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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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연구하고 더 고민해서 쓰면 안 될까?"

 

[명탐정의 규칙]을 읽는 내내 킥킥거리며 새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게 추리소설이 맞기는 맞는데 뭐랄까 추리 소설을 비판하는 추리소설이랄까, 그것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사와 탐정이 죽이 맞아 낄낄대며 비판한다. 등장인물이 자신이 등장하는 소설에 대해 독자에게 혹은 다른 등장인물에게 이야기 하는 방식이 ‘코믹’ 코드의 작품에서 결코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명탐정의 규칙]에서 ‘오가와라 반조’ 형사와 ‘덴카이치 다이고로’ 탐정이 소설에서 잠깐씩 벗어나 혹은 낄낄거리며 혹은 투덜거리며 자신들이 등장하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천박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하는 말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며 그 안에 담겨있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 ‘밀실 선언’부터 마지막 ‘명탐정의 최후’까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총 13개의 단편을 통해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형적인 트릭과 안일한 구성의 한심한 추리 소설에 대해 냉소를 던지고 있다. 매 편마다 한가지씩의 트릭을 소재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감과 동시에 트릭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이 나이에 밀실, 밀실 하며 떠들어 대는 것도 민망해. 자네에게 맡기지. 어차피 마지막엔 자네가 해결할 것 아닌가.”
“별 수 없지요. 결국은 제가 해결해야 할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때까지는 분위기를 띄워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경감님이 이렇게 나오면 저도 힘들어져요.”
“그 마음이야 알지. 하지만 요즘 세상에 밀실로 소설의 분위기를 띄우라는 건 한심한 요구야.”
“불평도 많으시네. 고생은 제가 제일 많이 하잖아요.”
“그렇게 힘들어?”
당연하지요. 밀실의 수수께끼를 푼다는 건,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 일이에요. 또 미스터리 마니아와 평론가들에게 바보 취급당하겠네.”
덴카이치가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이봐, 울지 마. 알았어, 알았다니깐. 에이 자네 말대로 하지.”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말투를 바꿨다.
“음, 물론 밀실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생각해 볼 작정이야. 하여간, 뭐랄까. 밀실은 엄청난 수수께끼 덩어리지.”
너무나 쑥스러워서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렇습니다. 엄청난 수수께끼 입니다.”
  ……

 

이런 식이다. 결국 참다못한 ‘덴카이치’는 “트릭 따위로 독자의 관심을 끌겠다는 생각 자체가 시대착오 적이에요. 밀실의 비밀? 흥, 너무 진부해서 웃음도 안 나오네.”라며 불평을 터뜨린다.

 

[명탐정의 규칙]이 그저 농담이나 저급한 냉소나 쏟아놓는 코믹 소설이 아닌 추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웃음’ 뒤에 있는 작가의 이해와 애정에 더해 매 편마다 준비되어 있는 작은 반전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들의 유쾌한 두 주인공 ‘오가와라 반조’ 형사와 ‘덴카이치 다이고로’ 탐정의 공도 빼 놓을 수는 없으겠지만...ㅎㅎ

 

[명탐정의 규칙]을 읽으면서 느꼈던 또 하나의 감정은 ‘향수’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 편의 이야기마다 한가지씩의 전형적인 트릭을 소개하는데, 전형적이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전통적 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한번쯤은 본 듯한 트릭을 만날 때마다 필자가 좋아하는 ‘셜록 홈즈’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들, 그 고전 추리 소설. 전통 추리 소설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작가는 ‘흉기 이야기 - 살인의 도구’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명탐정이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장면 따위는 앞으로 점점 줄어들 거예요. 뭐, 어쨌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소설의 재미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수사 기법과 환경이 전문화 되면서 명탐정이 활약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명탐정의 규칙]에서도 몇 번이나 ‘오가와라’ 형사가 이야기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경찰이 탐정에게 시시콜콜 사건 정황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일 따위는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제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같은 명탐정을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는 것은 현대 소설에서 또한 그들을 만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가 되리라. 명탐정의 시대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밀레니엄], [쓰리 세컨즈] 같은 극 사실주의 미스터리를 불과 얼마 전에 신나게 읽은 주제에 고전 ‘명탐정’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하기에 다소 민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리움은 그리움이고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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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5-09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명탐정의 규칙을 쓴 가장 큰 이유는 기본적으로 서구에서 발달된 본격 추리 소설에 사용된 트릭이 고갈되었기 때문이죠.서구의 경우 30~40년대의 본격 추리소설의 황금시기를 보내면서 트릭이 고갈된 측면과 그에 대한 반동으로 하드보일드 소설이 성행하게 됩니다.일본의 경우도 서구의 수많은 본격추리 소설이 거의 번역되고 일본 작가들역시 본격 추리 소설을 쓰면서 트릭이 고갈되죠.그러한 과정에서 명탐정의 규칙이 나오게 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는 이른바 본격 추리 소설이 도일과 크리스티,퀸및 체스터턴의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소개되지 않고 부웅 떠서 일본의 추리 소설및 현대 영미 사실주의 미스터리로 넘어가 경향이 있습니다.그래선지 미스터리 트릭의 고갈 운운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진 않지요.황금시대의 본격추리소설이 다 번역되고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 정말 소원입니다ㅜ.ㅜ

