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7일, 튀니지 시디부지드라는 지역에서 스물여섯 살 청년이 자기 몸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청년은 시디부지드 지역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부족 출신이라 합니다. ‘부아지지’라는 이름의 이 청년이 행상수레를 빼앗기며 여성 공무원에게 뺨까지 맞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겪은 모욕은 부족 전체의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이틀 뒤 시디부지드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고 경찰과 충돌이 발생하자 시위는 인근 도시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습니다. 벌써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아랍 혁명의 불씨가 당겨진 겁니다.

결국 채 한 달도 못 버티고 1987년부터 집권해온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불길은 이집트로 번졌습니다. 1월 25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있는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수만 명이 모여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합니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대규모 시위는 연일 계속되었고 18일 만에 미국과 각별한 관계였던 무바라크 대통령 또한 30년 동안 독차지했던 권력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이제 혁명의 기운은 북아프리카와 아랍 전역으로 퍼집니다. 이란 아지즈(자유) 광장으로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듭니다. 바레인에서는 일주일 넘게 시위가 이어지고 수도 마나마의 중앙광장을 시민들이 점거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예멘에서는 사복을 입은 경찰관이 친정부 시위대로 가장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하여 10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이라크에서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9명이 사망했으며 모로코에서도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헌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8주 동안 민주화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요르단과 수백 명이 도로를 점거한 오만, 튀니지 혁명 이전부터 싸움을 벌여왔던 알제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나라, 멈추지 않는 정부군의 학살과 수천 명의 희생자 속에서도 혁명의 불길이 꺼질 줄 모르는 리비아가 있습니다.

예측불허의, 모두의 예상을 간단히 뛰어넘는 아랍 민주주의의 전진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물러나고 군부가 권력을 이양받자 1980년 서울의 봄과 5월 광주, 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며 우려를 내비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흐리르 광장에서의 시위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튀니지 민중은 혁명의 과실을 가로채려했던 총리까지도 물러나게 했습니다. 각본 없이 시작된 드라마는 세계사를 다시 쓰고 있는 중입니다. 정치적 지도자도 조직도 없이,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폭발한 이 저항은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이자 희망입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시위를 조직하고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2008년 촛불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아랍 혁명은 우리의 어제가 아니라 다가올 내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랍 민중의 봉기는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와 함께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경제상황의 악화와 그로 인해 가장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절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십여 년간 아랍 국가들의 복지체계가 말할 수 없이 망가졌으며 여기서 국가는 제 역할을 전혀 못했다는 이야기들이 뒤늦게 들려옵니다. 이 혁명이 어떻게 폭압적인 체제를 무너뜨리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획득하는가와 함께 새로운 경제질서를 요구하고 또 만들어갈 것인가를 주의 깊게 봐야겠습니다.

또 누구는 북한이나 중국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저는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왜 튀니지의 독재정권이 가장 먼저 무너졌는지에 대해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은 억압적인 경찰체제인 반면 이집트와 같은 나라는 좀 더 유연하고 지능적인 독재를 펼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권력이 분산된 독재체제는 명확한 독재자의 얼굴을 가진 체제보다 무너뜨리기 어렵다”는 것이지요(‘혁명, 연쇄와 징후’, 르몽드디플로마크, 2011년 2월호).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2008년 촛불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양상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민주적 통제란 굴레를 아예 벗어버린 검찰과 제 철을 만난 듯 활개를 치는 경찰은 공권력을 들이대며 계기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공포를 조장합니다. 정권과는 대립과 타협을 반복하며 줄다리기를 하지만 자본의 이익과 논리 앞에서는 철저히 복무하는 사법부는 또 어떻습니까. 게다가 너무 쉽게 권력에 길들여진 방송과 권력 길들이기에 흠뻑 취한 보수신문들, 급속도로 퇴행하는 학계와 종교계와 문화계, 학교에서 기업까지 벅찬 싸움은 곳곳에서 벌이지고 있습니다.

