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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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씨발 정신이 없다.

니는 너무 멋있으려고 한다. 건달은 멋으로 사는 거 아니다. 의리? 좆까지 마라. 인간이란 게 그리 훌륭하지 않다. 별로 훌륭하지 않은 게 훌륭하게 살려니까 인생이 이리 고달픈 거다. 니가 진짜 동생들이 걱정되면 손에 현찰을 쥐여줘라. 우리처럼 가진 게 없는 놈들은 씨발 정신이 있어야 한다. 세상은 멋있는 놈이 이기는 게 아니고 씨발놈이 이기는 거다. 그래야 입에 풀칠이라도 한단 말이다.(305)

 

부산이 배경인 소설.

'짜달시리' 같은 말은 경상도 사람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말일 듯.

송도 앞바다(암남동)를 '구암'이란 지명으로 만들었고,

아미동, 완월동 등의 이름 속에서 건달들의 삶과 검은 세계가 펼쳐진다.

황정은의 '씨발됨' 이후에, '씨발 정신'까지 등장한다.

 

나는 내가 안 부끄럽다. 나는 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열심히 살았다. 그럼 뭘 팔아서 그 어린 나이에 일곱이나 되는 동생을 먹여 살리는데?(326)

 

문씨 아저씨가 공구로 철근을 구부리고 망치로 때려서 장미 문양을 만들었다.

가시가 너무 뽀족해서 도둑이 다치겠는데요?

창살은 원래 그러라고 만드는 거다.

그럼 장미 문양은 왜 넣는데요?

, 도둑만 사는 세상은 아니니까.(297)

 

이런 정신이 씨발 정신일까?

 

건달의 삶이란 결국 열심히 죽을 쑤어 개 좋은 일을 하는 거(257)

 

막 던지다 보면 말들은 엉키는 법.

인숙도 희수도 그런 엉킴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기에는 삶이 너무 고단했고 지저분했고 복잡했다.(184)

 

양동에게 건달은 가오였다.

건달은 가오가 상하면 그날로 건달짓 그만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102)

 

희수라는 주인공 건달은 가오의 표상이다.

멋진 건달이다. 양아치와 구별되려 무지 애쓴다.

하지만, 그 가오는 언제고 구겨지게 되어있고,

뜨거운 피는 식는 날이 오게 마련이다. 

 

달콤하고 쉬운 것에는 모두 독이 있는 법이다.

돼지를 배불리 먹이는 것이 돼지가 예뻐서가 아니듯.(93)

생활이란 이상한 것이다. 빚이 빚을 부르고 빚이 굴러서 더 큰 빚을 부른다.(361)  

건달에게 큰돈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삶이 더 위험해졌다는 뜻.(365)  

달달하고 맛있는 것에는 항상 독이 들어 있다.(413)

 

삶은 이렇게 팍팍하다.

힘든 생활, 가난은 대물림되기 쉽다.

그 고리를 끊으려면 특별한 노력 내지는 운이 있어야 한다.

  

햇빛에 반사된 물고기 비늘이 사금처럼 반짝거렸다.

살아보겠다고, 그저 한번 살아보겠다고 펄떡펄떡 뛰는 것들은 언제나 저렇게 싱싱하고 반짝거린다.(96)

 

예쁜 문장들도 있고,

'후까시' 잡는 건달들도 멋진데, 그 삶은 참 구질구질하다.

 

욕은 정배가 듣고, 원한은 희수에게 오고, 돈은 노인들에게 간다.

예전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는데 마흔이 넘으니까 그런 게 보인다.

예전에는 이 일이고 저 일이고 힘든 줄도 모르고 했는데 막상 보이기 시작하니까 힘들어진다.(341)

 

아랫사람들이 보기에는 저런 쓰레기가 어떻게 승승장구하는지 궁금하겠지만 윗사람들이 보기에는 얄밉고 치사한 일들을 처리해주는 정배처럼 귀여운 놈도 없다.(342)

정배는 진정한 개자슥이지, 그러니까 어디 쓸데가 있을 거다.(586)

 

재미있는 소설이고, 흥미진진 책을 잡고 뒹굴게 만드는 소설이다.

다만, 요즘 깡패들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그들의 세계가 대한민궁의 표준인듯 싶어 좀 씁쓸하긴 하다.

깡패 영화 말고는 재밌는 영화가 별로 없으니...

가끔 반공 영화는 짜증나고, 친일파 영화는 더 열받느니...

 

아버지란 좆같은 것이다. 원래부터 좆같았거나 아님 아버지가 되면서 서서히 좆같아졌거나. 문밖에는 칼바람이 불고 무서운 승냥이 떼가 돌아다닌다. 아버지는 힘이 하나도 없는데, 애기들은 계속 앵앵거린다. (576)

 

사업은 원래 구질구질한 거다. 인생도 마찬가지고. 원래 구질구질한 것은 구질구질하게 처리해야지 그걸 깔끔하게 하려고 하면 다 돈으로 처발라야 한다.(401)

 

삶이 슬프다는 것을 마흔이 넘으면 알게 된다.

불혹은 어쩌면,

어떤 것에도 재미가 없어지는, 부록같은 나이인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면 빗소리 들으면서

그렇다고 축축하고 꿉꿉한 분위기 마르도록 고기라도 구워서

한잔 하면서 한 가을 또 넘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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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9-2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놀래서 들어왔어요ㅎㅎ불혹에 대한 내용 심히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