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천재들
김병기.신정일.이덕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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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이후 대중적 글쓰기, 혹은 특정한 교양서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커졌고, 그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의 필진들이 등장했다.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역사 부분에서 대표적인 저자를 손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이덕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2>,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거칠 것이 없어라: 김종서 평전> 등은 상당히 뛰어난 교양서였다. 이미 사학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를 잘 정리한 수준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지만, 워낙에 굴곡진 현대사와 역사인식에서의 보수성 때문에 그의 도전적인 자세, 그리고 깔끔한 필치 등으로 인해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주욱 이어질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이덕일 선생에 대한 기대치는 높은 편이다. 

그러나 <한국사의 천재들>은 실망스러웠다. 내가 알던 그 이덕일 선생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구성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나귀님도 지적하셨지만, 이 세 분의 공동저자가 가지고 있는 '천재'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은 일단 유보하자. 부족하지만,  서문의 제목대로 '진정한 천재란 시대의 상식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다.'라는 표현이 이들이 정의한 천재라는 가정 하에 검토해 보자. 상당수의 위인이 탈락감이다.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려고 해도 서희, 이규보, 정철, 황현 등은 결코 포함될 수가 없다. 명문세가인데 외교에 특출났던 서희가? 시대의 상식은 강호은거였는데, 권력욕으로 정계에 진출하여 사화를 일으키거나(정철) 무신정권에 곡학아세를 했음(이규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시가를 남기면 천재인가?(훗날 서정주의 예를 보면 씁쓸하기 까지 하다.) 워낙 친일파가 넘쳐서 시대의 상식이었던 친일에 자살로 저항한 황현이 천재인가? 저자들이 정의한 '천재'라는 개념에 동의하느냐의 여부 이전에 이들이 선정한 위인들에 동의할 수가 없다.

인물선정에서부터 문제가 생기다 보니 구성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 책의 목차를 보자. 

1부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 2부 하늘이 내려준 천재, 3부 시대와의 불화, 4부 신기의 문장, 글로써 세상을 아우르다.

순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는데, 제목만 그럴 듯하지 전형적인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나열이다.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는 하늘이 내려준 천재가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시대와의 불화를 겪은 천재는 시대를 뛰어넘었거나 하늘이 내려준 천재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엉뚱하게 4부에는 필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앞에 등장한 이이나 김시습 등은 문장력이 없었을까?

너무 멋을 부렸다. '한국사의 숨겨진 13명의 위인' 식의 가나다나 시대 순으로 나열했다면 이렇게까지 실망스럽지 않았을텐데, 보기 좋게 하려고 억지로 분류하고 억지로 꿰어맞추다 보니, 오히려 난잡해졌다.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은 이 책의 서술이 보여주는 '지나친 묽음'이었다. 학술논문이 아닌 이상, 어렵고 딱딱한 글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의 서술 수준은 딱 국사 교과서 수준이다. 더도말고 덜도 말고 알려진 만큼만 보여주는. 그러면서 교양서를 자칭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실례다. (묽음을 자랑하듯이 참고문헌조차 없는 얄팍함-출판사의 얄팍함이겠지만-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왜 천재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이들의 삶을 연대기적 구성을 통해 약술할 뿐이다.

물론, 유득공, 이가환, 이상설, 이벽 등과 같은 인물들은 비교적 홀대받았던 인물들이니 연대기를 서술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치원, 김시습, 서희, 장영실, 이이 등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유명한 위인일수록 위인전 요약의 수준을 보인다. 장영실을 다룬 글에서 가계에 대한 연구를 덧붙였던 것처럼 일반인의 상식 밖의 내용을 추가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굳이 여기서 그들의 요약된 삶을 읽을 필요가 없다. 너무 큰 기대인지도 모른다. 해당 위인이 왜  저자들이 정의에 걸맞는 천재인지조차도 설명되지 않은 글에 그 이상의 재미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위에서 언급한 인물들처럼, 한국사에서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의 열전이었다면 이렇게 실망하지 않았으지도 모르겠다만, 이래저래 영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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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대제 1 - 탈궁
이월하 지음, 한미화 옮김 / 산수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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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청나라는 그다지 관심있는 왕조가 아닌데, 아무래도 삼전도의 치욕을 겪은 우리로써는 곱게 봐주기도 힘들 뿐더러, 정복왕조라는 한계 때문인지 의도적으로 잘 다루지 않는 측면도 잇는 것 같다. 다만 박노자 교수님의 저작 때문에 청의 말기와 조선의 말기가 겹친 대원군-고종 시대의 범아시아적 지식인의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는 있으나, 관련 서적을 읽기란 쉽지도 않고 해서 관심으로만 묵혀두고 있었다.
 
