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3=3 
내일이면 드디어 올해 수능날이구나.
한국이란 특수한 사회에서 가정과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로 들어가는 가장 큰 관문이란다. 

민우가 다음 차례인 건 알고 있겠지?
공부는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게 아니야.
제일 중요한 건,
공부를 왜 하는지... 그걸 아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려고 공부하는 것.
좋은 대학을 가서 돈을 남들보다 많이 벌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은 필요하기도 하지만, 욕심이 지나치면 끝이 없는 것이란다.
민우가 네 앞길을 즐겁게 살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필요하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경험을 얻는 것도 중요한 것 같거든. 

아빠가 수능 준비로 바쁘다 보니 며칠 쉬었구나.
오늘부터 며칠간은 '김수영, 신동엽'과 같은 1960년대 '독재에 저항한 시인'들과
'신경림'처럼 민중의 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 시인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 시인들은 서로 뒤섞이면서 설명하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우선 김수영의 '풀'을 한번 읽어 보자.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풀)

 

아주 유명한 시다.
간단한 3연의 시이고, <풀과 바람>의 대결을 보여주는 시다.
바람(동풍)은 당연히 억압하는 세력이고,
풀(풀뿌리)은 당연히 억압당하는 민중을 상징하는 시다. 
바람의 억압과 풀의 수난이 계속 <반복>되는 표현을 쓰고 있지. 

이 시에서 <풀>과 <바람> 중에서 더 능동적인 존재는 누구일까?
즉, 시적 화자가 <주인공>으로 상정한 것은 풀일까? 바람일까? 

그것은 이 시의 동사를 보면 일 수 있단다.

눕는다 - 운다 - 일어난다 - 웃는다 

이 시의 <풀>은 이런 네 가지 서술어로 상황을 그려내고 있지.
곧, 바람의 억압에 눌려 <눕는> 상황,
그래서 고통스럽게 <우는> 상황.
그러나 거기서 꺽이고 마는 풀이 아니라, 굳세게 의지를 가지고 <일어나는> 상황과
마침내 승리하고 <웃는> 상황까지 상징하려 한 시겠지. 

1961년 군사 쿠데타로 독재를 시작한 박정희 군사 정권의 억압은 무서운 것이었단다.
그 아래 짓밟힌 민중의 <생명력>을 드러내려고 한 시가 이 '풀'이란 시야.
군사 독재에 반항하는 시를 쓸 수 있었던 시인은 소수였단다.
대부분의 문인들은 <순수>한 글을 쓰겠다고 하면서 도피하고 말았지만,
몇몇 시인들은 현실에 <참여>하는 시를 썼지.
(현실 참여를 영어로 engagement라고 하고 불어로는 앙가주망이라고 읽는단다.) 

물론 군사 독재 정권은 이런 <참여 시인>들을 억압했지만...
문인들 중에서도 큰 상을 주고 유명한 언론사에 글을 싣는 사람들은 역시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쪽이었다.
<참여>시인들은 몇몇 잡지들에 글을 싣곤 했지.
전쟁 이후의 어두운 한국 현대사가 시 안에도 가득 들어있단다.
그 어둡던 시대, 그래도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했던 시인, 그의 눈빛은 참으로 형형했지.
이 시에서 생명의 <끈질김>을 가장 강조한 시어가 뭐였을까?
바로 <풀뿌리>야.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였을까...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楕)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 폭포) 

앞의 시 '풀'이 민중의 생명력과 저항을 그린 시라면,
이 시 '폭포'는 민중보다는 <곧은 정신>을 가진 '지식인'을 그린 시에 가깝겠구나. 

이 시에서도 '떨어진다'는 표현이 계속 반복되고 있지.
지식인은 <줄기차게>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는 강조겠지? 

<순수>란 이름으로 <소심한 지식인>의 굴레에 갇혀있던 사람들에게 큰 울림은 준 시겠지.
<저항>하지 않고 <소시민적>으로 살아가면 평화롭게 먹고사는 나날을 유지할 수 있지만,
독재 정권에 맞서는 순간,
큰 수레바퀴에 맞서려는 사마귀처럼(한자로 이런 걸 '당랑거철'이라고 하지) 박살나기 쉬웠다. 

그렇지만, 폭포처럼...
그 높은 데서 떨어져서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르짖는 <곧은 소리>의 중요함을 시인은 알았다. 
나쁜 놈들은 상대가 <무서워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지.
그렇지만, 약한 상대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저항>하면 강한자도 두려울 수밖에 없단다. 

2연의 <고매한 정신>이 그런 <저항의 정신>이겠다.
3연의 <밤>은 <독재 시대, 어두운 시대>의 상징이겠지?
4연에서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 지식인의 외침은 다른 사람들도 '곧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이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는 말이지.

독재 시대일수록 권력에 아부하면서 세상을 왜곡하는(곡학아세) 지식인들은 높은 자리까지 오르기 쉬웠단다.
그래서 <나태(게으름)>해지고, 안정을 추구하면서 살 수도 있었지.
그렇지만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나타와 안정을 뒤집>고 사는 것이라고 시인은 외치고 있단다.
그 높은 곳에서 두려움없이 아래를 향하여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보고 말이야.
<폭포>와 <지식인> 사이의 유사점이 떠오르지? 그런 것을 <은유>라고 그래.
지식인은 폭포와도 같다... 이런 것.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이 시도 역시 '참여' 시인으로 불리는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다.
이 시에서도 반복법이 등장하지?
강렬하게 바라는 마음이 강조되는 수법이란다. 반복법. 

