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구멍가게가 생기기 전에는?
이흥재 사진, 안도현 글 / 실천문학사 / 2000년 2월
품절


1990년 운봉장.

장날 한 귀퉁이에서 주막집을 하는 할머니. 은쌍가락지를 낀 굵은 손마디, 갈망하는 듯한 눈빛이 무엇보다도 강한 흡인력을 느끼게 한다.(151쪽 사진 설명)

이 사진 한 장으로도 나는 책값이 아깝지 않다.
일체의 엄살이 무색해지는 단호하고 엄정한 할머니의 저 눈빛.

(클릭해서 큰 사진으로 보세요!)

1992년 대산장 노가리의 합창.(153쪽 사진 설명)

나는 가끔 삶이 악다구니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저 노가리의 쫙쫙 벌어진 주둥이들을 보라!

1992년 강진장.

겨울 장날 뜨끈뜨끈하고 시원한 국물의 국수 한 그릇과 소주 한잔 주막집의 풍경이 정말 좋다.(154쪽 사진 설명)

나는 뜨거운 김 자욱히 서린 겨울 국밥집 들창문 풍경이라면 평소에도 환장을 한다. 황석영 원작의 <삼포 가는 길>이라는 TV 문학관을 본 이후부터......

1994년 장계장.

할머니 할아버지가 장에 오셨다가 다정하게 앉아서 외식을 하고 있다. 속바지 위로 치마를 걷어올리고 먹는 팥칼국수 한 그릇 맛이 진하다.(155쪽 사진 설명)



1992년 고창 해리장

파,가지, 머우대, 토란대. 고구마순을 직접 벗겨서 팔고 있다. 담배를 입에 문 채 고구마순 다발을 묶고 있는 아주머니.(152쪽 사진 설명)

야채나 채소를 다듬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을 보면 神氣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저 눈부신 프로페셔널리즘이라니!

1996년 강진장.

손님도 없고 점방에서 막걸리 한 병 사다 밥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 - 좌판을 감싸도는 정이 오일장마다 열리는 강진장의 맛이다.(153쪽 사진 설명)

이흥재의 장날 사진에 시인 안도현이 글을 썼는데 시인이 묘사한 장날 풍경이 뭔가 미흡하다는 느낌이 든다. 혹시 시인은 이 장터 사진집에 참가할 때 잠시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1996년 임실 강진장.

장을 보고 배차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다양하다.(134쪽 사진 설명)

강진 공용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내가 알기로 '버스터미널'을 옛날에는 '차부'라고 불렀는데......
아무튼 버스든 기차든 집으로 데려다줄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엔 피로와 설레임이 교차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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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2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사진 몇 장 더 찍어올릴게요.
포토 리뷰 올리다 보니 없어진 사진이 몇 장 있네요.^^;;;

icaru 2005-04-20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포토 리뷰를 보고 있노라니...

이 책이 생각나는데요....


인터라겐 2005-04-20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가리의 합창...저게 뭔가해서 한참을 봤어요..
이런 옛사진을 보면 자꾸 돌아가고 싶어요...그래도 그땐 정이란게 있었잖아요...제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엔 동네아이들이 나와서 시끌시끌하게 놀았는데 요즘 골목은 너무 삭막해요...

로드무비 2005-04-20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장터는 흥겨워서 좋고, 대형마트는 편해서 좋고......
갈등이에요.^^;
복순이 언니님 그 책 보관함에 집어넣습니다.
재밌을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05-04-20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품절인것이 한스럽네요.
제목도 맘에 들고 노가리의 악다구니도 맘에 들어요.

로드무비 2005-04-2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책 품절이라고 추천도 안 눌러주시고 미워요오.
사진들이 그냥 본문 종이 허름한 상태인데요.
이런 사진들을 호화판으로 찍어 비싸게 받으면 더 웃길 것 같아요.^^

깍두기 2005-04-20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가리 환상!^^

숨은아이 2005-04-20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머니들의 손길을 보면 神氣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씀을 읽고 10개들이 두루마리 휴지 봉지도 머리에 이고 가던 할머니 생각이 났어요. 동네에서 보고 정말 놀랍고 존경스러웠어요. ^^

하루(春) 2005-04-20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92년, 1996년 하필... ^^;

바람돌이 2005-04-20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사진들을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참 먹먹해지네요. 저 속의 풍경들이 옛날 내가 서있던 우리 동네의 모습이기도 하고 사진속의 아줌마들이 내 할머니 엄마의 모습이기도 한데.... 그냥 저런 사진을 보고 '좌판을 감싸는 정' 뭐 이런식으로의 말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들어요. 참 힘들게들 살았는데 그걸 지나치게 감상화하는 것 같아서요. 제가 지나치게 삐닥한 걸까요?

불량 2005-04-21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설명의 글보다 로드무비님의 글이 더 땡기네요..(책 다시 만들자!) ^^

내가없는 이 안 2005-04-21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저 풍경 속에 로드무비님이 훌쩍 뛰어들어, 할머니 담뱃재 떨어지겠수, 하실 것만 같은... ^^ 추천이요. ^^

로드무비 2005-04-2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안님 "할머니, 막걸리 한 사발 저도 주세요" 하겠죠 뭐.^^
추천 고맙습니다.^^
불량유전자님, 호호 고마워요.^^
바람돌이님, 그러니까 옛 풍경이나 가난을 너무 미화시키지 말자,
그런 말씀이시죠? 물론입니다.^^
하루님 1992년과 1996년에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궁금.
숨은아이님, 옛날 연탄집 아저씨들 연탄 던지고 받는 것 보면
장난 아니었던 것처럼요.^^
깍두기님, 노가리 무더기 멋지죠?^^

플레져 2005-04-21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포 가는 길... 소설 너무 좋죠?
저 노가리 사진은 끔찍하다 못해 처절하게만 보이네요.
나도 어딘가를 향해 저렇게 입 벌리고 있는 것만 같아요...

dslkjlsd 2006-06-1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장날이라는 이름으로 판형이 크게 해서 재출간됐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