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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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을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러면서 내가 이들의 소설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에 조금 냉철해져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소설 하나 읽는데 냉철까지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익숙하다는 건 좋은 것일까. 익숙함은 관대함을 불러오고 관대함은 그저 좋은 것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를 떠올리면 따라오는 이미지와 분위기가 있다는 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독자도 마찬가지라고. 


『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어떤 기류를 발견할 수 있다. 수상작 편혜영에게 갖고 있던 단순히 공포라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괴기나 크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고, 정한아에게 보았던 마냥 따뜻했던 느낌이 아닌 복잡하고 심상함이 전해졌다. 그런가 하면 김연수가 한층 더 깊어지고 백수린은 섬세해진 것 같았다. 수록되지 않은 구병모의 소설도 심사평을 보면 이야기의 짜임이 더 촘촘해진 게 아닐까 싶다. 


수상작인 편혜영의 「포도밭 묘지」는 여상을 졸업한 네 명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여고가 아닌 여상에서 짐작할 수 있든 그들은 대학이 아닌 취업을 했다. 은행에 제일 먼저 취업에 성공해 근무 전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던 ‘한오’는 일을 하면서 야간 대학에 다녔다. 그러나 졸업은 쉽지 않았고 본사로 발령을 받아도 은행 업무보다는 고졸이라서,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로 손글씨 쓰는 일만 주어졌다. 


“제대로 된 일을 배워야지. 은행이니까 여신도 배우고 대출도 배우고 외환도 배워야지. 그래야 성공하지.”(「포도밭 묘지」, 17쪽)


은행에서 한오를 고졸사원으로 여기며 대우를 해주지 않는 사정은 성적은 제일 좋았지만 외모 때문에 화자인 ‘나’가 일하는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들어온 ‘수영’이나 무역회사에서 막내라는 이유로 잘못을 떠 앉은 ‘윤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해 해도 한오가 성공할 기회는 보이지 않았고 판매직인 수영과 나에게 사무직을 바라는 것보다 백화점을 나가는 게 빨랐다. 수영은 공무원 공부를 선택했고 윤주는 직장에서 친절했던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들에게 어떤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고 한 시도 쉬지 않고 자기 계발에 애쓴 한오의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백화점에 판매사원인 나, 공무원 시험에 성공하지 못한 수영, 아이를 가지 않냐는 시댁의 시달림과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으로부터 시들어버린 우울한 윤주. 오래전 넷이서 남이섬에 놀러 갔던 일과 소설 말미에 한오의 기일을 맞아 셋이서 그의 무덤을 찾는 과정이 하나로 겹쳐지면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뭔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기대와 바람이 오래전 나와 내 친구의 것인 양 울컥해진다. 


곳곳에 버려진 비닐 무더기를 보자 고등학교 교실에 두고 온 방석이 생각났다. 솜이 다 꺼진 그 방석은 누가 버렸을까.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비슷한 모양의 방석을 깔고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인생의 어느 시기가 되면 알아서 다른 자리를 찾아갈 줄 알았다. 그때 우리가 가능하리라 여겼던 인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애초에 그런 것이 있기는 했을까. (「포도밭 묘지」, 34쪽)


그런 감정은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남편은 죽고 딸은 가정을 이루고 과일가게를 정리하고 노년을 보내는 ‘나’는 수필 강의를 듣는다. 하지만 다른 수강생처럼 수필을 쓰지는 못한다. 강의가 끝나고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는 모임도 참여하지 않는다. 혼자 살지만 혼자 사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기에 집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핑계를 댄다. ‘나’는 혼자서도 잘 지냈다. 그런데 사위가 앵무새를 가지고 오면서 달라졌다. 한 달만 맡기로 한 앵무새가 나의 일상을 조금씩 변화 키셨다. 앵무새에 대해 검색하면서 잘 돌보려고 한다. 그러면서 과거 생계를 위해 어린 딸을 살피지 못한 죄책감으로 시작된 딸과의 관계까지 돌아보며 사느라도 잊고 있던 좋은 기억을 떠올린다. 나쁘기만 했던 삶의 기억이 아닌 웃고 행복하게 만든 순간들을 말이다. 