요즘 정독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관계로, 권수의 부담 때문에 미루었던 이월하의 제왕삼부곡의 첫 편인 강희대제를 읽엇다. 청나라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최전성기의 기틀을 닦은 강희대제, 엄격한 태도로 수성에 성공했던 옹정대제, 그리고 중흥과 쇠퇴를 동시에 가져온 건륭대제. 각각의 매력을 어떻게 구현하는지 보고 싶었다.

책에 따르면, 강희대제는 부왕이었던 순치제의 갑작스런 출가로 8세에 보위에 올랐다. 어린 나이에 권신 오베의 횡포에 시달리다가, 15(!)세에 오베를 축출하고, 23(!)세에 오삼계를 위시한 삼번의 난을 진압했으며, 정성공 부자가 항거하던 대만, 몽골, 러시아를 평정하여 최후로 통일왕조를 이룩한 위대한 황제였다. 또한 강남을 안정시키고, 명조의 유신들을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60여년간의 긴 치세로 인해 후반부에는 권신들의 난립 등의 부작용이 심햇으며, 특히 말년에는 황자들의 난으로 인해 편안히 눈을 감지 못했다. 오현제 시대의 트라야누스와 같은 황제라고 할 수 있겠다. 공평무사와 관용을 중시했다는 점은 상당히 유사하다. 다만 트라야누스는 무인 출신이고, 강희 대제는 문인 출신이라는 차이가 있다는 점과 전자는 아들이 없어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후계자로 고를 수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그 점이 강희대체 후반부의 난맥상을 야기하기도 했다.

강희대제를 보면서,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자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칼'을 어떤 단어로 치환하여도 성립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의 장점이 결국에는 단점이 되는 인간세계의 진리를 엿본 느낌이랄까? 강희의 수많은 장점과 치세가 후반부의 난맥을 야기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강희의 포용정책은 신하들의 방종을 가져왔고, 신하들의 중용은, 권신들의 등장을 야기했다. 또한 지나치게 똑똑하고 신중했던 강희로 인해 황자들의 비극이 시작된 것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성하면 망하는 것이 진리지만, 떨치고 싶은 욕망이 있고, 그럴수록 더 업보에 빠져들게 되는 우리네의 삶. 

다른 단점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강희대제의 삶 자체가 흥미진진하기 때문인지 재미있게 읽었다. 조선왕조실록류처럼 60년 모두를 다룬 것이 아니라 중요한 내용들 위주로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번역상태를 볼 때, 작가로써 상당한 필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번역이 이상하다는 이야기...)

다만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삼국지> 등의 장엄한 고어체 혹은 문어체 형식을 선호하는 나로써는 지나친 구어체 위주의 서술 방식이 맞지 않았다. (솔출판사에서 새로 번역한 <서유기>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문제다.) 마치 저잣거리에서 일어나는 시시비비를 보는 느낌이랄까. 초반부에 황궁 외부에서 자신의 손발이 될 인재들을 구하는 과정이야 당연히 궁 외부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야겠지만, 이런 경향이 계속 보이는 것은 문제다. 전체적으로 경박스럽다고 할까.

또한, 전체적으로 등장인물의 수준이 떨어진다. 오삼계는 거의 바보에 가깝고,-실제로도 바보에 가까웠다는 이야기가 잇지만-오베는 동탁의 마이너 버전이었으며, 기타 등장인물도 썩 뛰어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패치 후에 능력치 조절에 실패하듯이, 1부의 뛰어난 신하가 2부 가면 병신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이런 등장인물이 퇴장할 때는 별다른 족적도 없이 사라진다. 초반부의 충신이 중반부에 권신이 되어, 반역을 꾀하거나 다른 마음을 먹다가 제거되는 과정이야말로 강희 용인술의 백미인데, 초반부에 엄청난 포스를 가지고 등장햇던 인물들의 퇴장에 너무 무신경하다. 특히 소니 재상의 아들로 등장하는 소어투는 그야말로 안습 수준이었다. 그 이야기가 제일 재밌을 법한 이야기였는데, 그걸 몇 줄의 서술로 넘겨버리는 것은 아쉬웠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어서 재미있게 읽었지만, 기대를 뛰어넘지 못해서 아쉬웠다. 옹정과 건륭까지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긴 한데,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지 싶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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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ai2000 2006-10-3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기를 다룬 게 바로 <녹정기>라죠. 저도 읽다가 흥이 떨어져 던져 버렸는데 꾸준히 다 보셨군요. ^^

