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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추구시장과 사회적 시장의 주거임대 전략(p. 16 ~ p.19)

이윤추구시장 전략은 전적으로 이윤추구원리에 기초한 주거임대시장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정부가 영리임대에 대한 어떤 규제를 유지할 강한 정치적 압력이 존재하고 이에 따라 임대료통제 등의 규제조치가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지속된다. 이윤추구시장에서는 의미있는 규모의 비영리임대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결과적으로 주택부족시기에 광범위한 주택투자증가와 주택과잉시기의 주택투자 급감의 사이클이 반복된다. 그리고 상당한 규모에서 한계화(marginalisation)로 귀착된다. 이런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정부는 정부가 운영하는 비영리주거임대 부문을 만들어낸다. 비영리임대는 국가에 의해 사적 영리임대시장으로부터 분리되고 강하게 규제된 공공임대부문의 형태로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이용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주거임대시장에서 국가개입을 최소화하려던 것이 주거임대시장의 일정부분 전체를 국가가 책임지는 것으로 귀결된다. 영리를 추구하는 시장을 발전시키고 창출하려는 행동이 사회적 주거임대부문의 규모를 최소화시킨다(물론 동시에 사회적 주거임대부문의 필요를 창출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요와 공급 사이의 갭을 메꾸기 위해 비영리주거임대를 공급하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정부에 의한 비영리주거임대의 제공이 어느 정도 규모가 될 것인지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어떤 경우는 몇 퍼센트에 그치기도 하고 다른 경우는 매우 큰 규모가 될기도 한다 규모의 차이는 시장주의가 얼마나 강하게 추구되었는지 그리고 이를 위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졌는지에 영향받는다. 어쨌거나 영리주거임대시장을 가진 나라들 모두에 비영리주거임대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산업화된 사회의 모든 정부는 비영리주거임대를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운용하는 비영리주거임대 부문을 창조하는 것은 영리주거임대시장이 만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공공임대부문이 늘어나서 영리임대부문을 위협할 경우 이를 경계하는 것이 지속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공임대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강해진다. 이런 중앙집권화된 정부통제는 점차적으로 공공임대부문을 명령경제로 재구조화한다.

영리주거임대시장이 보통의 가구에게 적정한 주거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정부는 국가가 운영하는 주거임대가 이런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개별가구의 선호에 영향을 준다. 잔여화된 공공임대부문은 엄격한 자산조사와 낙인효과 등으로 대부분의 가구의 현실적인 대안 중 하나가 되지 못하고 대부분의 가구들은 자기집을 가질 것인지 아니면 높은 임대료와 불안정한 임대기간의 영리임대를 계속 할 것인자의 선택에 직면한다. 이에 따라 자가소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영리시장전략은 결국 자가소유에 대한 수요를 구조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시장주의 정책은 처음에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자가소유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변모한다. 이런 정책 전환은 자가소유에 대한 소비자 선호를 낳고 이것은 다시 자가소유 촉진정책을 강화한다. 소유와 임대에 대해 중립적인 정부정책이 발전되지 않으며 대신에 주거시장은 자가소유 가구의 수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된다.

이런 결과는 자기실현적 예언과 같다. 그런데 자가소유의 선호가 먼저인지 자가소유를 촉진하는 정책이 먼저인가? 이것은 닭과 달걀의 문제와 같다.

주거임대시장에서 시장주의 정책의 결과는 신자유주의의 최소국가 이상의 정반대가 된다. 그런데 최소화된 공공임대부문의 창출을 향한 경로는 비틀려있다. 경로는 다음과 같다.

1. 공공정책이 방해받지 않는 영리임대시장을 촉진한다.

2. 사회 내 일부의 한계화를 낳는다.

3. 정부는 가구를 도와줘야한다는 정치적 압력을 받는다.

4.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비영리임대부문을 창조한다.

5. 비영리임대부문은 영리부문과 경쟁하지 않도록 격리된다.

6. 비영리임대부문은 주거임대에 대한 수요를 낮추는데 충분치 않다.

7. 공공임대부문이 커지고 성숙됨에 따라 공공임대의 상대적인 임대료가 하락한다.

8. 공공임대부문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 통제가 강화된다.

9. 임대로부터 자가소유로의 수요 전환이 야기된다.

