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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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무엇을 먼저 이야기하고 무엇을 나중에 이야기할까요?

하늘의 신들께서 내게 너무 많은 고난을 주셨으니 말이오.

먼저 내 이름을 말씀드리겠소이다. 그대들도 내 이름을 알도록

그리고 내가 무자비한 날에서 벗어나 비록 멀리 떨어진

집에서 살더라도 여전히 그대들의 손님으로 남아 있도록 말이오.

나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뒷세우스올시다! 나는 온갖 지략으로

사람들에게 존경 받았고 내 명성은 이미 하늘에 닿았소.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14∼20행

 

 

   

나로서는 자기 나라보다 달콤한 것은 달리 아무것도 볼 수 없소이다.

아닌게아니라 여신들 중에서도 고귀한 칼륍소는 나를 남편으로

삼으려고 자신의 속이 빈 동굴들 안에 나를 붙들어두려 했지요.

마찬가지로 아이아이에 섬의 교활한 키르케도 나를

남편으로 삼기를 열망하며 자신의 궁전에 나를 붙들어두려 했지요.

하지만 그들도 내 가슴속 마음을 설득할 수는 없었소.

이렇듯 누군가가 부모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낯선 나라의 풍요한 집에서 산다 해도

고향 땅과 부모보다 달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이라오.

자, 나는 그대에게 내가 트로이아를 떠났을 때 제우스께서

내게 지우셨던 고난에 찬 귀향에 관해서도 말씀드리겠소이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28∼36행

 

 

 

그러나 로토파고이족은 우리 전우들에게 파멸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로토스를 먹으라고 주었소. 그리하여

우리 전우들 가운데 꿀처럼 달콤한 로토스를 먹은 자는

소식을 전해주거나 귀향하려고 하기는커녕

귀향은 잊어버리고 그곳에서 로토스를 먹으며

로토스파고이족 사이에 머물고 싶어 했소.

나는 울고불고하는 이들을 억지로 함선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와

노 젓는 자리들 밑으로 끌고 가 속이 빈 배 안에 묶었소.

그러고 나서 나는 로토스를 먹고 귀향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사랑하는 다른 전우들에게

어서 서둘러 날랜 배에 오르라고 명령했소.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92∼103행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비통한 마음으로 항해를 계속하여

오만불손한 무법자들인 퀴클롭스들의 나라에 닿았소.

그들은 불사신들을 믿고 아무것도 제 손으로

심거나 갈지 않았소. 밀이며 보리며 거대한 포도송이들로

포도주를 가져다주는 포도나무하며 이 모든 것이

씨를 뿌리거나 경작하지 않지만 그들을 위해 풍성하게 돋아나고,

그러면 제우스의 비가 그것들을 자라나게 해주지요.

그들은 의논하는 회의장도 없고 법규도 없으며

높은 산들의 꼭대기에 있는 속이 빈 동굴들 안에 살면서

각자 자기 자식들과 아내들에게 법규를 정해주고

자기들끼리는 서로 상관하지 않아요.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105∼115행

 

 

그러나 입법자들은 오직 스파르타 사람들의 폴리스에서만, 혹은 소수의 폴리스에서만 시민들의 교육과 종사해야 할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던 것 같다. 다른 대부분의 폴리스들에서는 이런 일들에 관해 소홀히 취급하였으며,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키클롭스들처럼 법을 부여하면서.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0권 <제9장 윤리학, 입법, 정치체제> 중에서

 

 

 

'너는 내게 자진하여 그것을 한 잔 더 주고 네 이름을 말하라,

지금 당장. 그러면 나는 너를 기쁘게 해줄 선물을 주겠다.

물론 퀴클롭스들에게도 풍요한 대지는 거대한 포도송이의

포도주를 가져다주고 제우스의 비가 그것을 자라게 해주지만

네가 준 이것이야말로 가히 암브로시아요, 넥타르로다.'

그자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반짝이는 포도주를 다시 건넸소.

나는 세 번이나 그자에게 포도주를 주고, 그자는 어리석게도 세 번이나

그것을 받아 마셨소. 마침내 포도주가 퀴클롭스의 마음을 에워쌌을 때

나는 그자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걸었소.

'퀴클롭스, 그대는 내 유명한 이름을 물었던가요? 그대에게

내 이름을 말할 테니 그대는 약속대로 내게 접대 선물을 주시오.

