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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4년 전에 <남자 vs 남자>라는 책으로 잔잔한 재미를 안겨줬던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의 인물탐구 속편입니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유명인 16명에 대한 심리분석보고서입니다. 16인을 무작위로 나열하지 않고, 특정 정신과 카테고리로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두 인물을 배치시켜 심리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16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명박-박찬욱, 정몽준-이창동, 박근혜-문성근, 심은하-김민기, 이인화-김근태, 나훈아-김중배, 김수현-손석희, 김대중-김훈

일단, 정혜신씨의 글을 읽으면 늘 두 가지에 감탄하게 됩니다. 우선 정신과의사라는 전문직종에 종사하면서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풀어쓰는 '대중적 글쓰기' 능력이 부럽습니다. 어려운 의학적 용어 없이도, 심리분석적인 내용이 쉽게 머리 속에 들어오는 것은 그녀의 탁월한 글쓰기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정 부분은 탁월한 기획력 덕분이기도 하구요. 어떻게 보면 심리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이 남의 머릿속을 헤집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감정적으로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 책은 몇 번 읽어도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이는 그녀의 글쓰기 탓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으로는 지은이의 철저한 조사입니다. 이 책은 인물평전임에도 불구하고 흔하디 흔한 인터뷰 하나 없이 쓰여져 있습니다. 분석대상과의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함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일부러 어렵게 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외부에 공개된 자료 내부에 숨겨진 대상인물들의 면면을 찾아서 조각 맞추듯이 맞춘 책입니다. 조각들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서 방대한 량의 자료를 읽고 고민한 흔적이 책 여기저기에 남아있습니다.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강준만 교수에 대한 존경심을 무색하게라도 하듯이 말이죠. 글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지은이의 노력-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분석하기 위해 80년대 초부터의 사설을 모두 읽었다던가, 심은하의 결혼설을 다룬 8700여매 분량의 기사를 모두 읽었다던가-은 정말 살인적인 감동을 줍니다.(물론 이렇게 하는게 '당연'한 걸 수도 있겠습니다. ^^)

정혜신씨의 필력과 철저한 조사에만 촛점을 맞추다보니 다른 부분이 미흡한게 아닐가 하는 의심을 하실 법도 한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과의사 답게 그녀의 분석력은 일반 논객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대상 인물을 분석하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책의 기획의도도 책의 내용과 적절히 부합하는 편입니다.(물론 전작에서도 똑같은 기획이었기 때문에 덜 참신할 수는 있습니다. ^^) 두루두루 모난데 없이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굳이 흠을 잡자면, 우선 전작과 동일한 기획이다보니, 조금은 내성이 생겼다는 점. 이 분의 '은밀한' 정치적 성향-전작에서도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사람들의 다수는 강준만, 유시민, 정동영으로 대표되는 열린우리당 계열의 사람이 많았습니다.-에 반 노무현-열린우리당 지지자께서는 상당히 불편함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고도의 프로파간다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정혜신씨가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 - 우리 시대의 인물읽기 2>에도 필자로 참여했다는 사실까지 떠올리면 의심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만약에 한나라당을 지지하시거나, 혹은 노무현-열린우리당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면 거북한 이야기들일 수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전작을 읽을 떄와 지금, 정치적인 성향에 변화가 있어서 열광하는 정도가 수그러든 케이스에 속합니다만, 분석 자체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분석은 최소한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답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취향이 들어나는 것은 인간으로써 가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박근혜나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할 수 있는 부분들을 다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만 너그러워도 충분히 읽힐만한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두루두루 장점을 갖춘 책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추리소설에 비유하면, 트릭, 등장인물, 번역상태, 해설, 표지, 책 상태 모든 면에서 맘에 드는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간만에 좋은 책을 본 느낌입니다.

추신) 정혜신씨가 이 남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특이하다면 특이한데, 아버지의 죽음때문이라고 합니다. 외교관이 꿈이셨던 정혜신씨의 아버지는 그 시대의 아버지들이 다 그렇듯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사셨답니다. 나이가 들어, 우울증에 걸린 채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그 때서야 자신이 정신과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삶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 때서부터 남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답니다. 참 특이하죠?

정혜신씨의 인터뷰 중에 제가 공감하는 한 대목

“남성들에 대한 심리 서비스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전무했거든요. 남자들 자신도 더 이상 ‘남자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부장적인 의미의 ‘남자다움’은 더 이상 대우받지 못하는 세상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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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은 유괴 - g@m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은 시점부터 독특합니다. 제가 읽은 대부분의 유괴소설은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반해, 이 작품은 오로지 범인의 시점으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일인칭 탐정물과 비슷한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탐정물은 수사를 해가는 과정에 동참하는 느낌이 든다면, 이 소설은 범죄에 동참하는 느낌이 든다는 차이겠지요. 주인공의 치밀함을 쫓아가다 보면, 소설에 빠져있는 자신을 느끼시게 될 겁니다. 더 나아가 쫓는 자의 동태를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묘한 긴장감이 이 소설의 매력입니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짧고 흡입력 있는 필체는 제가 좋아하는 아이리쉬의 그것을 연상케 하구요. 결말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데, 작가의 탁월한 구성력과 필력으로 인해 결말까지 긴장을 유지되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은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그렇지만, 재미에 충실하면서도 추리소설이 가지는 장점들을 대부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추리소설' 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을 떼고, 읽으셔도 작품의 재미를 느끼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요즘 유행인 '반전'도 비교적 잘 처리하고 있구요.

소설 외적으로 보자면, 가장 먼저 깔끔한 번역이 눈에 띕니다. 읽으면서 쉼없이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의 몰입도가 높기도 하지만, 역자의 번역이 깔끔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물론, 문장을 짧게 쓴 작가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해설도 역자의 실력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공틀인 티가 나는 책이라 맘에 듭니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소설이 자주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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