10. 정부는 점차 자가소유 촉진정책을 강화한다.

 사회적 시장모델에서는 비영리주거임대부문이 영리임대부문과 경쟁하도록 촉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비영리임대부문은 임대시장 전체를 개선하는데 심대한 영향을 준다. 신규주택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도록 함으로써 주택과잉과 부족의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며 시장임대료 수준을 낮추기 때문이다.

낮은 임대료로 인해 소액의 보조금제도가 유지가능하다. 영리임대시장체제에서 임대료공제가 낳는 주요한 문제는 공급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수요를 증가시켜 높은 임대료를 더욱 높게 만드는 것이다. 비영리주거임대는 임대기간의 안정성과 높은 수준의 주거서비스에 도움을 준다. 영리사업자는 시장의 힘에 의해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회적 시장의 중심적인 특징은 영리사업자가 상당한 보조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종종 영리사업자에 대한 보조금은 최소한의 건축기준, 임대기간의 안정성 유지, 임대료 수준 규칙의 준수와 같은 의무와 함께 제공된다. 결과적으로 순수영리시장의 최악의 결과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사회적 시장 정책의 특징은 영리사업자나 비영리사업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복잡한 형태의 임대료 규제가 발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들은 영미권 국가에서 때때로 나타나는 식의 일괄 임대료통제(blanket rent control)와 같은 형태가 아니라 시장순응적(marktkonform)이라는 것이다. 시장순응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달성된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서는 비용을 커버하는 범위 안에서 사용가치를 반영하는 임대료 구조가 발달하였고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기존의 임대료 수준을 반영하는 임대료비교시스템이 발달하였다.

자가소유를 지지하는 영리시장정책과 달리 사회적 시장전략은 누가 정치적인 편의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 여론의 목표를 전제하지 않는다. 비영리임대는 사회적 안전망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이 미리 설정된 자가소유비율 목표를 갖고 있지도 않다. 대신에 사회적 시장정책은 비영리임대가 영리임대와 직접 경쟁하도록 하고 소유자들 사이의 경쟁의 장을 창출한다. 이런 환경에서 임대인들 사이의 균형은 정부의 명령이 아니라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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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meny, Jim., From Public Housing to the Social Market, Routledge,1995

비이윤추구조직(NPO)를 시장의 일부로 간주하라는 것이 제1장의 주된 메세지이다. 시장주의는 NPO의 시장진입을 막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수 있다. 시장주의는 NPO를 국가부문으로 고립시키고 주변화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결국 PO와 NPO의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NPO는 국가부문으로 고립되고 PO만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 시장주의와 비시장주의의 차이는 주거정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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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을 둘러싼 개혁파와 보수파의 대립은 사상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일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배경으로부터 유래한 대립이기도 했다. 제임스 류는 "왕안석과 개혁정책"이라는 책에서 몇가지 대립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지역적 대립을 들 수 있다. 개혁파는 남방 출신이며 보수파는 북방 출신이다. 북송 중기에는 과거합격자 및 고관의 수에서 남방 출신이 북방 출신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지역적 대립에서 중요한 것은 화폐경제문제이다. 남방에서는 화폐경제의 발달이 현저하였다. 왕안석의 주요 정책은 화폐 및 금융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것이었다. 나아가 보수파는 대상인들과 연관을 맺고 있었고 화폐경제의 발달과 금융시스템의 정비, 재정제도의 발전은 기존의 독점적 상인의 이해를 침해하였고 이들의 입장이 보수파의 의견에 반영되었다.  

개혁파는 비교적 최근에 관위를 획득한 가문에서 배출되었다. 이에 비해 보수파는 오랫동안 관위를 유지해온 가문이었다.

개혁파는 신흥 중소지주층과 관료가문 출신이었다. 이들의 주 수입원은 토지소유가 아니라 봉록이었다. 이에 비해 보수파는 대토지소유자의 이해관계를 대표하였다. 그리고 대토지소유자에 의한 탈세가 북방에서 심각했다.