껍데기는 뭐고 알맹이는 뭘까?
아까 이야기한 대로, 이승만의 독재, 박정희의 독재, 전쟁과 분단, 외세의 정치 개입, 정치적 혼란...
이런 부정적인 사회적 상황들이 '껍데기'가 되겠지...
그럼 알맹이는?
독재가 아닌 '국민을 위한 공화국의 운영', 평화로운 나라, 외국 간섭없는 '자치적 국가', 정치적 안정... 이런 것. 

1연에서 '4월'을, 2연에서 '동학년 곰나루의 아우성'이 '알맹이'였단다.
4월 혁명(1960. 4.19)의 반독재, 민주 회복의 정신
동학 혁명(1894년)의 반외세, 반봉건, 인간 평등의 인내천 정신
양반이나 귀족만의 세상이 아니라 신분없이 계급없이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정신. 

원시 시대처럼 '문명'과 '문화'의 이름을 걸치지 않은
순수한 남녀가 결혼식을 올리듯,
<국가>나 <이념>의 이름으로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그런 껍데기를 벗어 버리자는 정신.
너희 나라, 우리 나라, 이렇게 편가르지 말고,
자본주의, 공산주의 이렇게 나뉘지도 말고,
<중립>의 초례청에서 맞절하는 신랑신부처럼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기를 바르는 마음. 

그 강렬한 마음이 마지막에서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길게 늘이고 있지! 강조!! 

4. 19는 그렇게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 잠시 승리했던 <뜨거운 첫 키스>의 추억과도 같은 것이었단다.
4. 19때 초등학생이 쓴 시가 있다. 한 번 읽어 보렴.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서을 수송국민학교 제4학년 5반 강 명 희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 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 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 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 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 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 먹고
저녁도 안 먹고
말 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 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초등학생도 마음 아프게 세상을 노래하던 무서운 시대였지.
그러니 <폭포>처럼 목소리를 내야 했던 지식인도 억압을 받았고,
<풀>은 바람에 짓눌릴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단다. 

4.19는 계속되던 이승만의 횡포를 참지 못하고 1960년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독재의 종식을 요구하던 혁명이었다.
마산에서 고등학교 1학년 고 김주열 군의 눈에 최루탄이 박힌채 시신이 떠오른 이후
전국적으로 더 번져갔던 혁명은 4.26 이승만의 도망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라던 좋은 세상이 오기엔 아직도 세상이 어두웠단다. 

전에 유치환의 <깃발>을 하면서 '달려갈 수 없는 마음'을 깃발에 비유했다고 했지?
유치환이 좋아했던 시조시인 이영도의 '진달래' 역시
4. 19에 희생되었던 학생들, 젊은이들에 대한 추모 시였단다. 한번 읽어 보렴.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진달래, 이영도) 

 

좋은 세상은 그냥 오지 않는단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와도 같다는 말이 있어.
고 노무현 대통령 묘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는구나.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왜 국민이라고 안 하고 시민이라고 했을까?
국민은 또 너희나라, 우리나라 하고 싸우는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민은... 평범한 민중을 표현한 말인 것 같아.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사람'들이 풀뿌리처럼 굳세게 저항하고 싸워야 지켜낼 수 있는 것이란다. 

내일은 수능날이라 글쓸 시간이 없을 것 같고, 모레쯤 시간 내서 다시 김수영과 신동엽 2탄을 이야기할게.
날이 차다.
건강 조심하고,
귀한 휴일에 공부를 왜하는지 곰곰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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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1-18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들도 같은 2학년이라 주시는 말씀을 먹게 해야겠어요.
술술 읽히고 공부도 잘 되네요. 고맙습니다~
하루 쉰다고 클림트의 500피스 퍼즐을 갖고 제방으로 들어갔어요.^^

글샘 2010-11-21 21:01   좋아요 0 | URL
우리 아들은 친구랑 찜질방 간다고 갔다더군여. ㅎㅎ

turk182s 2010-11-23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벌써 아드님이 고2신가요? 수험생 아들두신 기분이 좀 복잡미묘하시겠어요,,
전 아직 장가도 못가 앞으로도 자식둘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대입말고도 인생은 긴데..딱히 사회가 그 이후에 삶을 얘기해주지않아서 문제인것 같아요.

글샘 2010-11-24 21:05   좋아요 0 | URL
네. 헐~ 입니다. ^^
복잡하진 않습니다. 공부는 제가 하는 거니깐요. ㅎㅎ
그 이후의 삶은 그때 가봐야 아는 거구요.
제가 후회하지 않게 변명하려고 글을 남기는 겁니다.

반딧불이 2010-11-23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수영-신동엽-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의미있는 수업입니다. 글샘님께서는 수능때문에 바쁘신 동안 저는 하는일 없이 바빠서 공부가 많이 밀렸네요.

글샘 2010-11-24 21:05   좋아요 0 | URL
의미있는... 수업이라니 감사합니다.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그런 사람이 많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기르기 참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