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여성의 성욕 발달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썼던 간에, 그것이 그에게는 매우 난해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는 여성 성욕 발달에 관한 어떠한 질문도 다 파헤쳤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사실 사회적 규정들은 종종 여성의 공격적인 본능을 억압하고, 욕망의 대상들을 선택하는 일을 방해하는 등 여성을 수동적인 상황으로 몰고 간다. 그리하여 프로이트는 실제로 리비도는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여성성의 경우 ‘수동적 목적들’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리비도가 전적으로 남성적이라는 믿음으로 돌아올 것이다. - P63

이것은 리비도가 틀림없이 여성의 성 체계에서 더 많이 억압받으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신중하라는 충고, 이전 발표들의 수정 작업이 프로이트가 여성의 성적 진화를 규정하기도 하는 사회-경제적 문화적 규졍의 분석을 간과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또 ‘여성으로의 변화’에 관해 그의 학설과 그의 몇몇 제자들의 학설을 더욱더 요구하는 전적으로 남성적인 시각에 반기를 들면서 일어나는 분석자들의 연구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마지막 저작들에서 그는 여성의 성욕에 대해 남성적 변수를 덜 포함시키고 ‘페니스를 갖고 싶은 욕구’가 덜 지배적이라는 가설들을 완성시키려는 여러 시도에 대해 비호의적이었다. 아마도 그는 거기에서 자기 제자들에게 비난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쾌감과 더불어 자신이 규정했던 여성의 거세 콤플렉스가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을 보았을 것이다. - P65

어린 여자아이가 질을 ‘거부한다는 것’은 자기 성기에 관한 인식이 그 시기에 성립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것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로 입증될 것이다. (…) 카디너, 마가렛 미드, 루스 베니딕트와 같은 미국 사회학자와 인류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적 견해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다. 그 대신 신경증의 병인에 대해서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정상적’ 성욕의 완성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견해들을 비판하는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분석이 정신분석학적 견해들을 대치하거나 그것들과 결합한다. - P66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그녀에게 성기가 나타나기 이전 충동의 체계에서, 특히 구강 충동 체계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따뜻한 품’에서 떨어짐으로써 어머니에 대한 어린 소녀의 적개심이 생길 뿐 아니라 어머니와의 갈등 관계는 어머니가 오이디푸스적 욕망의 구강적 만족을 금지시킨다는 사실에 의해, 즉 아버지의 페니스를 흡수하는 것에 반대하는 어머니로 인해 더 악화된다. 여자아이의 오이디푸스적 성향은 자기에게 없는 성기를 아버지에게서 받기를 여자아이가 몹시 갈구하는 ‘거세 콤플렉스’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여자아이의 성적 욕망이 나타나는 초기 때부터 관계 있을 것이다. - P69

그에 따르면 몸 ‘안에’ 페니스를 간직하고, 그것을 아이로 변화시키기 위해 페니스를 흡수하고 삽입하고 싶은 여자아이의 욕망이 중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성교의 순간에 페니스를 즐기고 싶은 욕망이 중요해질 수 있다. 결국에는 남성의 성기를 음핵의 위치에, 음핵 대신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중요해질 수 있다. 소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전의 조직화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후의 단계에서 여자아이에게 나타나는 ‘페니스를 갖고 싶은 욕구’가 페니스를 누리려는 매우 특수한 여성적 욕망에 대해서는 부차적이고, 종종 방어적이라는 결론이 유도된다. - P73

끊임없이 발생하는 욕망의 요구와 만족 사이의 충돌은 남근의 작용을 마치 결핍의 기표인 양 유지한다. 이 결핍의 기표는 매우 성적인 애정과 만족을 추구하는 이중 층위에서 리비도의 교환 체계를 보장하고 규정한다. - P78

왜 여자는 남성이 지니는 혈통에 대한 욕망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를 떠나야만-‘증오’ 해야만-하고, 집을 버리고, 가정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을 버려야만 하는가? 왜 여자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들이 꼭 ‘남성적’ 욕망이라는 용어로, 동성애라는 용어로 사유되는가? - P82

