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스카프를 둘렀다. 감기에 걸리면 안 되니까. 궁극적으로는 병원에 가기 싫어서다. 귀 때문에 열심히 병원에 다녔고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여하튼 관리를 하는 건 좋은 일이니까. 어제 아침 일찍 이동할 일정이 있어 새벽에 일어났다. 매월 첫날 새벽 기도를 나가지 않은 후 오랜만에 새벽의 공기를 만났다. 하늘에는 손톱 모양의 하현달이 떠 있었고, 어둠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아침 일찍 도로에는 차가 많았다.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혼자 생각했다. 일터로 향하는 출근길의 여정일까. 긴 여행의 시작일까.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일까. 움직이지 않던 시간에 나오니 새삼 사람들이 정말 부지런하구나 느꼈다. 살아가는 사람들, 삶이 이동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할까.


신호등의 색이 바뀌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동차들, 자동차가 멈추면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도로에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이들의 모습도 보았다. 보도블록에 눈처럼 내린 낙엽들, 가을이 지고 있다는 게 보였다. 아직 장갑을 끼고 거든 이들은 많지 않았지만 조만간 장갑과 모자를 쓴 이들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우리는 또 어린아이처럼 첫눈을 기다릴 테고. 시절은 잘도 간다.


고백하자면 나는 11월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워하는 건 아니다. 다만 좋은 기억이 나쁜 기억으로 변화하는 순간들이 11월에 모여있다. 그러다 몇 년 전 나는 11월에 대한 마음이 참 어리석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어떤 감정에 대한 이유를 찾고 있었던 거다. 분명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의 하나가 그 순간이었고 그게 11월이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그 기억(나의 기억력을 저주한다)은 선명하지만 11월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누그러졌다. 다시 좋은 기억을 쌓은 순간도 11월의 어느 날이고. 11월은 그냥 11월이니까. 이렇게 자꾸 나를 달래야 나는 점점 더 괜찮아진다는 걸 안다.


주위는 온통 단풍의 물결이다.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 아파트를 둘러싼 나무들, 조만간 나뭇잎을 떨구고 추위를 맞을 것이다. 찬 바람을 견디고 단단해질 것이다. 나무처럼 우리도 그럴 것이다. 2020의 가을은, 지난봄과 여름처럼 여전히 잔인하지만. 11월에는 11월을 즐길 수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 11월의 책은 이런 두 권으로도 충분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시, 올리브』란 제목이 좋다. 다시, 11월. 다시, 가을. 다시, 괜찮다고 다짐하는 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즐겁게 만났다면 더욱. 한 권의 소설과 한 권의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은 백수린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작가정신에서 나온 산문집이라, 살짝 놀랐다. 그냥 반갑다는 말이다. ‘빵과 책을 굽는 마음’이란 부제가 더 좋다. 다시 펼쳐질 11월, 다시 읽는 소설, 다시 들여다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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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11-13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1월을 제일 좋아해요. 뭔가 차분히 마무리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끝은 아니라는 느낌

앞으로 자목련님이 맞이하는 11월은 조금 더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목련 2020-11-14 14:56   좋아요 0 | URL
마지막 끝은 아니라는 느낌, 참 좋으네요.
불쑥 찾아오는 마음이지만 내년에는 더 포근한 11월이 될 거라 믿어요.
나와같다면 님,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제법 두꺼운 니트를 꺼내 입었다. 사실은 재활용 수거함에 넣으려고 분리를 했다가 갑자기 이 겨울까지만 입어도 괜찮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오래 입어서 보풀이 심하고 낡은 표시가 여러 군데에서 보였다. 외투를 입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밑단을 과감하게 잘라냈는데도 이상하지 않았다. 괜히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가죽 가방도 정리를 했다. 마구잡이로 보관을 해서 형태가 잡히지 않았다. 크림으로 잘 닦아내고 모양을 잡기 위해 수건을 넣어두었다. 나쁘지 않았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생명을 불어넣은 듯하다고 할까.

이비인후과 진료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주에 다녀왔을 때 의사는 거의 다 나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1주일이나 열흘 후에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처방받은 약을 다 먹고 2일이 지나 진료를 봤다. 좋아졌다고 말하면서도 다시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2주일 후에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나에게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서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사실이 그랬다. 내가 느끼기에는 다 나은 것 같은데. 의사가 보기에는 아닌가 보다. 아, 어쩌란 말인가. 병에 대해서 나는 영원히 약자이고 을이다. 그러니 다시 약을 잘 챙겨 먹고 병원에 가야 한다.