사위가 앵무새를 데리고 갔지만 함께 보낸 시간은 데려가지 못했고 뭔가 쓰려는 마음은 여전히 어렵다.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수필 강사의 말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지, 무서워’(「아주 환한 날들」, 235쪽)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뭔가 쿵 하고 내 마음에 내려앉는 걸 느낀다. 살면서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얼마나 될까.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했던 게 맞나 싶은 거다. 소설 속 ‘나’가 노년이 이르러서야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지 알게 되는 것처럼 나는 아직 그 무서움을 알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백수린의 단편은 읽고 난 후 더 진한 여운을 남기는데 「아주 환한 날들」은 특히 더하다. 일상을 흔드는 놀라운 일만이 우리 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는 걸 배운다고 할까. 


처음 만난 문지혁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에 대한 기대를 안겨준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소설과 논문 주제로 다룬 화자는 소설은 논문 같고 논문은 소설 같다는 평을 듣는다. 논문 같은 소설은 이미 등장하지 않았나 싶지만 이렇게 소설에 녹여 고민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은 현실적이라 반갑고 공감하게 된다. 기회가 되면 문지혁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익숙한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그들과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읽으면서 불편했던 기억, 너무 좋아서 문장을 기록하고 기억하려 노력했 기억, 작가의 다른 소설을 찾아서 읽던 기억. 익숙함이 길들여져 나중에는 뒤로 미뤄두었던 작가의 소설들. 시간이 지나 익숙함이 아닌 낯섦으로 찾아오기도 하는 소설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고 그것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도 맞다. 한없이 쓸쓸한 것 같지만 그 안에 환하고 다정한 것들이 숨겨져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것처럼. 소설을 읽는 일은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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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자이언트 픽
이유리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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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란 제목을 보고 사랑에 관한 단편집이 아닐까 기대했다면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참여 작가의 이름만으로 이미 사랑에 대한 뻔한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다. 자이언트북스의 앤솔러지 시리즈, ‘자이언트 픽’은 장르의 경계를 없애고 자유로운 소설로 독자를 유입하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뭐, 그렇다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속 다섯 편의 소설은 SF 장르를 취하고 있지만 어느 하나 겹치는 부분이 없는걸 보면 작가의 개성을 확실히 파악된다고 할까. 


표제작 이유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는 제목 그대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파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사랑이 끝나고 그에 대한 사랑을 감정을 정리하는 일이라고 할까. 완벽한 이별을 위해 필요한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 감정을 사고파는 소재를 다룬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기에 산뜻하거나 기발하지는 않았다. 다만 감정을 제공하고 받은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연인과 이별을 한 ‘수진’이 고양이 순대의 치료비를 위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친구 ‘영인’에게 전이하기로 결정한다. 남편이 불륜으로 힘든 영인에게는 그 감정이 필요하니까. 


감정전이센터를 방문하며 진행되는 과정은 흡사 장기를 이식받는 수술과 닮았다. 감정전이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듣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까지. 감정 샘플을 배양해서 만든 감정 기체를 보여주는 장면은 묘한 기분을 불러온다. 사랑을 구체화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직원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기체라더니, 신기하게도 뚜껑을 열었는데도 그것은 새어 나오지 않고 분홍빛 구름처럼 상자 안에 둥둥 떠 있었다. 서로 눈을 한번 마주 본 뒤, 우리는 시키는 대로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체온보다 사오도 높은 정도일까. 적당히 기분 좋은 온도에다 꼭 베개 솜 안에 손을 쑥 집어넣은 듯 몽글몽글한 촉감이 나쁘지 않았다. (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33쪽)


