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에 퇴사에 이사에... 연말에 이 모든 것이 휘몰아쳐서 정말 정신없이 살았다.

한달넘게 상자 속에서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집에 오면 짐을 쌓고... 그러다 너무 피곤해서 씻지도 못해서 쓰러지고... 퇴근하고 상자를 구하러 돌아다니고... 나는 물건을 잘 싸고 정리하는 스타일이 절대 아니어서 (짐을 싸고 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서 여행가는 게 두려워질 정도인 수준) 정말이지.. 짐을 싸다 풀다 싸다 풀다 난리 부르스에, 이미 옷을 너무 많이 쌓아서 박스에 테이프를 다 붙여놔서 거의 3주 동안 니트 두개로 돌려 가며 입고, 속옷도 몇개 빼고 짐 이미 다 싸버려서 이사 전날까지도 세탁기를 돌리고... 식기구도 없어서 음식도 못해먹고... 암튼 정말 이사 전날까지 짐을 싸다 풀다, 필요한 물건이 없어서 매일 상자 속을 건너며 헤집고 다니는... 프랑스와서 이번이 8번째 이사인데 정말 끔찍하다. 이사에 대한 안좋은 기억들이 너무나 많아서 나는 이사할 시기에 정말 극강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거기에 퇴사 전에 끝내야 하는 마감에 일은 폭포수처럼 쏟아지지... 새 회사에 행정문제도 겹치기... 정말 막판엔 난장판 집 속에서 울어버렸다 나 정말 이사가 너무 스트레스야...



암튼 저번주 토요일에 새집 열쇠를 받았고 새집은 정말이지 개판이었다. 전 세입자가 워낙 더럽게 쓰고 가서 부동산이 청소 전문 업체를 불러서 이틀동안이나 청소를 했다고 했는데... 청소 한 게 이거라고...???? 그리고 청소 만이 문제가 아니라 대문 손잡이가 고장이 난 거였다 그래서 문을 잠글 수도 열 수도 없는... 오픈 하우스에 입주해 버렸다 정말 개판 프랑스 어떻게 문고리가 작동하지 않는 집을 세를 줄 수가 있는 거지 문이 잠기는 건 정말 집에 기본 중 기본 아닌가...?


정말 이사에 관한 징징이 하소연은 A4용지 열장도 빼곡히 쓸 수 있는데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암튼 얼레벌레 우당탕탕 퇴사날짜와 새 회사 입사 날짜 사이에 한달 시간이 남아서 한국에 3주 정도 가기로 했다. 

이제 입사하면 아무리 프랑스라 해도 이렇게 길게 휴가를 받아서 한국에 다녀오기 힘드니까...


암튼!!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어 놨던 백만권의 책들 중에 이번엔 무슨 책을 사서 미리 부모님댁에 배송시켜놔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뭐부터 읽을까, 하며 종이책을 만지고 냄새맡고 책장을 촤르르 펼쳐보고 하는게 나만의 입국 세레모니인데..세상에! 이사네 뭐네 너무 바빠서 아직까지도 구입할 책을 선정하지 못한 게 아닌가!!!

오늘은 금요일 22일, 한국은 이미 토요일 23일...!!!

망했다... 주말에 크리스마스까지 껴서 빨라야 26일에나 배송 오겠군... 하고 하던 일을 제치고 바로 알라딘 사이트에 들어가서 책을 추리고 추려서 구입 했는데 ㅜㅜ 1차로 배송되는 건 29일이고 2차로 배송되는 건 내년 1월 6일이래 힝 ㅜ 밍기적거린 내 잘못이지 뭐... 그래서 이북으로 일단 몇권을 주문했다. 오늘 밤 비행긴데 기내에서 어떤 전자책을 먼저 읽을까 설레는 맘 후후


일단 먼저 마리아 푸르셰의 <불> : 이 책은 알라딘 사이트에서 우연히 먼저 찾았고 프랑스 소설이라 여기서 원서로 읽을까 하다가 오늘 서점에 갈 시간도 없고, 비행기에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전자책으로 구입했다. 고로, 오늘 기내에서 읽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대충 보아하니 불나방같은 사랑 이야기인 것 같은데, 제가 불나방 같은 사랑 이야기 참 좋아하거든요...어디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기내에서 읽을 가능성이 높은 책, <이 책을 훔치는 자는>, 후카미도리 노와키.

