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사이트를 둘러보다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의 <4월의 유혹>.















출판사 휴머니스트가 출간하는 책들은 구성이 좋아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편이다.

특히 각 시즌 별로 컨셉을 달리 해서 출간하는 세계 문학 시리즈가 흥미롭다.

<4월의 유혹>은 알라딘 서재 팔로워 분들이 왕왕 읽고 후기를 남겨주셨던 책, <불쌍한 캐럴라인>과도 함께, 휴머니스트 세계 문학 시즌 5 -할머니라는 세계-에 포함되어 있다.

















일단 표지에 눈길이 갔다.테이블 뒤로 펼쳐진 눈부신 푸른빛의 바다 해안선을 바라보는 한 여자.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복숭아, 자두로 보이는 제철 과일. 아침으로 먹는 과일인지, 아니면 점심 식사 후 후식으로 먹는 과일인지 햇빛과 그늘의 각도만으로는 바다를 모르는 나는 알 수 없다. 표지를 보자마자 작년 여름에 놀러갔던 이태리의 바닷가가 떠올랐고 그 즉시 사무실을 벅차고 바닷가로 떠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으므로 미리읽기를 눌러 처음 앞 페이지 열장을 읽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버스넛 부인이 계시를 받은 사람처럼 뭔가를 묻듯 바라보는 바람에 윌킨스 부인은 깜짝 놀랐다 당연히 일이 되려면 그런 식이어야 했다. 혼자서는, 윌킨스 부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고, 설사 감당할 수 있다 해도 혼자 그곳에 갈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둘이서 함께라면...

윌킨스 부인이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우리 가서 알아보기나 할까요?"

아버스넛 부인의 눈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알아

-미리보기 완료-


알아?? 그 다음에 뭐요??? 아니 적어도 뱉기 시작한 문장은 끝마치게 해 주시고 끊어야 하지 않나요???ㅠㅠㅠㅠㅠ


하아.... 그 뒤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는 이렇게 써 있다.


'이탈리아의 중세식 성에서 4월 한 달을 보낼 기회를 준다는 신문광고에 속수무책으로 붙들려버린, 그러니까 가정, 남편, 지나친 관심, 늙음이란 질척대는 현실을 떠나 천국에 당도해버린 네 여자의 마법 같은 이야기.'


보아하니 윌킨스 부인이 잘 알지도 모르는 아버스넛 부인에게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본인도 알 수 없는 용기로 뜬금없이 이탈리아 중세식 성에서 4월 한 달을 보낼 수 있다는 이 공고에 연락해 보자고 말을 꺼낸 것 같은데 그 다음에 아버스넛 부인의 대답이 너무 궁금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10장의 미리보기만으로도 아버스넛 부인이 어떤 캐릭터인지 파악하기엔 충분했기 때문이다. 런던의 중상류층 부르주아의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프로필을 가진 그녀는 고고하면서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지만 사람을 10초 내에 첫인상으로 판단하고 평가하고 몇개의 카테고리로 상대를 분류한 다음 계산된 언행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스넛 부인이, 소위 자신보다 가난하고 품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시혜적인 태도로 (본인의 사회적 평판을 생각하며, 그와 동시에 자연적인 일종의 연민 의식을 갖고 친절하게 대하는) 윌킨스 부인을 처음엔 대하다가 윌킨스 부인이 자꾸 저돌적으로 치고 들어 오자 '어 이 여자 뭐지 이 여자는 어떤 카테고리에 분류를 해야 하지' 하면서 출력값에 오류를 보일 찰라 윌킨스 부인이 같이 알아보러 가자고 마지막 어퍼컷을 날리고...!! 아버스넛 부인의 대답 "알아 .......

알아, 다음에 뭐요 뭐???!!!


사무실에서 몰래 미리보기를 읽다가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속이 탄 나는 화장실 가서 볼일 보다 도중에 끊고 나온 사람처럼 (더러운 비유 죄송합니다) 찜찜하게 있었다. 전자책으로는 출간이 안됐고.. 한국에 다음주에 가긴 하지만 다음주까지 기다리기엔 뭔가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인데... 이곳 서점에선 한국책을 구할 수도 없고... 하다가 든 생각.

프랑스어 번역본이 있다면???