휘오름 2012-05-09 20:15   좋아요 0 | URL
음..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트릭의 고갈이라.. 어찌보면 행복한 일이군요. 그정도로 하나의 장르가 활성화 됐다는 것은 그만큼 팬에게는 즐거운 일일테니 말입니다. 국내 추리소설 시장이 그렇게 활발한 편은 아니라고 느껴왔지만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저같이 소프트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황금시대의 작품들이 출간되어 나오는데로 고민없이 구해 봐도 항상 신선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않을까요...물론 좀 억지일지도 모르겠지만요..ㅎㅎ
아무튼 저는 이렇게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즐겁군요.
 
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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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밀레니엄] 시리즈부터 이 [쓰리 세컨즈]까지, 필자에게는 느닷없이 팝! 하고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스웨덴 미스테리 문단의 기조가 이 리얼리즘이 아닐까 생각된다. [밀레니엄]을 읽기까지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주제에 그것도 고작 두 편의 작품만으로 거창하게 문단의 기조를 이야기하기에는 성급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밀레니엄]과 [쓰리 세컨즈] 두 미스테리에서 신선하고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가 [쓰리 세컨즈]를 만나게 된 것은 예스 24의 이벤트를 통해서이다. 영화 [무간도]의 이야기부터 여러 미스테리 문학상 수상 내역 등 작품에 대한 온갖 찬사와 치장의 말들 가운데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스티그 라르손'의 뒤를 이을 작가라는 문구였다. 신간 소개야 워낙에 칭찬 일색인데다가 조그만 것도 마구 부풀리는 과장이 일반적 이다보니 기본적으로 소개 글은 무시하는 편이지만 [밀레니엄]을 워낙 재미있고 인상 깊게 읽었던지라 관심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국 4회 연속 이벤트의 맨 꼬다리에서 간신히 당첨되어 책을 받아보게 되었다.

 

책은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듯한 음산한 분위기의 교도소 복도를 배경으로 하는 표지 디자인의 소프트 커버에, 종이 질이나 내부 편집도 괜찮고 가독성도 좋은 편이다. 일단 이렇게 외관에는 높은 점수를 줄 만 한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어떨까?

 

