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병원 진료로 주말 아침을 시작했다. 한글날이었던 어제도 다녀왔다. 어제 의사는 고막이 많이 얇아졌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막에 대해 설명을 한참 했다. 이렇게 긴 시간 병원에 다니고 항생제를 먹어야 될 줄 정말 몰랐다. 오늘도 의사는 그만 와도 좋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튼 여전히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있다. 아주 열심히 말이다.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어서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한다. 이 살을 어쩌란 말이냐.
지난주부터 바뀐 약이 너무 써서 약사에게 문의를 했더니 “소태처럼 쓰죠?”란 답이 돌아와다. 아, 많이 들어본 말이지만 정작 ‘소태’가 무언지 몰랐다. 검색을 해보니 소태나무의 껍질이란다. 약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초콜릿, 사탕을 먹어도 그 맛이 사라지지 않는다. 잠들기 전까지 나는 소태맛을 느끼고 있는 지경이다.
오늘 병원에서는 할머니와 손녀의 대화를 보고 보게 되었다. 할머니가 손녀를 데리고 독감 예방접종을 하러 온 것으로 보였다. 할머니는 사투리가 심하셨다. 손녀의 이름을 부르는데도 느껴졌다. 그랬더니 손녀가 자신의 이름을 정정해 주었다. 혹여 추울까 봐 손녀는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 후로도 할머니의 말을 손녀는 계속 정정했다. 할머니와 손녀는 호미를 하나 산 것 같았다. 손녀가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접종 후 주의사항을 듣고 손녀에게 오늘은 호미질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손녀는 그 호미로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궁금했다.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으니 그 모습이 정말 친근하고 정겨웠다. 나도 할머니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읍의 작은 병원은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병원에서 만나 안부를 전하고 전혀 모르는 이들이 서로의 농사에 대해 조언을 한다. 시골에서나 가능한 풍경이다. 아마도 첫차를 타고 온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병원을 들러 저마다 자신의 일터로 돌아갈 분들이었다. 주말이나 휴일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가을은 마늘을 심고 생강을 캐고 벼를 추수하는 계절이다. 그리고 이런 국화의 꽃망울을 기대하는 날들이다.


아파트 화단에 수국과 작은 국화 화분 옆에 제법 큼직한 화분이 하나 더 놓였다. 노란 꽃망울을 곧 터트릴 것 같다. 은은하게 국화향이 나는 것 같았다. 가을이 익어가는 장면이라고 할까. 우리의 가을도 익어가고 있는 걸까. 귀는 통증은 거의 사라졌지만 나는 조금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