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나도 병원에 갈 일이 생겼다. 오른쪽 귀가 계속 신경이 쓰이더니 어젯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팠다. 오른쪽으로 누워서 잘 수가 없었다. 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귀를 만져보니 물기(진물, 염증으로 의심되는)가 흘러나왔다. 새벽 3 시경에는 없던 증상이다. 부랴부랴 병원을 검색하고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아주 오래전 내원한 기록이 있었다. 다행히 진료시간이 빨랐다. 심지어 주일에도 진료가 있었다. 직장인에게는 고마운 시간이지만 병원 직원에게는 무척 힘들겠다. 코로나19로 출입문은 모두 활짝 열려있었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열여 둔 출입문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한기가 느껴졌다.


마스크를 크고 발열 체크를 하고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내게 증상의 진행 일자를 물었다. 나는 3일 정도라고 말했다. 사실은 아니었다. 의사는 정확하게 5일은 지났을 거라고 말했다. 아, 의사 앞에서 왜 나는 자꾸 작아지고 서툰 거짓말을 하는가. 자주 만나는 의사가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혼자 생각했다. 그토록 많은 시간 병원을 다니고 의사 앞에 선 날들이 많았는데도 병원에는 어떤 공포가 있다. 귀에 나타난 증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의사는 주사와 약을 처방했고 내일 다시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알레르기가 있는 약에 대해 물었고 나는 부작용이 심한 항생제 이름을 말했다. 상태는 그때 다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사를 맞는 일, 약을 먹는 일은 익숙하다. 그러려면 밥을 잘 챙겨 먹어야 하고 술을 먹지 말라는 말은 없었지만 당분간 캔맥주는 먹을 수 없겠다. 더욱 캔맥주가 마시고 싶겠구나. 마음이란 그런 거니까.


농담처럼 누군가 안부를 물을 때 늙고 있지,라고 말하지만 그건 진담이다. 늙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쉬운 건 아닐 터. 친구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큰언니는 종종 늙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다. 우리는 매일 늙고 있다. 우리는 매일 살고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그렇게 산다.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죽음의 실체를 모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피하려 한다. 


공교롭게 지금 읽고 있는 『침묵의 박물관』는 사후의 유품을 정리하여 전시하는 박물관을 만드는 이야기다. 문득 생각한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할 물건은 무엇일까. 내 온기와 나를 닮은 물건은 무엇일까. 오른쪽 귀는 아프고 나는 몹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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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09-2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에서 진물이 나오다니 많이 놀라셨겠어요. 의사 앞에선 누구나 작아지죠...ㅠ 저도 언제부턴가 입만 벌리면 늙고 아프고 몸이 이상하고 등등 이런 얘기가 절로 나오는데 다같이 늙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요. 자목련님 귀 빨리 나으시길 바랍니다.💊

자목련 2020-09-26 16:59   좋아요 0 | URL
네, 정말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서요. 너무 귀에 대해 무심했나 싶기도 하고요.
쿨캣 님의 안부, 감사합니다. 주말 평온하게 보내세요^^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초조하다. 대부분 그 결과라는 게 합격, 당선의 여부이거나 당첨의 여부이기 때문이다. 건강에 대한 것이라면 그 기간은 더욱 길게 느껴진다. 온갖 상상을 하면서 시간을 채운다. 좋은 상상, 나쁜 상상, 최악의 경우, 그보다 좀 나은 경우. 헤아릴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다 동원한다. 남동생이 즐겨 구매하는 로또 복권의 경우는 기다리는 동안 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1등은 될 리가 없지만 그래도 1등이 된다면, 아니 아쉽게 숫자 하나만 다른 2등이 된다면, 로또 구매 본전을 찾는 등수라도 된다면. 점차 상상의 크기는 줄어들지만 꽝이 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나쁜 기대를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병원의 검사는 좀 다르다. 몸에 증상이 있고 뭔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검사를 받으니까. 확인차 검사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건강검진의 경우에 해당된다. 친구는 지난 주말에 검사를 받았다. 괜찮아질 거라 여겼지만 몸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고 마침 진료를 한 의사가 상급 병원을 추천했다. 여러 가지 검사를 끝냈고 친구에게는 일주일이란 시간이 주어졌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견디는 일은 너무도 힘들다. 다른 무언가에 집중할 수도 없고 청소나 집안일에 몰두할 수도 없다. 혹시 무리하면 좋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전화를 거는 친구에게 나는 아무런 위로를 건넬 수 없다. 결정된 사항이 아무것도 없으니 불안할 것도 없다고 말하지만 도움이 될까 싶다. 아침에는 이런 마음, 저녁에는 이런 마음이라는 친구의 말을 들어줄 뿐이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까지 전화를 한 친구의 마음을 안다고 해도 알 수 없는 것. 결과가 나오는 시간까지 함께 기다려주는 일.