아침엔 병원 문을 열기 전에 도착해 잠깐 기다리니 직원이 출근을 했다. 직원이 잠긴 문을 열고 신문을 챙기고 불을 켜니 병원은 좀 전과 다른 생기가 돌았다. 문이 잠기고 불이 꺼진 건물은 차갑고 냉랭하고 무표정이었는데 누군가의 손길이 닿으니 달라졌다. 대기실의 의자, 손소독제, 화분, 모든 게 정겹게 다가왔다. 가죽 가방과 낡은 니트에도 내 손길이 닿아서 달라진 것처럼.


스마트폰은 작고 가벼운 터치만으로도 쉽게 움직인다. 단단하게 잠금을 한 경우을 제외하곤 말이다. 마음에는 어떤 손길이 닿아야 할까. 우선은 해제 상태이어야 할까. 굳게 닫힌 마음, 잠시라도 열림으로 변경하면 가능할 것 같다. 그냥 그냥 이런 생각이 밀려온다. 생각은 접어주고 이런 책들의 손길이야말로 살갑고 다정할 것 같구나.




이비인후과 진료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주에 다녀왔을 때 의사는 거의 다 나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1주일이나 열흘 후에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처방받은 약을 다 먹고 2일이 지나 진료를 봤다. 좋아졌다고 말하면서도 다시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2주일 후에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나에게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서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사실이 그랬다. 내가 느끼기에는 다 나은 것 같은데. 의사가 보기에는 아닌가 보다. 아, 어쩌란 말인가. 병에 대해서 나는 영원히 약자이고 을이다. 그러니 다시 약을 잘 챙겨 먹고 병원에 가야 한다.


아침엔 병원 문을 열기 전에 도착해 잠깐 기다리니 직원이 출근을 했다. 직원이 잠긴 문을 열고 신문을 챙기고 불을 켜니 병원은 좀 전과 다른 생기가 돌았다. 문이 잠기고 불이 꺼진 건물은 차갑고 냉랭하고 무표정이었는데 누군가의 손길이 닿으니 달라졌다. 대기실의 의자, 손소독제, 화분, 모든 게 정겹게 다가왔다. 가죽 가방과 낡은 니트에도 내 손길이 닿아서 달라진 것처럼.


스마트폰은 작고 가벼운 터치만으로도 쉽게 움직인다. 단단하게 잠금을 한 경우을 제외하곤 말이다. 마음에는 어떤 손길이 닿아야 할까. 우선은 해제 상태이어야 할까. 굳게 닫힌 마음, 잠시라도 열림으로 변경하면 가능할 것 같다. 그냥 그냥 이런 생각이 밀려온다. 생각은 접어주고 이런 책들의 손길이야말로 살갑고 다정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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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늦잠은 사라졌다. 귀가 아프고 병원에 다니면서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그랬다. 늦잠의 달콤함은 다시 찾을 수 있으니까 괜찮다. 건강한 귀를 다시 찾는 건 어렵다. 꼬박 한 달 동안 약을 먹고 있다. 주말에 만난 의사는 많이 좋아졌다면서도 다음 주에도 한 번 더 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 끝이 보이니까. 모니터를 통해 보여준 나의 오른쪽 귀는 맑음은 아니었다. 투명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불안은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통증도 없다. 그러니 종종 잊는다. 나의 귀가 아직 아프다는 걸 말이다.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하다. 처음 귀가 아파서 병원을 찾고 주사를 맞고 처방된 약을 먹으며 들었던 마음과 한 달이 지난 지금 병원을 방문하고 약을 먹는 마음은 같지 않다. 나아지고 있다는걸, 괜찮아지고 있다는걸, 몸으로 느끼면서 나는 처음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내 귀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하는 마음도 줄어들었다. 밥을 먹고 약을 먹을 때에야 확인한다. 아, 나는 여전히 귀가 아픈 사람이구나. 여전히 귀는 아직 회복 중이구나.