구글에 이 책의 영어원서 제목인 'The Enchanted April'을 쳐보았다. 빙고. 불어판 제목은 원서 제목을 그대로 불어로 번역한 'Avril Enchanté'. FNAC (프랑스의 교보문고, 라고 보시면 되겠다)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 보니, 회사 근처에 있는 FNAC매장에 문고본 재고가 1권이 있다고 뜨는 것이다!! 좋았어!! 점심 시간에 FNAC에 가서 불어판을 사 오는 거야!!


https://www.fnac.com/a17817581/Inga-Vesper-Un-long-si-long-apres-midi


그렇게 점심 시간에 밥을 빨리 먹고 길을 나섰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서점에 갈 수 있다니.. 감격.. 예전 직장에선 꿈도 못꿀 일이었지..  집에서 회사까지 편도 2시간 걸리던 저 멀리 산업 물류단지 외딴 곳에 있었던 전 직장 다녔을 때를 떠올려보면 도심에서 출퇴근을 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얼마나 큰 복지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프낙에 도착, 영미소설 코너에서 작가 이니셜 별로 꽂힌 서가를 하나씩 살펴보는데도 도저히 내가 찾는 이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서점 직원에게 물어봐서 둘이서 같이 찾았는데도, 혹시 몰라 다른 서가를 뒤졌는데도 결국 찾지 못했다... 작가의 이름은 Elizabeth Von Arnim. 엘리자베스는 이름이니까 성씨의 알파벳 순으로 보통 정렬을 하는 프랑스 서가의  V 책장을 직원가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점원이 원하면 지금 주문하고 다음주에 찾으로 오면 된다고 했는데, 사실 나에겐 지금 이 점심시간에 이 책을 사서 바로 뒷장을 펼치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고맙지만 내가 혼자서 더 찾아보고 아니면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점원에게 말하고 아쉬운 마음에 V로 시작하는 작가의 서가를 다시 한번 하나씩 훑어 내려갔다.


그러다 나도 모르는 어떤 이유로 한 책을 집어 들었다.

Inga Vesper,<Un long, si long après-midi>

(영어 원서 제목은 The Long, Long Afternoon)
















사무실에 다시 돌아가 보내야 할, 보나마나 길게 느껴질 그 날의 오후 때문에 제목이 끌렸던건지, 아니면 책등의 옥색과 노란색의 색감, 그리고 그 위에 새빨간 색으로 쓰인 책제목의 색감이 끌렸던 건지, 아니면 그 둘다에 끌렸던건지 알 수 없다.

아무튼 어찌해서 난 이 책을 꺼내 뽑아 들었고 책 표지는 옥색 주방 붙박이장, 그리고 창밖에는 빨간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는 샛노란 주방이었다. 옥색 주방 붙박이장 가구를 보자마자 아주 옛날 어릴적 외할머니댁의 공사 전 주방이 떠올랐다. 딱 이런 옥색의 주방이었는데. 엄마가 없는 어느날 오후에 할머니가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면서 그 옥색 주방에서 간식으로 만들어주던 프렌치 토스트가 떠올랐다. 할머니를 돕는답시고 할머니 옆에서 깨금발로 간신히 주방 상판에 손을 올려 야무진 손으로 달걀을 깨서 볼에 넣으면, 할머니는 식빵이 흐물해져 부서질 정도로 계란물에 푹 담갔다가 마가린을 듬뿍 넣어 녹인 후라이팬에 식빵을 올려 마치 전처럼 식빵을 부쳤다. 노릇노릇 익은 식빵을 접시에 담고 할머니는 다시 한번 나를 쳐다보고 윙크를 하며 손가락을 입술 위로 가져가고선 '쉿' 하며 흰설탕을 수저로 듬뿍 퍼서 식빵 위에 솔솔솔 뿌려 주셨다.


책표지만 봤을 뿐인데 벌써 입에선 뜨겁고 폭신하고 달큰한, 이제는 먹을 수 없는 할머니의 프렌치토스트의 맛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책표지 밑에 써 있는 한 문장에 눈길이 갔다.


"Hier, j'ai embrassé mon mari pour la dernière fois.. Il ne le sait pas, bien sûr. Pas encore."

(어제, 나는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키스를 했다. 그는 이 사실을 모른다. 물론, 아직은.)


뭐지? 가정스릴러물인가? 하고 책의 첫번째 페이지를 펼쳤는데 다시 이 문장이 써 있었다. 그러니까 책 표지에 쓰여진 이 문장은 이 책의 첫문장이기도 한 것이다. 책을 뒤집어 뒷면에 쓰여진 책 설명을 읽었다.


