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쿠라노소시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세이쇼나곤 지음, 정순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1세기니까, 천년 전 글이다.

일본의 헤이안 시대, 여방(궁중의 고급 상궁)이었던 세이쇼나곤의 글 모음.

 

베개(마쿠라)의 책(소시)니깐, 베갯머리 서책~ 인데,

진지하게 책상에서 쓰는 문장이 아니라, 베갯머리에서 자유롭게 쓴 수필이라 보면 된다.

 

'오카시'는 지적인 흥미를 일으키는 감각적, 직관적 정취다.

흔히 <겐지이야기>의 '모노노 아와레(아와레)'가 흥취가 있다, 흥미가 끌린다는 의미인데,

'오카시'는 지적으로 대상화하여 관조하는 미의식이라고 한다.

 

즉, 오카시는 외부 세계와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 숨겨진 미를 발견할 때 느끼는 지적인 흥미나 유쾌한 흥분을,

'아와레'는 자연미나 인간존재에 대한 성찰, 심미적 이해를 드러낸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가을바람에 떨어져 흩어지는 낙엽을 보고 우리도 언젠가는 가벼운 낙엽이 될 것을 생각하며 비애와 우수에 잠긴다면 '모노노 아와레' 정취고,

그 낙엽을 보고 가볍게 춤추는 나뭇잎의 향연에 경쾌한 리듬을 느끼며 대롱대롱 매달린 낙엽부터 바닥에 뒹구는 낙엽까지 그 다양한 모양과 크기에 경탄한다면 '오카시' 정취가 된다.(23)

 

그래서 '오카시'로 가득한 이 책은 '유취적' 취미로 가득하다.

'유취'는 백과사전처럼 비슷한 어떤 분류를 모으는 작업을 뜻하는데,

이 책에선 '얄미운 것, 가슴두근거리는 것, 어울리지 않는 것, 정반대인 것, 흔치 않은 것, 낯간지러운 것, 꼴보기 싫은 것, 그윽한 멋이 풍기는 것, 기쁜 것'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그런 방식을 활용한다.

 

어떤 생각을 풀어내기 좋은 방식인데, 글의 흐름에 단출하면서도 맛깔스럽다.

 

모노가타리나 노래집을 필사할 때 원본에 먹물을 묻히지 않는 사람,

좋은 책일수록 신경 서서 옮겨 쓰는데 꼭 더렵히게 된다.

남녀관계뿐만 아니라 여자끼리라도 변치 말자고 굳게 약속한 사람이 끝까지 사이가 좋은 경우도 드문 일이다.(100)

 

이런 식으로 글이 부담없으면서 마음에 흐뭇한 정취를 얻게 되는 수필 서술 방식이다.

 

인간의 본능과 연관된 일, 또는 남녀 사이의 일을 쓰는 일을 점잖치 못하게 여기던 문화에서,

이런 솔직 담백한 글이 풍기는 맛은 새로운 상큼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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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0-19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이군요. 베갯머리에서 자유롭게 쓴 수필이라 보면 된다는 거죠?
이번 해에 구입한 책 대부분이 에세이입니다. 이런 쪽에 끌리는 모양이에요. ㅋ

그 낙엽을 보고 가볍게 춤추는 나뭇잎의 향연에 경쾌한 리듬을 느끼며 대롱대롱 매달린 낙엽부터 바닥에 뒹구는 낙엽까지 그 다양한 모양과 크기에 경탄한다면 '오카시' 정취가 된다.(23)

으음~~ 저도 읽고 감상해 보겠습니다. ^^

글샘 2012-10-20 21:04   좋아요 0 | URL
수필이란 게 그렇잖아요.
평이한 이야길 하는데 그걸 읽는 사람에 따라서 그래~ 이거야! 이런 걸 느낄 수 있죠.
페크 님께서 그런 걸 느끼실 거 같아서 읽어보시길 권한거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