아마 [무간도]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대충 눈치 채셨겠지만 [쓰리 세컨즈]는 경찰 정보원의 이야기 이다. 처음에는 다소 지루한 느낌이었다. 스웨덴 이라는 필자에게는 낯선 나라의 생소한 지명과 이름들이 계속 새로 등장 하는데다 이걸 또 시시콜콜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의 심리까지 너무 늘어놓는게 아닌가 싶은데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이야기들이 페이지를 넘어갈수록 마치 직소 퍼즐처럼 하나씩 하나씩 짜 맞추어져 커다란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튼튼한 건물을 짓기 위해 기초를 깊고 단단하게 다지는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은 중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강해진다. 초반의 낯선, 그래서 다소 지루했던 배경에 일단 적응하고 나면 이야기의 조각이 하나씩 맞춰질수록 기어도 한단씩 올라가듯 점점 속도를 더해가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전체의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꽝! 하고 폭발하는 느낌이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점을 향해 자석처럼 달라붙어 빨려 들어가는 이 느낌, 이 흥분되는 느낌이 [밀레니엄]에서 느꼈던 바로 그 느낌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흡인력, 그리고 폭발력은 이 리얼리티, 극도의 사실성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가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세밀한 묘사와 설명으로 보여지는 현실감, 실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을 그 사실성이 기반이 되어 전체 작품에서 독자를 사로잡는 힘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작가는 민간 정보원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와 경찰의 정의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이러한 진한 문제의식 또한 더해져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성과 치밀한 구성 그리고 진지한 사회 인식까지, 왜 [쓰리 세컨즈]의 작가 ‘안데슈 루슬룬드'와 ‘브리에 헬스트럼'의 콤비가 ‘스티그 라르손'에 비견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있는 이상 [밀레니엄]의 아성이 쉽게 무너질 리는 없겠지만 ‘살란데르'같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무렇게나 쉽게 나올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만큼 이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쓰리 세컨즈]에는 억울한 일이 되리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얘기 하자면 [쓰리 세컨즈]의 캐릭터도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각각 개성도 있고 역할도 있다. 불필요하게 등장해서 뻘쭘하게 서있는 캐릭터는 없다. 무엇보다 생동감이 있다. 고집 세고 까칠한 노형사 ‘에베트 그랜스', 필요하다면 살인도 주저하지 않을,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는 냉혹하고 냉정하면서도 인간적인 정보원 ‘피에트 호프만', 노형사의 변덕을 익숙하게 받아주며 그의 손발이 되어주는 유능한 형사 ‘스벤'과 ‘마리안나' 등등……. 누구 하나 꼭두각시처럼 작가의 손끝에 조종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문장부호와 행간을 호흡하고 그 순환계에는 잉크가 흐르는 생명체인 것이다.

 

‘스티그 라르손'이 작고하여 더 이상 [밀레니엄]의 이야기를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랠 길 없던 필자에게 [쓰리 세컨즈]는 가뭄에 단비 같은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엘러리 퀸'처럼 ‘안데슈 루슬룬드'와 ‘브리에 헬스트럼'의 콤비도 부디 오래오래 살아남아 앞사람을 뛰어넘는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겨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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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포 킬러 - 본격 야구 미스터리
미즈하라 슈사쿠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사우스포 킬러] 이 책 상당히 재미있다. 보통 장편 소설 한권이면 2~5일정도로 끊어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집어 들고서 하루만에, 그야말로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제목만 보면 누군가 마구 죽어나갈 것 같은 분위기다. 왼손잡이가 마구 죽이고 다닐까? 아니면 왼손잡이 투수들만 골라 죽이는 엽기 살인마인가? 하지만 아쉽게도(?) 아무도 죽지 않는다. 피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데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작가의 이야기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독자를 홀리는 솜씨가 정말 일품이다. 극의 구도상 증거는 없지만 대략 초반에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읽다보면 그 사람이 아니다. 그러다 다시 의심이 생겼다가 아니었다가 왔다 갔다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기가 막힌 반전이 있거나 미친 듯이 몰아치는 속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야기에 빠져들어 작가의 의도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닌 느낌이다.
 
미스테리인데 읽는 동안은 미스테리가 맞았는데, 다 읽고 난 후에는 이게 미스테리가 맞았나 헷갈린다. 미스테리를 가미한 스포츠 드라마? 작가는 '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의 대상 수상 소감에서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미스테리'라고 이름 붙은 상을 받아놓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제 소설에는 이른바 트릭(밀실이나 시각표 등)이 없습니다. 다중인격자, 엽기 살인마도 나오지 않습니다. 사체도 없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는 이야기도 아니고, 저주받은 비디오도 나오지 않지요……. 그런 미스테리 입니다.

 
그런 미스테리다. 에라~! 미스테리든 스포츠 드라마든 그런 건 아무렴 어떠랴. 재미있으면 됐지. 그런 소설이다.
 
