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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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을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러면서 내가 이들의 소설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에 조금 냉철해져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소설 하나 읽는데 냉철까지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익숙하다는 건 좋은 것일까. 익숙함은 관대함을 불러오고 관대함은 그저 좋은 것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를 떠올리면 따라오는 이미지와 분위기가 있다는 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독자도 마찬가지라고. 


『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어떤 기류를 발견할 수 있다. 수상작 편혜영에게 갖고 있던 단순히 공포라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괴기나 크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고, 정한아에게 보았던 마냥 따뜻했던 느낌이 아닌 복잡하고 심상함이 전해졌다. 그런가 하면 김연수가 한층 더 깊어지고 백수린은 섬세해진 것 같았다. 수록되지 않은 구병모의 소설도 심사평을 보면 이야기의 짜임이 더 촘촘해진 게 아닐까 싶다. 


수상작인 편혜영의 「포도밭 묘지」는 여상을 졸업한 네 명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여고가 아닌 여상에서 짐작할 수 있든 그들은 대학이 아닌 취업을 했다. 은행에 제일 먼저 취업에 성공해 근무 전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던 ‘한오’는 일을 하면서 야간 대학에 다녔다. 그러나 졸업은 쉽지 않았고 본사로 발령을 받아도 은행 업무보다는 고졸이라서,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로 손글씨 쓰는 일만 주어졌다. 


“제대로 된 일을 배워야지. 은행이니까 여신도 배우고 대출도 배우고 외환도 배워야지. 그래야 성공하지.”(「포도밭 묘지」, 17쪽)


은행에서 한오를 고졸사원으로 여기며 대우를 해주지 않는 사정은 성적은 제일 좋았지만 외모 때문에 화자인 ‘나’가 일하는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들어온 ‘수영’이나 무역회사에서 막내라는 이유로 잘못을 떠 앉은 ‘윤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해 해도 한오가 성공할 기회는 보이지 않았고 판매직인 수영과 나에게 사무직을 바라는 것보다 백화점을 나가는 게 빨랐다. 수영은 공무원 공부를 선택했고 윤주는 직장에서 친절했던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들에게 어떤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고 한 시도 쉬지 않고 자기 계발에 애쓴 한오의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백화점에 판매사원인 나, 공무원 시험에 성공하지 못한 수영, 아이를 가지 않냐는 시댁의 시달림과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으로부터 시들어버린 우울한 윤주. 오래전 넷이서 남이섬에 놀러 갔던 일과 소설 말미에 한오의 기일을 맞아 셋이서 그의 무덤을 찾는 과정이 하나로 겹쳐지면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뭔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기대와 바람이 오래전 나와 내 친구의 것인 양 울컥해진다. 


곳곳에 버려진 비닐 무더기를 보자 고등학교 교실에 두고 온 방석이 생각났다. 솜이 다 꺼진 그 방석은 누가 버렸을까.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비슷한 모양의 방석을 깔고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인생의 어느 시기가 되면 알아서 다른 자리를 찾아갈 줄 알았다. 그때 우리가 가능하리라 여겼던 인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애초에 그런 것이 있기는 했을까. (「포도밭 묘지」, 34쪽)


그런 감정은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남편은 죽고 딸은 가정을 이루고 과일가게를 정리하고 노년을 보내는 ‘나’는 수필 강의를 듣는다. 하지만 다른 수강생처럼 수필을 쓰지는 못한다. 강의가 끝나고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는 모임도 참여하지 않는다. 혼자 살지만 혼자 사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기에 집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핑계를 댄다. ‘나’는 혼자서도 잘 지냈다. 그런데 사위가 앵무새를 가지고 오면서 달라졌다. 한 달만 맡기로 한 앵무새가 나의 일상을 조금씩 변화 키셨다. 앵무새에 대해 검색하면서 잘 돌보려고 한다. 그러면서 과거 생계를 위해 어린 딸을 살피지 못한 죄책감으로 시작된 딸과의 관계까지 돌아보며 사느라도 잊고 있던 좋은 기억을 떠올린다. 나쁘기만 했던 삶의 기억이 아닌 웃고 행복하게 만든 순간들을 말이다. 


사위가 앵무새를 데리고 갔지만 함께 보낸 시간은 데려가지 못했고 뭔가 쓰려는 마음은 여전히 어렵다.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수필 강사의 말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지, 무서워’(「아주 환한 날들」, 235쪽)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뭔가 쿵 하고 내 마음에 내려앉는 걸 느낀다. 살면서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얼마나 될까.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했던 게 맞나 싶은 거다. 소설 속 ‘나’가 노년이 이르러서야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지 알게 되는 것처럼 나는 아직 그 무서움을 알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백수린의 단편은 읽고 난 후 더 진한 여운을 남기는데 「아주 환한 날들」은 특히 더하다. 일상을 흔드는 놀라운 일만이 우리 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는 걸 배운다고 할까. 


처음 만난 문지혁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에 대한 기대를 안겨준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소설과 논문 주제로 다룬 화자는 소설은 논문 같고 논문은 소설 같다는 평을 듣는다. 논문 같은 소설은 이미 등장하지 않았나 싶지만 이렇게 소설에 녹여 고민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은 현실적이라 반갑고 공감하게 된다. 기회가 되면 문지혁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익숙한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그들과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읽으면서 불편했던 기억, 너무 좋아서 문장을 기록하고 기억하려 노력했 기억, 작가의 다른 소설을 찾아서 읽던 기억. 익숙함이 길들여져 나중에는 뒤로 미뤄두었던 작가의 소설들. 시간이 지나 익숙함이 아닌 낯섦으로 찾아오기도 하는 소설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고 그것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도 맞다. 한없이 쓸쓸한 것 같지만 그 안에 환하고 다정한 것들이 숨겨져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것처럼. 소설을 읽는 일은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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