캘리포니아의 햇빛이 쏟아지는 주방, 조이스는 창밖에 서서 꿈을 꾼다. 그녀는 백인이고 부자이다. 가정주부인 그녀의 시야는 그러나 곧, 잘 다듬어진 정원의 덤불에 막히고 만다.

루비, 조이스의 집에서 가정주부로 일하는 그녀는 인생을 바꿀 꿈을 꾼다. 하지만 때는 1959, 미국 사회는 가난하고 젊은 흑인 여성에겐 내어줄 것 하나 없어 보인다. 

조이스의 실종과 함께 가식과 위선으로 덧칠된 미국의 꿈이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한다.

여성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평등을 위한 투쟁은 이제 시작이지만, 이 멋진 두 여주인공은 이미 자신들의 외침을 들려주고 있다. 자유에 불타는 희망의 외침을.


부자 백인 가정주부? 그리고 흑인 가정부? 1959년 미국?

이 교차하는 여러 정체성이 추리소설에서 어떻게 풀어질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래서 어차피 찾지 못한 <4월의 유혹> 불어판 대신 이 책을 구입하고 서점을 나섰다. 서점에선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네 그렇습니다... 아직도 프랑스에선... 실내 매장에 들어가면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곳이 많답니다.....) 이 책이 한국어 번역본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었는데, 사무실로 돌아와 검색을 해 보니 아직 한국에선 소개가 되지 않은 작가라고 한다.  

구체적인 상황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사소한 언행이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곤 하는 추리소설 장르 특성상 이를 외국어로 읽으면 아무래도 내가 놓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모국어로 읽는 것보다 읽을 때의 긴박감이 떨어져서 재미가 줄진 않을까 생각해서 추리소설을 불어로 읽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근데 오호라 이 책, 엄청 잘 읽히는데? 책이 쉬운 것인가 (맞음) 아니면 내 불어 실력이 늘은 것인가(아님)


다 읽고 나면 후기를 남기겠음! 한국어로 번역을 해서 출간해도 좋을만큼 재밌는 책인가, 아닌가..! 내 마음에 든다면 내가 번역 제안서를 함 출판사에 보내봐...? (어떻게 하는지 모름...)


그나저나... <4월의 유혹> 불어판은 그래서 며칠전 중고책방에서 샀다.

작가 이름이 Elizabeth Von Arnim이라서 저번에 Fnac 서점에 갔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여지없이 V 서가에서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또 없는거야... 그래서 중고책방의 서점 직원에게 결국 또 도움을 요청했는데, Von 의 V 말고 Arnim의 A로 정리되어 있으니까 A서가에 가야한다며 손가락으로 책장으 쓱 훑더니 단박에 책을 찾아주셨다. 암튼, 원래 읽고 싶었던 <4월의 유혹> 불어 문고본을 사긴 했는데 저 <Un long, si long après-midi>(긴긴 어느 오후날) 을 먼저 다 읽고 싶어서 미루고 있다. 그래서 아마 시간상 <4월의 유혹>은 한국에 가서 한국어로 읽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낄낄. 아 얼른 한국어로 쓰인 종이책 읽고 싶다~

이번주 토요일 오후에 한국 도착이니 슬슬 알라딘 장바구니를 훑어서 책을 주문해 놔야겠다. 도착했을 때 이미 내가 주문했던 책이 나를 기다릴 수 있도록~~ 요즘 알라딘 사은품 뭐가 있나 함 봐야겠다.


그나저나 혹시 아시는 분 질문, 번역제안서라는 건 어떻게 써서 어떻게 출판사에 보내나요...? 그 관례라는 게 궁금함.


그럼 이만 총총..