수지의 감정을 받은 영인은 남편 민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마냥 행복해한다. 그러나 그런 아내를 보는 민후는 뭔가 불편하다. 그러니까 영인의 진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혹스러운 거다. 민후 입장에서는 자신이 알던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여겨졌을 것 같다. 그리고 곧 수진도 그 마음을 알게 된다. 소개팅으로 만난 영욱이 헤어질 때마다 감정전이를 한다는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걸 보곤. 어떤 감정은 쓸모없다고 여기는 미래가 온다면 고유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고 획일적인 감정으로 모두를 대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감정을 전이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피부를 바꾸는 인간이 등장한다면 어떨까. 김초엽의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는 인간을 구성하고 정의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똑같은 피부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피부를 만들어 이식한 상태의 모습은 분명 나와는 다르지만 그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사실을 고지하기 전까지는 힘들 것이다. 외형이 주는 믿음이 이토록 확고한 것이라는 걸 확인한다. 도영 언니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하는 소설로 들어가 보면 화자는 인공 피부를 만드는 곳 <솜솜 피부 관리숍>에서 일을 한다. 고객이 원하는 피부를 설계하고 배양해서 이식하는 일이다.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들.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을 소설에서 마주하고 내 안의 내제된 욕망은 무엇일까, 깊게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스쳤다.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갈망, 혹은 진짜 내가 되고 싶다는 갈망은 대체 뭘까요? 그것은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서 한 사람의 뼈를 이루게 되는 걸까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손끝에 닿은 두툼한 인공 피부의 감촉을 느낄 때면 알 수 있었죠. 아, 갈망은 분명 여기 실재하는 것이구나.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134쪽)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모든 피부는 가능했다. 금속을 이식해달라는 고객이 나타났고 그가 바로 수브다니였다. 녹슬고 싶다’는 수브다니의 갈망 앞에 사장은 불가능하다고 말렸지만 결국 수부다니의 확고한 결심에 피부 이식을 하게 된다. 수브다니가 직접 피부 재료인 금속을 가져왔는데 이게 훔친 물건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솜솜 피부 관리숍>과 사장은 곤욕을 치른다. 알고 보니 수브다니는 인간이 아닌 최첨단 안드로이드였다가 반 인간화 시술을 받은 상태였다. 그가 녹슬고 싶은 금속 피부 이식을 원했던 건 다시 기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안드로이드로 존재했을 때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과 만든 작품을 구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브다니의 사건과 별개로 인형이 되는 게 꿈이었다고 화자는 말하는데 이상하게 서글퍼진다. 남들과 다른 외형을 갖는 일은 정체성으로 이어지는데 소수이고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므로. 


SF 장르를 읽다 보면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고민이 된다. 그러다 결국 미래에도 인간은 살아남을 것이고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 그러니까 사랑이 가장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김서해의 「폴터가이스트」에서 과거 사건으로 인해 어떤 소리를 듣는 ‘세인’이 왕따 당하는 학교에 전학을 온 수영 선수 ‘현수’가 세인이 듣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일도 결국은 사랑이다. 세인이 듣는 소리는 불길한 구의 등장과 알 수 없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판타지 요소와 함께 성장 소설의 느낌을 더해진 소설이다. 설재인의 「미림」도 비슷하다. 주인집이라는 거대한 성, 그 안에서 가정 폭력으로 오직 학교에서만 안전할 수 있는 ‘주경’은 지구 종말의 사태로 학교에도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지하의 ‘미림’을 만나 위로를 받는다. 그런가 하면 발표하는 소설마다 인간보다 더 따뜻한 감성을 지닌 로봇으로 감동을 안기는 천 선 란의 「뼈의 기록」에서는 염을 하는 안드로이드 ‘로비스’가 인간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는지. 


쓰다 보니 사랑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사랑이라는 게 어떻게 우리를 살게 만드는지, 차별과 혐오를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이 사랑이라는 걸 말이다. 어떤 미래는 내게 남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고 곁에 머물러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충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리석고 불가능할지라도 생각이야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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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2-09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목을 보자마자 왜 장혜리의 노래가 떠오를까요?^^
학창시절 누가 저더러 장혜리 닮았다고 자꾸 저 노래를 부르라고 해서 닮지도 않았고, 음치라 내빼다 얼떨결에 불렀는데...응? 노래가 참 부르기 쉽더군요? 그래서 종종 불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책은 제목과는 다른 sf물이군요?
작가들 이름만 봐도 재밌겠어요.^^

자목련 2023-02-09 09:14   좋아요 1 | URL
이유리의 단편은 그 노래의 제목에서 따온 게 맞습니다. 저도 사실 그랬거든요. ㅎ
와, 제 기억을 떠올리면 나무 님이 장혜리를 닮으셨다면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5편의 단편은 작가의 개성을 담고 있다고 할까요. 특정 독자가 아닌 모든 세대가 읽을 수 있는 소설집이었어요.