더 교활하고 그래서 더 잔인합니다. 봄소식보다 먼저 날아든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열세 번째 죽음이 그렇습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에서 보낸 보도자료에는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쌍용자동차는 2009년 파업을 끝내며 무급자에 한해 1년 뒤 순환복직을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생활고를 견뎌내던 한 노동자는 파업투쟁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던 부인이 집 베란다에서 투신한지 10개월 만에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장례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또 한 명의 쌍용 노동자는 자신의 차에 연탄불을 피우고 또 그렇게 세상을 등졌습니다. 개별 사업장에 대한 개입은 하지 않겠다던 정권은 공권력을 투입해 살인적인 진압을 펼쳤고, 법원은 노동자 96명을 구속시키고 아무렇지도 않게 80억 원이 넘는 손배가압류와 110억 원 구상권 청구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합법적으로 합의된 약속을 회사 측은 지킬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어떤 권력집단도 이를 강제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죽음의 행렬 뒤에 권력을 거머쥔 자본의 얼굴이 어른거립니다.

국가기관들을 수하로 부리는, 임기가 없기에 레임덕도 없는 자본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우리네 삶을 제 입맛에 맞게 요리합니다. 제1야당에서 무상의료란 말이 등장하고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복지국가가 거론되지만 재벌총수의 야구방망이 폭행에는 떠들썩해도 재벌기업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것은 뉴스에 나올 수 없게 된 한국사회에서는 허망한 소리일 따름입니다. 자본권력에 대한 각성과 성찰, 변화된 권력구조와 지배방식에 대항하는 새로운 저항이 기획되고 실천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내일은 그저 예측 가능한 절망일 수밖에 없겠지요.

오는 5월이면 50번째 《사람》이 나옵니다. 6월은 창간 6주년이 됩니다. 누가 《사람》이 어떤 잡지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인권독립잡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인권은 그렇다 치고, 광고료에 의지하지 않고 영리목적의 광고는 아예 싣지 않으니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잡지가 분명합니다. 간혹 몇 부나 찍는지 궁금해 하는 인권활동가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영업비밀이라 그럽니다. 잡지나 신문의 발간부수가 영업비밀인 까닭은 그에 따라 광고료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인데 광고에 기대지 않는 《사람》이 발간부수를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창피해서 둘러대는 것이지요. 냉정히 말해 자본으로부터는 독립한 잡지라지만 ‘인권재단 사람’의 기관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여섯 살이니 경제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정서적으로나마 재단으로부터 독립하고 최소한 제 앞가림은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올봄부터 한 달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하고 담배 한 갑보다는 겨우 5백 원 비싼 정기구독자를 열심히 모아볼까 합니다. 인권단체들에게 파격적인 할인가에 공동구매도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한국인권운동의 기관지 《사람》은 너무 야무진 꿈일까요?

아랍 혁명을 보며 불가능한 꿈꾸기를 멈추지 말자는 어느 혁명가의 말을 다시 새겨봅니다.   



- <사람> 2011년 3-4월호(49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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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9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도 항상 깨어있어야겠어요...
 

 


 