어제, 나는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키스를 했다. 그는 이 사실을 모른다. 물론, 아직은.(불어판 원문을 내가 번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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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23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달자 님의 팬이 되렵니다. 아무쪼록 독서 마친 후 감상 꼭 적어주시고요, 번역 제안서도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음, 사실 형식 같은 거 따로 생각하지 않고 원하는 출판사의 이메일로 책 링크 보내주고 이거 엄청 재미있는데 번역해서 출간 좀 해주면 어떻겠니? 해보셔도 되지 않을까요? 🙄

달자 2023-08-23 21:24   좋아요 2 | URL
옴마나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밥 먹고 왔더니, 알라딘 서재라는 곳을 알게 해준 다락방님의 이런 황송 댓글이..! 제가 팬입니다 아이구 아이구.. 근데 저 또 이렇게 잘한다 잘한다 자란~~다~~ 우쭈쭈 해주시면 또 좋다고 신나서 경솔해 진답니다. 책 거의 다 읽어가요 읽고 나서 귀찮아도 감상문 꼭 쓰기 약속..할게여ㅎㅎㅎㅎ

미미 2023-08-23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달자님 프로필 사진 제가 애정하는 영화예요. 글도 어쩜 이렇게 잘쓰시는지요.
내일은 오랜만에 프렌치토스트를 해먹어야겠어요! (저는 이모가 해줌ㅋ)

달자 2023-08-23 21:25   좋아요 1 | URL
어머나 미미님...! 이렇게 댓글도 남겨주시고 감사합니다ㅠㅠ 미미님이 비교도 안되게 훨 잘쓰심...영화 <가장 따뜻한 색,블루>의 아델 배우죠!! 저도 참 애정하는 영화예요 캬 이렇게 저 혼자서 내적친밀...!!! 프렌치토스트 계란물이랑 우유 아주 푹~~적셔서 만들어 주세요 설탕은 눈 딱 감고 팍팍!!

은하수 2023-08-24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4월의 유혹 보고 들어왔는데 글이 재밌어서 끝까지 신나게 달렸어요
저 오뎅탕도 제 취향입니다~~~
4월의 유혹도 재미있었어요. 정말 제목대로 멋져요!
저 시리즈도 좋고... 전 비타 색빌웨스트 책 읽었거든요?
진짜 넘 좋아요.... 좋아요만 계속 말할 수 있어서 좋네요^^
4월의 유혹도 재밌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달자 2023-08-24 17:5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은하수님 !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 4월의 유혹 책을 저도 같이 이태리의 고성 속에서 멋진 풍경과 함께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저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훑어봐야겠어요!
 
[eBook] 개 신랑 들이기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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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단편<페르소나> 좋았다. 문장 하나 하나가 급소를 공격한다. 해외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적 과거의 내가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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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24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다와다 요코의 에세이 샀어요. 곧 읽을 겁니다. 훗!

달자 2023-08-24 17:52   좋아요 0 | URL
저도 샀어요!! 후기 기다리고 있을게요 후후후
 
[eBook] 7시 45분 열차에서의 고백
리사 엉거 지음, 최필원 옮김 / 황금시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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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초중반 때 가정스릴러물을 처음 접했을 때의 그 센세이셔널한 충격과 몰입감을 기억한다.

기존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쫓는자와 쫓기는 자(10명 중 10명은 남자이다)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했는데, 아니 애초에 해본 적이 없으니 감정이입이라는 게 가능한지 조차 여부도 몰랐다가 길리언 플린이나 폴라 호킨스 작가 등의 소위 여성, 그것도 주로 가정 내에서 이야기가 벌어지는 추리 스릴러물을 읽었을 때의 그 색다른 몰입감이란... 그렇게 비슷한 작품을 여러권 연달아 읽다가 슬슬 그게 그거같은 비슷한 전개로 장르물에 조금 소홀하게 된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알라딘에서 이 책을 보게 됐고 책 제목을 보자마자 바로 와 이건 사야겠다, 라는 어떤 그런 충동을 느껴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을 했다.


이야기는 각 등장인물 시점으로 돌아가며 쓰여졌고 아무래도 사건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셀레나의 비중이 가장 높다. 초반에 한 1/5 정도까지 읽었는데 등장인물이 파악이 잘 안되고 서사가 눈에 보이지 않아 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하나... 싶을 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브레이크를 풀고 내달리기 시작한다.


사실 읽으면서 조금 힘들었다. 역겹고 또 역겨운 남자 등장인물들 때문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여자 등장인물들이 정말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여자들이라는 점이 ...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누가 그랬더라? 이 세상의 모든 남자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고. 누가 어떤 책에서 한 말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그렇다고 이 여자 주인공을 비난하고 싶다는 건 아니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우선 남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남자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용서하고, 또 다시 사랑으로 품을 것을 여자들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을 때 까지 그녀들을 세뇌시키는 이 사회에 격한 분노가 이를 뿐이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반전이나 범인을 잘 알아채리는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책 중간 부분부터 이미 사건의 실마리가 거의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재미도 있었다.