책읽는나무 2023-02-09 10:17   좋아요 0 | URL
아, 그 노래에서 따온 게 맞나요?^^
그리고 저 장혜리 안 닮았는데, 유독 장혜리 가수를 좋아하고, 그 노래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만 제게 그렇게 말했어요. 다른 친구들도 아닌데? 안 닮았는데? 라고 얘길 해도 그 친구 하나 때문에 닮았나 보다?라고 되어가지구선^^;;;
그래서 친구들이 나 놀린다고 노래방 가면 니 노래다! 라고 마이크까지 건네주고 지네들끼리 내가 얼굴 빨개진 거 쳐다 보고 웃고~~그랬었던 적 있었네요.
그것도 추억이 되었네요.ㅋㅋ
저 닮진 않았으니, 상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목련 2023-02-10 10:04   좋아요 1 | URL
음, 책나무님을 생각하면 올리브 색과 키위, 그리고 장헤리까지 키워드 추가합니다. ㅎ

희선 2023-02-09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을지도 모르겠네요 영인은 남편과 이야기를 해 보면 더 나을 것 같은데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것도 쉽지 않겠지요 언젠가 인터넷 기사에서 봤는데 피부를 이상하게 만든 사람 있더군요 악마처럼 한다고... 지금보다 과학이 더 발달하면 피부를 여러 가지로 이식해주기도 할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형이라는 걸 하고 좋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겠네요


희선

자목련 2023-02-10 10:06   좋아요 1 | URL
점점 SF소설을 읽으면서 현실에 대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말씀처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일도 무언가 더하거나 변형시키는 일도 그 사람의 고유한 결정이니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2023-02-10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3-03-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03-15 08:24   좋아요 0 | URL
^^*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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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복잡한 일상을 꿈꾸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복잡의 중심에 있음을 알게 된다.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이동하려는 애쓴다. 종종 생각한다. 사는 거 별거 아니라고, 밥 먹고 잠자는 것으로 축약하면 끝이라고. 그것 사이에 하나씩 채워지는 어떤 것들로 삶이 이어진다는 걸 깨닫는다. 백수린의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를 읽으면서 단순하게 채울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이 좋아서 아주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건 이유가 필요 없으니까.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그 느낌을 우리가 잘 몰라서 때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일상을 쓰는 일은 콩을 고르는 일처럼 단순하지만 집중을 요한다. 까만 콩 무더기에서 벌레를 먹거나 흠집이 난 콩을 고르다 보면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큰일이 아는 건 아니다. 온전한 콩만이 맛을 내는 건 아니니까. 백수린은 상처 난 콩과 동그랗게 온전한 콩을 나란히 두고 그것을 비교하지는 않는다. 어쩌다 상처가 났을까. 어쩌다 보면 완전한 콩을 버리는 쪽으로 옮기는 일도. 저마다 이유가 있다는 것, 상처가 난 콩도 맛은 있다는걸. 그는 알고 있었다. 반복적인 일상에서 작고 소중한 기쁨을 누리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근처에 성곽이 있는 서울의 높은 언덕의 아주 작은 단독주택에 살면서 마주하는 사람들과 풍경 속에서 그가 들려주는 일상은 소중한 보통의 삶이었다.


어떤 책은 문장에 반하고 어떤 책은 등장인물에 반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 내가 반한 건 동네다. 저자가 M 이모를 통해 알게 된 낡고 허름한 동네. 급한 일이 있어서 택시를 부르는 일은 요원하고 눈이 오면 감상 대신 빠르게 눈을 치워야 하고 재활용 폐지를 직접 주민센터로 가지고 가야 하는 동네. 폐지를 줍는 할머니와 약속을 정해 특정 요일에 필요한 물건을 내놓은 일,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이 많고 개발이 될까 걱정하는 원주민이 사는 동네. 반려견 봉봉이와 성곽길을 산책을 할 때 느끼는 편안함, 조금씩 인사와 안부는 나누는 이웃들이 늘어나는 동네.


어쩌면 그 안에 살지 않기에 그 동네가 아름답고 평온해 볼일 수도 있다. 그 안에 들어가 하나의 풍경을 자리 잡은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어떤 꾸밈이나 치장은 찾을 수 없기에 좋았다. 마당은 없지만 옥상에서 화분을 들여 꽃과 식물을 키우는 일, 실패를 거듭하면서 심지 않은 식물이 싹을 틔우고 자라는 모습을 통해 놀라운 생명력을 배우고 자연의 힘을 알게 된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모습, 고정된 나를 둘러싼 변화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뭐랄까 매번 신선하면서도 감탄을 자아내니까. 


