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문학으로서 삶
알렉산더 네하마스 지음, 김종갑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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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너무나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선뜻, 용감무쌍하게도 '니체'를 쉽게 알고자 했었다는 사실을 저자의 서문을 읽는 순간부터 몸과 마음 가득히 깨닫기 시작하면서 니체로 가는 길이 험난해지기 시작했다. 그저 놀라운 명성에 끌려서 읽기에는, 니체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기에는 매우, 매우 어려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래도 그나마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저자가 바라보는 '니체'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니체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과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모습에서 문외한이었던 내가 니체를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고 그분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고 진정 말하고 싶다. 아, 물론 저자의 설명은 물론 니체의 사상은 내겐 너무 어려운 벽이었고 산이었음을.......

 

니체의 사상은 광범위하고 다양한 견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해석하고 있는 이 책에서조차 쉽게 접근이 되지 않고 생소하고 낯설다. 하지만 어설프게나마 니체의 견해에서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어느 특정 종교를 지칭하기는 했지만 그 종교 자체보다는 그 기원에서, 가치관에서 극단의 독단적인 생각을 매우 경계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지침을 정해놓고 수많은 다양한 삶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 통제하려 한다는 자체가 그를 몸서리치게 했음을, 그의 견해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했을지라도 공감하는 수많은 예찬자들도 있음을 보여준다. 나 역시 어설프게나마 그렇게 아주 조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으면 읽을수록 다양하게 읽혀지고 해석되어지는 그의 경구와 미스터리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또는 삶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는 수많은 사상들은 난해하고 어렵다. 그저 니체 사망 이후 가장 니체의 사상을 우아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는 저자를 따라서 더듬, 더듬거리며 그의 사상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의 다양한 견해를 듣고 때론 수긍을 못하고 이해를 못할지라도 또 때론 공감하며 그에게 경탄하고 싶어진다. 작가이며 동시에 자신의 독자였던 니체를 열정적으로 자기 성찰에 몰두했던 그를.

 

'니체 문학으로서의 삶'을 꼭 다시 기회를 만들어서 읽고 싶다. 더불어 좀 더 니체의 사상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니체의 저서를 읽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나의 무지함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중 가장 큰 깨달음은 니체의 사상들을 통해서 아주 미약하게나마 또 다른 세상을 본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생각들이 춤을 춘다는 것이다. 비록 발만 까닥거리는 정도일지라도 말이다. 얼마나 작고 또 작은 생각의 틀에서 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주 조금 나아가고 싶어졌다. 니체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사상을 통해, 그러한 니체의 사상을 훌륭하게 알려주고 있는 저자 알렉산더 네하마스를 통해서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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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친절 - 친절의 가면 뒤에 숨은 위선과 뒤틀린 애정
바버라 오클리 지음, 박은영 옮김 / 열대림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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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친절'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은 도대체 '그녀는 누구였을까?' 하는 원초적인 질문이자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었다. 저자는 실제 일어난 살인사건을 통해 사건이면에 숨겨진 실제 사건의 모습과 친절의 이면에 숨은 위선과 비뚤어진 애정관과 주변인물들 간의 다층적 심리들을 정신 병리학적으로 분석하여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특히, 저자는 수사 초반에 피해자로 인식되었던 캐럴 앨든의 숨겨진 모습을 통해, 그녀의 욕망에 초점을 두어 새로운 방식으로 살인사건을 낱낱이 파헤치고 전체적인 수사과정을 철저하게 재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그녀의 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건은 2006년 7월 29일, 미국 유타 주의 한 마을에서 동물 애호가이자 예술가인 캐럴 앨든이라는 여자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인 후 정당방위로 남편을 죽였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시작된다. 처음 도착한 수사관들은 캐럴의 남편 마티의 마약관련 긴 전과기록을 알고 있었고 술 마시고 폭력적으로 행동을 보였다고 캐럴에 의한 신고 전화가 빈번했던 점을 기억해냈고 그저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캐럴을 대하게 된다. 하지만 여러 번의 걸친 심문 결과 캐럴은 교묘하게 진술을 번복하게 되고 캐럴이 주장하는 사건과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살인의 증거가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서 살인사건은 전혀 다른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과연 그녀의 살인은 가정폭력에 의한 매맞은 아내의 정당방위였을까? 아니면 마약과 술에 절은 마티를 도발한 계획적인 살인이었을까? 아니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살인사건일까?