근로기준법과 차별금지법
 


애써 무시하고 지나치려 해도 쉽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릴 때마다, 길을 걷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도 그놈의 G20 타령은 거의 공해 수준입니다. 내용도 우리나라가 G20 의장국이니 레스토랑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자제하자는 둥 외국인을 만나면 미소를 짓자는 둥 어이없습니다. KBS노조 발표에 따르면 KBS가 G20과  관련해서 이미 방송을 했거나 방송을 준비 중인 특집 프로그램만 60개, 55시간에 달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G20 성공기원 콘서트와 영화제, 릴레이 명사 강연 등등. 정작 G20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성공리에 치르면 국가 브랜드가 올라간다는데 어찌 올라가는지는 쏙 빠져있습니다. 이 무슨 “남자한테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만 되풀이하는 건강식품 광고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다 엊그제 광화문에서 색다른 플래카드를 보았습니다. 문구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세계 67개국이 참전해서 지킨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이 G20정상회담 의장국이 되었으니 어려운 이웃나라를 대변해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그 밑에는 한국전쟁이 최대 참전국이 참가한 전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도 되었다는 글귀도 적혀있었습니다. 별 걸 다 갖다 붙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 G20이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 스무 개 나라의 모임이고 영국, 미국, 캐나다 같은 이른바 서방 선진국이 아닌 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행사이니 그럴듯한 주장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이 어려운 이웃나라를 대변할 위치에 있는 것인지, 어려운 이웃나라들은 그걸 원하기나 하는지 살짝 의문이 생깁니다. UN과 같은 공식 국제기구도 아니고 그야말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친목모임 수준인데 괜히 거들먹거리고 호들갑을 피우는 게 꼴사납지나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네 이웃은 누구인가.” 지난해 용산참사 현장에 걸려있던 수많은 플래카드 중 하나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의 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네가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쓰러졌는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은 다 모른 척 지나가고 당시 유대 사회에서 핍박받던 사마리아인이 도와주었다. 그럼 네 이웃은 누구인가? 예수는 사마리아인이 바로 네 이웃이며 그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좋은 이야기고 이 문구가 용산참사 현장에 걸린 취지도 이해는 가는데 워낙 심사가 삐뚤어진 탓인지 이웃이라고 하면 ‘불우이웃 돕기’가 떠올라 저는 그걸 보면 왠지 불편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개신교는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네지만 지난 며칠 또 한 차례 개신교 때문에 사이버공간이 시끄러웠습니다. 이른바 ‘봉은사 땅 밟기’란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퍼졌는데 몇 명의 젊은 개신교 신자들이 늦은 밤 봉은사란 절에 들어가 찬송가를 부르고 불탑을 잡고 기독교식으로 기도를 올리며, 불교를 비하하고 절이 무너지라고 기원하는 내용이었죠. 동영상이 크게 문제가 되자 담임목사와 젊은 신자들은 봉은사를 방문해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여전히 개신교의 배타성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 동영상을 보며 자연스레 차별금지법이 떠올랐습니다.


2007년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려다 안 된 제일 큰 이유는 차별 사유에 ‘성적 지향’이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였고 이를 반대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종교계, 특히 보수적 개신교 집단이었습니다. 올해 들어 법무부에서 다시 차별금지법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더니 아니나 다를까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빌미로 5월부터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를 조장하는 신문광고가 실리기 시작하고, 며칠 전에는 “동성애차별금지법이 11월 중 처리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성경을 가지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설교만 해도 처벌된다”는 문자가 돌고 다음날 법무부 사이트가 마비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29일 국회에서는 ‘동성애차별금지법 입법반대 포럼’이란 행사도 열렸습니다. 그만큼 차별금지법에 성적 지향이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 동성애를 계속 차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2007년과는 다르게 매우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일부에서는 동성애를 거부할 권리, 동성애를 죄라고 말할 표현의 자유를 말하기도 합니다. 타인의 권리를 빼앗을 권리,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자유 같은 건 애초부터 없다는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주기 이전에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 스스로 되묻게 됩니다. 저는 종교에는 문외한입니다. 성경 몇 구절을 안다고, 불경을 좀 읽었다고 종교를 안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핍박받는 이웃과 함께하지 않는 종교, 차별받는 이들과 이웃하지 않는 종교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G20 행사에 비하면 아주 초라하지만 올해는 전태일 열사 40주기로 매우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람》 이번호 기획도 ‘전태일 40주기, 다시 보는 근로기준법’입니다. 근로기준법이 그러했듯 차별금지법도, 그 어떤 법률도 세상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일 겁니다. 하지만 전태일이 그랬듯이 법률 하나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떻게 읽히느냐에 따라서 역사적 사건이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오랜만에 『전태일 평전』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열여덟 그 시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학교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 내신등급은 좀 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올해는 또한 『전태일 평전』을 쓴 고 조영래 변호사의 20주기이기도 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는 전태일에게 그리고 조영래에게 참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또한 전태일과 조영래의 만남은, 비록 때늦은 안타까운 만남이지만 참 아름답고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좀 뜬금없지만 이번호에는 인권재단 사람에서 주최하는 문정현 신부님의 헌정공연을 즈음해 사진작가 노순택의 신부님에 대한 헌사를 실었습니다. 사진이 아닌 잔글씨로 노순택이 기록한 문정현 신부의 행적을 읽으며 문정현과 대추리, 문정현과 용산, 문정현과 노순택의 만남도 생각해봅니다. 《사람》도 이렇듯 소중하고 아름다운 만남의 자리가 되고 그 기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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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표지모델은 문정현 신부님입니다. 역대 표지모델 중에 가장 유명인사가 아닐까....