상복의랑데뷰 2006-10-30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그냥 버리기는 좀 아깝네요. 지금은 옹정황제를 읽고 있습니다. ^^
 
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5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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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편식이 심한 편이지만 최근에는 추리소설 내지는 일본소설만 읽는 것 같아서, 이종호의 이프를 읽었다. 이종호는 한국공포문학계의 선두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준높은 작품을을 꾸준히 발표하는 작가로 알고 있다. 이영도와 같은 위상이라고 해야할까?

이 작품 이프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소시민들의 그릇된 그러나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딸에게 벌어진 사건 때문에 가슴 속 깊숙히 상처를 안고 있는 신문기자 도엽이 우연한 기회에 목격하게 된 자살사건에 의혹을 품고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물론 공포소설을 표방한 작품인 만큼, 그 진실은...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장르문학 내에서 간만에 '프로 작가'의 냄새가 나는 작품을 읽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리뷰를 보면 뻔하다, 실망스럽다라는 의견도 상당수 있는데, 나도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렇지만, 다 인정하더라도 이 점만큼은 정말 높이 사고 싶다. 양적인 성장에 비해 질적인 성장이 더뎌지는 듯한 한국무협이나, 양적인 성장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한국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들을 이 작품은 채워주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종호가 차용하고 있는 구조나 트릭은 다른 리뷰어들이 언급한, 몇 편의 영화의 그것들을 재구축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창적인 내용을 어설프게 그려내는 작품이 독창성 때문에 최소한의 인정을 받는다면, 반대로 상투적인 내용을 설득력있게 그려내는 것도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프가 그러하다. 이종호는 주제의 상투성을 일정 수준 극복하고 있다. 초반부의 난삽함을 극복한다면, 서스펜스의 본령에 충실한 듯한 전개와 다듬어진 문체, 그리고 재미 모두에서 말이다. 그리고 작가가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는 문제의식이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는데, 김진명처럼 소설 따로 개똥철학 따로의 장광설도 없다. 비교적 충실하게 사전 조사도 한 것 같고. 이를 바탕으로 작가 고유의 주제의식을 내용과 겉돌지 않게 소화해낸 솜씨는 감탄할만하다.

한편으로는 상당히 서글픈 이야기이다. 작가라면 갖추어야 할 당연한 것들을 갖추지 못한 졸작이나 습작류가 버젓히 출간되는 상황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보여줬다는 것 자체가 칭찬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말이다. 마치 배우가 특정한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서, 엄청 고생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또한 이 작품은 반복되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서술구조의 배치와 계단을 올라가듯 증폭되는 공포와 밝혀지는 진실로 인한 재미가 쏠쏠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연. 현대사회의 병폐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슬프게 묘사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진정성의 힘이 있다. 읽는 분들의 재미를 위해 구체적인 예를 들기는 어렵지만, 사연 하나하나가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각각의 사연마다 나랑 연관이 있었지만, 특히 인혜의 사연이 가장 가슴아팠다. 다른 사연에 비해 인혜의 경우는 선택을 강요당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극복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으나, 인혜의 경우는 극단적인 경우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갔고, 결국 벽에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들과 비슷한 나의 어두운 욕망에, 그리고 그 욕망을 긍정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불만이 생기면서도, 한편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내 자신의 좋은 면과 주위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도 이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이들과 같은 길을 택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다듬어진 글솜씨를 바탕으로 한 세련미라고 할 수 있겠다. 경천동지할 반전이나 독창성을 기대하고 읽으시려는 분께는 권해드리고 싶지 않다. 아 작품은 결코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가 아니다. 세련된 기성품이다. 여름이 지나고 스산해지는 가을에 이프를 읽는다면 내 주변, 아니 내 자신 속에 있는 이프에 대한 욕망을 느끼며, 이를 어둡고 맛깔나게 풀어낸 이종호의 솜씨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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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10-2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또 질러야 하나...ㅜ.ㅜ

상복의랑데뷰 2006-10-27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비연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 뚜렷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에 못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 감히 추천드리고 싶네요.
 