수많은 기다림으로 채워진 삶이구나 싶다. 버스를 기다리고 월급날을 기다리고 숭진을 기다리고 택배를 기다리고 어디선가 오고 있을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누구도 나쁜 소식을 기다리지 않는다. 매일 확진자가 줄어들기를 기다리고, 백신 개발 소식을 기다리고. 기다림이 즐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순간처럼 설레는 기다림이 되려면. 기다리는 동안 모든 걸 그 대상에 맞추지 말고 나에게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쉽지 않겠지만 연습을 해야 한다. 힘겹겠지만 일에 집중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일도 좋겠고 달리기도 좋을 것 같다. 사소하지만 기다렸던 작가의 신간 소식에 클릭하고 장바구니에 넣는 일, 오늘처럼 파란 하늘을 보는 방법도 있다. 





때마침 파한 하늘을 닮은 표지의 책이 반갑다. 시인 유희경의 산문이다. 그리고 『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까지. 이번에도 수상 작가는 모두 여성이다. 정한아, 최은미의 단편이 기대가 된다. 여기 또 기다리는 시간이 추가된다. 책이 내게로 도착하는 시간까지 나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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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이상하게 밀린 일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평소에 무척 바쁘다거나 한 것도 아닌데. 주말까지 미루거나, 아니면 주말에 되어서야 집안을 돌아보게 된다고 할까. 이번 주일에도 대면 예배가 아닌 비대면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렸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말씀을 들으면서 다른 생각도 했고 다른 일도 했으니까. 예배에 대한 신성함과 경배의 태도가 흐트러진 것이다. 다잡아야 할 마음이다.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한 제습기를 한나절 햇볕 소독을 하고 다시 붙박이장에 넣어두었다. 그 자리를 대신했던 잡동사니, 생활용품이 우르르 쏟아졌다. 하나하나 다시 정리를 하고 걸어두지 못했던 달력을 버리고 선반에서 잠들었던 액자를 꺼내 벽에 걸었다. 소소한 집안일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말려두었던 꽃다발은 과감하게 버렸다. 꽃잎이 부서지면서 쓰레기가 한가득.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언제가 이렇게 사그라드는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치워도 치운 것 같지 않은 집안, 우리 집만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읽을 것 같았던 책들도 정리했다. 끈에 묶고 보니 꽤 되었다. 좋아했던 작가의 소설인데,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리 대상이 되었다. 내가 한 말인데, 내가 쓴 말인데,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이 참 서럽게 다가온다. 지금이라는 기준, 그게 중요하다고 나를 다독인다.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도 있으니까. 아무튼 몇 권을 정리하고 이런 사진을 찍었다.





9월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올해 기억할만한 작가이기도 한 루시아 벌린의 에세이 『웰컴 홈』과 사회학자 노명우가 서점을 운영하면서 쓴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두 권이다. 현재로는 9월의 책이다. 아무튼 좋은 책이다. 제법 잘 어울리는 생감이다. 차와 빵, 그리고 책. 책과 책 사이에 다정함이 있다고 할까. 두 권의 책이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는 듯하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을지도 모른다. 9월의 맑은 하늘처럼 모두가 맑음이었으면 한다. 흐림이었던 마음이 천천히 맑음으로 변하는 그런 하루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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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 성큼성큼 당차게 내게로 들어온다. 팔뚝을 쓸어내리는 순간이 많아졌다. 옷장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여름 이불도 빨아야 할 때가 되었고 밥을 먹을 때마다 뜨거운 무언가를 찾게 된다. 따뜻한 감자 두 알과 물 김치로 든든한 아침을 먹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살짝 고백하자면 성실한 예배는 아니었다.


