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스 문도스 밀리언셀러 클럽 6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일본 작가 중에 <불모지대>, <하얀거탑>의 야마시키 도요쿄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집. 그러나 나쓰오 여사님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것이 꺼려지게 된다. 이분의 포스가 워낙 강력해서도 있지만, 이분이 여성성의 어두운 측면을 사정없이 까발리기 때문에 남자인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공감한다거나 이해한다는 데에 한계가 있기에 언급 자체가 주제넘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고, 차라리 마초 VS. 된장녀 운운하는 키보드 워리어라면 욕이나 한바탕 해주고 말겠는데, 여사님은 그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에 그 어둠의 아우라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작품의 마지막 단편이자, 이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암보스 문도스는 양쪽의 세계-여기서 양쪽은 새롭고 낡은 두 개의 세계라고 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쓰오 여사는 어떤 양쪽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을까.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드는 의문이었다.

한쪽 세계의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늘 다루시는 디스토피아. 나쓰오 여사에 대해서 언급할 때 늘쌍 이야기되는 여성성, 절망, 악의로 가득한 '어둠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냉혹한 심리묘사는 단편에서도 알짤없다. 책책 뒷표지에 나온대로 일곱 가지의 주제로 구원이 없는 여성들의 처절한 삶을 묘사한다. 물론 길이의 제약 때문에  <그로테스크>와 같은 집요함은 없지만, 작중 인물들의 어두운 심리를 포착하고 요리하는 모습은 그 짧은 단편에서도...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쪽의 세계는 무엇일까. 이론적으로는 밝은 세계지만 단편집을 아무리 정독해도 밝은 세계는 없다. (그걸 기대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럼 무엇일까? 내 부족한 깜냥으로는 답을 내릴 수 없다. 앞으로 풀어야할 궁금증이기도 하다. 이 작품집만 놓고 보자면,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소설가를 등장인물로 한 단편이 많다는 점, 결말이나 주제를 다루는 방법에서 다른 모습이 보인다는 느낌 등 무언가 실마리는 있으나 잘 모르겠다. 표제작만 놓고 보자면  새로운 어둠과 낡은 어둠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으신건가 싶기도 하다.(내 마음에 든 작품일수록 세대 간의 갈등이 부각되어 있다.) 물론 그런건 없다가 답일 수도 있을 것이고...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그리고 정말 궁금한 것이, 여사님은 관심법을 쓰시는건지. 어떻게 이렇게 속맘을 꼭꼭 집어 낼 수 있을까? 남자인 내가 봐도 참 놀랍다. 한치도 주저하지 않고 쓰시는 용기도 부럽기도 하고. 

일반적인 이야기는 이만 하고 각 단편에 대해서 더 언급하자면, <식림>은 여사님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잘 압축시킨 단편이고, 드물게 남자가 주인공인 <루비>는 약간 실망스러웠다.(역시 여사님은 여성전문이신건가.) <괴물들의 야회>도 여사님의 작품 치고는 뻔한 전개로 이루어져서 실망스러웠다. <사랑의 섬>은 특이하게도 주인공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해자/혹은 어둠의 정체가 비유적이나마 묘사되어 있다는 점-내가 파악한 나츠오월드는 가해자는 늘 추상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피해자들끼리만 서로 상해를 입히는 구조다.-에서 신선했다. <부도의 숲>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결말부분의 진술에는 의문이 남았고 <독동>은 여사님 식의 괴담인데 평범했다. 그리고 <암보스 문도스>는 작품의 표제작다운 맛이 있는 작품이다. 소소한 일상에서도 어두운 아우라를 끄집어내는 x레이의 눈을 가진 여사님의 매력이 잘 살아 있다.

여사님이 궁금한데, 정도와 길이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시는 분께는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기준의 팬들이라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장편에 더 장기를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클래스는 클래스이다.    

추신) 작가 프로필에서 <얼굴의 내리는 비>는 <얼굴에 흩날리는 비>가 국내출간시의 정확한 제목이고, <부드러운 볼>은 <내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추신2) 내가 본 역자 프로필 중에 가장 재미있는 역자 프로필이었다. ^^

추신3) p47 공그르기->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p83 사나운 기성에 가득차 있었다->역시 이것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부도의 숲 : '문학자'보다는 '문학가'가 더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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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5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냐, 공그르기는 혹시 바느질 용어가 아닌지.....요. 83페이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글고 문학가...라고 더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은 작가의 발표순대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만....(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상복의랑데뷰 2007-06-07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 바느질 용어가 나올 문맥은 아니었는데..