 

이번주 목요일부터 시작되는 문정현 신부님 헌정공현(http://cafe.daum.net/hrfund)에 맞춰 사진작가 노순택 님이 사진도 찍어주시고, '추가된 문정현 사찰 기록카드'라는 글도 한 편 기고해주셨지요.

 

이번호 기획은 전태일 40주기에 맞춰 근로기준법에 대해 다뤘습니다. 근기법의 역사와 현실과의 괴리, 그리고 인권의 관점에서 근기법을 재구성해보자는 제안까지... 그리고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 글도 두 개 실렸습니다.

 

종이 잡지는 이제 막 인쇄 중이고 사이트도 조만간(?) 업데이트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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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03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는 동성애와 관려해 성경 말을 인용해도 처벌을 받느냐고 극렬 반발하는 분위기더군요ㅜ.ㅜ

나무처럼 2010-11-03 15:45   좋아요 0 | URL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도 종교에 따른 차별이 없어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보수 기독교 단체는 이 문제를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몰고가는 듯 합니다. 그들에게 선교, 종교의 자유는 다른 사람을 차별할 자유를 말하는 것인지...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린 제주인권회를 다녀왔습니다. 태어나서 세 번째 비행기 여행이었습니다. 여전히 공항은 낯설고 비행기 안에서는 바짝 긴장이 되더군요. 운 좋게도 돌아올 때는 처음으로 창가 자리에 앉게 되어 몇 천 미터 상공에서 저녁놀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이번 제주인권회의에서는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 건강권 등과 같은 사회권을 다뤘는데 저는 장애인으로 20년 동안 시설에 갇혀 지내다 나와 지금은 장애인 자립생활 운동을 하는 김동림 활동가와 함께 다니는 덕분에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중증장애인과 같이 길을 걷고 지하철을 타본 적은 있지만 비행기는 처음이었죠. 아무리 저가 항공이라지만 탑승객이 200만 명을 돌파했다는 항공사였는데 전동휠체어가 등장하자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고 하면서의 번거로움은 그렇다 치더라도 100명을 넘게 태우고 하늘을 나는 최첨단 이동수단에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자리 하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요?


물론 항공사 직원들은 참으로 친절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그나마 교육효과가 있었는지 불편을 최소화하려 애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절한 항공사 직원들은 하나같이 저만 바라보고 저하고만 상의를 하려 드는 겁니다. 김동림 활동가가 저보다 나이도 더 많고 훨씬 지적(?)으로 생겼으며 대화가 힘든 상태도 아니고 너무도 당연히 저보다는 장애인 이동과 관련해서 아는 것도 더 많은데 말입니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 흡연실로 가서 “기분 참, 그렇죠?”라고 했더니 사람 좋은 김동림 활동가는 그저 미소만 짓더군요. 동행한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임소연 활동가는 첫 날부터 ‘사회권, 돌봄과 나눔의 공동체’란 제주인권회의의 큰 주제를 보고는 돌봄은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중에 돌보는 사람의 입장에 있는 개념이고 활동보조라는 개념은 그 반대라며 저한테 ‘트집’을 잡았는데 괜한 트집이 아닌 것이지요.