 제임스 류가 지적한 또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개혁과정에서 관료와 서리의 역할이었다. 왕안석은 개혁을 추동하는 힘으로서 관료와 서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이들이 부패하였다는 것이다. 개혁은 관료와 서리에게 또다른 부패를 낳는 권한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왕안석이 이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고, 몇가지 개혁을 추진했다. 예를 들어 왕안석은 구법 하에서 거의 봉급을 받지 못하던 서리에게 봉급을 줌으로써 부패에의 유혹을 차단하고자 했다. 하지만 재정 상 줄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었고 이전의 수입의 절반에 못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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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은 황금과 노예를 찾았다. 그 누구라도 황금과 노예를 바랄 것이다. 그렇지만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노예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기념상도 동시에 가지고 싶어했다. 그들은 지혜와 활력에 넘치며, 권력마저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의 문명의 두가지 측면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예와 기념상을 동시에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Naipau, V.S. A Ben in the River(New York, Vintage Books 1980) p. 17, Cohen 번역서 pp. 288~289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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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코헨, 학문의 제국주의 - 오리엔탈리즘과 중국사, 산해, 2003
Discovering History in China,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4

 

코헨의 이 책은 1970년대 이전 미국의 중국 연구자들 - 특히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엽의 중국에 대한 연구자들 - 이 가졌던 연구경향을 분석하여 비판하고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연구경향을 요약하고 있다.

 

코헨은 기존의 접근법을 세가지로 대별하고 있다. 그것은 충격-반응 접근법, 근대화 접근법, 제국주의 접근법이다. 충격-반응 접근법은 19세기 중국사를 서양의 충격에 따른 중국의 반응으로만 해석하는 방법이다. 근대화 접근법은 전통시대와 근대로 긴 중국의 역사를 간단히 구분하는 이분법적 방식이다. 제국주의 접근법은 근대화 접근법에 대한 비판적 접근법이다. 세가지 접근법 모두 서양의 영향을 과대평가하고 중국 내부의 발전이나 갈등구조를 등한시한다. 세가지 접근법은 모두 무엇이 중국의 근대사회로의 이행을 촉진·방해했느냐는 목적론적 접근법에 함몰되어 실제 무엇이 일어났느냐는 비목적론적 질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시각과 연구성과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에서 매우 드라마틱하게 읽히는 부분은 제3장 초반의 제임스 펙에 의한 기존 중국전문가 비판과 반비판, 이어진 반반비판 그리고 저자의 촌평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야기된 (미국)제국주의에 대한 반성 또는 증오가 중국학 학계를 어떻게 뒤흔들어 놓았는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1980년대 남한 대학가를 휩쓴 지적 광풍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의 주저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중동 지역 연구에 있어  서구의 편견을 잘 보여준 것처럼 폴 코헨은 오리엔탈리즘의 폐해가 중국 연구에 있어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 책은 인문학 관련 책으로 치부될 수 없는 사회과학자에게도 필독서라고 생각된다.

 

충격-반응 접근법

충격-반응 접근법이 야기한 세가지 중국 연구의 왜곡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양에 관계가 없는 사건을 과소평가한다.
둘째, 서양과 관계된 사건을 과대평가한다.
셋째, 중국인의 자각적 반응을 중시하므로 사상적, 문화적, 심리적 차원에서 문제를 파악하는 반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차원의 검토를 게을리 한다. 

코헨이 충격-반응 접근법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제안한 것은 중국을 세 개의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주변영역(outermost zone)
항구, 무기공장, 조선소, 왕타오. 총리아문, 해관, 기독교 개종자, 유학생, 외교관
중간영역(intermediate zone)
태평천국, 동치중흥, 자강운동, 관료기구, 조정에 있어서의 정치적 소요, 배외주의, 도시와 농촌 사이의 사회적, 정치적 긴장
중핵영역(innermost zone)
언어, 문자, 사상, 종교, 미의식을 표현하는 표현양식, 중국 농민들의 생활 스타일, 관습, 제도

주변영역은 충격에 대한 반응이 직접적이고 가장 중요한 곳이고 중핵영역은 충격에 의해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다. 19세기 중국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주변영역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중간영역이다. 중간영역은 학자들이 많이 연구한 분야인데 충격-반응론자들은 이것을 마치 주변영역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중간영역의 변화는 비록 서구의 충격과 관련은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오랜 역사적 전통이나 깊은 사회적, 정치적 갈등관계를 통해 보았을 때 더 잘 이해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코헨이 강조하는 새로운 연구들은 바로 이러한 중국 내부의 긴장관계 속에서 19세기 중반 이후의 변화를 설명하는 스타일의 것들이다.