이는 유일한 리비도의 우월성을 확신시키기 위함으로, 여자아이 자신은 자기의 초기 충동과 초기 집착이 강제로 억압당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녀의 리비도인가? 출산에서 남성과 여성의 각각의 역할들을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리비도는 여전히 남성-여성의 차이—거기서 심리적 색채를 끌어내게 된다—를 표시한다. 어떠한 관계 때문에 계속 이 수동성이 가학적 항문의 충동들, 남자에게는 허용되고 여자에게는 금지된 이 충동들에게 유지되는가? 그때부터 남성은 아이와 여성, 그리고 성기에 대한 유일한 소유자로 확인된다. 수태가 일어나게 되는 강간, 게다가 몇몇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해 여성적 쾌락의 충족으로 제시된 강간은 이러한 성관계의 유형이 된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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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성욕은 늘 남성적 기준들을 출발전으로 삼아 고려되어 왔다. 그리하여 ‘남성’ 음핵의 능동성/‘여성’ 질의 수동성의 대립, 프로이트-그리고 많은 이들-가 성적인 측면에서 ‘정상 여성으로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여러 단계들이나 대안들로 이야기하는 이 수동성의 대립은, 남성적 욕구의 실현에 의해 좀 지나치게 요구되는 것 같다. … 여성의 성감대는 중요한 남근과 비교될 수 없는 성기-음핵이거나 성교시 니스 주변을 감싸고 문지르는 구멍-덮개가 될 뿐이다. 즉 이것은 성기가 아니거나, 혹은 자기 성애를 위해 성기 자신의 주변을 감싸는 남자의 성기일 뿐이다. - P31

여자의 욕망은 남자와 동일한 언어로 말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스 시대 이후 서구를 지배하는 논리에 의해서 다시 감춰졌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 속에서 시선의 우월성, 형태 구별과 형태 개별화의 우월성은 특히 여성적 에로티시즘에 생소하다. 여성은 시선보다는 접촉을 더 즐기고, 그녀를 매우 시각적인 체계 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여전히 그녀를 수동성으로 지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그녀는 바라보기에 좋은 대상이 된다. 만일 그녀의 육체가 ‘주체’의 충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노출과 정숙한 위축이라는 이중의 움직임으로 인해 그토록 성적으로 자극적이고 유혹적이라면, 여성의 성기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는 두려움을 나타낸다. - P34

모성은 위축된 여성 성욕의 결핍을 메우게 된다. 남자와 여자는 아이가 드러내는 그들 사이의 중재가 없다면 서로를 더 애무하지 않게 되는가? 특히 남자아이일 경우에 그렇다. 또 여자는 남성 신체의 한 부분, 즉 자기 아이-페니스-음핵에 장난치면서 자꾸 접촉한다. - P36

사실, 여성의 쾌락은 음핵의 능동성과 질의 수동성 같은 것 가운데 어느쪽도 선택할 수 없다. 질을 애무함으로써 생기는 쾌락은 음핵을 애무함으로써 생기는 쾌락으로 도치될 수 없다. 여러 가지들 가운데 가슴을 애무하는 것, 외음부를 만지는 것, 음순 사이를 벌리는 것, 질 뒤쪽의 막으로 압력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것, 자궁 경부를 스치는 것 등등이 있다. 이는 여성의 가장 특별한 몇 가 - P37

지 쾌락만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 여성에게는 도처에 조금씩 성감대가 있다. 그녀는 도처에서 약간의 쾌락을 누린다. 신체 전체가 히스테릭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더라도, 여성 쾌락의 분포는 매우 다양하고, 저마다의 차이 속에서 그 수도 많으며, 복잡하고 예민하여, 사람들이 동일한 것에 좀 지나치게 집중하는 상상계에서는 생각도 못할 정도이다.

그녀들을 여러분 자신들에 대해서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녀들에게는 당신들이 지니고 있는, 당신들이 그녀들에게도 있으리라고 추측하는 내재성이 없다. 이것은 그녀들이 자기들끼리, 조용한, 다수의, 확산된 촉각인 친한 사람들 속에서 있음을 의미한다. 그녀들이 갈구하는 것은 정확하게 아무것도 아니고 동시에 전부이기도 하다. 이것은 종종 일종의 채울 수 없는 허기, 당신들을 완전히 녹초로 만들어 버릴 탐욕 같은 것으로 해석되고, 의심의 대상이 된다. - P39

여성은 항상 다수로 있게 될 것이지만 분산의 상태로 있다. 타자가 이미 그녀 안에 있고, 이 타자가 자기 색정이란 측면에서 그녀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이 타자를 가로챈다는, 그가 이 타자를 자기 수중에 넣는다는 뜻은 아니다.너무나 가까워서 동질성의 구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리하여 그것은 소유의 형태를 띤다. 여성은 너무나 가까워서 그것을 가질 수도, 자신이 소유될 수도 없는 누군가로부터 쾌락을 누린다. 그녀는 끊임없이 타자와 자기 자신을 교환한다. 서로를 동일시하지 않은채로 말이다. 이것이 현재의 체계에 의문이 든다. 여성의 쾌락은 치유될 수 없이 이 체계의 계산 속에서 궁지에 몰린다. 즉 이 쾌락은 타자 안으로/타자를 통한 이동을 끊없이 확대하고 있었다. - P41