사실 필자는 일본의 미스테리를 처음 읽었다. 단편으로는 몇 편 읽은 기억이 나는데 장편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우스포 킬러]를 읽고 왜 많은 추리소설 팬들이 일본 작품들을 이야기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렇게 독특한 소재와 감각으로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저변이 넓고 깊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포츠 소설도 처음인 것 같다. 스포츠 영화는 많이 봤다. 대체적으로 영화에서 스포츠를 소재로 할 경우 흥행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만족도가 낮은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필자만의 감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스포츠 영화들의 평점을 확인해 보면 확실하게 이런 성향이 드러난다. 필자는 그다지 스포츠와 친하지는 않다. 딱히 싫어하거나 일부러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착실하게 챙겨보는 편도 아니다. 그런 입장에서 ‘딱 이거다!’ 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이런 스포츠 영화들에 많은 관객들이 호응하는 것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스포츠의 성격 때문이 아닐까? 위기가 있고 반전이 있고 클라이맥스가 있고 감동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있다. [사우스포 킬러]에도 이 모든 요소들이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작가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손끝에서 적절하게 배합되어 참으로 재미있고 멋진 작품으로 탄생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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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포 킬러 - 본격 야구 미스터리
미즈하라 슈사쿠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사우스포 킬러] 이 책 상당히 재미있다. 보통 장편 소설 한권이면 2~5일정도로 끊어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집어 들고서 하루만에, 그야말로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제목만 보면 누군가 마구 죽어나갈 것 같은 분위기다. 왼손잡이가 마구 죽이고 다닐까? 아니면 왼손잡이 투수들만 골라 죽이는 엽기 살인마인가? 하지만 아쉽게도(?) 아무도 죽지 않는다. 피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데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작가의 이야기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독자를 홀리는 솜씨가 정말 일품이다. 극의 구도상 증거는 없지만 대략 초반에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읽다보면 그 사람이 아니다. 그러다 다시 의심이 생겼다가 아니었다가 왔다 갔다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기가 막힌 반전이 있거나 미친 듯이 몰아치는 속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야기에 빠져들어 작가의 의도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닌 느낌이다.
 
미스테리인데 읽는 동안은 미스테리가 맞았는데, 다 읽고 난 후에는 이게 미스테리가 맞았나 헷갈린다. 미스테리를 가미한 스포츠 드라마? 작가는 '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의 대상 수상 소감에서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미스테리'라고 이름 붙은 상을 받아놓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제 소설에는 이른바 트릭(밀실이나 시각표 등)이 없습니다. 다중인격자, 엽기 살인마도 나오지 않습니다. 사체도 없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는 이야기도 아니고, 저주받은 비디오도 나오지 않지요……. 그런 미스테리 입니다.

 
그런 미스테리다. 에라~! 미스테리든 스포츠 드라마든 그런 건 아무렴 어떠랴. 재미있으면 됐지. 그런 소설이다.
 
사실 필자는 일본의 미스테리를 처음 읽었다. 단편으로는 몇 편 읽은 기억이 나는데 장편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우스포 킬러]를 읽고 왜 많은 추리소설 팬들이 일본 작품들을 이야기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렇게 독특한 소재와 감각으로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저변이 넓고 깊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포츠 소설도 처음인 것 같다. 스포츠 영화는 많이 봤다. 대체적으로 영화에서 스포츠를 소재로 할 경우 흥행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만족도가 낮은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필자만의 감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스포츠 영화들의 평점을 확인해 보면 확실하게 이런 성향이 드러난다. 필자는 그다지 스포츠와 친하지는 않다. 딱히 싫어하거나 일부러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착실하게 챙겨보는 편도 아니다. 그런 입장에서 ‘딱 이거다!’ 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이런 스포츠 영화들에 많은 관객들이 호응하는 것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스포츠의 성격 때문이 아닐까? 위기가 있고 반전이 있고 클라이맥스가 있고 감동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있다. [사우스포 킬러]에도 이 모든 요소들이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작가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손끝에서 적절하게 배합되어 참으로 재미있고 멋진 작품으로 탄생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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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을 발로 찬 소녀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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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3 '벌집을 발로 찬 소녀'에서 숨가쁘게 달려온 이야기가 일단은 결말을 맺는다. 필자로서도 정말 1권을 잡으면서부터 그 많은 분량을 의식하지도 못한채 단숨에 달린것 같다. 일단이라는 단서를 단 것은 마지막장을 넘기며 느꼈던, 더 읽고싶다. 더 보고싶다. 그러나 더 볼수 없다는 진한 아쉬움 때문이다. 어디에선가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이 밀레니엄 시리즈를 10부로 구상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봤었는데,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들과 디테일로 보여주는 작가의 진한 사회의식, 모든것을 아울러 흐르게 하는 작가의 스토리텔링으로 남은 이야기는 얼마나 기대가 되었던지.. 더 이상 이 이야기를 볼수 없고 들을 수 없다는것이 기대했던것 이상으로 진한 아쉬움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남은 일곱개를 돌려달란 말이야~~ㅠㅠ'.