전혀 조화롭지 않고, 무질서하게 자란 그 식물들을 나는 오래도록 그대로 두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땅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 생명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었다. 식물들은 내가 돌보지 않아도 제각각 키를 키우고 꽃을 피우다가 가을이면 서서히 메말라갔고, 겨울엔 눈에 덮였다. 그러고 나면 다시 봄이 왔고, 자연의 이치대로 모든 순환이 다시 시작됐다. (44쪽)


당연한 말이지만 일상을 담은 에세이를 읽는 일은 저자를 읽는 일이다. 글을 통해 나는 백수린 작가의 하루 일과를 상상하며 그가 이런 사람이겠구나 생각했다. 유리병이 좋아서 그 안에 담긴 것들을 바로 먹지 못하는 사람, 꿀을 모으고 선물로 다양한 맛의 꿀을 선물하고 늙고 아파서 걷지 못하는 반려견 봉봉이가 하늘로 떠난 후에도 그 물건을 치우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 소심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해 속상해하는 사람. 그가 조곤조곤 학생들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나 옥상에서 동네를 바라보는 모습, 노점에서 살구를 파는 노인에게 살구 한 봉지를 사는 모습을 그리며 언젠가 그의 소설에서 이런 파편을 만나면 단 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기억하고 싶어졌다. 떠난 반려견을 여전히 그리워하며 새로운 산책을 시도하며 겨울 난방비를 위해, 비가 새거나 벽의 페인트가 벗겨질 대를 대비해 돈을 모으기 위해, 혼자의 삶을 위해 글을 쓰고 일을 하는 저자를 말이다. 


허름한 산동네의 낡고 작은 단독주택에서의 삶이 관리인 따로 있는 공동주택에서의 삶보다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나는 이 집을 무척 좋아한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유난히 활달한 고양이들의 울음소리,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 빗소리, 집에는 유리창이 많아서, 나는 집 안에 가만히 앉아서도 짙어지는 우듬지의 색깔과 석양의 농도로 계절이 깊어가는 걸 알 수 있다. (196~197쪽)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문득 모든 게 감사하구나 느끼는 순간과 마주한다. 춥고 가난한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빛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환한 봄의 인사를 전하는 것 같다고 할까. 제목 그대로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안겨주는 책이다. 막연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행복에 전염되어도 좋겠다는 생각, 그 순간이 찰나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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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2-0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 좋았는데, 이 책은 에세이군요! ‘상처가 난 콩도 맛은 있다는걸‘ 알고 있다는 표현이 좋네요.

자목련 2023-02-07 12:44   좋아요 1 | URL
<여름의 빌라>가 좋았으면 이 에세이도 더 좋아하실 것 같아요. 참 좋았어요. 좋은 표현이라는 독서괭님의 댓글은 더더 좋고요!

은오 2023-02-08 0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담아갑니다! 내 통장을 지키기 위해 차단해야 할 목록: 자목련님 잠자냥님 미미님...... 근데 너무 좋아해서 차단 못하는중....

자목련 2023-02-09 08:19   좋아요 1 | URL
은오 님이 이 책을 읽으시면 어떤 리뷰를 쓰실까, 벌써부터 궁금!
너무 좋아해서라는 댓글에, 저는 무진장 좋습니다. 헤헤~~

희선 2023-02-10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사는 곳이 좋으면 그대로이기를 바라겠습니다 지방은 그렇게 빨리 바뀌지 않지만 서울이나 수도권은 빨리 바뀌기도 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이웃과 잘 지내는 사람 많이 줄었지만, 이웃과 인사하고 지내는 곳도 있겠습니다 그런 게 조금 부담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희선

자목련 2023-02-10 10:16   좋아요 1 | URL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뤄지면 좋겠지만 그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지방에 살아도 옆집와 왕래하고 교류하는 건 소홀해지는 요즘입니다. 희선 님, 여긴 비가 그치고 쌀쌀해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내 책장에는 책 읽는 소녀 북엔드가 많다. 사이즈 별로, 색상 별로 구매했다. 한때 이 북엔드에 꽂혀서. 지금도 좋아한다. 스누피도 있고 소나무도 있고 홈스도 있다. 그래도 가장 애정 하는 건 이 소녀들. 분홍과 검정 다 마음에 든다. 디자인도 그렇고 실용성도 나쁘지 않다. 책 읽는 소녀는 아니지만 책 소개는 소녀 곁에서 하려고 한다.