무엇이든 필요한 시간이 있다. 뭔가를 배우데 걸리는 시간, 일을 하는 시간,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시간, 밥을 먹는 시간, 양치질을 하는 시간. 짧게는 몇 초부터 몇 시간, 몇 날, 몇 년까지.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즐겁고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힘들다. 가장 공평한 게 시간이라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이는 많지 않다. 배우는 걸 생각해보자. 똑같은 교구, 교수가 아니라면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 않는다. 어떤 이는 최고의 교재와 강사가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독학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집안을 청소할 때도 최신형 청소기와 구형 청소기를 사용하는 건 다르니까.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다르다. 2020년의 시간도 그렇게 흐를 것이다. 코로나19로 병상에 있거나 그들을 지키는 이들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코로나 학번이라 불리는 20학번 아이들, 21학번을 준비하는 고3에게도 올해는 남다를 것이다. 아니,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그럴 것이다. 봄이 지나고 여름, 가을을 맞으면서 우리는 조금씩 낙담하고 지친다. 올 초에 가졌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믿음, 괜찮아진다는 다짐, 서로를 격려하던 웃음. 잃어버린 마음, 희망을 품었던 마음, 기대했던 마음, 그 마음이 필요하다. 따뜻한 차 한 잔, 따뜻한 말 한마디, 이런 책 한 권. 당신이 잃어버린 시간과 마음이 도착하는 가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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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0-27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 아픈 게 오래 갔지만 그래도 이제 끝이 보일 듯하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 시간을 보낼 때는 시간이 안 가는 듯한데 지나고 나면 빨리 간 것 같기도 하죠 한해라는 시간도 그렇군요 시월 얼마 남지 않았고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니... 자목련 님 앞으로는 건강 잘 챙기세요 아프지 않으면 아플 때 일을 잘 생각하지 못하기도 해요 다 그렇지 않나 싶어요 마지막까지 약 잘 드시고 잘 낫게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희선

자목련 2020-10-27 14:44   좋아요 1 | URL
네, 끝이 보여요, 근데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조심하며 지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2020년도 2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희선 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평온한 오후 보내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어김없이 병원 진료로 주말 아침을 시작했다. 한글날이었던 어제도 다녀왔다. 어제 의사는 고막이 많이 얇아졌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막에 대해 설명을 한참 했다. 이렇게 긴 시간 병원에 다니고 항생제를 먹어야 될 줄 정말 몰랐다. 오늘도 의사는 그만 와도 좋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튼 여전히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있다. 아주 열심히 말이다.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어서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한다. 이 살을 어쩌란 말이냐.


지난주부터 바뀐 약이 너무 써서 약사에게 문의를 했더니 “소태처럼 쓰죠?”란 답이 돌아와다. 아, 많이 들어본 말이지만 정작 ‘소태’가 무언지 몰랐다. 검색을 해보니 소태나무의 껍질이란다. 약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초콜릿, 사탕을 먹어도 그 맛이 사라지지 않는다. 잠들기 전까지 나는 소태맛을 느끼고 있는 지경이다. 


오늘 병원에서는 할머니와 손녀의 대화를 보고 보게 되었다. 할머니가 손녀를 데리고 독감 예방접종을 하러 온 것으로 보였다. 할머니는 사투리가 심하셨다. 손녀의 이름을 부르는데도 느껴졌다. 그랬더니 손녀가 자신의 이름을 정정해 주었다. 혹여 추울까 봐 손녀는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 후로도 할머니의 말을 손녀는 계속 정정했다. 할머니와 손녀는 호미를 하나 산 것 같았다. 손녀가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접종 후 주의사항을 듣고 손녀에게 오늘은 호미질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손녀는 그 호미로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궁금했다.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으니 그 모습이 정말 친근하고 정겨웠다. 나도 할머니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읍의 작은 병원은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병원에서 만나 안부를 전하고 전혀 모르는 이들이 서로의 농사에 대해 조언을 한다. 시골에서나 가능한 풍경이다. 아마도 첫차를 타고 온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병원을 들러 저마다 자신의 일터로 돌아갈 분들이었다. 주말이나 휴일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가을은 마늘을 심고 생강을 캐고 벼를 추수하는 계절이다. 그리고 이런 국화의 꽃망울을 기대하는 날들이다. 







아파트 화단에 수국과 작은 국화 화분 옆에 제법 큼직한 화분이 하나 더 놓였다. 노란 꽃망울을 곧 터트릴 것 같다. 은은하게 국화향이 나는 것 같았다. 가을이 익어가는 장면이라고 할까. 우리의 가을도 익어가고 있는 걸까. 귀는 통증은 거의 사라졌지만 나는 조금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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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0-10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딘가 아프면 그걸 치료하는 과정이 정말 지치게 만들죠. 가을 국화에서 작은 위로를 발견하셨기를 바래봅니다

자목련 2020-10-11 15:24   좋아요 0 | URL
하루 일과이 시작이 병원이에요. ㅎ
말씀처럼 국화를 보니 반갑고 기분이 좋더라고요.
바람돌이 님, 편안한 오후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0-10-11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다니는 것부터가 힘들지만 다 낫고나면 지나갈 수 있을거예요. 빨리 좋아지셨으면 좋겠어요.
자목련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0-10-11 15:23   좋아요 1 | URL
네, 처음 통증을 생각하면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서니데이 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어제까지 아침마다 병원에 들러 하루를 시작했다. 마스크를 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마주하고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온 어린아이들을 봤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고 의사에게 심각한 상태라는 말을 계속 들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나 완쾌가 된 건 아니다. 오른쪽 청력이 떨어졌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오른쪽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길어진 연휴만큼의 약이 쌓였다. 약사에게 문의를 하니 약 기운은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자꾸만 기운이 없고 깊은 밤이 오기 전에 잠에 빠져든다.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한가. 