대청소를 하기에도 좋은 날씨, 피크닉을 떠나기도 좋은 날씨, 맑고 투명하고 화장한 날씨에 집 안에만 있어야 해서 친구는 우울하다고 했지만 마음껏 햇살을 받고 게으름을 부리기에 정말 완벽한 아침이다. 방충망 위에 살포시 앉아 곤충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재미도. 가을이구나, 싶다.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을 오래 담아두고 싶다.





주 중에는 보일러를 수리했다. 화요일 저녁에 거실의 온도조절기의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걸 발견했다. 다시 켜지지 않았다. 예고나 기척도 없이 작동을 멈췄다. 작년 여름 보일러를 수리하거나 교체해야 할 위기가 있었지만 잘 견디나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이틀에 걸쳐 수리를 했고 보일러를 교체했다. 비용이 상당해서, 속상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이너스의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이런 내가 태평한 사람이구나 여길 것이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한 겨울에 발생했더라면 여러 날 불편을 감수해야 했으니. 지금이 가장 적절한 때일지도 모른다고 정리를 했다. 후회를 하고 책망을 하는 일은 한 번으로 족하다. 계속 그것에 매달려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니 깔끔하게 털어버려야 한다.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아서 힘들다.


기다렸던 황정은 작가의 연작소설 『연년세세』가 출간되었다. 그런데 가격이 비싼 건 아닌가. 나만 그럴까. 네 편의 이야기, 188쪽. 이 책으로 처음 황정은 작가를 만나는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마케팅의 비용일까. 그냥 좀 궁금하다. 황정은 작가를 좋아하기에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아무튼 빨리 읽고 싶다.


밤에는 활짝 열어두었던 문을 닫는다. 열어두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습하고 더웠던 날들이 지나갔다. 이제는 창문과 방문을 닫는다. 문을 닫을 계절이 왔다. 열렸던 모든 것들이 닫히는 계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열려있어야 할 것은 열린 채로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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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날들을 돌아보니 엉망과 흐트러짐이다. 반듯한 생활을 지향하는 건 아니지만 8월은 진짜 엉망진창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상이기도 하다. 평온에 가까웠던 지역에 확진자가 나오면서 나는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잠깐의 날들이 연장되어 멈춤이 아닌 머무름이 되었다. 돌아가지 못한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무기력의 강도가 걷잡을 수없이 커진다. 거기다 열대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이 길어지니 올빼미처럼 밤새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날이 많아졌다. 멍하니 창밖의 먼 산을 바라보거나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간도 길어졌다. 낮의 일상은 균형을 잃었고 흔들린다. 잘 마른 수건처럼 명랑한 일상은 어디에 있는가.





앞 동에 이사를 오는 모양이다. 몇 시간째 요란하게 짐을 옮긴다. 길고 긴 사다리차 위로 짐을 실은 박스가 올라간다. 누군가의 삶이 담긴 보라색 상자가 유독 강하게 박힌다. 이사를 오는 집은 며칠 전부터 밤새 불이 켜졌고 텅 빈 집 안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부족하고 불편한 것들을 제거하기 위한 시간이었겠지. 층수가 비슷하니 더 잘 보였다. 어떤 사람들일까.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식구는 몇 명일까. 아이들이 있을까.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있을까.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장 보기의 횟수가 늘어난다. 후회를 하면서도 창을 연다. 단점은 충동구매를 한다는 점이다. 계획된 소비를 하려고 해도 품절되었던 상품이 재입고되었다는 알림을 받으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다시는 그 물건을 구매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 지금 당장 주문해야 할 것 같다.


8월엔 겨우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그나마도 리뷰를 쓰지 못한 책도 있다. 기록의 즐거움을 놓아버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마음을 다잡다가 이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으로 기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그래도 9월엔 이런 마음이 조금씩 사라져야 한다. 정리와 정제의 9월을 위한 책으로 루시아 벌린의 자전 에세이 『웰컴 홈』과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여름 비』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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