내 이름은 '아무도아니'요. 사람들은 나를 '아무도아니'라고

부르지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다른 전우들도 모두.'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자는 즉시 비정하게 내게 대답했소.

'나는 전우들 중에서 맨 나중에 '아무도아니'를 먹고

다른 자들을 먼저 먹겠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줄 접대 선물이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355∼370행

 

 

 

퀴클롭스 폴뤼페모스에게 마론의 포도주를 주는 오뒷세우스

장 드 생 티니(Jean de Saint-Igny, 1600년경~1647), 17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폴뤼페모스의 동굴 안에 갇힌 오뒷세우스

야콥 요르단스 (wikimedia commons, 1593∼1678), 17세기 전반경, 푸슈킨 미술관

 

 

(14)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오뒷세이아』에서의 폭풍들과 퀴클롭스의 이야기와 그 밖에 다른 삽화들을 잊은 것은 아니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노년기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호메로스의 노년기요. 하지만 이들 이야기들에서는 신화적 요소가 현실적 요소를 압도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오. 내가 이런 여담을 덧붙인 것은, 앞서 말했듯이, 위대한 천재도 절정기가 지나면 아주 쉽게 허튼소리를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소. 예컨대 포도주 담는 가죽 부대와 키르케의 궁전에 돼지로 붙들려 있는 자들과 - 조일로스는 이들을 꿀꿀대는 새끼돼지들이라고 부르고 있소 - 제우스가 새끼 새처럼 비둘기들한테서 먹이를 받아먹는다는 이야기와, 오뒷세우스가 열흘 동안이나 먹지도 않고 난파선 위에 머물러 있었다는 이야기와, 구혼자들을 죽였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말이오. 정말이지 이런 것들이야말로 제우스의 꿈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15) 『오뒷세이아』 에 이런 말을 덧붙이는 또 다른  이유는 위대한 작가들과 시인들도 감정의 힘이 절정기를 지나면 성격을 묘사하게 된다는 것을 그대에게 알려주기 위함이었소. 오뒷세우스의 고향집에서의 생활 방식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그 한 예인데, 그것은 일종의 풍속 희극과 같은 느낌을 주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롱기누스 / 숭고에 관하여」중에서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사방에서 모여든 퀴클롭스들이

동굴 주위에 둘러서서 무엇이 그자를 괴롭혔히는지 물었소.

'폴뤼페모스! 무엇이 그대를 그토록 괴롭혔기에 그대는 신성한 밤에

이렇게 고함을 지르며 우리를 잠 못 들게 한단 말이오? 설마 어떤

인간이 그대의 뜻을 거슬러 작은 가축들을 몰고 가는 건 아니겠지요?

설마 누가 꾀나 힘으로 그대를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요?'

힘센 폴뤼페모스가 동굴 안에서 그들을 향해 말했소.

'오오, 친구들이여! 힘이 아니라 꾀로써 나를 죽이려는 자는 '아무도아니'요'

그들은 물 흐르듯 거침없이 이런 말로 대답했소.

'그대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이 아무도 아니고 그대가 혼자 있다면,

그대는 아마도 위대한 제우스가 보낸 그 병(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아버지 포세이돈 왕께 기도하시오."

이렇게 말하고 그들이 떠나가지 내 마음은 웃었소.

내 이름과 나무랄 데 없는 계략이 그들을 속였기 때문이지요.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401∼414행 

 


 

폴뤼페모스를 조롱하는 오뒷세우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1829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그러나 그들은 이런 말로도 나의 고매한 마음을 설득하지 못했소.

나는 마음속으로 화가 치밀어 다시 그를 향해 소리쳤소.

'퀴클롭스! 필멸의 인간들 중에 누가

그대의 눈이 치욕스럽게 먼 것에 대해 묻거든

그대를 눈멀게 한 것은 이타케에 있는 집에서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뒷세우스라고 말하시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자는 탄식하며 내게 이렇게 말했소.

'아아, 이제야말로 내게 옛 예언들이 이루어지는구나!

이곳에 에우뤼모스의 아들 텔레모스라는 준수하고 훤칠한

예언자 한 분이 있었다. 예언술에서 모두를 능가했고

고령이 될 때까지 퀴클롭스들에게 예언했었지.