발표순서대로 읽는게 작가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만, 우리나라의 출간행태상 걸작->졸작 순으로 나오기 때문에 쉽지는 않으실텐데요 ^^; 전 시리즈일 경우에만 순서대로 읽고, 초기작이라는 안내가 있을 경우 최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봅니다. ^^

비로그인 2007-06-07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맞는 말씀이십니다 (으윽, 정곡을 찌르셨어요...갈비뼈 사이로...ㅋㅋㅋ).

상복의랑데뷰 2007-06-0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
 
기요사키와 트럼프의 부자 - 백만장자와 억만장자가 말하는 부의 공식
로버트 기요사키 외 지음, 김재영 외 옮김 / 리더스북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로버트 기요사키. 아마 우리나라에 가장 영향을 미친 책을 나열한다면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시리즈는 꼭 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책, 출판 시장의 지형도를 재테크/자기계발로 변화시킨 책, 황금가지라는 출판사를 한번에 각인시킨 책 등, 이 시리즈가 가지는 가치는 영어표현 그대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사'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책 자체만 놓고 보자면, 기요사키의 충고에 대해서는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귤이 강남에 가면 탱자가 되듯이 미국에서의 방식으로 한국에서 성공하라는 무리인데다가, 가난한 직장이었던 시절에도 정말 건방진 생각이지만, 기요사키의 방식은 상식 수준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 부자아빠와의 경험담이 아닌 구체적인 조언 부분으로 들어갈수록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이 많았다. 오히려 이를 비판한 이진의 <부자아빠의 진실게임>을 읽고 얻은 것이 컸으니까.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기요사키에 대한 난감함은 어떤 재테크 책을 읽어도 느끼는 부분이었다. 물론 실천가로써의 기요사키는 지금도 신뢰하지 않지만, 적어도 사상가로써의 기요사키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절반정도는 믿지는 셈 치고 그의 생각대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지금보더도 더 어리석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떤 가치관이던 그것을 실천하는 개인의 상황이나 성격에 따라 다르게 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기요사키의 방식을 따를 게 아니라 기요사키의 통찰력을 이해하고 나에게 맞게 재구성하고 실천했어야 하는데, 천둥벌거숭이처럼 잘난척을 했던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든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솔직히 가쉽거리 란에만 오르내리던 부동산 투기꾼인 줄 알았다. 게다가 늘 회자되는 파산위기에 대한 기사와 이혼과 재혼에 대한 기사만 읽은 나로써는 그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백수초기에 도서관에서 뒹굴던 그의 책을 읽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가장 위대한 자수성가인 중에 한 명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특유의 거만함이나 자아도취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사업가적 기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로써는 이런 자신만만하고 야심만만한 사람의 이야기가 호연지기를 기르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사업을 할 용기가 생겼거나 노력을 했다는 것은 없지만-이러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게 아닐까.-, 최소한 리더쉽이나 통찰력에서 배운 점은 많았다. <어프랜티스>는 보지 못했지만, 의도한 것이던 치밀한 계산의 결과던 간에 자신의 경험을 노련하게 노출하는 모습만으로도 책 속에서 충분히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들이 뭉쳐서 만든 책 역시 이 두 사람의 장단점이 고루 섞였다. 어떤 면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면에서는 쓴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뮤추얼 펀드를 회피하고 부동산에 투자해라 등의 구체적인 방안은 개개인의 판단에 맡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요사키의 경우, 교육업에 종사하다 보니 자신에 관여한 상품에 대해서 지나치게 노출하고 있다.(물론 그걸 찾아보는 실천의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배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내용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도 같다. 모든 사람이 기요사키+도널드 방식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체성을 제거하고 나면, 담론차원에서의 원칙과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 그리고 자기계발과정만으로도 이 책은 반짝반짝 빛난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이 쓴 모든 책의 엑기스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책의 내용은 생략하고,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두 사람의 통찰력은 정말 냉정하다. 국가가 개인을 돌볼 수 없다라는 말. 누구나 알지만, '설마 그렇게 되겠어?'하면서 막연히 회피하는 문제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부자가 되라고 권한다. 이제 '잘난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못난 놈'이 가난한 사람이 되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내 주위의 직간접적 체험을 통해 심리적으로 쪼그라든 상당히 공감했다.(더 늦기전에 정신 차려야 하는데...) 뒤로 갈수록 몰입의 강도도 거세질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똑똑하고 부유한 사람들도 정글터에 던져진 무언가처럼 부의 축적을 '생존의 논리'로만 접근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전세계의 탐욕과 무능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나? 정글에서 살아남으라고 서바이벌 기술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정글을 바꿀 것을 호소할 수는 없는 것인가?(그런 아버지를 둔 기요사키는 특히 냉소적이다.) 하다못해 탐욕의 화신인 '해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도 시스템의 헛점을 이용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지만, 칼 포퍼의 충실한 제자답게 개인적 기부를 통해 정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데 말이다. 사실 자본주의의 파이가 급속도로 늘어나지 않는한 많은 사람이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막무가내로 부자가 되라고 권유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까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성공 혹은 부자가 된다는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준비하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성공이나 부가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자명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보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최소한 자신들의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과 성향, 가치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무시하는 것은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추신) 이 책 못지 않게 통찰력이라는 관점에서 권하고 싶은 책은 부자아빠 시리즈를 비판한 이진의 <부자아빠의 진실게임>이다. 기요사키를 비판한 통찰력은 부자아빠에 대한 맹신을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있는 '한국형 부자'의 시초인 세이노의 통찰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사실 배울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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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7-06-1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마이리뷰 축하드려요^^