이번 제주인권회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환경미화원의 건강권 문제를 짚은 영상이었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음식물 쓰레기나 재활용 쓰레기 처리를 민간에 위탁하면서 거기에 고용된 미화원들의 작업조건은 심각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샤워시설 하나 없는 쓰레기 처리장 옆에 오염된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하나 달랑 달린 컨테이너 박스에서 쉬며 일을 마치면 더러워진 몸을 씻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들의 손과 발, 옷은 말할 것도 없고 얼굴에도 버스터미널 화장실보다 몇 배 많은 세균이 묻어있는 채로 말이죠. 또 거리에서 청소를 하는 미화원들이 일하는 시간은 대부분 사람이 드문 새벽이고, 쓰레기 처리장은 거의 다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시 외곽의 한적한 공터였습니다. 영상을 보며 ‘나는 왜 하루에도 엄청난 쓰레기들을 만들어내면서 그것이 어떤 이들의 손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처리되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나?’ 했는데 아마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눈앞에 있어도 무시되기 십상인 사람들, 아예 보이지도 않게 가려지고 덮어지고 치워지는 사람들, 이런 이들의 이야기는 수십 권의 책으로도 다 담지 못하겠지요. 이번호 《사람》의 좌담에도 그런 사람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11월에 열리는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거리 환경정화를 해야 한다며 노점상 특별단속반을 편성하고 노숙인 복지 대책이란 명목으로 노숙인 수용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몰리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그동안 단속을 하던 출입국관리 직원만이 아니라 이제는 경찰이 직접 나서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니까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마음의 눈으로 이들을 찾아 나서고 연대의 손을 마주잡는 것이 정말 필요한 때입니다.


솔직히 제주에서 2박 3일 동안 참 좋고 옳은 말이지만 그래도 어렵기만 한 이야기를 듣느라 많이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혹시 《사람》도 여러분에게 그런 존재가 아닌가 많은 반성을 했지만 이번호도 크게 나아지지는 못한 듯싶습니다.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좋은 질문을 위해서는 잘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저는 가끔 지금은 없어진 FM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인터넷으로 다시 듣곤 합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아 몇 천 미터 상공에서 저녁놀을 보며 문득 2004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녀가 떠올랐습니다.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고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정리해고에 맞서 타워크레인에 올라갔다가 129일 만에 주검으로 내려온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지부장의 부음을 접하고 그녀가 한 오프닝 멘트입니다. 《사람》을 마감할 즈음 2008년 서울역 앞 철탑에 올랐던 KTX 여승무원들이 마침내 재판에서 이겼다는 기쁜 소식과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이포보에 올랐던 환경운동가들이 무사히 내려왔다는 다행스러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1000일을 넘게 싸우면서 두 차례나 철탑에 올라가야 했던 기륭전자 노동자들, 70미터 높이 굴뚝에서 50일을 싸웠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용산 남일당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 다들 잘 계시나요? 우리 목소리 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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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은임추모사업회(http://www.worldost.com). MBC FM <정은임의 영화음악> 2003년 10월 22일 방송.   
** 격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9-10월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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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내미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대단한 건 아닙니다. 며칠 전 둘째를 가진 아내와 정밀초음파를 보러 산부인과에 갔는데 자기도 동생을 보겠다며 따라나선 딸내미는 병원에서 또래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난 다섯 살이야. 넌 몇 살이야?” 하고 물으니 딸내미는 천연덕스레 “응, 나는 여섯 살이야” 그럽니다. 우리 아이와 그 아이 모두 네 살이란 걸 이미 알고 있던 아내와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습니다.


