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5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원래도 편식이 심한 편이지만 최근에는 추리소설 내지는 일본소설만 읽는 것 같아서, 이종호의 이프를 읽었다. 이종호는 한국공포문학계의 선두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준높은 작품을을 꾸준히 발표하는 작가로 알고 있다. 이영도와 같은 위상이라고 해야할까?

이 작품 이프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소시민들의 그릇된 그러나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딸에게 벌어진 사건 때문에 가슴 속 깊숙히 상처를 안고 있는 신문기자 도엽이 우연한 기회에 목격하게 된 자살사건에 의혹을 품고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물론 공포소설을 표방한 작품인 만큼, 그 진실은...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장르문학 내에서 간만에 '프로 작가'의 냄새가 나는 작품을 읽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리뷰를 보면 뻔하다, 실망스럽다라는 의견도 상당수 있는데, 나도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렇지만, 다 인정하더라도 이 점만큼은 정말 높이 사고 싶다. 양적인 성장에 비해 질적인 성장이 더뎌지는 듯한 한국무협이나, 양적인 성장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한국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들을 이 작품은 채워주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종호가 차용하고 있는 구조나 트릭은 다른 리뷰어들이 언급한, 몇 편의 영화의 그것들을 재구축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창적인 내용을 어설프게 그려내는 작품이 독창성 때문에 최소한의 인정을 받는다면, 반대로 상투적인 내용을 설득력있게 그려내는 것도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프가 그러하다. 이종호는 주제의 상투성을 일정 수준 극복하고 있다. 초반부의 난삽함을 극복한다면, 서스펜스의 본령에 충실한 듯한 전개와 다듬어진 문체, 그리고 재미 모두에서 말이다. 그리고 작가가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는 문제의식이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는데, 김진명처럼 소설 따로 개똥철학 따로의 장광설도 없다. 비교적 충실하게 사전 조사도 한 것 같고. 이를 바탕으로 작가 고유의 주제의식을 내용과 겉돌지 않게 소화해낸 솜씨는 감탄할만하다.

한편으로는 상당히 서글픈 이야기이다. 작가라면 갖추어야 할 당연한 것들을 갖추지 못한 졸작이나 습작류가 버젓히 출간되는 상황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보여줬다는 것 자체가 칭찬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말이다. 마치 배우가 특정한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서, 엄청 고생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또한 이 작품은 반복되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서술구조의 배치와 계단을 올라가듯 증폭되는 공포와 밝혀지는 진실로 인한 재미가 쏠쏠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연. 현대사회의 병폐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슬프게 묘사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진정성의 힘이 있다. 읽는 분들의 재미를 위해 구체적인 예를 들기는 어렵지만, 사연 하나하나가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각각의 사연마다 나랑 연관이 있었지만, 특히 인혜의 사연이 가장 가슴아팠다. 다른 사연에 비해 인혜의 경우는 선택을 강요당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극복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으나, 인혜의 경우는 극단적인 경우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갔고, 결국 벽에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들과 비슷한 나의 어두운 욕망에, 그리고 그 욕망을 긍정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불만이 생기면서도, 한편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내 자신의 좋은 면과 주위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도 이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이들과 같은 길을 택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다듬어진 글솜씨를 바탕으로 한 세련미라고 할 수 있겠다. 경천동지할 반전이나 독창성을 기대하고 읽으시려는 분께는 권해드리고 싶지 않다. 아 작품은 결코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가 아니다. 세련된 기성품이다. 여름이 지나고 스산해지는 가을에 이프를 읽는다면 내 주변, 아니 내 자신 속에 있는 이프에 대한 욕망을 느끼며, 이를 어둡고 맛깔나게 풀어낸 이종호의 솜씨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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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10-2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또 질러야 하나...ㅜ.ㅜ

상복의랑데뷰 2006-10-27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비연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 뚜렷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에 못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 감히 추천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