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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뒤에 숨은 글 - 스스로를 향한 단상
김병익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월
평점 :
생각 뒤에 숨은 생각
말 뒤에 숨은 말
글 뒤에 숨은 글
책 뒤에 숨은 책
이 책의 목차를 조로록 적어 놓고 보자면...
김병익이란 사람이 그대로 드러난다.
생각이 가득하면서도 쉽게 표현하지 않을 것이고,
말 한 마디 하는 데도 곱씹고 또 곱씹어 본 연후에 말할 것이고,
글 뒤에 발표하지 못한 글이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그가 펼친 책의 행간에서 묻어나는 책에 대한 애정은 또 얼마만한 것인지...
나는 그가 국문학과 정도 나왔을 줄 알았다. 아니면 영문학도 정도... 불문과라도...
그런데 생뚱맞게 정치학과라니... 김병익처럼 정치적이지 않은 숨결을 가진 사람이...
그의 성향을 곰곰 읽노라면, 나와 흡사한 사람 하나를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무엇이든 강하게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을 보면 쉽게 믿음이 가지 않고,
어떤 이론이 쌈빡하니 정리가 확 되어 있는 듯 해도 뭔가 부족한 게 있을 거라 보면서 찜찜해 하는...
말도 잘 하지 않으면서 속으로 꿍꿍이는 또 많은...
그의 책을 읽으면서,
그처럼 보수주의자이고 꼼꼼한 학자 스타일의 책쟁이가 출판계에서 걸어온 길 안에도
휘청거리는 역사의 오후는 그림자를 가득 드리우고 있다.
물론 온건한 학자 스타일의
<문학과 지성사> 스러운 그에게 피비린내나는 과거가 얹혀있지는 않을 터이지만,
순한 필화의 현장에서 곡예운전으로 포탄의 구덩이를 벗어나듯 아슬아슬하기만 한 인생 역정이 잘 드러났다.
물론 그이는 아직 젊다. 38년 생이니 이제 70이 조금 넘었다.
그렇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성마저도 해체하려는 현대의 문학 풍조로서는
온건한 학자스타일의 김병익이 설자리를 선뜻 내줄 것인지는 희미한 전망이다.
그이의 글을 읽으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생각과 말과 글을 책읽는 것과 함께 게을리 하지 말 것.
또 한 생각도, 말 한 마디와 글 한 줄, 책 읽기도 서늘한 정신으로 해 나갈 것.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독서 속에서 글을 쓰고, 말을 다듬을 것.
이런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