그녀들이 자기들을 경쟁 상품으로 여기는 남자들의 강압적인 선택을 피해 다른 여자들에 대한 사랑을 발견한다는 것, 어쩔 수 없이 깨닫게 해주는 사회적 위상을 그녀들 스스로 형성한다는 것, 그녀들이 매춘부라는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생계를 꾸려 간다는 것 등은 분명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 노동자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단계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여정히 단순히 사물들의 질서를 전복하는 것을 겨냥한다면 역사는 결국 - P43

동일한 상태로 되돌아올 것이다. 남근 우월주의로 말이다. 그들의 성기도, 그들의 상상계도, 그들의 언어 활동도 여성들의 발생을 (재)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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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1-0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작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어려울 줄 알았지만 어렵네요 ㅜㅜ

거리의화가 2021-11-08 08:56   좋아요 0 | URL
하하 저도요ㅠㅠ 특히 거울 챕터는 정말 모르겠더라구요ㅜㅜ 다시 읽어봤는데도 똑같아요. 저자가 정신분석학 쪽 전공분야라 그런걸까요 철학적이고 난해하네요ㅜ 북플 회원님들께 도움 얻어서 겨우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들어요. 근데 아직 올리시는 분들이 안 보여서. 하나씩 올라오겠죠?

다락방 2021-11-08 10:03   좋아요 0 | URL
저도 거울 읽으면서 물음표 천개 되어서.. 이게 뭐여 강간당했다는 건가 싶고요 ㅠㅠ 네 아마도 천천히 올라올 듯 합니다. 제2의 성보다 분량 적어 다들 좀 늦게 시작하시나봐요 ㅎㅎ
 

그녀는 가장 먼 곳에 있다. 그리고 수많은 칸막이들이 그 사이에 놓여 있다! 거울 저편으로 가는 것. 그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 P14

오로지 한 면만 갖고, 한 얼굴 한 방향만으로. 오로지 한 면에서. 늘 거울의 같은 쪽에서. 이 면은 각자를 자신의 다른 쪽에서 떼어내, 이 다른 쪽은 갑자기 전혀 다른 존재로 나타난다. 낯선 미지의 존재. 적, 불길한 존재. 냉혹한 타자로 나타난다. - P19

어쩔 수 없이 멈추지 않고 다른 쪽에서 오는 나는, 게다가 항상 그들이 투사되는 스크린의 이쪽에서 오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이 나타나는 면 위에 있는 셈인 나는 살 수 없다. 이 모든 이미지 담화들 환영들은 나를 마비시키고, 꼼짝 못하게 한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그들의 찬사, 듣기 좋은 말로 표현되는 나, 그들이 자기네들의 ‘사랑’이라고 부르는 나는 위축된다. 여러분들은 그들이 내게 결정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들의 이익에 가장 적절하게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어떠한 ‘내 자아’도 그들에 의해, 그들을 위해 적응된, 그들의 필요나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자아’의 다양성도 깨닫지 못한다. 그런데 이 자아는-나로부터-무엇을 원하는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 P20

적어도 두 부류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들이 저절로 분절되기 위해서. 서로 결합할 수 있기 위해서. 그렇다면 어느 순간에? 어느 지점에서? 여기에서 두번째가 첫번째의 유일한 뒷면은 아닐 것이다. 때때로, 매우 빈번하게 그것은 보충물이다. 다소 적합하게. 다소 연결될 수 있게. 결코 궁극적으로 유일한 것만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단위는 반으로 나뉜다. 각자는 많은 부분을 지니거나, 적은 부분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일시할 수 있는 부분이 있거나,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쾌락의 가능성들을 모조리 다 써버릴 수도 없을 것이다. 아직 여분을 뒤에, 다음번을 위해서 남겨두기 때문이다. - P23

그녀는 어느 누구도 아니다. 두 사람 가운데 아무도 아니다. 모두이건 각자이건 더 이상은 이 두 사람이 아니다. 이 여자(들)가 뒤로, 예를 들면 집의 문을 통해서 그렇게 피해 가는 것을 어떻게 묵인할 수 있는가-"알아두세요. 당신은 나를 다시 볼 것이고,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다시 듣게 될 것입니다. 커다란 기계들을 갖고 다시 와서 측량을 하고, 평평하게 만들고, 부술 것입니다. 집과 정원 전부 다." - P26

어떤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사물들이 아직 완전히 굳어지지 않은, 죽지 않은 그 순간을 포착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잊혀진다.그것은 지금까지 소유의 한계들을 규정했고, 안과 밖을 구분했으며, 호평과 혹평을 대립시켰다. 것은 모든 것의 가치를 감상하고 인정할 수 있게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기에 적응할 수 있게 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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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 이광수 장편소설 한국문학을 권하다 26
이광수 지음, 고정욱 추천 / 애플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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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삶을 연결해서 보는 편인가? 분리해서 보는 편인가?