달밤 해방 전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방란장 주인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6
이태준.박태원 지음, 최원식 외 엮음 / 창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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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에, 이태준, 박태원 등은 복권이 되지 않던 작가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정지용과 같은 납북작가들은 복권이 되었었고, 임화, 이태준 등 자진월북작가-납북이냐 월북이냐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사람의 속마음까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들은 복권이 안된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소개가 안되어 있거나, 이XX, 임O등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한편으로 호기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당시에는 구할 방법도 없었고 대입준비로 그냥 잊혀졌다. 한참 뒤에 이들이 복권되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알라딘의 호의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편견이란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게 모르게 월북작가라고 하면, 카프나 최서해의 '홍염' 등을 떠올리게 되는 나로써는 이태준의 엄청난 서정성과 박태원의 냉철한 현실인식에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다. '홍염'이 별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Misdirection이었다. 별세계가 펼쳐진 느낌이었다. 

특히 이태준이 그러하였다. 박태원의 경우 <갑오농민전쟁>이나 <천편 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작품은 내가 존경하는 최인훈 선생도 같은 제목의 소설을 쓴 적이 있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놀람의 강도가 덜했으나, 이태준은 영 의외였다. 멋진 혁명가를 기대했는데,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로맨티스트를 만났다고 할까.

그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국사회는 격변기의 연속이었다. (써놓고 보니 죽은 뒤에도 한국현대사는 격변의 연속이긴 하다.) 그 속에서 시류를 타고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흐름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했을 것이다. 권두를 여는 <달밤>부터 이태준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우리 윗대의 일상을 따스하게 묘사하면서,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넉넉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구시대의 인물이건(복덕방), 순박한 시골 사람이건(달밤), 좌절한 지식인이건(패강랭)이건 말이다. 특히 <패강랭>은 백미였다.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연가로 귀결되면서도, 결국에는 시대의 좌절과 아픔을 온전히 담아낸다는 점에서 감탄하고 말았다.

따뜻한 감상주의가 이태준의 최대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격변의 시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써는 최대의 약점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인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었을테니까. <농군>이나 <해방전후> 두 작품의 이유 모를 어색함도 '따뜻함'이 사라져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 자기고백적인 성격이 강한 <해방전후>는 자기변명적인 색채가 더해져서 불편했고...만약. 나도 앞의 네 작품을 읽지 않았다면, 별 의심없이 괜찮다고 생각했음직한데, 앞의 단편을 읽고 나서 보면 왠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어색함이 결국 이태준을 숙청의 길로 몰고간게 아닐까 하는 섬찟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이태준이 초기에 보여준 서정성의 강렬함이 대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태준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박태원의 경우에는 이태준과는 반대로 냉철한 현실인식을 맛보았다고 할까. 이태준은 특유의 서정으로 현실의 참혹함마저도 덮는 느낌인데 반해, 박태원의 경우 서정의 밑바닥에도 현실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경우, 세태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구보씨 속의 사고의 흐름은 상당히 의식적이고, 현실에 대한 절망섞인 의분이 공감을 산다고 해야할까. 구보는 겉으로는 좌절한 지식인처럼 보이지만, 그 여백사이사이에는 자신의 시대를 기다리며 절차탁마하는 한신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찌보면, 지식인의 몽상일수도 있지만, 별다른 서사없이 현실의 풍경을 조합해낸 결과물치고는 날카롭고 예리하다.  

다른 작품인,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방란장 주인>이나 현실참여적인 성격이 강한 <춘보>같은 작품을 보면, 앞서 발한 한신의 느낌이 강하게 온다. 이태준의 느낌이 취선의 일필휘지라면, 박태원은 세공사의 공예품 같은 느낌이랄까. 그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자기단련으로 인해 월북 후에도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작품을 남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정치적으로도 살아남은 것 같고...