이 책도 알라딘에서 우연히 봤는데 책 설명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장바구니에 넣어 두었더랬다.

일본에 어떤 작은 마을에 주인공 소녀가 살고 있는데 그의 가족은 증조할아버지때부터 대를 이어 대독가, 애독가로 유명한 가족. 이 마을 자체가 이 가족과 이 가족이 운영하는 고서적 도서관으로 유명해져서 책마을로 명성을 떨친다. 그런데 이 주인공 소녀(이름 까먹음)는 애독가 식구에서 태어난 미운 오리 새끼 마냥, 책을 아주 아주 싫어한다. 어느날 고서적 도서관에 책이 도난 당하고 도서관은 문을 닫게되고 그러다 어쩌구 저쩌구 이 소녀가 어떤 책 세계로 빨려 들어가서 또 어쩌구 저쩌구 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 어쩌구 저쩌구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참고로 나는 판타지 소설 싫어함.) 그래도 궁금해서 사봤다. 책과 관련된 판타지라면, 어쩌면 내가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뭔가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떠올라 주문해 봤다. 왜냐면 나 이 책은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으니까! 과연 ... 어떨 것인가..두구두구


소설은 이렇게 2권 이고 나머지는 논픽션 책. 정희진 선생님이 팟캐스트에서 언급 하셨던 책들 중에 전자책 버전이 있는 것들과 알라딘 서재 이웃분들이 읽으셔서 담아두었던 <조용한 미국인>과 몇달 전 이탈리아 총선 결과 이후 충격이 가시지 않았을 때 쯤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이탈리아로 가는 길>도 전자책이 나왔길래 구입.


암튼! 저는 한국에 갑니다...후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첫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기나긴 13시간을 이겨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묵은지 쫑쫑 썰고 두툼한 돼지고기도 들어간 김치비지찌개가 땡기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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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2-22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김치찌개라고 말씀드리려고 했더니 탁월한 선택입니다. 옷은 따뜻하게 입으셨나요? 지금 한국은 하필이면 엄청 추울 때….. 그나마 내일부터는 기온이 좀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달자 2023-12-23 05:26   좋아요 2 | URL
한국 추위에 맞는 옷이 이젠 하나도 없어서ㅜㅜㅜ 일단 대충 껴입고 가는데 부모님한테 패딩 하나 빌려달라고 하려구요.. 잠깐 머무는 거 거지고 새거 사기도 아깝구 그렇다고 없으면 얼어 죽을 것 같아서🙃🙃 김치찌개도 좋죠 하 ㅜㅜㅜㅜ 지금..갑니다…

다락방 2023-12-23 0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순댓국이요…

달자 님, 웰컴!!!!!!!!!!!!!

잠자냥 2023-12-23 08:13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순댓국 전도사

다락방 2023-12-23 0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장 읽을 책이 배송되지 않으니 알라딘 중고샵 추천드립니다!!

은오 2023-12-23 0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후 이사 글로만 읽어도 고단하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토닥토닥...😭
달자님이 한국 잠깐 오신다니 넘 좋네요?? 환영합니다!!!!!!!!! 😆🎉👏 메뉴도 탁월한 선택 ㅋㅋㅋㅋ 오셔서 맛있는거 많이 드세요!!
저도 <불>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달자님이랑 좀 통하는듯.