상복의랑데뷰 2007-06-1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매지님 오랫만입니다. 감사합니다. ^^; 부끄럽네요. ㅎㅎ

비로그인 2007-06-1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한국의 부자 시리즈를 봐도 부동산하고 세법의 틈새에서의 성공은 빠질 수가 없지요. 이들이 돈벌고 나서 세법이나 금융정책이 업데이트되어서 이들이 쓴 책을 읽고 따라하려면 이미 늦었잖아요, 된장. 그래서 어쩌다 돈번거 아니냐고 칠려고 해도 위기를 극복, 관리하는 면에선 정말 '난' 인물들이죠.

상복의랑데뷰 2007-06-2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답변이 늦었습니다. 너구리님 말씀에 몇백%동감합니다. 저도 돈 많이 벌고 싶어요 ㅠㅠ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리얼 월드>를 읽고 잡친 기분 때문에 당분간 일본 소설은 안 읽으려 했는데, 우연히 눈에 띄길래 그냥 읽었다. 워낙 경쾌하고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기본은 하겠지 싶어...

기대 이상이었다.

이 책의 단점에 대한 다른 분들의 이야기는 매우 정확하다. 트릭과 범인의 정체 그리고 동기, 그리고 추리소설독자들에게 민감한 공정함 등의 추리소설로써의 평가항목은 낙제점에 가깝다. 엄격하게 추리소설의 잣대를 들이대자면 좋게 봐주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경쾌함 때문에 역설적으로 범인의 동기가 더 엉뚱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마 이 작품이 수상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더 대단한 미스테리는 널리고 널렸다.  

다만 공정함에 관해서는 이제 체념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갈수록 고도화된 수법이 등장하는 현대의 미스테리에서, 모든 단서를 공정하게 노출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편이나 고전추리가 아니고서야 fair game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하기 힘들다. 논리적으로야 물 한방울을 봐도 나이아가라 폭포를 상상할 수 있고, 부품 하나만으로도 차를 상상할 수 있지만, 일반(추리)독자에게는 무리다. 특히 이 작품처럼 전문적인 영역을 다룰 경우는 말이다. 물론 쿄코쿠도처럼 초반 장광설로 작품의 세계관부터 모든 단서를 뿌려줄 수도 있겠지만, <광골의 꿈>처럼 아무리 좋아하는 독자라도 충분히 고역일 수 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불공정할지라도 매끄럽게 넘어가는게 나아보이기도 한다.  