 

'냉혹한 친절'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매 맞는 여자 증후군에 속하는 피해자이거나 나쁜 남자에 매료되어서 자신이 돌봐주면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 돌봄 강박증이 아닐까 했었다. 그러다 나쁜 남자의 지독한 폭력에 의해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정당방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저자가 수감되어 있는 캐럴과의 편지 왕래를 통해서, 인터뷰를 통해서, 캐럴의 가족과 마티의 가족과 지인들을 통해서, 수사관들의 수사를 통해서 실제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이 사건은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며 피해자 캐럴에서 가해자일 수도 있는 범죄자 캐럴의 모습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보인다. 저자는 이를 위해 뇌 과학과 심리학, 범죄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 자료들을 통해 캐럴 앨든이 그렇게 된 이유를 찾고자 하며 사건을 다각도에서 보려고 한다. 이쯤 되면 캐럴의 실체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겉으로 보여 지는 모습과 실제 사건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고 가해자로만 인식되었던 캐럴의 남편 마티는 또 다른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건의 진술은 거의 캐럴의 입장에서 나온 그녀의 진술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진실은 그녀의 진술 속에 가려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물론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죽음을 맞이한 상태에서 그날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실제로 캐럴이 단순히 감정이입이 지나치게 많았던 친절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친절한 사람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동반의존, 매 맞는 여자 증후군, 돌봄 강박증, 애니멀 호딩 등을 복합적으로 지닌 여자이기에 나쁜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다가 정당방위로 상대방을 죽인 피해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를 통해서 그 모습만을 단순한 진실로 보기에는 드러나기 시작한 실제의 모습은 더 이상 그녀의 모습을 그녀가 원했던 다섯 아이를 폭군으로부터 지키고자 했던 다정다감한 어머니의 이미지와 독특한 예술 세계를 지닌 예술가의 모습만으로 보기에는 추함이 가려지지가 않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캐럴은 수감되어 있으면서도 가족들을 통제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저자의 연구가 진실이 아니라며 수많은 항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은 친절하고 다정한 어머니이며 예술가이라고.

 

저자는 이 책이 “잘 속아 넘어가는 캐럴의 이야기가 아니라 잘 속는 우리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캐럴을 통해서 타인에 대한 왜곡된 감정이입과 위험한 친절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깨닫게 되는 이야기이다. 때로는 잔인한 결과를 초래하는 친절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친절을 가장한 냉혹한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다만 저자가 우려했던 것처럼 실제 폭력에 의한 진짜 피해자들이 그녀들의 행동에 대해, 캐럴의 사건으로 인해 의심받고 추궁당하며 오히려 피해자에서 억울한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현상에 대해서 깊은 우려가 된다. 더 많은 심층적인 다각도 연구를 통해, 실제 피해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면 하고 그 반면에 아직은 미흡한 법과 연구,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시켜 피해자 역할을 하는 냉혹한 가해자를 가려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한다. '냉혹한 친절'을 다 읽은 후에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도대체 '그녀는 누구였을까?'하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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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기원 -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
브라이언 보이드 지음,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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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지 못했지만 기대만발인 책이다. 인간의 종은 스토리텔링 본능이 진화되었다는 생각에 깊게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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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하위징아
빌렘 오터스페어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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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에, 처음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중세의 가을'을 읽으면서 중세시대에 대한 그의 열정과 방대한 지식을 엿볼 수 있었고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과 중세 시대를 생생하게 재현해나가는 이야기의 힘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마치 그 시대를 살았던 중세인처럼 느껴지고 세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역사적 지식과 더불어 문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야기한다. 역사학자로서, 문학을 읽지 않는 자는 역사를 할 수 없다고 논증하며 1905년 교수 취임 연설에서 "만약 역사학자가 교황청의 공식 읽고 디에스 이라에(분노의 날, 중세에 널리 유포되었던 기독교 사상을 담은 시 - 옮긴이)를 읽지 않는다면, 그는 13세기에 대하여 어떤 그림을 그려낼 것인가?" 라고 말이다. 그만큼 그는 인문학을 원천으로 한 시대를 풍부한 언어와 상상력으로 표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저명한 네덜란드 학자인 빌렘 오터스페어가 모든 작품을 예리하고 분석적으로 탐구하고 소개하는 책이 '요한 하위징아'이다.

 

학자 빌렘 오터스페어는 요한 하위징아가 발표한 모든 작품을 하위징아의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관과 철학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요한 하위징아의 철학은 대조, 조화, 기억, 욕망, 특수한 면과 보편적인 면의 양극단을 조화롭게 통합시켜 시각적인 이미지와 수많은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데 읽기와 쓰기, 정열과 초연, 방법과 신비주의 등 다양한 쳅터를 통해 다른 역사가들과는 다른 시각을 지녔던 위대한 역사가를 조명한다. 오터스페어는 하위징아를 역사가보다는 작가에 더 가깝다고 보았고 그의 수많은 저서를 통해서 전체 혹은 영원을 알려주는 순간들을 파악하기 위해 공감각을 통해 언어의 소리감각, 회화의 시각, 음악의 청각을 통해 사소한 일상의 순간을 통해 전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순간들의 관찰을 통해 한 시대, 인물을 추론하고 파악하며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하위징아의 역사적 시각을 이해하며 새롭게 알려준다.