그분은 이 모든 일들이 나중에 이루어져서

내가 오뒷세우스의 손에 시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

그래서 나는 늘 큰 용맹으로 무장한, 키카 크고

준수한 사내가 이리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지금 한 왜소하고 쓸모없고 허약한 자가 나를 포도주로

제압한 다음 눈멀게 했구나. 자! 이리로 오라, 오뒷세우스여!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500∼505행

 

 

그사이 텔레무스가, 어떤 새도 속이지 못한, 에우뤼무스의 아들

텔레무스가 시킬리아의 아이트나 산에 왔다가

무시무시한 폴뤼페무스에게 말했어요. "그대가 아마

한복판에 달고 다니는 하나뿐인 눈은 울릭세스가 빼앗아갈 것이오."

그러자 그자가 웃으며 말했어요. "오오, 가장 멍청한 예언자여,

그대가 틀렸소. 다른 여자가 이미 그것을 빼앗아갔으니 말이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제13권, 《아키스와 갈라테아》제770∼774행

 

 

외눈 거인 폴뤼페모스를 보고 놀라는 아키스와 갈라테이아

오제 뤼카(Auger Lucas, 1685~1765), 18세기경, 베르사이유와 트리아농 궁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자는 별 많은 하늘을 향해

두손을 들고 포세이돈 왕께 기도했소.

'내 말을 들으소서, 대지를 떠받치시는 검푸른 머리의 포세이돈이시여!

내가 진실로 그대의 아들이고 그대가 내 아버지이심을 자랑스럽게

여기신다면 이타케에 있는 집에서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뒷세우스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해주소서.

그러나 그자가 가족들을 만나고

잘 지은 집과 제 고향 땅에 닿을 운명이라면

전우들을 다 잃고 나중에 아주 비참하게 남의 배를 타고

돌아가게 해주시고 집에 가서도 고통 받게 해주소서!'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9권 제526∼535행

 

 

 

〈폴뤼페모스의 눈을 못쓰게 만든 오뒷세우스와 부하들〉 BC 650년경의 아티카 암포라 도기 세밀화

 

 

오뒷세우스가 폴뤼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장면을 보여주는 술잔(기원전 550년경)
(에우리피데스 지음 / 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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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기 2016-03-01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붙여주신 링크를 타고 들어와서 인용구와 삽화, 사진들을 쭉 봤습니다. 미술을 공부한 덕분(?)에 저 중 몇 개는 그래도 알고 있는 거라, 니체를 대하며 갈수록 변하는 Oren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는 과연 언제가 되어야 니체를 두려워하지 않고 존숭하는 독자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그 까마득함에 순간 아찔하기도 했고요.

오늘은 달아주신 인용구에서 ˝자기 자신의 해방에 매달려서는 안 되며, 더욱 더 많은 것을 자기 아래로 내려다보기 위해 언제나 더 창공 높이 날아오르는 새처럼 탐욕적으로 멀고 낯선 세계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 그것은 비상하는 자의 위험이다.˝라는 니체의 자유정신 구절을 이면지 위로 훔쳐갔습니다. 과연 저라는 도둑은 그걸 어디에 쓸 수 있을지... 다만 언젠가 『밀랍』이라는 제목의, 세상에 나지 않은 저만의 소설에서 이카로스의 비극을 - 다이달로스의 목소리를 빌려 - 써본 적이 있기에, 밀랍으로 된 저의 날개를 등에서 떼어낼 용도로 니체를 곱씹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봅니다. 저도 늘 묻고 싶었던 것일지도요. 이 젊음의 오만과 독서의 함정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 좋은 말씀, 오늘 또한 감사드립니다 ^^

oren 2016-03-01 16:30   좋아요 1 | URL
고대 그리스에 쓰여진 여러 작품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속에 담긴 `무궁무진한 깊이` 때문에 다시금 놀라곤 한답니다. 그런데 마침 탕기 님께서는 마침 미술을 공부하셨다니 `그리스 로마 신화`에 얽힌 숱한 미술 작품들에 대해서는 그리 낯설지 않게 들여다보실 안목을 이미 갖추신 셈이군요. 저로서는 참 부러운 부분입니다.

그리스 신화 가운데 크레타 섬의 미궁을 둘러싼 이야기는 특히나 니체도 좋아했던 듯해요. 미노타우로스와 아르아드네가 이 책 저 책에서 거듭 등장하니까 말이지요. 탕기 님께서도 『밀랍』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실 정도였으니, 니체처럼 그 이야기에 매혹된 게 틀림없나 봅니다. ㅎㅎ

니체가 말한 `비상하는 자의 위험`은 비단 날개에만 달려있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튼튼한 날개`가 날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문제시된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겠지요... 늘 건필하시길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