 

그나마 다행인것은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가 마무리 지어졌다는 것이다. 책이란 물건을 꾸준히 접하다보면 드물게 유작도 만나게 되는데 '유작'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미완성의 느낌이 실제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드물게 만나는 작품에 종종 어쩌구 하니 좀 언발란스 한데 아무튼 이것이 다듬지 않았다든가 완성도가 떨어진다든가 하는 미완성이 아니라 정말로 이야기가 중간에 뚝! 끊어지는 것이다. 어떤 장르의 소설도 이야기라는 측면에서는 마찬가지이겠으나 추리나 미스테리의 경우 이렇게 이야기가 끊기면 독자에게는 그야말로 정신고문이 따로 없는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밀레니엄이 2부에서 끝나지 않고 3부까지 쓰여진건 고인에 대한 아쉬움과는 다른 관점에서 정말 다행이 아닐수 없다. 어쩌면 나머지 이야기중 일부가 집필되었으나 도저히 출판할 정도로 진행이 되지않아 '유작' 마케팅이 안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런게 있다고 해도 나오지 않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전작의 부상(이라고 쓰고 부활이라고 읽는다)으로 병원으로 후송된 장면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리스베트' 개인의 복수 뿐 아니라 배후의 음모세력을 파해치고 단죄하며, '리스베트'의 자유를 얻는 과정이 흥미 진진하게 펼쳐진다. 그야말로 확실한 '리스베트'의 과거청산이 되시겠는데.. 확실히 '과거청산'이라는게 한두사람 죽어나가는 일이 아닌것이다. 그네나라든 우리나라든...

 

전작의 리뷰에는 스포일러때문에 쓰지 못한 필자의 사소한 불만이랄까 거부감이랄까, 아무튼 그런게 하나 있는데 뭐냐면 리스베트의 부활장면이다. 이야기 진행상 긴박감을 위해 주인공의 위기 장면이 필요하고 또, 상당히 흥분되고 긴장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였으나, 머리에 총맞고 매장되었다가 되살아나는건 좀 너무한게 아닌가 싶다. 그넘들이 아마추어라면 모르겠지만 사람 한두번 죽여본 넘들도 아닌데 죽은걸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대충 묻은것도 그렇고 말그대로 머리에 총맞고 빙빙 도는 상태로 무덤을 헤치고 나오는데다 그 엉망인 주인공을 사람 한두번 죽여본게 아닌 넘들이 어쩌지 못하고 결국 당한다는것도 좀 그렇다. 물론 여러가지 가능성이 존재하고 실제 작가도 설득력있게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디테일에 강했던 작가를 생각한다면 다소는 무리가 있는 장면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렇다고 이 장면이 전체 이야기를 훼손하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극적인 요소로 인해 이야기의 재미가 살아나는만큼 작가의 재능을 칭찬할 일이겠지만, 우얏든 필자에게는 아~주 사소한 불만으로 다가온다.

 

전체적인 외관과 편집은 전작과 다를바 없으며 표지 디자인만 또 살짝 변했는데 이번엔 뒷모습이 아니라 앞모습이다. 앙증맞은 용가리가 이젠 반갑다. 반쪽 얼굴이라도 이왕 정면사진을 실을바엔 전신샷을 해줬으면..퍼퍽!..반신이라도..퍼퍼퍽!....ㅠㅠ

 

재미있다에 4.5, 외관에는 3.5, 읽기 좋은 편집과 번역에4, 소장가치로 3.5점 대충 평균 4점의 별점을 주고싶다. 좋은책 출판해주신 출판사에 감사드리며 무엇보다 고인이 되신 작가 '스티그 라르손'님께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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