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국가의 부 나남신서 164
제인 제이콥스 지음, 서은경 옮김 / 나남출판 / 2004년 9월
품절


베니스가 콘스탄티노플과의 양방향 교역에만 집중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랬다면 베니스는 고유의 도시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베니스가 콘스탄티노플을 모방해 생산했을 조악한 상품은 콘스탄티노플 사람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태동단계의 베니스는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수입한 다양한 제품을 자체생산으로 대체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 수 있었던 제품과 생산할 수 있었던 제품은 그 차이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베니스가 필요했던 것은 실제로 자신이 생산할 수 있었던 도시에서 만든 제품을 사줄 시장이었다. 그 시장을 통해서만이 경제발전 프로세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164쪽

우르과이의 몬테비데오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라플라타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농촌으로 둘러싸인 이 두 도시는 모두 부유한 선진경제와의 단순한 양방향 교역에 집중하였다. 서로 기댈 어깨를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하지 못했다. 낙후된 도시는 서로의 힘이 필요하다.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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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제국주의 - 오리엔탈리즘과 중국사
폴 코헨 지음, 이남희 옮김 / 산해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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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70년대 이전 미국의 중국 연구자들 - 특히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엽의 중국에 대한 연구자들 - 이 가졌던 연구경향을 분석, 비판하고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연구경향을 요약하고 있다.

코헨은 기존의 접근법을 세가지로 대별하고 있다. 그것은 충격-반응 접근법, 근대화 접근법, 제국주의 접근법이다. 충격-반응 접근법은 19세기 중국사를 서양의 충격에 따른 중국의 반응으로만 해석하는 방법이다. 근대화 접근법은 전통시대와 근대로 긴 중국의 역사를 간단히 구분하는 이분법적 방식이다. 제국주의 접근법은 근대화 접근법에 대한 비판적 접근법이다. 세가지 접근법 모두 서양의 영향을 과대평가하고 중국 내부의 발전이나 갈등구조를 등한시한다. 세가지 접근법은 모두 무엇이 중국의 근대사회로의 이행을 촉진 또는 방해했느냐는 목적론적 접근법에 함몰되어 실제 무엇이 일어났느냐는 비목적론적 질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시각과 연구성과를 볼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에서 매우 드라마틱하게 읽히는 부분은 제3장 초반의 제임스 펙에 의한 기존 중국전문가 비판과 반비판, 이어진 반반비판 그리고 저자의 촌평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야기된 (미국)제국주의에 대한 반성 또는 증오가 미국내 중국학 학계를 어떻게 뒤흔들어 놓았는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1980년대 남한 대학가를 휩쓴 지적 광풍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의 주저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중동 지역 연구에 있어  서구의 편견을 잘 보여준 것처럼 폴 코헨은 오리엔탈리즘의 폐해가 중국 연구에 있어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 책은 인문학 관련 책으로 치부될 수 없는 사회과학자에게도 필독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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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 서울대학교동양사학강의총서 8
로이드 E. 이스트만 지음, 민두기 옮김 / 지식산업사 / 199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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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최대 약점은 장개석이 패한 이유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하지만 모택동이 승리한 이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짐작컨데 저자가 철저한 반공주의자라서 모택동이 승리한 이유를 기술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 아닐까.

이 책에는 경제학을 전공한 이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제2장 항일전시기의 농민과 징세 및 국민당 지배와 제3장 전후기의 농민과 과세부담과 혁명이다. 부정부패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고전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특히 부정부패에 직면하여 농민들이 어떻게 대응하여 조세를 회피하는지도 잘 보여준다. 또한 혁명과 정부재정의 관계에 대한 통찰도 돋보인다.  아쉬운 측면은 부농과 대지주들이 과세를 피할 수 있었던 구체적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또하나는 제8장 장경국과 금원권 통화개혁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이마르공화국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비견되는 중국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사례를 읽을 수 있다. 화폐금융론 초입에서 등장하는 재정과 신뢰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갖는 관계에 대해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하면 바이마르공화국만 예를 들던 경제학 강사 또는 교수들은 꼭 한번 읽고 써먹길 바란다.

저자가 들고 있는 장개석이 패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1927년 토지개혁을 실시할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1927년에 국민당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토지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는데 장개석은 토지개혁을 미루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우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마 저자는 1927년부터 1937년 사이의 국민당 역사를 다룬 "유산된 혁명"이라는 책에서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왜 이 책은 번역되지 않는 것일까. 고 민두기 선생님의 제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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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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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달에 따라 새로운 필요가 만들어지고, 거기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빈곤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일리치의 말을 빌리면, '근원적 독점'에서 생기는 빈곤입니다. -87쪽

20세기가 되면서 사람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필요하다고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물건이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물건을 만들게 되었습니다만, 그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취미라든가 흥미가 변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새로운 제품을 사지 않으면 만족한 생활이 불가능한 그런 사회를 그동안 우리는 만들어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살펴볼까요. 지금까지 존재했던 적이 없는 상품이 처음에는 사치품으로 등장합니다. 살 수 없는 사람은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 일로 속이 상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사회가 변하면 그 상품은 어느새 '있으면 좋은 것'에서 '없으면 곤란한 것'으로 변해가며 살 수 없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가난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88쪽

