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아침마다 병원에 들러 하루를 시작했다. 마스크를 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마주하고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온 어린아이들을 봤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고 의사에게 심각한 상태라는 말을 계속 들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나 완쾌가 된 건 아니다. 오른쪽 청력이 떨어졌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오른쪽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길어진 연휴만큼의 약이 쌓였다. 약사에게 문의를 하니 약 기운은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자꾸만 기운이 없고 깊은 밤이 오기 전에 잠에 빠져든다.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한가.
작고 소소한 것들이 일상을 지배한다. 화장실 변기 레버가 말썽을 부려서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했다. 검색을 해서 나름대로 손을 봤지만 사용할 때마다 불편했다. 그건 임시변통에 불과했다. 기사님이 오셔서 살펴보니 한결 나아졌다. 사용하다가 혹시 또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요청을 하라고 한다. 기사님이 오신 김에 싱크대 수도꼭지도 불편했던 게 있어 문의를 드렸다. 장비가 필요한 일이라면서 다시 재방문을 해주셨다. 헐거워진 수도꼭지를 조여주시면서 수돗물의 양도 조절해 주셨다. 차가운 물의 세기는 약하고 뜨거운 물의 세기는 강한 채로 사용하고 있었다. 불편했지만 잘 몰라서 그대로 사용했다. 냉수와 온수 모두 강하게 쏟아졌다.
약한 것을 강하게 조절할 수 없었을 때는 아쉬운 대로 그냥 사용했지만 강한 상태의 것을 약하게 조절할 수 있으니 편리했다.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물을 시용할 때마다 강하게 사용할 때는 강하게 약하게 사용할 때는 약하게 사용한다는 단순함이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한 것 같았다. 조절한다는 건 완벽하고 훌륭한 거구나. 조절하다란 말이 냉큼 좋아졌다. 그러면서 현재 아픈 나의 몸을 생각했다. 나의 귀는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하게 낮아졌고 감정도 그러하다. 뭔가 잘못하고 고장이 난 것처럼. 잘못한 건 아닐 텐데, 누군가에게 혼이 아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 나를 온전히 조절할 수 있는 건 나라고 자부했는데 말이다. 강해야 할 때 강하게, 약해야 할 때 약한 나로 조절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요즘 나에게 필요한 단어는, ‘조절하다’다.

전환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여전히 그건 책이다. 연휴를 맞아 쌓인 책들, 읽거나 읽고 있거나 읽어야 하는 책들이다. 모두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황정은의 『연년세세』는 정말 좋구나, 김승옥문학상은 대상 수상작보다는 최은미의 단편이 더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읽고 있는 강진아의 『오늘의 엄마』는 현실적 서사라서 더 아프다. 사실 제목 때문에 피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명절 근처에 읽고 있다.
오른쪽 귀의 통증은 약해졌고 사라지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