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안검사의 퇴장과 문외한 인권윈장의 등장
소설 <태백산맥>이 적을 이롭게 하는 표현물인지 수사했다는 검사. 이력을 보니 강정구 교수의 '만경대 방명록' 사건도 있다. 그 광란의 마녀사냥이 다시 떠오른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정부 들어서는 용산참사와 MBC 피디수첩, 미네르바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그래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내정을 계기로 법원명령에도 꿈쩍 않고 있는 용산참사의 진실, 검찰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수사기록 3000여 쪽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불거졌으면 하는 소박한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용산참사 유족의 항의시위로 잠깐 이 문제가 언급되었을 뿐, 연일 신문지상을 뒤덮은 것은 고급아파트 구입비용과 고급승용차 리스, 명품 소비와 위장전입 문제 등 도덕성과 신상 문제였고 결국 유럽 순방을 마친 대통령의 '결단'으로 후보자는 낙마하고 말았다.
검찰총장 후보자의 초라한 퇴임식
지난 17일 검찰총장 후보 사퇴서를 낸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의 퇴임식은 검찰청 소회의실에서 검찰간부 20여 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사진촬영은 물론 기자도 들어가지 못한 비공개로 열렸다. 행사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그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새로이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하려는 현병일 한양대 교수와 이를 막아 나선 인권단체 활동가들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평소 법치와 실용을 강조해온 이명박 대통령답게 한편에서는 공안검사를 검찰총장으로 또 한편에서는 인권문제는 문외한이지만 "학장, 학회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보여준 균형감각과 합리적인 조직관리 능력"을 인정해 현병철 교수를 국가인권위원장에 내정했다. 그러나 엄연히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가 위원장이 되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고, 본인 입으로도 “인권위 또는 인권 현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하니 'MB식 법치'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인권단체는 신임 위원장의 취임을 반대하지 않을 레야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날 취임식은 무산되었다.
퇴임식과 닮은 취임식
하지만 문제는 이 정부의 인권위원회 조직축소나 독립성 훼손, 뉴라이트 측에서의 이른바 '좌편향' 논란에 대해 "학장으로서 일이 너무 바빠 그런 뉴스를 보질 못했다"고 답한 신임 위원장의 자질만이 아니라 이러한 인사를 검증하고 견제할 아무런 제도적 장치나 절차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수호한다"는 검찰의 총수를 검증하는 자리에서 도대체 <태백산맥> 이적표현물 수사와 '만경대 방명록' 사건이 누구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는지, 용산 수사기록을 감추고 피디수첩을 수사한 것이 어떤 정의에 근거한 것인지 따지지 못했듯이 형식적인 절차가 정답일 수만은 없다. 마찬가지로 이 정부가 말하는 인권이 과연 어떤 인권이고 누구를 위한 인권인지, 거기에 용산참사 유족들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있기나 한 건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이 나라 언론환경에서 실용과 법치를 넘어선 인권과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그저 소박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7월 20일, 반년이 넘게 장례도 치루지 못한, 시신을 메고 청와대에 가는 수밖에 없다는 용산참사 유족들은 병원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거리에서 아들과 같은 전경들과 또 다시 몸싸움을 벌여야 했고,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가족 한 명은 '공권력 투입 임박' 뉴스를 보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바로 그 시각, 경찰이 출입을 가로막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항의를 묵살하며 15분 만에 신임 국가인권위원장 취임식이 치러졌다. 한 공안검사의 퇴임식과 묘하게 닮은 모양새였다.
- <미디어오늘>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