잠자냥 2023-12-23 08:20   좋아요 2 | URL
왜 플래카드 들고 공항 가지 그랬어!
”환영! 불🔥로 통하는 사이 달자❤️은오“

은오 2023-12-23 10:15   좋아요 2 | URL
그러려고 했는데... 너무 직진하면 달자님이 부담스러워하실까봐 자제중ㅠ

다락방 2023-12-23 08: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만나서 제 책 좀 나누어 드리고 싶네요..

다락방 2023-12-23 08: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뼈해장국도 추천합니다!
 

원서 제목은 <Approaching Eye Level>인 모양인데 한국어판 제목은 본문 앞부분의 문장을 그대로 따온,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이다. 도시 생활과 도시 그 자체(이 책에서는 저자가 사는 뉴욕)를 묘사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저자의 에세이 첫꼭지 내용의 정수가 담긴 문장이라 생각했는데 이를 책제목으로 고르다니... 편집자분들의 센스에 박수를.

뉴욕에서의 친구 관계는 우울에 몰두하는 일과 표현하는 능력에 매혹되는 일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내게 가르쳐준다. 어떻게든 좀 더 높은 수준의 균형 상태에 도달하는 일, 나는 친구 사이에서는 그 일이 일반적인 부부 사이에서와 다르게 일어날 줄 알았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모두 예전에 결혼이란 걸 해본 사람들 아닌가. 많은 사람들은 결코 이길 수 없는 내면의 싸움을, 오직 죽음에 의해서만 결론이 나는 전쟁을 하며 삶을 보낸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는 우위를 차지하는 한두 가지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도시는 이런 역학의 영향 아래에서 돌아간다. 각각의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 P22

(...)아침 열 시에 여기 8번로에서,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이 선명히 새겨진 얼굴로 그 거리를 등지고 선 여자는 내게 화려한 매력을 지닌 사람으로, 호화로운 방식으로 추췌한 자연 그대로의 환경 속 보석같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것은 오직 도시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얼굴이었다. - P23

그 머리칼, 그 뉴욕 스타일 곱슬머리. 그 머리에는 우리 상상 이상으로 ‘한데 모인 풍성함‘이 필요했던 것이다. - P24

도시에서 사회적 유동성이란 ‘누구도 다른 누구에서도 도망칠 수 없음‘을 의미한다. - P33

"난 이제 어떡하죠?" 나는 여자의 두눈을 들여다 보았따. "알게 되실 거예요" 내가 말했다. 여자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엘레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몸을 돌려 밤 한복판으로 걸어 나갔다. - P35

(도시에서 스쳐 지나간 모든 행인들은)그들은 내게 서사적인 충동을 되돌려준다. 내가 세상을 이해하게 해준다. 내 삶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도록 나를 일꺠워준다. - P46

사랑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준비된 순간‘이란 여전히 삶의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 중 하나다. 내면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여러 요소가 충분히 결합하는 그 순간 말이다. 그 순간에 응답하는 사람은 결코 그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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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속의 섹스
캐서린 H.S. 문 지음, 이정주 옮김 / 삼인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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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앎의 고통을 앓았다. 여성혐오, 군국주의, 제국주의, 인종차별, 식민주의가 뒤섞이면 결국 이 모든 얽히고 설킨 피라미드의 최하층에는... 여성이 있다. 이 피해자 여성 집단 앞에 가해자의 인종이나 국적이나 신분이 다 무슨 소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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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트, 묘지지기
발레리 페랭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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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죽음과 공존하는 삶의 태도를 알려주는 책. 그런데 길어도 너무........길다..... 2/3부터는 그저 비올레뜨 딸의 죽음에 관한 숨겨진 비밀을 알고 끝내고 싶어서 의리로 꾸역 꾸역 읽었다. 한국어판 책제목과 표지가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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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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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에서 11월 초까지 거진 2주에 걸친 시간동안 한국에서 퇴사를 하고 놀러온 내가 사랑하는 친구 S와 함께했다.