30여 년에 걸쳐 거짓말에 대한 연구를 한 끝에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 한다』란 책을 펴낸 로버트 펠드먼 박사는 처음 만나는 성인은 10분 동안 평균 세 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옷이 예쁘다거나 요즘 괜찮다거나 하는 악의 없는 인사치례가 대부분이지만 소위 어른들의 세계에서 얼마나 거짓말이 넘쳐나며 우리가 거짓말에 얼마나 무감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거짓말하면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워터게이트 사건이 떠오릅니다. 솔직히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사태야말로 금융자본의 온갖 거짓말과 그 거짓말을 알고도 속아준 관료들의 합작품, 금권사기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거짓말은 생리(生理)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이 정부의 거짓말은 도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이 성적표를 조작하듯 획을 더해 상황일지 숫자를 조작하지 않나, 애초에 없다던 사건 동영상이 자꾸만 튀어나오지 않나, 북한 어뢰의 설계도면이 실렸다는 소책자는 있다가도 없어지니 천안함 사건에서 국방부는 그야말로 입만 열면 거짓말입니다.


경찰의 거짓말도 가관입니다. 아동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자 피해 아동의 가족이 보도를 원치 않는다는 거짓말로 자신들의 실책을 덮으려 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고문사실을 밝혔음에도 해당 경찰서장이 스스로 나서 사실무근이라며 기자회견을 엽니다. 더 나아가 경찰 수뇌부는 당사자가 부인한 것을 가지고 은폐라 말하기는 곤란하다 우기니 말문이 막히고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당장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만 모면하고 코앞에 닥친 곤경만 벗어난다면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를 가리키는 권력을 손에 쥐었으니 거짓과 진실을 모호하게 할 수도 있고, 거짓을 진실로 바꾸고 진실을 거짓으로 가릴 수도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게지요.


반면 구술생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힘을 빼앗기고 억눌린 사람들의 거짓말에 주목합니다. 거짓말에도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의 증언 가운데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사실인지를 가려내는 일보다 왜 그 사람은 그것을 사실로 믿게 되었는지, 혹은 왜 사실을 감추고 때로는 침묵하며 거짓을 말하는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하며 그것이 결국 진실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거짓말로 치자면 대한민국 헌법이나 세계인권선언만한 것도 없습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대한민국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은 현실에서는 죄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말, 모든 사람은 의료와 주거, 노동과 교육의 권리를 가진다는 말도 거기에 담긴 염원과 열망, 지향과는 달리 이 사회에서는 모두 터무니없는 소리일 뿐이지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국가의 주인은커녕 잠재적 범죄자, 불순분자, 테러리스트가 되어 권력기관의 사찰 대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인간이기를 선언하고 인간답게 살기로 작정하는 순간 그나마 아등바등 하던 일터와 삶터에서 내쫓기는 것을 각오해야 하고 갖은 모멸과 냉대, 그리고 법을 빙자한 폭력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러니 인권이라는 것은 법조문과 선언문에 적힌 글 나부랭이가 온통 거짓임을 폭로하고 그 거짓이 진실이 되게끔 만들어가는 지점에서 비로소 생겨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아동발달 이론에 따르면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타인을 인식하고 다른 이의 마음이 작용하는 방법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배워가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아이들은 3~4살부터 상상력이 풍부해지면서 없는 것을 있는 것이라 여길 수 있게 되며 이것이 거짓말을 만드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타인과 교감하지 못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새로움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니 우리는 아이들의 거짓말로부터 참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이번 <사람>에서는 청소년 스스로가 말하는 청소년과 학교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학교는 그 자체로 거대한 거짓말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에서, 학교 밖에서, 사회 구석구석에서 거짓과 맞닥뜨리고 있을 그들에게 한 편의 시를 전하며 건투를 빕니다. 

 

찍소리  
- 송경동  

찍소리 내고 얻어터진 적 세 번 있다

코 끝이 늘 토마토던 초등학교 담임이  
깨스! 하곤 찍소리만 내봐라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만 찍!

