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포카라의 '낮술'에 모두가 쓰러질 뻔.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 뿐만 아니라 모두들 설사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다들 모여서 목사님께서 사오신 설사약을 먹고 다시 각자의 방으로 올라가기 바빴다. 한낮이 되어서야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카트만두 시내 구경'을 나서게 되었다. 목사님 대신 비서인 뻐덤이 가이드 역할을 대신 떠맡아 우리와 함께 했다.

제일 먼저 가 본 곳은 몽키템플로 더욱 잘 알려진 스와얌부나트 사원. 이곳은 197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곳이기도 하다. 카트만두의 작은 언덕에 자리잡은 이곳은 무엇보다 스투파(반구형의 티벳불교 탑)
에 그려진 '지혜의 눈'이 가장 눈길을 끈다. 네팔의 관광상품을 비롯해서 길거리의 담벼락 같은 곳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네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이다.

한가한 일요일 오후에 느긋하게 불교 사원 경내에서 울려퍼지는 '독경소리'를 듣는 감상이 특별하다. 네팔 사람들과 뒤섞여 사원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불상에 절을 올리고 나서 100루피 지폐 한장을 꺼내 불전함에 시주하고 나니 문득 이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부처님이 태어났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평원에 자리잡고 있는 룸비니는 석가모니가 탄생한 성스러운 곳이다. 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하나로 현재는 각국의 사원들과 순례자들로 넘쳐나고 있지만, 불과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그곳은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1895년 독일의 고고학자인 포이러(Feuhrer)가 히말라야 산기슭의 작은 언덕을 배회하다 석주 하나를 발견하면서 그 비문을 해독한 결과 그곳이 바로 석가모니의 탄생지였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그때 고고학자가 발견한 석주는 기원전 249년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이 석가모니를 찬미하며 룸비니를 찾아와 불탑과 함께 세웠던 것이라고 한다. 네팔에까지 와서 룸비니를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도 컸지만 스와얌부나트 사원에 들러 불상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각별한 느낌이 솟아나는 듯했다.

사원을 나와 다시 복잡한 골목길을 거쳐 '구왕궁'이 있는 거리로 이동했다. 왕궁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목조건물인 데다가 규모에 있어서도 웅장한 분위기는 별로 찾기 어려웠다. 네팔이라는 나라 자체가 바다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가 국토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지형이다 보니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형성될 여건이 되지 못했음을 '왕궁'의 규모만 보아도 능히 미루어 짐작할 만했다.

네팔은 아직도 국왕이 있긴 하지만 권력이 많이 약화되면서 정치적 상황이 대체로 불안정한 데다가 근래에는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고 나서도 '헌법'조차 아직까지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카스트라는 엄격한 신분제도가 사회 전반에 뿌리깊게 남아 있어서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눈에는 네팔이라는 나라가 어디를 가든 한결같이 '너무 낙후된' 모습으로 보였다. 그저 안타까운 생각에 '도로와 전기와 수도'만이라도 어떻게든 좀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방안이 없을까를 여러번 고민해 보기도 하였다.

카트만두에 오면 반드시 가볼 만한 곳이 '더' 남아 있었다. 그건 바로 시내를 흐르는 조그만 강가에 있는 화장터(파슈파티나트, Pahupatinath)였다. 아쉽게도 우린 다들 몸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좋은 핑계로 거길 생략했다. '삶과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장 인상적인 장소'를 곁에 두고 그냥 지나친 것이다. 사실 그 화장터는 네팔에서 가장 유명한 힌두사원으로 창조와 파괴의 신인 시바신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이왕 네팔까지 왔으니 한번쯤 그곳에 들러 불교와 힌두교에도 심취했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글을 떠올려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을텐데 싶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돌연 진지하게 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을 밖에서 보면 얼마나 보잘것없고 무의미하며, 또 안에서의 느낌도 얼마나 답답하고 무의식적인가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들의 생활은 무기력한 동경과 고뇌이고, 보잘것없는 일련의 사상을 가지고 인생의 사계를 돌아다니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꿈을 꾸듯 허우적거리며 간다. 그들은 태엽에 감겨서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움직이는 시계와도 같다. 한 사람이 태어날 때마다 인생이라는 시계의 태엽이 새로 감기고, 이때까지 무수히 되풀이하여 연주된 오르골의 곡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하여 한 악절마다 한 박자마다 보잘것없는 변주를 붙여서 연주하는 것이다. 모든 개인, 모든 인간의 얼굴이나 생애도 무한한 자연의 영혼이 살려고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의지의 짧은 꿈에 지나지 않고, 이 영혼이 공간과 시간이라는 그의 무한한 지면에서 재미로 그려 보는 잠시 동안의 형상이다. 그것은 무한한 시간에 비하면 실로 보잘것없는 일순간에만 존재가 허용되고, 다음 형상에게 장소를 양보하기 위해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인생의 중요한 측면이 있는 것이지만, 이들 잠시 동안의 형상이나 이 재미없는 착상들은 모두 생에 대한 의지 전체에 의해, 그 격렬함 속에서 많고 깊은 고통, 또 마지막에는 오랫동안 무서워하고 끝으로 나타나는 괴로운 죽음으로 속죄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체를 보면 우리는 돌연 진지하게 되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中에서



 - 스와얌부나트 사원 




 - 라마불교의 경전이 새겨진 마니차를 돌리면서 서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일행들.




 - 스와얌부나트 사원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서 네팔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 불경을 적어놓은 오색의 '타르초'




 - '지혜의 눈'




 - 옴마니 반메훔




 - 옴마니 반메훔




 - 목조 양식의 '구왕궁'




 - 단촐해진 우리 일행




 - 나무기둥의 조각이 이채롭다.



 - 목조건물이 마치 불에 그을린 듯 많이 어둡다.




 - 옛날에는 화려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먼지가 내려앉아 '퇴락'의 느낌만 가득하다.




 - 다음 행선지는?




 - 왕궁 주변에서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네팔 사람들.




 - 왕궁을 나오니 주위는 금새 정신없이 복잡해진다.




 - 아이들에겐 이곳이 놀이터.




 - 웃음이 넘치는 네팔 노인들.




 - 골동품 가게 앞 젊은이들.




 -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뒤범벅인 왕궁 주변 도로



(계속)


댓글(0) 먼댓글(1)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11. 타멜에서 아침을,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from Value Investing 2013-06-03 14:18 
    오늘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지난 4월 하순에 네팔로 향할 때만 하더라도 '히말라야의 설산'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그에 못지 않게 '험준한 산길'을 제대로 완주할 수 있을까 싶어 '긴장'도 좀 되고, 또 '고산병'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마냥 들떠 있을 수만도 없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제 무사히 내가 살던 땅, 내가 살던 집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어느새 '밀려드는 안도감'과 함께 일상