한 작가만으로도 벅찬데, 두 작가를 이야기하려니 힘들다. 그러나 서평단에 선정된 보람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 오랫만에 고전의 힘을 느꼈다고나 할까. 창비에서 현대어로 손을 본 탓도 있겠지만, 지금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느낌이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요즘 작가군에 대해 실망이 크거나 편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추신) 권말의 <이메일 해설>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 자체의 수준도 마음에 들어서, 다른 작가의 책도 사봄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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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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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님이 주셔서 읽게 된 책. 다치나바 다카시는 유명한 저널리스트라는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 사람의 도서관이 특이하다는 것 정도? 책을 받은 김에 출간한 책들의 제목을 보니, 자신의 단련을 위해 노력도 많이 하는 만큼 뒷세대에 대한 불만도 많아 보이는 저널리스트로 느껴졌다.

인터뷰집이라 아쉽게도 저자의 개성이 직설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작가 소개에서 보여지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나 독설, 그리고 기행에도 불구하고 다치나바 다카시 본인은 어쩔 수 없이 앞세대일 수 밖에 없구나라는 씁슬한 생각도 들기도 했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장인의 냄새를 폴폴 풍긴다는 점, 그리고 세계 최고를 직간접적으로 운운한다는 점에서 앞세대의 향기를 느꼈다면 거짓말일까? 솔직히 불편함을 느끼면서 읽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장인들이 많아서 좋겠다! 흥~해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에는 크게 불만이 없다. 개인의 성공스토리라는 것이 일정 부분 상투적이긴 하지만, 진실의 힘이 있다.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앞에 3자를 달고도 아직 표류중인 나에게는 부끄럽기도 했고...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책의 내용이 과연 청춘'표'류인가? 표류라는건 어디까지나 방황하면서 정처없이 헤매야 하는 것 아닌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사회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을 뿐, 자신이 가야할 길을 일찌기 알았고, 이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온 사람들에게 표류라고 명명하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오히려 난, 보통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청춘본류와 다른 청춘'지'류나 대안청춘이 맞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들은 보통사람이 생각하는 커리어 패스-대학에 진학해서 무난한 직장을 구하고,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한 가지 무서운 깨달음을 주었다.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간과하기 쉬운 것은 이 주인공들이 노력만 한게 아니라, 노력을 뒷받침해주는 재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책에 등장한 사람들의 직업에 뛰어든다면, 그들의 몇배 이상의 노력을 한들 성공할 수 있을까? 자신있게 이야기하는데 불가능하다. 그들은 해당 분야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올라올 수 있었던 사실을 놓칠 뻔 했다. 결국 문제는 노력이 아니라 재능이 아닐까. 노력만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자꾸 멤돈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안타까울지언정 먹고사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을지 모르나, 노력하는 둔재는 먹고사는것도 어려운게 작금의 현실인데, 결국 노력을 안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엇에 재능이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되어 버린다. 암울한 것은 아무도 그것을 알려주지 못할 뿐더러, 누군가는 그것을 일찌기 깨닫고 지금까지 노력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책 내용만 놓고 보자면 높은 평가를 주기 힘들지만, 정신이 번쩍들게 만들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별 하나를 추가했다. 노력만으로는 힘들다.   

 추신) 하이드님,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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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9-0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나바 다카시, 너무 잘나서, 불편하죠. 특히 이 책.
제 리뷰도 보시면, 투덜투덜입니다. ^^

상복의랑데뷰 2006-09-08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의 멋진 리뷰는 책 보고 읽었는데, 역시 리뷰를 잘 쓰십니다. 덕분에 좋은 책 읽었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하이드님께 품앗이 하겠습니다. ^^; 솔직히 선정자들을 보니, 청춘을 낭비한 사람은 거의 없더군요. 다만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거부했을 뿐...^^; 그리고 같은 길에서 좌절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라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합니다.

비로그인 2006-09-08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쓰윽, 흩어보고서는 앵그리 영 맨, 혹은 하루키를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내용인가 봅니다.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오히려 신선했어요. 모든 것을 노력의 부재 혹은 잘못된 노력 탓으로 돌리는 처사가 얼마나 빈번한가요.

상복의랑데뷰 2006-09-12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이 늦었습니다. ^^; 예전에는 노력만 하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에는 노력은 기본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 탓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