조금 더 흠을 잡자면, 데뷔작에게서 보이는 실이 풀리듯 맥없이 풀어져버리는 급격한 결말도 그냥 웃어넘길 수 밖에 없었다. (데뷔작이라고 해서 마음의 각오를 하고 봤지만, 역시나 싶었다.) 아무리 대학병원/의료제도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작가/주인공은 의사고, 의사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다. 이 책도 그렇다. 의사의 입장이 노골적으로 반영된 결말부분은 경쾌하게 웃기에는 상당히 찝찝했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책에 묘사된 졸업시험에서 병원장 앞에 선 다구치처럼 '그럼 왜 좋다고 하는 겁니까.'라고 의문이 들법도 하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이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큼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실 위에서 쓴 이야기들은 다시 읽고, 또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고 나서 읽으면서 찝찝했던 부분들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이고, 처음 읽었을 때는 재미있다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그건 이 작가의 전략이 적중했다는 뜻이다. 이 작가는 단점을 메꾸기 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했다. 이 작품은 스피디한 진행과 캐릭터들의 개성에 모든 것이 종속되어 있다. 캐릭터, 사건의 진행, 모든 것이 그렇다. 하지만 희생한 만큼의 댓가는 충실히 구현되어 있다. 경쾌한 스텝으로 결말까지 달려가 버리는 작가의 재주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읽다보면 의문을 느낄 틈도 없다. 지루할 법하면 엉뚱한 이야기/캐릭터가 등장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의학관련 소설은 용어의 문제로 언젠가는 지루한 순간이 오는데 이 작품은 그런 부분이 거의 없다. (일정 부분은 매끄럽게 번역해주신 역자와 편집자의 몫이다.) 다구치의 느릿느릿한 조사가 지겨워질만 하니 로지컬 몬스터인 시라토리가 등장해서 온갖 잘난척을 하는 식의...트릭을 구성하는 재주는 없지만, 소설을 재미있게 구성하는 재주는 상당한 듯 싶다. 필력도 상당한 듯 싶고. (나같이 글을 무겁게 못 쓰는 사람에는 혹할만한 재능이다. OTL) 

게다가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빛과 어둠의 관계처럼 '2인 3각'의 콤비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고전 추리의 핵심 미덕 중에 하나인 와트슨-홈즈 콤비가 때로 등장하는 셈이다. 주인공인 다구치-시라토리를 비롯, 등장인물들이 2인 3각의 콤비네이션을 이룬다. 바티스타 수술 팀도 전체 팀의 느낌이 아니라 파트별 콤비의 개성이 눈에 들어온다. 2인 1조 콤비가 하나의 유닛이 되어 2유닛 1조의 콤비가 되고...또 모여서 콤비가 되고...부분이 전체가 되고 전체가 부분이 되는 기묘한 재미가 이 작품에는 잘 살아 있다. 개성외에는 기능적인 역할 밖에 수행하지 못하는 캐릭터지만, 그 개성이 주는 코믹한 불협화음이 큰 매력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작품이 다루는 주제가 무거운 것이 사실이지만,-결말부에 등장하는 범죄를 예방할 것인가? vs. 사건을 해결할 것인가?의 갈등은 추리소설 팬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팔묘촌>에서도 논란이 된 적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의 긴장감을 좋아한다. 의사의 긴장감도 같이 잘 묘사되어 있고-작가의 경쾌한 태도로 인해서 별 무리없이 주제가 전달된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무게만 잡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일반 독자가 의료계에 대해 문제의식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기란 힘들다. 이 책은 그 경계를 비교적 정확하게 포착하고는 안전하게 멈춰선다. 그 지점을 알고 살짝 멈춘 작가가 얄미우면서도 그 재능이 부럽기도 하다. 

또한 내가 흐뭇했던 건, 책의 만듬새가 정성이 그득그득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표지는 지금도 흰 바탕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어 표지와는 다르면서도 작품의 유머러스한 느낌을 잘 살린 표지와 장마다 삽입된 일러스트, 보기 좋게 편집된 본문, 그리고 의학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쉬이 읽히게 만드는 번역과 해설까지 모두 만족스러웠다.(직전에 읽었던 <리얼 월드>에 워낙 디어서 그런지 바티스타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나의 모자람과 부족함에 비하면 운좋게도 (일본) 미스테리에 많은 지식과 통찰력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주위에 많이 계시다보니 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어줍잖게 들을 수 있었고, 읽게 되었는데, 간만에 즐겁게 읽은 작품이었다. 왜 화제를 몰고 왔는지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다음 작품들도 소개가 될지 모르겠는데, 내가 장점이라고 여긴 부분들만 계속해서 충실히 보여줘도 흔쾌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두 콤비와 작가의 계속적인 활약상을 기대해 본다.