두 번짼 중3 시절 늦은 밤 자율학습시간 
학생과장 고스터가 찍소리도 내지 마 했을 때
슬리퍼소리 사라지기 기다려 히히 찍!
어떤 개새끼가 찍소리 냈어
마루장 무너지던 소리 온 밤을 터졌다

세 번짼 고3 시절
학력고사도 끝나 널널한데
하루는 게슈타포가 말 같잖은 말을 했다
예를 들면, 찍소리 내지 말고 공부해! 와 같은 말
참을 수 없어 큰소리로 찌이익! 해버렸다
12년간 주눅든 어떤 것으로부터 설움과
해방감 나른히 몰려오던 한낮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학교를 떠나고 말았다

그 뒤로 십여 년 더 지난 오늘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자라오며 그 찍소리 몇 번이나 더 해 보았나
똥 누다 말고 찌익! 해 본다
누구도 이젠 나를 치지 않는데
마음에 찡하니 젖어오는 슬픔 한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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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7-8월호에 쓴 글입니다.  
청소년들을 만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제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솔직히 제 아이는 '찍소리' 안 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지만 찍소리도 못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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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0-07-0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움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거짓말도 할 수 없다니. 판에 박힌 거짓말만 하는 저로선 아이들의 거짓말이 부러워요.
'찍소리'란 시는 참 좋으네요.

나무처럼 2010-07-05 11:30   좋아요 0 | URL
그래도 자꾸 하면 늘지 않을까 하는^^ 사소한 물음에 답함이란 시집 얼마전에 봤는데 정말 좋은 시가 많더라구요.

Arch 2010-07-05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모해놨어요.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꼭 읽어보겠어요.
 

전 편집인(박래군)이 구치소에서 보내온 편지를 '편집인의 글'로 때우고 날로 먹으려고 했는데, 예기치 않게 편집 막바지에 전 편집인이 보석으로 출소하느라 땜방식으로 편집인의 글, 원고를 급조해야 했습니다. (물론 편지도 잡지에 실기는 실었지만)

또 늦어진 변명을 하자면... 칠레 지진사태로 종이 구하기가 힘들었고 편집이 늦어져 인쇄일정도 어그러저버린 탓입니다.

종이잡지를 5년 가까이 만들어왔으면서도 우리 잡지에 쓰이는 종이 펄프가 칠레에서 온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밑에서도 썼지만 참 저는 주변과 관계에 무심한 놈인 거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글을 많이 실어 기분이 좋습니다. 편집인의 글에 대해 약간 변명을 하자면, 좋은 글을 소개할 겸 예전부터 한 번 써보고 싶던 방식(서평 방식?)을 도전해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 편집인의 글은 <사람> 5-6월호 서평인 셈입니다. 그런데 서평은 책을 안 읽은 독자도 고려해야 하는 것인데, <사람>을 다 읽지 않은 사람들,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제 느낌이 전달될까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또 한 권의 <사람>이 나왔습니다. 
 

 

타인의 언어로만 이야기되는 사람들의 연대


대구에 있는 병원 하나가 문을 닫았습니다. 한 달에 1억5000만 원의 적자가 나고 그렇게 쌓인 적자가 120억 원에 달했다고 하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그 병원은 바로 적십자병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적십자병원은 공공의료기관으로 저소득층과 이주노동자 같은 취약계층에게 무료진료나 부담이 적은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대구적십자병원이 만성적자에 시달렸다는 것은 그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대구적십자병원의 의료급여환자 진료 비율은 다른 지역 적십자병원들보다 많게는 두 배가 넘었습니다. 의료급여환자가 1000원짜리의 진료를 받았다면 일반병원에서는 360원을 내야 하지만 적십자병원에서는 190원만 내도 됩니다. 그래서 대구적십자병원이 일반병원이었다면 오히려 흑자를 낼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공공의료기관을 살리기 위해 직원들은 10개월 동안의 임금체불도 감수하면서 폐원만큼은 막고자 애썼습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이윤추구보다 공익성에 무게를 두고 만들어지고 운영되었던 병원이 왜 문을 닫게 된 것일까요?
 