근데 조금 걸리는 캐릭터가 있었는데, 바로 셀레나의 변호사 전 남친 (이름이 뭐였더라? 윌 이었나?....) 캐릭터.

인간 쓰레기 현 남편 그레이엄과 상반되는 다정다감하고 언제나 셀레나를 기다려 주는 그런 남자 조연 캐릭터 정도로 묘사된다. 그런데 중간 중간에 이 전남친이, 그녀와의 교제 당시, 셀레나를 위하고, 셀레나의 행복을 위한다는 이름하에 그녀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조종하려 했다는 점이 셀레나의 절친 여자친구(이름이 또 기억 안난다....)의 증언을 통해 언뜻 비춰진다. 근데 셀레나는 이를 '다 윌(이름이 윌이 아닐 수도 있다.... )이 나를 위해서 그런거였어'라는 식으로 퉁쳐버린다.

아 나는 이 부분이 영 찜찜하지 않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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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이 책의 2장 중 인종차별 파트를 읽고 있다. 왜 나는 이 책을 전자책으로밖에 읽을 수 없어서 모든 책에 펜을 들고 밑줄을 좍좍 그을 수 없는 것인가...

문장들을 통째로 외울 수만 있다면 좋겠다.

인종차별은 당신의 피해망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은 인종차별이 당신이 말하는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방법이다. 마치 우리가 배제된 느낌을 설명하기 위해 인종차별을 발명해 내기라도 한 것 처럼, 마치 어떤 장소에 가지 못하는 책임을 인종차별주의에 덮어씌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내 내가 더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피해망상과, 나쁜 느낌을 가질 만한 타당한 이유들이다. 아마도 문제는 이 피해망상에 합리적 근거가 있음을 내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가 정말 피해망상인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벌어지고 있고 또 벌어질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일종의 피해망상적 불안을 느낀다.

x라는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이 인종차별의 문제인지, 인종차별의 결과인지 나는 결코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x는 인종차별에 관한 것일 가능성이 있는 것, 당신이 몸담고 있는 세게에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몸담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 것으로 경험된다. 인종차별은 피해망상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인종차별이 하는 일이다.

백인성은 피해망상 판타지에 의해서, 그리고 피해망상 판타지의 효과에 의해서 재생산되고 그것이 우리를 피해망상적으로 만든다. 우리가 그렇게 느낌으로써 피해망상은 진실이 된다. 그리고 그 진실을 외칠 때 아픈 것은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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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한국은 보통 늦게 자는 편에 속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잠에 드는 새벽 시간이다.

내 작은 원룸에 들어와 문을 닫고 전날이나 아침의 내가 남겨 놓은 흔적을 나홀로 맞이한다.

보통 집에 오면 바로 저녁을 먹는 편이다.

오늘은 냉장고에 있었던 남은 음식을 데워 먹었다.

여름에는 해가 무척이나 긴 이곳의 밖은 아직도 환한데 한국의 시간은 다음날 새벽 3시, 4시.

평소보다 유독 외로운 날이면 유튜브에서 남산타워 실시간 라이브 영상과 실시간 서울 한강 라이브캠을 켜고 지금 이미 미래에 있는 서울을 바라본다.남산 타워 영상은 그때그때 카메라가 달라지는데, 남산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방향을 비춰줄 때도 있고, 남산타워 팔각정 쪽을 비쳐줄 때도 있고 남산공원의 야외 생활 운동 기구 시설 쪽을 비춰줄 때도 있다. 

늦은 시간에도 간혹 운동기구에 올라타 다리를 크게 휘적휘적 거리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이고, 늦은 강아지 산책에 나온 사람도 보이고, 아니면 저 멀리자동차들의 전조등 불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한강 다리도 보인다.