추신) 바티스타 수술이 <의룡>에 나왔다던데, 그 만화를 보지 않아서 얼마나 대단한 수술인지 모르겠다. 머릿속에는 WWE 바티스타가 떠올라서 좀 힘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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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3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상복의랑데뷰 2007-06-03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공개 / 하하 그 전에 말씀드린 책도 보내드려야 할텐데......부럽습니다. ㅠㅠ

비로그인 2007-06-0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

상복의랑데뷰 2007-06-04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셔도 후회는 안하실 듯 합니다.
 

엘러리 퀸 하면, Y의 비극이나 열흘 간의 불가사의를 크리스티 하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반사적으로 떠오르지만,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에는 숨겨진 보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꼽아본 숨겨진 보석같은 작품들입니다.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셜록 홈즈 전집 1 : 공포의 계곡 (양장)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정태원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02년 4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6년 05월 03일에 저장
절판

가장 뛰어난 도일의 장편은 <바스커빌 가의 개>이지만, <공포의 계곡> 역시 뛰어난 작품이다. 의뢰인을 먼저 배려하는 홈즈, 간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영원한 적수이자 런던 암흑가의 대부 모리어티 교수. 그리고 후반부 회상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활약까지 맛깔스럽다.
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10,800원 → 9,720원(10%할인) / 마일리지 540원(5% 적립)
2006년 05월 03일에 저장
구판절판
TV드라마로 방영된 <백야행>의 인지도에 미치지 못하지만, 잘 짜여진 구성, 묵직한 결말, 그리고 현대 일본 사회의 병폐를 끄집어내는 게이고의 필력이 고루 갖추어진 숨겨진 걸작. 시작부터 살인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결말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작가의 솜씨를 맛볼 수 있다.
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8,800원 → 7,92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원(5% 적립)
2006년 05월 03일에 저장
절판

인기는 감히 <다빈치 코드>와 비교할 수 없겠지만, 작품의 구성, 특히 결말부의 묵직함은 <천사와 악마>가 훨씬 뛰어나다. 일루미나티의 도상학적 기호의 아름다움과 바티칸에서 펼쳐지는 랭던 교수의 활약담.
야성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8,800원 → 7,92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2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6년 05월 03일에 저장

<인간의 증명>이 별 다섯 개를 기대하고 읽은 별 네 개라면, <야성의 증명>은 별 세 개를 기대하고 읽은 별 네 개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 하드보일드의 건조한 문체과 작가 특유의 감상주의 속에서 움직이는 주인공들의 슬픈 운명, 연민을 느끼지만 그에 못지않게 냉혹한 결말을 따라가다 보면 이 작품이 <인간의 증명>못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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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은 만화방에서 퀘퀘한 남자들이 보는 그저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 않는 소설들, 그렇지만 언제 끝날지 몰라서 감히 추천할 수 없는 무협소설의 걸작들을 모아봤습니다.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화산질풍검 7- 질풍검, 완결
한백림 지음 / 청어람 / 2005년 11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2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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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마검>에 이은 한백의 한백무림서 제 2부. 저자는 11부의 소설을 통해 무협의 모든 것을 다루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는데, 무모하면서도 패기넘치는 도전을 따라가보는 재미가 있다. 독자적인 소설로, 혹은 전체의 일부로 지장이 없는 수작
청룡맹 7- 완결
유재용 지음 / 시공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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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개인의 전투라기 보다는 집단간의 갈등을 녹여낸 유재용의 작품. 또한 도학을 수련하는 주인공답게 작품 속에 직간접적으로 배어있는 선과 악에 대한 독특한 관점 역시 흥미롭다. 이전 작품인 청룡장과 함께,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고 저자는 밝혔는데, 3,4부가 기대되는 작품.
쟁천구패 5- 항룡유회를 되새기며
임준욱 지음 / 청어람 / 2005년 8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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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가소전' 이후 주목받는 작가 임준욱. 특이했던 괴선 이후, 더 달라진 작품 주로 성장기 위주의 작품을 쓰던 그의 신작은 개인의 성장기와 집단의 성장기를 조화시키고 있다. 1권 서두의 내용에 이르려면 몇 권이 더 소요될지 궁금해지는 작품.
천마군림 6- 사자림
좌백 지음 / 청어람 / 2003년 7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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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협의 '뜨거운 감자' 중에 하나인 좌백의 천마군림. 정파 혹은 백도가 아닌 마도의 군림하에 벌어지는 주인공의 성장기, 그리고 군림기. 이전의 좌백과는 상당히 다른 설정이 눈에 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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