작고 소소한 것들이 일상을 지배한다. 화장실 변기 레버가 말썽을 부려서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했다. 검색을 해서 나름대로 손을 봤지만 사용할 때마다 불편했다. 그건 임시변통에 불과했다. 기사님이 오셔서 살펴보니 한결 나아졌다. 사용하다가 혹시 또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요청을 하라고 한다. 기사님이 오신 김에 싱크대 수도꼭지도 불편했던 게 있어 문의를 드렸다. 장비가 필요한 일이라면서 다시 재방문을 해주셨다. 헐거워진 수도꼭지를 조여주시면서 수돗물의 양도 조절해 주셨다. 차가운 물의 세기는 약하고 뜨거운 물의 세기는 강한 채로 사용하고 있었다. 불편했지만 잘 몰라서 그대로 사용했다. 냉수와 온수 모두 강하게 쏟아졌다. 


약한 것을 강하게 조절할 수 없었을 때는 아쉬운 대로 그냥 사용했지만 강한 상태의 것을 약하게 조절할 수 있으니 편리했다.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물을 시용할 때마다 강하게 사용할 때는 강하게 약하게 사용할 때는 약하게 사용한다는 단순함이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한 것 같았다. 조절한다는 건 완벽하고 훌륭한 거구나. 조절하다란 말이 냉큼 좋아졌다. 그러면서 현재 아픈 나의 몸을 생각했다. 나의 귀는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하게 낮아졌고 감정도 그러하다. 뭔가 잘못하고 고장이 난 것처럼. 잘못한 건 아닐 텐데, 누군가에게 혼이 아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 나를 온전히 조절할 수 있는 건 나라고 자부했는데 말이다. 강해야 할 때 강하게, 약해야 할 때 약한 나로 조절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요즘 나에게 필요한 단어는, ‘조절하다’다.




전환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여전히 그건 책이다. 연휴를 맞아 쌓인 책들, 읽거나 읽고 있거나 읽어야 하는 책들이다. 모두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황정은의 『연년세세』는 정말 좋구나, 김승옥문학상은 대상 수상작보다는 최은미의 단편이 더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읽고 있는 강진아의 『오늘의 엄마』는 현실적 서사라서 더 아프다. 사실 제목 때문에 피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명절 근처에 읽고 있다.  


오른쪽 귀의 통증은 약해졌고 사라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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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09-2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빨리 완쾌 되시길 바랍니다
저도 오래전 오른쪽 귀에 이상이 생겨서 대학병원을 한달동안 다녔던 적이 있었어요.
심신 안정이 가장 중요한것 같아요.
코로나로 더더욱 심신이 위축되는 시기 인데 ...
언급하신 황정은 책 읽어보고 싶네요.
자목련님 추석연휴동안 행복하고 풍성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자목련 2020-09-30 11:01   좋아요 1 | URL
한달동안 다니셨다니, 많이 힘드셨겠네요.
지금은 괜찮으신 거죠?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어제보다 훨씬 나아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황정은의 소설은 강추합니다. ㅎ
기쁘고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희선 2020-09-30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가 아직도 좋지 않군요 빨리 낫지 않다니, 마음이 편하게 먹기 쉽지 않겠지만 다른 거 많이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거 하세요 책읽기... 그러다 보면 시간이 가고 어느 순간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약은 잘 먹어야겠지요 약 안 먹어도 된다면 좋겠지만, 약 먹어야 잘 나을 것 같습니다

명절이라고 해도 저는 늘 똑같았지만, 이번에는 많은 사람이 전과 다르게 보내겠네요 아쉽다 해도 어쩔 수 없겠지요 자목련 님 몸 마음 다 편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자목련 2020-09-30 11:00   좋아요 1 | URL
네,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바라고 잇어요.
약 덕분인지 잠을 많이 자고 있어요. 저도 명절에 큰 이동이 없어요.
희선 님, 추석 명절 즐겁고 건강하게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0-09-30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빨리 좋아지셨으면 좋겠어요.
어디든 아프면 많이 힘들어요.
병원 치료 잘 받으시고, 연휴에 잘 쉬셔서
기운 내시고 경과도 빨리 좋아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20-10-05 15:5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답글이 늦었습니다.
여전히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많이 좋아졌어요.
10월, 건강하고 활기차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