알싸한(?)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남자 번역자가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든다.(그런 면에서 황금가지에서 나온 데렉 스트레인지 시리즈는 추천하고 싶다.) 온다 리쿠의 소설이나,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고양이는 알고 있다.>등을 읽으면서 감탄했던 부분이었다, 여성들의 세계에 둔감한 내가 보기에도 역자분들이 좋은 번역을 넘어서, 여성을 주된 독자층으로 설정한 작품의 까다로우면서도 핵심적인 여성들의 미묘한 부분을 맛깔나게 살렸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는 실력을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을 알만한 남자번역가들이 했다면, 결과는 좋아겠지만 +@의 달콤쌉싸름한 맛은 없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기도 조심스럽고 나도 그만큼 이해한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없으면 아쉬운 그런 구석들이 많았다. 그런 것처럼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하드보일드라가 마초로 상징되는 과장된 남성성을 기반이니 쉬이 읽힘에도 불구하고 맥이 풀려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몰타의 매>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하이라이트라고 꼽는 후반부로 가면 아쉬운 마음도 커져 간다. 이 박력넘치던 부분이 왜 이렇게? 하는 생각을 몇번이고 했다. (오해를 살까봐서 노파심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번역이 나쁘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남자작가의 작품은 남자번역가만 해라 혹은 여자작가의 작품은 여자번역가만 해라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작품이나 장르에 따라 그럴 필요가 있는 작품들이 있다고 믿으며, 이 작품은 그럴 필요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의 가치나 책의 만듬새를 생각하면 별 5개가 마땅하지만, 2%아쉬움이 떨쳐지지가 않아서 별 4개만 주었다. 그러나 하드보일드/대실 해밋을 처음으로 접하는 분이라면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문고판이다.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 책이고, 잘 만들어줘서 기뻤다.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훌륭한 영미 하드보일드 대표작이며 좋은 문고판이 나와서 기쁘다.
추신 1) 억지 예 같아서 망설였지만, 우연히 용산도서관에서 이윤기씨가 번역한 로스 맥도날드의 <잠자는 미녀>를 읽었는데, 감탄을 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누구세요?" "루 아처올씨다."
나름 중년 남자들도 미묘한건가?
추신 2) 핑커턴 탐정사는 탐정사라기 보다는 흥신소, 그것도 기업의 노동운동 탄압-엘리아 카잔 감독, 말론 브란도 주연의 <워터프런트>에서 엿볼 수 있다.-전문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말을 듣고 부터는 더실 해밋 본인의 경험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은 <피의 수확>이 아닌가 싶 다. 그리고 두 작품을 여러 번 읽으면 읽을수록 <몰타의 매> 못지 않게, 어쩌면 보다 <피의 수확>의 현실성 짙은 질퍽질퍽한 느낌에 감탄하게 된다. 컨티넨탈 옵도 샘 스페이드 못지 않게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