내 부탁으로 친구가 프랑스에 종이책을 몇권 가지고 와서 선물로 주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책과, 세안용 머리띠 - 본인 것과 커플임 ㅋㅋㅋㅋ- 달고나 만들기 세트, 홋카이도 팬케이크가루, 후시딘 등등... 멀리서 날아온 고마운 마음)



이 책은 이 친구 S가 자신의 올해의 책 중 하나로 최근에 뽑았다고 할 정도로 극찬을 한 책이라 한권 갖다 달라고 부탁을 했더랬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름은 들어봤을 유명한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했던 (그리고 그곳을 퇴사하고 유럽 여행을 온 ^^) S의 2023년 pick 이라 묻고 따지지도 않고 읽기 시작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외부 세계와 단절된채 본인만의 교리 해석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자신만의 '동산'에 갖혀 살아가기를 강요한다. 그런 가정 속의 8남매(7남매인가 9남매인가?)의 막내로 태어난 저자는 출생과 동시에 사회와 완전 격리된 채 아버지의 세상에서 가족들과 살아간다. 이 책은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가 '교육'이라는 것을 통해 여태까지 자신이 속했던 세상을 깨고 나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비로소 사회를 만나게 되는 자서전이다.


이 책에서 대척되는 세상은 아버지가 짜맞춘 세상, 그러니까 저자가 '교육'을 받기 전 까지 속했던, 그녀가 아는 전부인 세상과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이다.


그 아버지의 세상이라 하면, 책을 읽으면 충격적이어서 입을 다물 수 없는 내용들의 향연인데, 이를테면 아래와 같다.


- 1999년 지구의 종말을 믿는다.

- 종말이 찾아 오지 않은 1999년 이후의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도 종말이 다가올 거란 확신 아래, 지구 종말 이후의 생존을 위한 준비가 이들의 인생의 목표의 거의 전부이다. 

- 국가나 정부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불신. 그에 의하면 국가와 정부는 그들의 가족을 암살하려는 사회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단체이고, 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반하고 사회공산주의 이념을 국민들에게 물들이기위해 온갖 정책들을 만들고 인간 실험을 자행한다. 이를테면 공교육 시스템이나 의료시스템 모두 국가가 사람들을 조종하기 위한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파도 병원에 가면 안되고, 약을 먹으면 우리의 신체는 사회 공산주의들에게 조종을 당하게 될 것이며, 학교는 

- 안전, 예방 등에 대한 1차원적 기본 욕구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개념이 전무. 예를 들면 자동차를 탈 떄 안전벨트를 메면 안된다. 이는 정부의 반동분자를 길들이기 위한 거짓말 수작일 뿐이다.

- 어린 여자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모두 잠재적 창녀이므로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

- 조혼 장려, 가부장제, 여성혐오의 콤보 등등....


............................ 사이비 종교의 모든 예시를 충족하는 그런 어떤... 예......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가족들은 특히 생존과 직결된 안전에 위협을 받고 저자는 부모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보호받는다'라는 느낌을 가져본 적 없이 유년시절을 보낸다. 인간의 근원적이자 모든 동물의 본능이기도 한 안전에 대한 위협 문제는 나중에 저자가 사춘기를 지나며 여성혐오를 만나며 가족 구성원들로부터의 직,간접적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겪는다.

(그리고 물론 이것이 폭력이라는 사실도 후에 '교육'을 통해 깨닫게 된다.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작가는 책을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모르몬주의에 관한 것도, 어떤 다른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도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책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제목에서 부터 말하고 있다) 그것은 '교육'이다.

그런데 작가에게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찾지 못했다. 아니, 책을 읽으면 읽으면서 더 헷갈렸다.


초반에는 야만의 시대를 지나 문명의 세계로 가는 여정을 써낸 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읽을 수록 이렇게 단순한 서사 구조만은 아닌 것 같은 것이다.