지금 캘리포니아의 거의 모든 거리에서는 자동차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는 별개 문제로 자동차가 있다고 하는 것이 거리 구성의 전제가 돼버렸습니다. 이것이 일리치가 말하는 '근원적 독점'이라는 개념의 의미입니다.
자동차 사회는 "자동차를 사면 어떻겠냐?"라고 사람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없으면 가난뱅이다, 그대는 매우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사람을 위협하고, 강제하고 있습니다.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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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험지옥-과거 - 중국학술사상 15
미야자키 이치사다 / 청년사 / 198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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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란 참 애매한 장르이다. 길게 늘어놓으면 차라리 책을 읽는 것이 나은데 왜 서평을 읽냐는 소릴 들을테고 너무 짧으면 내용도 알 수 없고 느낌만 기록된 것이 무슨 평이냐고  한 소릴 듣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쓴 서평들을 읽어보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쓴 서평들을 읽어보면서 내 나름대로 서평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능한 한 짧아야 한다. 긴 서평이란 단편소설을 요약하는 행위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둘째, 읽는 이에게 이 책이 읽을만한 책(또는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라는 서평자의 느낌을 설득력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책의 판매자로서 이득을 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평되는 책을 읽는 이의 증식(또는 그것의 차단) 자체로 기쁨을 느끼는 서평 고유의 목적에 부합되는 준칙이다.

셋째, 본인이 나중에 읽었을 때 도움이 되는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이란게 읽고 난 뒤 생각하고 느낀 바를 글로 남겨 정리해둘 때 훨씬 자신에게도 남는게 많다. 일종의 독서노트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런 세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서평쓰기에 나 자신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런 세가지 원칙을 지킨다면 내가 쓴 서평도 좋은 서평이 될 것임은 틀림없다.

미야자키 선생의 이 책은 이전에 내가 읽은 이스트만의 "중국사회의 지속과 변화"(돌베개, 1999, 이승휘 옮김) 그 중에서 특히 제9장 근대 전기의 새로운 사회계층을 읽으면서 느낀 문제의식 때문에 읽게 되었다. 나는 중국의 전통시대 과거제도가 의외로 비용측면에서 값싼 계층이동의 수단이라는 이스트만의 평가에 흥미를 느꼈고 실제로 그러했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학문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글을 읽다가 참고문헌에 있는 글을 읽고 싶어서 뒤져서 읽게 되면 새로운 문제의식을 느끼고 다시 그 글의 참고문헌을 뒤지게 되어, 결국 산더미같은 지식의 네트워크 속에서 희열을 느끼며 헤매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은 이스트만의 책에서 흥미를 가진 문제 이외에 독자적인 또다른 질문을 내게 던졌다. 그것은 과거제도와 교육제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었다. 중국의 과거제도는 교육제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재를 선발하는 목적을 놓고 보완관계일 수도 있고 대체관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전국적인 교육시스템의 구축은 정부의 재정 부담을 크게 하는 것이었으며 최소한 명, 청조는 교육시스템에 투자를 꺼렸다(북송대는 학교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교육은 민간 자체의 비용부담에 맡겨졌고 정부는 값싼 시험제도만을 운용하여 필요한 인재를 뽑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근대적 교육시스템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를 맴돌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드는 의문은 과거제도가 우리 역사의 제도와 참 유사하다는 것과 함께 그렇다면 과거제도를 둘러싼 중국 내의 논쟁이 우리에게도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논쟁이란 예를 들면- 과거는 유학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닌가, 교육시스템에 투자를 하는 것은 어떤가, 채점관의 부정을 막기 위해 시험지의 이름을 가리거나 필체를 알 수 없게 사본에 의해서만 채점을 했던가, 사농공상 모두에게 시험자격은 공평했던가, 문벌귀족과 사대부 사이의 과거를 둘러싼 투쟁은 없었는가 등등이다. 이런 질문이 그 시대 내에서 또는 그 시대를 연구하는 현시대에서 없을리 만무한데, 과연 그러하다면 우리의 선조들과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이런 문제에 어떤 고유한 대답을 하였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우리 역사학의 현단계를 보여주는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싶다.

이 책은 미야자키 선생이 대중용으로 저술한 책이다. 전혀 딱딱하지 않고 소설책처럼 읽힌다. 이 말은 단순히 쉽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좋은 소설처럼 과거를 치루던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우리의 머리 속에 재현시켜준다는 점에서 명저라고 불릴만하다. 시간이 없는 분들은 가장 주관적으로 서술된 "과거에 대한 평가"와 "저자 후기"만을 읽어도 얻는 바가 상당하다.

마지막으로 써놓고 보니 너무 긴 서평이다. 첫번째 조건부터 충족하지 못한 졸평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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