 

'요한 하위징아'를 읽으면서 새삼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를 생각하게 되었고 작년에 읽었던 책이며 이 책 속에서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는 '중세의 가을'을 떠올리게 되었다. 방대한 분량이었기에 나눠가며 열심히 읽었던 책이었고 남다른 역사관과 시각을 지녔던 역사학자였기에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다. 그중 가장 특징적이었던 부분은 중세시대를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중세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많은 예식과 그 시대를 살았던 한 인물을 마치, 바로 그 시대를 같이 산 사람이 직접 보고 설명한 것처럼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런 모든 점들이 학자 빌렘 오터스페어의 탐구를 통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에는 미처 세세하게 읽어내지 못했던 요한 하위징아의 철학적인 면을 읽기, 쓰기, 대조, 시각적, 공감각적인 면을 극단으로 배치하며 설명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다시 한 번 꼭 '중세의 가을'을 다시 한 번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의 철학을 좀 더 이해하고 읽는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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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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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었던 점들이 무엇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을 더듬어 본다.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중세의 지독했던 봉건제, 잔혹한 마녀사냥, 종교의 이름으로 모든 삶을 통제했던 시대, 흑사병이 창궐해서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시대, 바로 '암흑의 시대'로만 떠올랐고 가장 답답했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나마 낭만적으로 생각되었던 부분들은 기사들과 그 기사들이 보호했던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연애사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중세'에 대해서 그동안 얼마나 얇게, 편견을 갖고 생각해왔는지를 새삼 '중세의 가을'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작가 하위징아는 '중세의 가을'을 전성기가 지나 쇠락해가는 시대라는 의미와 앞으로 다가올 르네상스를 품고 있는 근대로 나아가는 시대라는 의미로 '가을'이라고 표현했다. 하위징아가 들려주는 '중세의 가을'의 시대적 배경은 14세기와 15세를 중심으로 지역은 프랑스와 부르고뉴,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등을 중심으로 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중세를 알면 알수록 참으로 극단의 시대였음을 알게 된다. 강렬하다못해 장렬해 보이기까지하는 신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빈자와 부자,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 간의 경제적 대립, 왕족의 권력다툼은 극렬한 대비를 보이며 전개된다. 이러한 모든 극적인 역사적 중세 이야기들을 하위징아는 조근조근 설명해준다. 자신의 중세의 대한 역사관과 그동안 잘못 알려진 중세에 대한 편견을 조목조목 나열하며 설명해준다. 읽다보며 하위징아의 깊은 중세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도대체 나는 중세를 왜 그리도 편견을 갖고 바라보았을까, 그 시대 역시 우리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현대보다 조금 더 극적인 상황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을텐데, 왜 무조건 비참하기만 한 생활을 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까, 왜 그들을 종교의 광적인 상태에서 잔혹함을 받아들이기만 한 사람들이라고 단순히 생각하는 우를 범했을까 싶다. 결국 난, 중세를 다룬 현대의 영화, 중세를 다룬 낭만적인 소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기사들과 아름다운 공주들만을 생각했고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중세의 다른 면들은 또 다른 세계처럼 분리해서 생각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하위징아를 따라 중세의 읽다보면 그러한 편견들이 깨지기 시작한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중세 봉건주의에서 평민들과 신흥계급 부르주아, 왕족들은 중세의 빛과 그림자 속에서 두 극단을 오가며 삶을 이끌어왔던 것이다. 현실의 비참함을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모습에서, 신께 바치는 사랑으로 말이다.

 

하위징아는 말한다. 중세는 그 나름의 소박한 삶과 신께 바치는 열정과 왕권 다툼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인본주의를 품고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르네상스와 근대의 시대를 만들수 있었다고 말이다. 또한 강조해서 전한다. 진정한 역사를 파악하려면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립시키기만 해서는 안 되고 미학, 윤리, 심리, 종교, 학문, 예술, 사회 등을 다양하게 파악하고 중세 인들의 삶을 이해해야만 온전한 역사를 알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피상적인 면만 보게 되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역사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계산적이고 냉철한 사람들이지만 그 속에서 소박한 삶을 이끌어가고 아름답지만 헛된 환상을 꿈꾸기도 하면서 꿈과 소망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이다. 작가 요한 하위징아를 통해서 중세뿐만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편협했던 시각에서 좀 더 확장된 시각으로 중세를,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작은 '힘'이 생겼다고 믿고 있다. 결국 역사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계이고 삶이니까 말이다. 아직은 엄청 부족한 지식으로 헤매고 있지만 꾸준히 공부를 한다면 건강한 역사관과 세계관을 지니게 되지 않을까하는 희망 찬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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