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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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벗어 팽개치듯 '에이 시브럴-'

자갈밭 막 굴러온 개털 인생처럼

다소 고독하게 가래침 돋워

입도 개운합지 '에이 시브럴-'

쓸만한 말들이야 줄을 섰지만

그래도 그중 인간미가 있기로는

나직하게 피리부는 '에이 시브럴-'

(존재의 초월이랄까 무슨 대해방 비슷한 게 거기 좀 있다니깐)

얼토당토 않은 '에이 시브럴-' (에이 시브럴, 부분)

 

작년 2월에 월급 50만원 받았다.

올해는 어쩌면... 못받고, 3월까지 내야할지도 모르겠다. 에이 시브럴-

 

이 시집을 읽으면서 킬킬거리고,

주억거리다 눈물도 핑 돌고...

그러면서도 당나귀를 기다렸다.

김사인의 곁에서 비비적거리는 어린 당나귀가 등장하기를...

그런데... 당나귀는 '시인의 말'에서야 등장했다.

 

어린 당나귀가 있고 나는 그 곁에 있습니다.

나는 어쩌다가 고집 세고 욕심 많은 이놈과 있게 되었나요.

곁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서로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요.

언젠가 그를 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예감이 몹시도 슬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곁에 있다는 것에 오늘 나는 이토록 사무쳐 있습니다.

독한 술을 들이켜고 한숨 잘 잤으면 싶습니다.

아침이면 어디로 떠나고 없기를 바랍니다. 어미에게 갔건 바람이 났건.

그러나 아마 그런 기특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어느날 갑자기 새날이 오리라고 바라지 않습니다.

가는 데까지 배밀이로 나아갈 뿐입니다.

지렁이처럼.

욕될 것도 자랑일 것도 더이상 없습니다.

내게도 당나귀에게도.

모과나무 너머 파란 하늘이 고요하고 귀합니다.

숨을 조용히 쉽니다.

손발의 힘도 빼고 가만히 있습니다.(157, 시인의 말)

 

시집 읽으며 욕도 하고, 그이의 말을 조곤히 듣노라니... 분이 가라앉는다.

 

네 개의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길을(달팽이, 부분)

 

우리는 생로병사의 구조가 순환할수록 단정으로 아름다움의 슬픈 깊이를 더해가는

희귀한 현대 시집을 한 권 얻었다.(뒤표지, 김정환의 발문)

 

이 시집은 '죽음'에 다가서는 슬픔과 서러움을 품고 있으나,

그 슬픔은 초혼의 번개표 찌르르한 가슴 찌름은 없고,

봉분마냥 둥글게 등뼈 궁글리고 엎드린 모습으로 다가온다.

 

내 안을 허락한다는 것.

너에게 내 몸을 열고 싶다는 것 내 혀와 이빨과 목구멍과 대장과

항문을 열어준다는 것 그렇게 음탕한 생각.

또한 지금의 내가 아니고 싶다는 것 지금의 죽음이고 싶은 것

다른 나이고 싶다는 것 사랑을 느낀다는 것.

너를 내 안에 넣고 싶다는 것 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

너이고 싶다는 생각 네가 아닌 나를 더는 견디지 않겠다는 의욕.

너를 먹네

...

몸 너머 영혼 속에까지 너를 들이고 싶은 것 네가 되겠다는 것 기어이

먹는다는 것은.(먹는다는 것, 부분)

 

재미있는 시다.

음탕하다고 스스로 킥킥거리면서,

사실은 사랑의 본질을 정확히 바라본다.

그리고, 사랑의 본질은 정확히 '먹는다는 것'과 중의적으로 겹친다는 것도...

 

 

  그냥 그 곁에만 있으믄 배고 안 고프고, 몇날을 나도 힘도

안 들고 잠도 안 오고 팔다리도 개쁜허요. 그저좋아 자꾸

콧노래가 난다요. 숟가락 건네주다 손만 한번 닿아도 온몸이

다 짜르르허요. 잘 있는 신발이라도 다시 놓아주고 싶고,

양말도 한번 더 빨아 놓고 싶고, 흐트러진 뒷머리칼 몇 올도

바로 해주고 싶어 애가 씌인다요. 거기가 고개를 숙이고만

가도, 뭔 일이 있는가 가슴이 철렁허요. 좀 웃는가 싶으면

세상이 봄날같이 환해져라우. 그길로 그만 죽어도 좋을 것

같어져라우. 남드 모르게 밥도 허고 빨래도 허고 절도 함시러.

이렇게 곁에서 한 세월 지났으믄 혀라우. (보살, 전문)

 

이 보살님은 엄마의 마음이기도 하고,

애인의 마음이기도 하고, 그야말로 해탈한 세상의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을 킥킥대며 음탕하게 바라본 '먹는다는 것'이나,

그야말로 오롯한 순정 그자체인 사랑인 '보살'이나,

나투신 모습은 다를지라도... 본질은 하나인 듯.

 

때가 되자

그는 가만히 곡기를 끊었다.

물만 조금씩 마시며 속을 비웠다.

깊은 묵상에 들었다.

불필요한 살들이 내리자

눈빛과 피부가 투명해졌다.

하루 한번 인적 드문 시간을 골라

천천히 집 주변을 걸었다.

가끔 한자리에 오래 서있기도 했다.

먼 데를 보는 듯 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듯 했다.

저녁볕 기우는 초겨울 날을 골라

고요히 몸을 벗었다 신음 한번 없이

갔다.

 

벗어둔 몸이 이미 정갈했으므로

아무것도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개의 몸으로 그는 세상을 다녀갔다.(좌탈, 전문)

 

읽으면서 스콧 니어링의 삶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행을 읽으면서, 짧게 감탄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부끄러웠다.

 

능소화빛 하늘

모랫길은 금빛

 

흔들흔들

거품을 흘리며

늙은 낙타는

집을 찾아가고

 

따라 흔들리며

어린 압둘은 눈을 빛낸다.

작은 손으로

저무는 모래산을 가리킨다.

 

아빠, 나는 저 산을 올라가보고 싶어요.

저 산도요

 

오냐,

오냐,

(총을 메고 아빠는...) (성 베두인, 전문)

 

차마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압도하는

마지막 행의 '총'

슬프다.

 

좋지 가을볕은

뽀뿌링 호청같이 깔깔하지.

가을볕은 차

젊은 나이에 혼자된 재종숙모 같지.

허전하고 한가하지.(가을날, 부분)

 

그이의 이번 시집은 많은 생각들이 엉클어져 있다.

가을볕이 깔깔하게 말린 뽀뿌링 호청처럼 산뜻한 시도 있고,

죽음 앞에서 경건하게 고개숙이게 하는 시도 있다.

 

읽는 사람의 마음이 여러 방향에서 각도를 맞출 수 있게

시인의 마음각이 여러 층을 드러낸다.

 

읽노라면...

끄덕이다 분노하고,

서러워 눈물짓다 피식 웃기도 하고,

마지못해 도리지 하기도,

좌절 앞에서 손을 잡기도,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당나귀처럼...

그것도 어린 당나귀처럼...

고집스럽게

또 이 삶을 건너가야 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지도 모른다.

읽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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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1-21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시브럴......험한 욕인데 왠지 프랑스어 느낌도 나네요.
연말정산 에잇~~~~ 시.....럴

글샘 2015-01-22 23:26   좋아요 1 | URL
불어 씩이나... 떠올리시다니요. ㅋ
연말정산은... 갈수록 태산입니다. ^^ 정말 욕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