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시험지옥-과거 - 중국학술사상 15
미야자키 이치사다 / 청년사 / 1989년 9월
평점 :
절판


서평이란 참 애매한 장르이다. 길게 늘어놓으면 차라리 책을 읽는 것이 나은데 왜 서평을 읽냐는 소릴 들을테고 너무 짧으면 내용도 알 수 없고 느낌만 기록된 것이 무슨 평이냐고  한 소릴 듣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쓴 서평들을 읽어보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쓴 서평들을 읽어보면서 내 나름대로 서평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능한 한 짧아야 한다. 긴 서평이란 단편소설을 요약하는 행위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둘째, 읽는 이에게 이 책이 읽을만한 책(또는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라는 서평자의 느낌을 설득력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책의 판매자로서 이득을 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평되는 책을 읽는 이의 증식(또는 그것의 차단) 자체로 기쁨을 느끼는 서평 고유의 목적에 부합되는 준칙이다.

셋째, 본인이 나중에 읽었을 때 도움이 되는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이란게 읽고 난 뒤 생각하고 느낀 바를 글로 남겨 정리해둘 때 훨씬 자신에게도 남는게 많다. 일종의 독서노트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런 세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서평쓰기에 나 자신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런 세가지 원칙을 지킨다면 내가 쓴 서평도 좋은 서평이 될 것임은 틀림없다.

미야자키 선생의 이 책은 이전에 내가 읽은 이스트만의 "중국사회의 지속과 변화"(돌베개, 1999, 이승휘 옮김) 그 중에서 특히 제9장 근대 전기의 새로운 사회계층을 읽으면서 느낀 문제의식 때문에 읽게 되었다. 나는 중국의 전통시대 과거제도가 의외로 비용측면에서 값싼 계층이동의 수단이라는 이스트만의 평가에 흥미를 느꼈고 실제로 그러했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학문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글을 읽다가 참고문헌에 있는 글을 읽고 싶어서 뒤져서 읽게 되면 새로운 문제의식을 느끼고 다시 그 글의 참고문헌을 뒤지게 되어, 결국 산더미같은 지식의 네트워크 속에서 희열을 느끼며 헤매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은 이스트만의 책에서 흥미를 가진 문제 이외에 독자적인 또다른 질문을 내게 던졌다. 그것은 과거제도와 교육제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었다. 중국의 과거제도는 교육제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재를 선발하는 목적을 놓고 보완관계일 수도 있고 대체관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전국적인 교육시스템의 구축은 정부의 재정 부담을 크게 하는 것이었으며 최소한 명, 청조는 교육시스템에 투자를 꺼렸다(북송대는 학교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교육은 민간 자체의 비용부담에 맡겨졌고 정부는 값싼 시험제도만을 운용하여 필요한 인재를 뽑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근대적 교육시스템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를 맴돌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드는 의문은 과거제도가 우리 역사의 제도와 참 유사하다는 것과 함께 그렇다면 과거제도를 둘러싼 중국 내의 논쟁이 우리에게도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논쟁이란 예를 들면- 과거는 유학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닌가, 교육시스템에 투자를 하는 것은 어떤가, 채점관의 부정을 막기 위해 시험지의 이름을 가리거나 필체를 알 수 없게 사본에 의해서만 채점을 했던가, 사농공상 모두에게 시험자격은 공평했던가, 문벌귀족과 사대부 사이의 과거를 둘러싼 투쟁은 없었는가 등등이다. 이런 질문이 그 시대 내에서 또는 그 시대를 연구하는 현시대에서 없을리 만무한데, 과연 그러하다면 우리의 선조들과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이런 문제에 어떤 고유한 대답을 하였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우리 역사학의 현단계를 보여주는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싶다.

이 책은 미야자키 선생이 대중용으로 저술한 책이다. 전혀 딱딱하지 않고 소설책처럼 읽힌다. 이 말은 단순히 쉽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좋은 소설처럼 과거를 치루던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우리의 머리 속에 재현시켜준다는 점에서 명저라고 불릴만하다. 시간이 없는 분들은 가장 주관적으로 서술된 "과거에 대한 평가"와 "저자 후기"만을 읽어도 얻는 바가 상당하다.

마지막으로 써놓고 보니 너무 긴 서평이다. 첫번째 조건부터 충족하지 못한 졸평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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