책장에 있는 책을 위주로 읽으려고 하는 데 참 어렵다. 슬그머니 고백하지만 올해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을 읽었으면 싶은데 잘 안된다.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전집이 7권 있는데(언제 사진으로) 아직 읽지 못했다. 이렇게 올해의 책 읽기 계획 아닌 계획을 쓰고 나면 의무감이 생기니 우선 쓰고 본다. 


시집은 기회가 되면 계속 산다. 야금야금 한 권씩. 읽기는 아주 느리게.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를 읽으면서 조혜은의 시가 궁금했다. 그래서 선택한 시집은 『눈 내리는 체육관』이다. 이 시집은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에서 느꼈던, 육아, 살림, 결혼 후 달라진 삶에 대한 것들을 주제로 한 시가 많은 것 같다. 살짝 훑어본 게 전부지만. 


백수린의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은 읽기도 전에 행복한 느낌이 전해진다. 한 손에 쏙 들어오고 웬만한 가방에 들어가는 크기다. 창비의 이 시리즈는 기회가 되면 다른 작가들의 글도 읽어보고 싶다. 시집과 나란히 두고 보니 시집은 훨씬 크고 에세이는 무척 작게 보인다. 


어제 내린 많은 눈은 녹는 중이다. 그래도 그늘진 곳에서는 얼음으로 변한 눈이 여전히 남았다. 안심하고 신나게 걸으면 큰일이다. 얼음은 아주 위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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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1-27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 내리는 체육관> 저도 천천히 읽는 중이예요.^^ 말씀하신 주제들이 때로 서늘하고 무섭게, 때로는 아득하게 슬픈 느낌으로 촘촘히 마음에 닿았어요~♡

2023-01-29 0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3-01-29 08:55   좋아요 0 | URL
어쩌면 여성이라서 더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는 시집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말씀처럼 아득한 절망이 담겨 아프기도 하고요.

거리의화가 2023-01-27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소개해주신 책들 옆에 놓인 북엔드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어요. 책들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느낌이랄까ㅎㅎㅎ 나쓰메소세키에 도전하시는군요^^ 저도 도전하고 외쳐야 진행이 되는 것도 있더라구요^^
눈이 녹을 때 더 조심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더 미끄러우니까요. 저는 이제 점심 산책 나가려구요^^*

자목련 2023-01-29 08:57   좋아요 0 | URL
북엔드의 효과를 잘 누리고 있어요. ㅎ
네, 이래야 적어도 나쓰메소세키를 읽지 않을까 싶어요. 외침으로 끝날지도 모르고요. ㅎ
추위가 조금 풀리는 듯해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blanca 2023-01-2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수린 작가 에세이 너무 좋았어요. 크기도 참 귀엽죠. 원래도 작가 소설을 참 좋아하지만 에세이가 이렇게 좋다니,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자목련 2023-01-29 08:58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끌어당겼긴 이유 중 하나가 블랑카 님의 평이었어요. 백수린 작가는 자신의 소설과 닮았을 것 같기도 해요.

북프리쿠키 2023-01-27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즈 엄청 이쁘네요~
소세키 읽기 응원합니다. ^^;

자목련 2023-01-29 08:59   좋아요 0 | URL
굿즈는 기쁨입니다 ㅎ
응원 감사합니다.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은오 2023-01-27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아아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으로서 시집 읽는 분들 보면 너무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목련 2023-01-29 08:59   좋아요 1 | URL
음, 어렵고 모르지만 그냥 읽습니다. ㅎㅎ

희선 2023-01-28 0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집이 더 크다니... 백수린 작가 책은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겠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책 만나기, 2023년엔 하시기 바랍니다 가끔 한권씩 만나도 괜찮겠지요 저도 나쓰메 소세키 책 별로 못 봤는데 이렇게 말했군요 눈 내리는 체육관, 제목으로 생각한 건 지붕이 없는 체육관일까 하는 생각을...


희선

자목련 2023-01-29 09:00   좋아요 2 | URL
한 손에 잡히는 크기입니다. 네, 쭉 이어읽기는 어렵겠지만 한 권씩 읽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즐거운 하루 이어가세요^^
 
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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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역사소설 『칼의 노래』는 몇 번을 읽다가 실패했다. 작가의 건조한 문체도 어려웠지만 잔인한 역사의 기록을 읽는 일은 어려웠다. 아름다운 묘사와 비유도 나를 이끌지 못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안중근 열사의 이야기를 다룬 김훈의 『하얼빈』를 읽는 일을 주저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소설은 그만큼 쓰는 일도 읽는 일도 어려운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 하지만 소설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은 인물의 내면을 전달한다. 