작품을 미친듯이 잘 쓰면 작가의 이력이 좋지 않더라도 무마될 수 있는가 말이다.

나는 사실 그러질 못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보는 내내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순수하게 작품만을 보자 하면서도 그러질 못하겠다.


당시 최고의 글쟁이였던 이광수는 누구보다 신문물을 빨리 받아들인 지식인이었다.

누구보다 대중을 이끌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좋은 방향으로 가지 못한 점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 소설은 1924년 11월 9일부터 1925년 9월 28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것을 1934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한국 근대소설의 특징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전통주의적 가치관이 신문물(자본주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충돌하며 파괴될듯 융합되는 혼란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소설 속에서 여러 군데 조선은 깨어나야 한다는 개화에 대한 생각과 기독교적 냄새를 맡을 수 있고(선교사라는 직업도 등장하고 회개한다고 예수를 찾는 등...) 이것이 마치 본인을 위한 변명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약간은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3.1운동에 뛰어든 학생들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김상옥 의사의 의거 등 사건이 등장한다지만 줄거리의 대부분은 남녀의 치정극에 매몰되어 있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신파극의 스토리를 생각하면 비슷할 것 같다.)

아무리 신여성이 등장하고 자유연애가 유행했다고는 하지만 여성들이 특히 정조의 관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아 씁쓸함이 인다. 

일부 여성들은 '사랑만이 다가 아니다. 사랑하더라도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지자' 한다. 그러나 그들도 버림받을까 두려워 전전긍긍 하기도 한다. 사랑을 쫓다 파멸하고 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막장드라마 같은 느낌도 나고(그때는 그게 흔했던 것 같지만) 진부한 스토리인데 재미나게 글을 잘 쓰는 능력을 가진지라 주인공 심정에 이입해서 분노하며 읽었다.

법률에는 첩을 보호하는 조문이 없다. 남편이 자기를 내보내려면 아무 때나 내보낼 수가 있다.
자기도 남의 남편을 빼앗아 사는 판에 남이 나의 남편을 빼앗는다고 나서서 말할 아무 권리도 없었다.
순영은 자기의 남편이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이 오직 성욕의 만족인 것을 잘 알고 또 자기가 도저히 그 남편의 강한 성욕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을 안다.
또 순영은 과거 일 년 동안에 남편에게 육의 만족을 주느라고 기생이 하는 모든 버릇까지 배우려고 앴는 것을 생각하였고, 그러하는 동안에 께끗하던 몸에 매독과 임질까지 올린 것을 생각하였다.
‘그 놈 때문에 내가 일생을 망쳤는데.... 이놈, 내 일생을 망쳐놓고는....‘ - P409

봉구의 눈앞에는 다시 조선이 떠나온다. 산은 헐벗고 냇물은 말랐는데 그 틈에 끼여 있는 수없는 쓰러져가는 초가집들, 그 속에서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어 허덕이는 이들, 앓는 이들, 우는 이들, 죽는 이들, 희망 없는 기운 없는 눈들, 영양 불량과 과도한 노동으로 휘어진 등들, 가난과 천대에 시달려서 구부러지고 비틀어진 맘들,
그러면서도 서로 물고 할퀴는 비참한 모양과 소리, 이런 것이 봉구의 눈앞에 분명한 비전이 되어 나뜬다.
"가거라! 어머니의 사랑과 노예의 겸손으로 저들 불쌍한 백성에게로 가거라!"
봉구의 귀에는 분명히 이 소리가 울린다. - P493

"모든 빛난 것이여! 모든 호화로운 것이여! 모든 아름다운 것이여! 다 가라!
조선의 모든 백성들이 다 안락을 누릴 때까지 내게 한가함이 없으리라."
"가자! 우리 님에게로 가자! 불쌍한 조선 백성에게로 가자!
농부에게로 가자! 거기서 그들과 같이 땀 흘리고 그들과 같이 울고 웃고 그들과 같이 늙고 같이 죽어 그들과 같은 공동묘지에 묻히자." - P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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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마음공부 불경 마음공부 시리즈
페이융 지음, 허유영 옮김 / 유노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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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반야바라밀다심경 원문과 해석을 우리 말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원문에 담긴 이론과 현실 속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이론을 설명해준다. 저자가 설명을 잘한 것도 있겠지만 번역이 매끄러워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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