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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를 찾아라
배혜경 지음 / 수필세계 / 2015년 11월
평점 :
앵두는 여간내기가 아니다.
이름만큼 하는 짓도 발랄하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친구들보다 행동반경도 크다.
동서남북 재바르게 구석구석 들쑤시며 다닌다.
앵두는 신명나는 세상을 산다.
풍물가락에 맞추어 그려내는 곡선이 내겐 생의 마땅한 우회로로 보인다.
앵두의 초롱초롱한 눈은 세상의 어느 한 구석도 놓치지 않는다.
앵두는 진정한 웰빙족이다.
밤이 되면 아직 놀고 있는 친구들과 조용히 거리를 두고 홀로 잠을 청한다.
고독은 즐길 만한 값진 정서가 아닌가.
아침이면 친구들은 자고 있어도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다.
먹는 것에는 그리 매달리지 않는다.
소식으로 만족하고 경쾌하게 꼬리를 돌려 미끄러져 간다.
그래서인지 앵두는 친구들에 비해 몸집이 크게 불어나지 않고 건강하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본능적인 욕구에 집착하지 않고 과욕하지 않기란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는 비결이다.
자유롭지 않음은 아직 버리지 않은 게 많다는 말이다.(67)
앵두는 플래티라는 물고기 이름이다.
이 물고기와 작가는 남이 아니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글들로 가득한데,
오래 매만진 외할머니네 윤기나는 툇마루처럼 그이 글은 반들거린다.
험한 세상에 수필은 자칫 시평으로 번지기 쉽다.
그는 애써 세상에 대한 뉴스는 다루지 않는다.
앵두처럼 어항 속에서 발랄함을 누린다.
입 안에 물기가 번지며 눈이 열리고 엎드려 있던 감각들이 일렬종대로 일어선다.(44)
그의 말들은 반들거린다.
구하지 않으니 행복이라는 말도 없고
내치지 않으니 불행이라는 말도 없다.(무비 스님의 신심명 강의 중, 서문)
모든 것이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강의와 달리,
그의 글에는 짠한 마음결이 그대로 묻어난다.
난 시장 이층집 옥상에서 바라본 놀보다 더 멋진 풍경은 본 적이 없어.(50)
이런 마음결을 채집할 줄 아는 사람이라니...
무릇 일은 느닷없이 일어나 휘몰아치듯 덮치곤 한다.(54)
이렇게 글을 시작할 줄 아는 솜씨는 굉장하다.
백일장에서 상깨나 탔을 솜씨다.
몸피를 키운 해가 제 목구멍을 힘겹게 넘어가고 있다.
세월을 먹는다는 것은 뜨거운 불덩이 하나 꿀꺽 삼키는 일.(126)
소설가 박상륭은 아름다움의 어원을 '앓음다움'에서 찾았다.
앓음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애쓰는 상태를 말하고
괴로움과 고통을 견디고 인내하는 마음의 작용이다.(143)
나이의 몸피만큼이나 언어의 깊이도 폭넓어지는 느낌이다.
세상을 늘 똘방똘방 응시해야 하는 앵두같은 눈길이 느껴진다.
영화를 몇 번 보았을 듯 싶은 감상문이나,
문학 기행 후기도 수십 번 되썼을 근기가 느껴진다.
부럽다. 한편...
글솜씨와 함께, 그렇게 글에 홈빡 빠질 근기가 부럽다.
허나, 그런 건 부러워한다고 이르기 힘든 경지이니...
앞으로도 프레이야 님의 건필을 빈다.
고칠 곳 두어 군데...
이병주 문학관을 '젠 스타일'이라 했는데 한자를 '仙'으로 썼다.
일본어 '젠'은 禪을 일본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해설에서 박상륭을 박상률로 잘못 쓴 것도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