서울 한강 라이브캠은 언제나 같은 장소를 비춘다. 반포대교의 측면을 보여주는데 이 시간에도 어딘가로 가기 위해 다리 위를 지나는 자동차들이 한 둘 지나는 걸 가만히 바라본다. 얼마 전 비가 많이 왔을 때는 잠수교와 한강공원이 침수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가장 외로운 시간은 내가 떠나온 곳의 시차를 따라간다. 깊은 잠에 빠진 서울과 평생선을 달리는 파리의 늦은 오후에서 이른 저녁에 이르는 시간. 이 시간엔 모처럼 오랜만에 보고싶은 한국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할 수도, 집에 계신 부모님께 마망이 사진을 보내달라고 대뜸 메세지를 보낼 수도 없는 시간. (우리집 강아지 이름이다. 유기견 보호 센터에서 임신한 상태로 구조되어 보호 센터에서 새끼를 낳아, 보호소에서 불어로 엄마, 라는 뜻인 '마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리가 입양했을 때 마망이는 이미 자신의 이름을 마망이로 알고 있는 상태여서 구태여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사실 이 시간에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시간인데, 이상하게 이 시간엔 책도 잘 읽히지 않는다. 어쩌면 평일에 유일하게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퇴근 후 이 시간 뿐인데, 도통 이 시간을 알차게 쓸 마음이 잘 내키지 않는다. 센치하고 싶진 않은데 뭐랄까, 촥 가라앉는다고 해야할까? 책을 꺼내 읽어도 도통 눈이 활자를 잘 좇아가질 못한다.
















7시 45분 열차에서의 고백을 어제부터 읽기 시작해서 1/6정도? 읽은 것 같다. 여자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스릴러물을 좋아한다. 아직까지 등장인물들의 배경이 다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근데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 남자때문에 발목잡힌 여자들만 죄다 나온다. 하... 여성 서사 중심의 스릴러물이 한창 인기를 끌던 2010년대 중후반?(지극히 내 주관적 기준이다ㅋㅋㅋ 내가 이때쯤에 이런 류의 스릴러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서 그런 걸 수도 있음... 약간 걸 온 더 트레인 이런 소설이 유행할 때 있었잖아요.)까지만 해도 이런 소재 설정이 너무 흥미로웠는데 이제 이런 이야기를 내가 좋아한 나머지 너무 많이 읽어서 이젠 약간 좀 다른 여성 캐릭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 본다. 근데 아직 초반이기 때문에 조금 더 읽어보고 판단하는 걸로... 암튼 여기 나오는 여자들은 다 똑똑한데 남자들은 역시 다 멍청하다...


<행복의 약속>은 영 진도가 안 나간다. 정말 모든 문장을 꼭꼭 씹어 읽기 때문에 ㅋㅋㅋㅋ

파리에 사는 한국인들과 같이 독서모임 같은 거 하면서 읽으면서 공부하고 싶다. 문장을 하나 하나 읽을 때 마다 머릿 속에서 막 엄청난 소용돌이가 치면서 느낌표와 물음표가 휘모리장단을 쳐대는데, 글로 생각을 정리를 할 수 있으려면 누군가와 먼저 대화를 나눠서 공부를 해야지 조금 더 명료해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누군가가 나한테 해외살이 중 무엇이 제일 힘드냐고 묻는다면, 둘째는 한식, 첫째는 책에 대한 갈증과 공유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나마 알라딘 서재라는 공간을 늦게나마 알게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읽을 진 모르지만 혼잣말이라도 이렇게 찌끄려대면(?) 조금이나마 해소가 된다.


지금 한국은 다음날 4시 14분, 서울 날씨는 현재 흐림, 23도.

아, 고독한 시간. 이곳은 전날 밤 9시 16분.

https://www.youtube.com/live/-JhoMGoAfFc?feature=share

https://www.youtube.com/live/JBdzesI-ul4?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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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7-21 06: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알라딘 서재는 점말 좋은 선택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여기 오래 머무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어려운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 2018년 말부터 이곳에서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진행하고 있어요.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건 아니어도 매달 같은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과 감상을 적어보자고요. 그렇게하니 제가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 정리도 되고 또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걸 다른 분들의 글로 알게 되기도 해서 너무 좋았어요. 그 먼 곳에 계신 달자 님께 알라딘이 조금이나마 갈증을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주 오세요, 달자 님! 우리 자주 만나 아야기해요! :)

잠자냥 2023-07-21 07:13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은 먹는 이야기하잖아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7-21 10:10   좋아요 2 | URL
네? ( ˝)

난티나무 2023-08-07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빠리에 사시는군요!!! 저는 디종 아래 삽니다.^^ 독서모임 저도 하고 싶어요 그러나 여기는 시골이라…ㅠㅠ 달자님 반갑습니다!!!!

달자 2023-08-07 21:15   좋아요 0 | URL
디종 근교에 사시는 군요!! 정말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