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평택 대추리 사건으로 편집장이 구속되었을 때 쓴 글이다.
별로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편집장이 구속되었으니 기자가 써야 하지 않겠느냐는 무언의 강압에 밀려 난생 처음 써본 탄원서.
편집장은 지금 용산참사로 벌써 몇 달째 수배 중이다.
또 탄원서를 써야 할 날이 오려나.
이런 글 따위는 몇 번이라도 쓸 수 있으니 제발 용산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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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 원 서
재판장님께.
박래군이 구속됐다니 서글플 따름입니다. 어떻든 미군에게 기지를 지어주려는 정부의 외곬수를 수차례 보고 겪으면서 분노도 당혹감도 무뎌졌나 봅니다. 다만 한 사람의 갇힘이, 그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할 그를 아는 여럿의 슬픔이 전해와 서글프고 또 속상합니다.
브레히트의 <민주적인 판사>란 시를 떠올립니다. 아는 영어라고는 '1492년' 밖에 없는, 그래서 번번이 미국 시민권을 얻지 못하는 이민자에게 그의 처지를 알게 된 판사가 마침내 "미국이 독립한 해는?"이란 질문을 합니다. 재판장님은 박래군에게 무엇을 물을 생각입니까?
몇 차례나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도 시민 대접을 받지 못하는 대추리, 도두리 마을 사람들에게 정부는 끊임없이 "얼마를 보상받고 싶냐?"고만 묻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라고 물어봐도 "왜 법을 지키지 않냐?"는 질문만 되돌아옵니다.
묻는 말에만 답하라는 현실은 힘없는 사람을 더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함께 질문도 하고, 답도 함께 찾기 위해 시작된 평화행진이었습니다. 어쩌면 '평화'를 앞에 건 행진이었기에 단장을 맡은 그가 그처럼 쉽게 연행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준비된 폭력, 계획된 불법인양 말합니다. 이미 정치인들에게는 훈장이 되어버린 민주화 운동 경력까지 끄집어와 그의 죄질을 논합니다.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아니라 다시 평택으로 달려가 정부가 잘못한 증거를 마저 찾아낼까 염려되어 가두려함에도 짐짓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질이 나쁜 것은 박래군이 범했다는 죄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입니다. 그럼에도 정의로움을 가두어 잘못을 감추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분노보다, 슬픔보다 더 한 부끄러움이 되풀이되지 않길, 그가 하루라도 빨리 석방되어 가족과 동료의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