그녀에게 교육이란 문명화로 가는 길인가? 그녀가 학교에서 세상의 상식 속에서 습득한 지식이 교육인가? 

그렇다면 저자에게 학교에 가기 이전의 생활, 그러니까 태어나서 16살 이전까지의 시간들은 교육에 대척하는 삶이었나?

아니면 학교에 가기 이전의 생활도 그 나름대로의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모르몬교 종교 위에 아버지의 신념으로 지은 세상은 야만의 세상인가? 약병원에 가지 않고 오로지 약초와 에너지로 치료를 하고 기도에 신체와 정신의 안전을 모두 맡기는 세상. 전부인 줄 알았던 본인이 속한 이 세상이 학교에 가면서부터 통째로 붕괴되기 시작한다면, 그렇다면 그 교육의 반대편엔 분명히 아버지의 세상이 있는 것 아닐까? 그 세상은 아버지가 자신의 신념으로 지은 종교적 세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바로 그 그릇된 종교적 교리가 가족구성원을 집어 삼키는 폭력적인 괴물 그 자체의 세상의 원인이었다고 왜 작가는 말하지 않는 것일까? 모순적으로 이 글은 그 누구도 고발하지 않는 고발성 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덮자마자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대단하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겁하다' 였다.

그녀가 겪어야 했던 그 끔찍한 모든 일들에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을 통과하고 현재에 이렇게 존재하는 작가, 그리고 이 모든걸 이렇게나 솔직하게 썼다는 작가의 용기에 대해 경외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와 동시에 비겁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결국 모든 걸 쓰면서도 아무 것도 고발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작가는 이 서두에 '이 이야기는 모르몬주의에 관한 것도, 어떤 다른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도 아니다'라고 못을 박고 이 모든 이야기를 고백한 것일까? 


종교적 교리로 인한 (그것이 특정 집단에 의한 사이비든 아니든) 폭력에, 특히 여성에 더 가혹하게 자행되는 폭력에 피해 여성이 자신이 당한 피해에 대해 쓰면서 동시에 이 모든 것은 종교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는 모든 이야기에 이젠 조금 지친다.


물론 이 책 전체는 그녀가 겪은 일을 적은 것이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언제나 선명한 것은 아니다. 어떤 피해자는 다른 사건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때론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종교적, 여성혐오적 맥락 속에서 때론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교차성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모순점들은 익히 알고 있다. 나는 이 모든 비극의 중심에 자리한 '절대적'가해자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에 있는 그 악의 중심, 이 모든 악몽은 그 '절대적 가해자' 때문이라고, 언제쯤 우리는 돌려 말하는 것을 멈출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모르몬주의에 관한 것도, 어떤 다른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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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2-02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이건 제목이랑 표지가 좀 잘못했네요.. ;;전에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그땐 그냥 넘겼고.. 달자님 리뷰 잘 읽고서 이제야 담습니다. ㅋㅋㅋㅋㅋ

달자 2023-12-02 02:01   좋아요 2 | URL
은오님 안녕하세요! 표지가 영어 원서 꺼 그대로 가져온 거 더라구요...?ㅋㅋㅋ 읽고 나서 은오님 후기 넘 궁금해요 꼭 써주세요! 근데 정말 책 좋아요

미미 2023-12-02 1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궁금했었는데 달자님 글 읽으니 더 읽고싶어지네요.
역시 제대로 직면한다는게 어렵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대단하다‘라는 부분 어느 정도인지 알고싶어져요.^^ 밀린책들이 많아 기약이 없지만 그래도 달자님 글이 반갑기도 해서 다시 찜!ㅋㅋㅋㅋ

달자 2023-12-06 18:42   좋아요 1 | URL
저 작가는 정말... 일단 글을 잘쓰고 솔직하고 똑똑하고... 그 많은 일을 겪고도 우뚝 서는 단단한 멋진 사람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