군더더기 없는 김훈의 문장으로 안중근의 거사를 읽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김훈의 이번 소설을 읽는 일은 쉬웠다. 감당할 수 없는 참혹함이나 슬픔 같은 것은 많지 않았다. 어쩌면 일부러 작가가 그런 것들을 배제하고 썼을지도 모른다. 내게 안중근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란 말로 더 가까웠다. 그래서 처음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안중근 열사의 생을 검색하려 했던 마음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일정 부분은 기록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을 통해 안중근을 만나도 좋겠다고 여겼다. 역사적 배경이나 주변 등장인물의 성격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부분도 다르지 않다.


소설은 이토와 안중근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주며 당시 조선의 현실을 설명한다. 우리가 배운 역사와 일본과 조선의 관계를 시작으로 역사적 그날 1909년 10월 26일로 향한다. 천주교 신자인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사살할 결심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1909년 10월 22일에 먼저 하얼빈에 도착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26일까지의 그 시간, 그 행적에 집중한다. 우덕순과의 만남,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조선이 아닌 하얼빈으로 부른 그의 마음을 채운 건 무엇일까. 거사를 치르기 전에 아내와 아이를 만나지 못한 게 다행이라 여기는 사람. 하나의 장면, 한순간으로 모든 게 끝나고 마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는 안중근.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총은 한번 쏘면 돌이키지 못한다. (116쪽)


한 자루의 총, 실탄 일곱 발, 충분하지 못한 여비 백 루블, 그것이 전부였다. 사진 한 장으로 익힌 이토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그는 얼마나 애를 썼을까. 포수로 수없이 많은 표적을 명중시켰지만 동물이 아닌 사람을 겨누는 것은 다르다.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총을 쏘고 난 후에 벌어질 일들까지 계획이 되어 있었으니 이토를 겨누는 순간만이 중요했다.


방아쇠를 당길 때, 오른손 검지 손가락 둘째 마디는 몸의 일부가 아니라 홀로 독립된 생명체였다. 둘째 마디는 언제 당겼는지도 알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스스로 직후방으로 작동해서 총알을 내보냈다. 그러므로 이토를 조준해서 쏠 때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절망감과 복받침, 그리고 표적 너머에서 어른거리는 전쟁과 침탈과 학살과 기만의 그림자까지도 끊어버리고 둘째 마디의 적막과 평온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159~160쪽)


단 한 번도 총을 잡아본 적이 없다. 놀이공원에서 인형을 향해 총을 쏘는 일도 해본 적이 없기에 총을 잡는 느낌, 그 순간의 결연한 심정을 나는 알 수 없다. 이토를 사살하고도 자신이 정확하게 그를 죽였는지 알지 못해 누가 그 사실을 확인시켜주기를 바라는 그의 심경이 애달프다. 포승줄에 묶여 차례로 끌려가는 그의 동지들. 심문을 받은 기록에도 감정의 흔들림은 찾을 수 없다. 사진으로 둘째 아들을 처음 본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포수였고 가족은 없다고 말하는 남자. 결심 하나로 결심이 확고하면 아무리 경호가 많아도 암살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안중근의 단호한 표정을 상상해 본다. “코레아 후라(대한만세)!”를 외치던 청년의 눈빛을 상상해 본다. 사진으로 남은 그의 얼굴에서도 찾을 수 없는 표정을 말이다. 김훈이 그려낸 서른한 살의 안중근은 너무 젊고 어리다. 가문의 종손이고 가장인 그는 나라를 택했다. 


그가 택하고 만든 대한의 후손으로 나는 살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자유를 누리고 일상을 이어간다. 그리고 종종 잊는다. 이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이렇게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통해 그들을 만나 감사를 전한다. 유난히 추운 겨울에 김훈의 소설로 만난 안중근의 짧은 생이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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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1-25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역사적 인물에 익숙한 지명도를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읽기가 더 꺼려졌던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뜨겁게 쓰였다기보다는 차갑게 쓰였다는 인상이 들죠^^

자목련 2023-01-26 08:50   좋아요 1 | URL
네, 김훈 작가가 일부러 그런 면에 집중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런 소설 덕분에 역사적 인물에 대해 조금 더 알고 배워요. 오늘도 너무 춥습니다. 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