대구적십자병원 폐원 사태를 다룬 이번 호 르포 ‘왜 대구적십자병원은 문을 닫았나’의 앞머리에는 <한겨레21> 기사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서울 강북의 빈곤층이 모여 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121가구를 심층 조사한 그 기사를 뒤늦게 찾아 읽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 가난하게 죽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픕니다. 아파서 가난해진 것인지 가난해서 아픈 것인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더 가난하고,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식구가 있는 집은 앞으로 더 가난해질 확률이 높습니다. 노인들은 무능하고 젊은이들은 무기력합니다. 나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자포자기가 심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는 더욱 크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인데 기사를 읽으니 가난에 대한 공포가 밀려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위태로움. 벼랑 끝에서 한 발 삐끗하면 저 아래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이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것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해서든지 빈곤층은 면하고 싶다는 생각, 우선 차상위계층에서 벗어나고 봐야겠다는 심리가 절로 작동합니다. 
 
<사람>의 르포에서 대구적십자병원이 문을 닫은 것은 국민들에게서 거둔 적십자회비의 단 1%도 적십자병원에 지원하지 않은 채 그 어떤 개선의 노력도 하지 않았던 대한적십자사와 “목소리가 없는 시민들을 위해선 관심과 시선주기를 꺼리는 국회의원과 관계 당국” 그리고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을 위해 따뜻한 눈길, 마음을 주지 않았던 많은 대구시민들”의 합작품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만약 목소리가 없는 시민들,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되찾아 어떤 울림을 낼 수 있었다면 결론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저 목청 높고 자신들의 정치세력을 확고하게 틀어쥐고 있는 이들,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 또는 그 어떤 희망의 끝자락을 쥐고 그 침묵의 카르텔에 어떻게든 끼어보고자 했던 이들의 담합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그 목소리, 울림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사회적 고통, 그 중에서도 특히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진상규명에는 관심없이 천안함 침몰 사건의 희생자들을 ‘대한의 아들’이자‘순국한 용사’로 일컬으며 유족 돕기 성금모금으로 추모를 독려하고 애도기간을 정해 슬픔을 강요하는 것을 보면 사회적 고통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춰 이용하려 든다는 의심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반면 “이 참혹하고 억울한 죽음을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 그리고 그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하며, 이 같은 사건이 다시 재발해서는 안 된다는 모든 당위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 죽음의 장면을 마구(!)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라는 질문(‘어느 넝마주이가 생각하는 사진과 인권’) 앞에서 과연 우리는 어떠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통 받는 피해자의 증언을 듣는다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 그들의 고통 혹은 죽음에 대한 의미부여가 또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밀어내고 가두었던 것은 아닌지, 어떤 명분을 내세워 하나의 의미를 독차지하려는 욕망은 없었는지 되짚어봅니다. 
 
어떤 의미부여에 앞서 아픔에 공감하고 서로의 고통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불거진 낙태 찬반 논란과 관련하여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현재의 논쟁 구도에서, 여성은 태아를 죽인 자로서 등장”할 수밖에 없기에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없음(‘말하기 어려움, 또는 낙태에 대한 작은 말하기’)은 제도적 차별만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각종 억압과 편견들 가운데서 우리가 말하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해줍니다.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삼성의 문제가 심각하고 그래서 깊이 있게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또 하나의 가족, 아시아의 삼성’이란 글을 읽기 전까지 삼성에 대한 제 머릿속 사고는 대한민국 국경을 한 발자국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소통과 이해의 전제조건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란 말, 연대가 중요하다는 말은 그저 미사여구였을 뿐 아직껏 제 언어가 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재작년 이맘때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그전까지 아무도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청소녀/년들에 의해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 광장에서 100여 일 동안 무수한 말들이 흘러넘쳤고 천차만별, 각양각색의 어깨동무가 있었습니다.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의 “말들에 귀 기울이고, 계속 말하라고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명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없으며 “누구나 말할 권리”가 있고 누구나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의무”(‘김예슬 선언과 나의 스무 살’)가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그렇지만 매우 짧은 시간 동안만 증명되었다 곧 다시 부정되고는 하는 명제 앞에서 다시금 목소리를 빼앗긴 이들, 타인의 언어로만 이야기되어지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말, 그 언어로 재구성되는 관계를 그려봅니다.



-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5-6월호 '사람이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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