근대화 접근법

19세기 서양인들의 중국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은 야만이며 서양은 문명화되어 있다. 둘째, 중국은 정지되어 있고, 서양은 역동적이다. 셋째, 중국은 자생적으로 변혁을 일으킬 수 없으며 바깥으로부터의 힘에 의한 충격이 필요하다. 넷째, 바깥으로부터의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서양뿐이다. 다섯째, 서양 침략의 결과로서 중국의 전통사회는 서양식으로 치장한 새로운 근대 중국에게 길을 양보하게 된다.
코헨은 이를 세가지 명제로 다시 요약한다. 제1명제는 잠자고 있는 중국은 외부로부터 거대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한 깨어나지 않는다이며 제2명제는 근대 서양만이 그와 같은 충격을 중국에 가할 수 있다이며 마지막으로 제3명제는 일단 충격이 가해져서 움직이게 되면 그 과정은 중국문화를 서양의 이미지에 맞아떨어지게 만들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1960년대 시작된 새로운 시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연구들의 예를 들 수 있다.
1. 중국혁명은 서양의 충격에 대한 반응일 뿐만 아니라 서양의 침략에 앞서 중국 내부에서 일어난 문제들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2. 도시의 급진적 지식인에 의한 혁명은 실패했지만 농촌의 가난한 농민과 함께한 혁명은 성공했다. 농민들이 공유한 전통적 혁명은 일찍이 존재했던 인간이 영위해야 할 삶의 방식을 다시금 회복하는 것이었다. 마오는 이를 잘 활용했다. 전통은 혁명의 장애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혁명을 촉진하고 혁명에 활력을 부여하며 혁명을 정통화하기 위한 재료의 저장고이기도 했다.(프리드만 Freedman, Edward. Backward Toward Revolution : The Chinese Revolutionary Party(Berkeley : University of Califonia Press, 1974))
3. 중국은 일본에 비해 덜하긴 하지만 제3세계 전체로 보아서는 근대화에 성공했다. 성공을 가능케 했던 요인은 중국의 전통 내에서 찾아진다. 이상사회를 향한 유학자들의 고뇌는 서양의 대두에 의해 해방되었다. 중국의 혁명이란 중국 전통사회의 파멸이 아니라 전통사회의 목표를 실현시키는 것이었다.(멧거 Metzger, Thomas A. Escape from Predicament : Neo-Confucianism and China's Evolving Political Culture(New York :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7))
4. 중국의 전통경제는 마지막 단계에서 멈춰버린 고도균형함정에 빠져 있었다. 서양의 공헌은 중국을 개방시킴으로써 고도균형상태를 완화하고 파괴하여 새로운 균형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엘빈 Elvin, Mark. The Pattern of Chinese Past : A Social and Economic Interpretation(Stanford, Calif. : Stanford University Press, 1973))

 

전통과 근대성의 대조가 야기한 세가지 편견이 있다.

1) 전통과 근대성은 양립불가능하다는 편견.
전통사회가 잠재적으로 근대성을 가질 수 있고 근대사회가 전통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
2) 헥스터(J. H. Hexter)에 따르면 역사학자들에게는 역사 에너지 불변의 법칙의 편견이 있다. 헥스터는 16세기 영국에서 세속활동과 종교활동의 사례를 통해 16세기에 두 활동 모두 격렬해졌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를 근대성의 문제에 적용하면 근대화의 에너지가 커지면 전통의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편견이 나타난다.(Hexter, J. H. Reappraisals in History (New York : Harper and Row, 1963) )
팁스(Dean Tipps)는 부분적 선택적 근대화가 오히려 전통사회를 강화하는데 이용될 수 있음을 지적했고 프리드만과 멧거는 혁명적 변화의 실질적 증가는 전통적 가치와의 관련성이 강해지는 것과 나란히 진행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Tipps, Dean C. "Modernization Theory and Comparative Study of Societies : A Critical Perspective", Comparative Studies in Society and History, 15(March 1973), 199-226)

 

제국주의 접근법
제국주의론은 근대화론이 서양의 충격이 가져온 근대화가 축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제국주의는 중국의 발전을 방해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런데 근대화론이나 제국주의론이나 서양 경제력의 중국 침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공통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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